*오늘 전해드리는 이야기는 2015년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못할, 좀 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 교과서는 원래 국정이 아니냐고 아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대한민국 교육이 시작될 때 교과서는 모두 검인정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2차 교육과정 때는 11종의 역사 교과서가 존재했지요. 오히려 지금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이런 교과과정이 국정화가 된 건 언제부터일까요? 그 논의의 시작은 1972년입니다. 당시 제3공화국이 ‘국적 있는 교육’,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을 내세우며 국사교육 강화정책을 시작했지요. 이때 국사교양 필수화, 국가채용고시에서의 국사과목 의무화 등의 정책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1973년 본격적인 유신 정권과 함께 3차 교육과정 개편이 단행되었습니다. 1974년에는 전국 중등고등학교에 새 국정 국사교과서가 배포되었지요. 이때부터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교과서는 국정체제로 고정되었습니다.
이런 국사교육 강화정책은 학계나 사회의 함의가 반영되었다기보다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의지에서 발현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교과서 국정화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지요. 이를 통해 일관성 있는 국민정신교육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국정화 결정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사실 검인정제를 국정화로 전환하자는 의견은 과거부터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그때마다 사학계는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지요.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여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것은 전시대적인 낡은 방식으로 후진국가나 공산주의 국가, 혹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어떠한 정책과 주의를 주입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며, 진보된 선진국가에서는 채택치 않는 것이다. 국정으로 한다면 좋으나 나쁘나 모두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 마치 동일한 분량, 동일한 내용, 동일한 조미의 음식을 모든 사람에게 먹이는 격이어서 선택의 여지와 자유가 박탈되고 있다.”
-이병도, <동아일보> 1962년 10월 9일 기사
이 기사가 나온 시점이 한국전쟁 끝난 지 10년도 안된 때이며, 아직 소련이 건재했던 시절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기관인 문교부와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반대 입장을 나타냈지요. 그러나 유신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대외적인 반대행동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문교부와 사학계 사이의 논쟁은 공개된 지면이 아닌 음지에서 이루어졌지요.
문교부를 위시한 국정화 찬성측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검인정교과서와 달리 개개 하자의 편견을 극복하고 풍부한 내용을 수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사학계의 연구결과를 널리 종합하여 객관성 높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통일된 국사의 내용을 통하여 국사에 대한 이해체제가 하나로 이루어져 국민의 국사인식에 혼란이 오지 않게 될 것이며, 한국의 당면한 대내외적 상황에서 국론통일에도 유리할 수 있다.’
반면 주류 사학계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우며 반대했습니다.
‘검인정 국사교과서는 자율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 부합되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다양한 교과서의 존재는 선택받기 위한 경쟁을 불러일으켜 국사교육 자체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인식 고정은 역사교육의 본래 목표인 역사적 사고력이나 문제해결력을 기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논의가 오고 갔지만 사실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사학계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결정되었지요. 이후 그 제작기간이 워낙 짧아 완성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던 적은 있었으나 국정화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국가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지요.
당시의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윤종영 전 교육부 역사편수 담당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국정 국사교과서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계나 국사학계의 주된 견해는 국정 국사교과서의 긍정적 측면에 비해 부정적 측면이 크다는 것이었고, 이는 올바른 판단이었다. (중략) 교과서 발행제도의 국제적 추세가 북한 등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검정 또는 자유발행제도로 변화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창조성, 개성,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 맞추기 위해서도 국사교과서의 검정화 등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유신 정권의 국정 국사 교과서 비판’ 중에서
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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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번 교과서 논란의 본질은 친일과 독재가 아니다.
본질은 대한민국 건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인식과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인식의 충돌이다.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서술을 하고 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