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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60주년 특집> 해군, 육군, 군악대…이화인 여군 3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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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대한민국 여군(女軍)이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군대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도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공군사관학교에 1997년 최초 여생도가 입교한 것을 시작으로 육사와 해사에도 1998~1999년 여생도가 입교했다. 여군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늘어, 국방부는 현재 장교의 4.3%(3111명)인 여군 비율을 향후 10년간 7.7%로 늘릴 계획이다. 본지는 본교 졸업 후 육군, 해군, 군악대 장교로 활동하며 여군의 위상을 떨치고 있는 이화인 3명을 만나 군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국가 행사의 대표 연주자로 활약 중…군악장교 정하야나 대위
정하야나 대위(이화여대 음대졸)는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행사교육장교다. 그는 2004년 군악장교로 임관 후 많은 행사에서 군악대를 대표해 무대에 올랐다. 2008년 한-터키 수교 기념 연주회에서 한국 대표 연주자로 뽑혀 터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쳤으며, 올해 6월 열린 한-미 연합 연주회에서는 공연기획, 협연을 맡았다. 여군 60주년 창설 기념 연주회에서는 여군 장교 대표 연주자로 무대에 섰다. 본교 음대 졸업생으로서 군악대에 지원한 졸업생은 그가 최초다. 정 대위는“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자 교수님을 비롯, 선배와 동기들 모두 걱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며 “하지만 장교로 임관된 후 그들이 직접 부대를 찾아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군악을 접했다. 그의 할아버지 고(故) 정호상씨는 공군 군악대를 창설했으며 아버지는 해군 군악대 대원으로 튜바를 연주했다. 정 대위의 오빠도 경찰악대 출신으로, 그의 가족은 3대에 걸쳐 군악대 활동을 하고 있다. “군악대 내 장병들 모두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합니다. 이들이 스스로 세운 음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면 행복해집니다. 구슬땀 흘려 음악적 성취를 이루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때에‘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육군 3사관학교에서 장교 양성 중…강민정 소령(진급예정)
강민정 소령(진)은 2000년 입대해 현재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처음 군에 지원할 의사를 밝혔을 때부터 가족과 친구 모두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사관후보생 시절, 입교식에 오신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어요. 당시는 여군에 대한 인지도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기에 주변에서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에 입대한 지 이제 10년이다. 사단 정보처에서 여군 최초의 계획판단장교로 활약, 중대장 재임 시는 정신교육 교관반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신병교육대대의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 지금은 장교가 될 생도를 가르치는 교수의 자리까지 올랐다. 최근 소령 진급 과정에서 1차로 선발돼 진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신병교육대대에 있을 때는 6주에 한번씩 40km를 행군해야 했다. 딱딱한 전투화로 발톱이 빠진 적도 있었고 계속된 야외훈련으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었다. 여군을 위한 화장실이 따로 준비되지 않아 8시간 동안 소변을 참기도 했다. “여군 수가 워낙 적어 여군 복지에 대한 인식이 적었던 때였어요.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목이 타들어가도 물도 안 마시면서 정신력으로 버텼죠.” 대학 시절부터 본교 응원단 파이루스 단장, 학과 부학생회장, 고등학교 동문회 회장 등을 맡아오며 리더십을 기른 그는 군에서도 누나, 어머니 같은 친근함과 섬세함으로 장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주는 선임은 못 되겠지만 부하 개개인을 가족처럼 세심하게 신경쓰려고 합니다” 표정의 기자 pyo-justice@ewhain.net
추천 0 2011.06.0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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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자들도 가지 않으려는 군대에 보석같은 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