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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펌)부여왕 울구태와 공손도, 반란을 일으킨 고발기와 구태는 동일인물?
치우천 추천 0 조회 316 19.07.28 14:04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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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9.07.28 15:02

    첫댓글 고구려인들은 의외로 고려라는 국호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군요. 그들이 세운 중원고구려비에도 고구려왕이 아닌 고려국왕이라고 기록..재미있게도 발해도 고려국왕을 자칭했고 일본도 그것을 인정했다는 기록이 있음. 그럼 왕건고려는??
    어떤 설에 의하면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 고려인이고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고구려라는 명칭으로 구분지었다는데..이건 사실이 아니며..수,당 시대의 기록들을 봐도 고구려가 아닌 고려라고 부르고 있죠.
    중국인들이 한국인이나 조선족을 비하할 때 쓰는 '가오리방쯔'는 고려봉자(高麗棒子)입니다. 본래 고구려인들이 포로로 잡힌 수나라 병사들을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음.

  • 19.07.28 14:39

    흠...
    고구려에서 일부 세력이 내려가 백제가 된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부여에서 고구려 또 고구려에서 일부 세력이 마한으로 내려가 다시 부여와 합하면서 백제가 된거라는거죠?
    크게보면 부여가 쪼개지면서 내전상태 비슷한거려나?

  • 작성자 19.07.29 12:45

    동부여의 왕족이었던 주몽은 왕실의 권력암투에 휘말려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졸본부여로 피신했죠. 때마침 남편(구태)과 사별한 소서노와 결혼해 고구려를 세웁니다. 고구려 최초의 수도가 졸본성..나중에 주몽의 아들 유리가 국내성으로 천도함.
    저의 상상이지만..주몽이 고구려왕으로 등극하고 집권 초기에 자국민은 고구려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았을테고, 타국인도 마찬가지일 것. 주몽 자신도 동부여 출신의 이방인이니 민심을 자극하지 않게 고구려와 (졸본)부여를 공식국명으로 함께 사용했을 수도 있음.
    (고)구려와 부여는 자음만 빼고 모음이 똑같고, 고구리(가우리)라고 해도 구리는 구이(구태?고이왕?)와 어감이 좀 비슷하지만

  • 19.07.29 07:42

    혹시 위 내용이 대륙백제설과 관련이 있을까요? 부여가 백제로도 불리었다면 연도가 비슷할 경우 대충 설명이 되는 듯 한데...

  • 작성자 19.07.29 14:55

    일본서부의 유력한 다이묘였던 오우치 가문은 임성태자의 후손인데, 임성태자의 이름이 부여의조(백제왕가의 성은 부여씨, 간편하게 여씨도 씀. 여포도 부여씨?)백제 성왕이나 위덕왕의 아들이었던 걸로 추정하고 있음.
    태자라고 부르지만 본국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왔다면 왕위계승서열이 낮고, 장남이나 차남은 아닐 겁니다.
    오우치 가문 족보에 백제국마한황제제왕(百濟國馬韓皇帝齊王)이라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백제는 서토(중국땅)한족들에겐 제나라, 북방민족들한테 부여라고 자칭한 것 같음(한반도는 마한?)
    덧붙여서 임성태자는 도요다(타)가문의 시조이기도 합니다. 일본대기업 토요타[豊田]도 관계있을까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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