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사람 앞에 자책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수 있기를!" 사무엘상 20장
나는 정말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겠다. 목회자들 사역자들도 만나지만 평신도들도 많이 만난다. 이곳에 와서는 내 묵상을 매일은 읽지 않아도 간헐적으로 읽는 분들을 만났다. 내가 길치인지라 ㅎㅎ 나를 데리러 일부러 내가 있는 딸 수진이 집으로 와 주셨다.
지난번 내가 애틀랜타 왔을 때 만난 분들도 있었고 처음 만난 분들도 있었는데 그동안의 "믿음의 진보"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 이렇게 평신도들도 열심히 사는데 목회자인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해 준 만남이었다.
하나같이 작고 큰 문제를 매일의 삶에서 당면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그들의 자세에는 의연함과 그리고 감사함이 충만한 고백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어려움을 대할 때의 태도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했다.
가끔은 마음에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왜 사람들마다 자신이 가진 문제들의 힘듦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일까?
나는 많은 사람들의 상담 이야기를 카톡으로 받기도 한다.
어떤 때는 참 비슷하게 힘든 상황인데 사람들마다 상담의 내용이 다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너무나 섭섭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에 만난 분들의 공통적인 감사제목은 어려운 상황에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기도회 회원들이 있었음" 이었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공동체의 지체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간증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러면 어쩌면 우리 삶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옆에서 기도해 주는 지체들이 없는 사람들은 원망과 불만과 섭섭함이 가득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고 옆에서 기도해 주는 지체들이 많으면 그 어려움을 감사와 기도와 찬양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나님이 정말로 섭섭한가? 하나님께 무엇을 그렇게 많이 해드렸기에 하나님께 그렇게 자유(?)하게 섭섭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 아마 해 드린 것이 많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나님께 그런 고백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섭섭하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그런 말 안 하는 자녀들보다 덜 사랑하실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께 자신의 섭섭함을 토로하는 자녀들을 향하여서는 마음이 더 짠하실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자녀들이 기쁘실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하나님의 마음에 어찌하든지 "기쁨이 되기를 원하는 자녀"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자녀들은 하나님께 자신이 섭섭하다는 생각이 있어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꾹 참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정작 정말 깊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뜻"을 내가 믿는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보아야 할 일들이 우리 인생에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선하신 뜻"이 간과 될때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 때문이요 그것조차 간과 될 때는 "하나님의 가장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호와 앞에서는 가능한 "섭섭하다는 말"은 조금 참는 것이 좋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전한 뜻"을 알게 되면 섭섭하다고 조급하게 입 밖에 내어 놓은 말들 때문에 주님 앞에 얼굴이 뜨거워 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슬퍼하는 자녀도 짜증내는 자녀도 분노하는 자녀도 서러워 하는 자녀도 모두 다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는 따로 있으시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어떠한 자녀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개역개정 사무엘상 20장
8.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As for you, show kindness to your servant, for you have brought him into a covenant with you before the LORD. If I am guilty, then kill me yourself! Why hand me over to your father?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이라는 이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오늘 묵상은 사무엘상 20장 전체를 다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배경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사울왕을 피해 이제 도망가야 하는 다윗이 사울왕의 아들이요 다윗의 가장 친한 친구 요나단에게 하는 말이 오늘 묵상 구절이다.
자기한테는 사울이 죽일만큼의 자책할 죄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고백을 우리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울 사도도 "자책할 것이 없다!"는 고백을 당당하게 성경에 기록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누구를 향해서도 "자책할 것"이 없다는 것은 혹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해도 더 나가서 오해를 받고 모함을 받은 그런 대상이 된다 해도
나 자신은 그 누구를 향해서도 미움이 없고 분노가 없고 시기 질투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복된 삶이 있을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내 마음에 내 이웃을 향하여서도 "자책할 마음"이 없음이 "복된 삶" 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에게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미워하고 섭섭해 하고 원망해 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삶의 적용"을 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 모든 생명이 있는 이들의 삶에 "주인"이 되십니다. 이러한 "주인"께 드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경솔하지 않고 조급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러니까 감사하고 그러면서 감사하고 그럴수록 감사하고 그럼에도 감사하고 그것까지 감사할 수 있도록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아름다운 향기로 열납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어느 날 이러한 고백이 너무나 힘이 드는 날이 있을 법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그렇지 않은 날들 더 부지런히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님! 저 애틀랜타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 좌석이 "대기"인데 아직 좌석이 나지 않았습니다.
뉴욕을 거쳐 한국 들어가려면 이렇게 저렇게 좀 복잡하고 그리고 피곤해 지는데요 ㅎㅎㅎ
주님 "제 좌석" 하나 만들어 주시기를 부탁 드리옵나이다. 그러나? 그렇게 제가 생각하는 "주님의 선한 뜻"이 허락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다른 더 높고 깊은 뜻이 있는 길로 인도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