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과 기원후
중국 대륙의 몽골리안을 대표했던
흉노족은
진나라와한나라에게도
대단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용맹성과 막강한 전투력에 관해서는
비견될 만한 종족이 드물었다.
(한나라의 역대 황제들이 가능하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황실의 공주들을 왕인선우들에게 시집을 보내 화친을 도모할 정도.)

흉노족의 후신인 훈족은
몽골리안 유목민답게 5세기 전후의 민족 대이동 시기에
지금의 헝가리인 트란실바니아를 본거지로 해서
동쪼긔 카스피해, 서쪽의 라인 강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기까지함.
그러면서 주변의 게르만족과 동고트족을 굴복시키기도 하였다.

아틸라 사진.
(유색 인종에게 정복당했다느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않은 유럽인들이
아틸라를 비하해 머리에 염소 뿔이 두 개 돋아난 모습으로 묘사한 사진)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낸 주역이 바로 당시
유러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는
전설적인 훈족의 왕 아틸라!!
그 후 여세를 몰아 동로마까지 위협,
조공을 바치도록 하는 성과를 올리고
451년에는 갈리아에 침입해 오를레앙을 공격.
(서로마는 이에 서고트 및 프랑크와 동맹군을 편성할 정도)
하지만 천하의 맹장 아틸라도
이처럼 옥쇄를 각오하고 덤비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함.
그는 이듬해 다시 북이탈리아에 침입,
로마를 압박했지만,
로마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는
교황 레오 1세에게 중재를 부탁했고
그의 중재로 양측의 협상 후
(아틸라가 점령한 이탈리아 북부의 지배권을 인정받음)
결국 다시 철군하게 됨.

독일 문학사에서 불후의 서사시로 불리는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453년 철수한 다음 해,
58세인 아틸라는
게르만 제후의 딸과 결혼식을
올린 후,
그는 훈족의 평소 습관대로 술을 마시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신방으로 들어가
다음 날 정오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경비병들이 신방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아틸라는 이미
사망한 후.....
아틸라는 흉노족 특유의
용맹한 군주답게 유럽에서는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나 폴포트 같은 살인마로 불리기도 함)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지금의
뉴욕이나 워싱턴에 버금가는
로마에서 자랐다고하며,
추운 지방에 사는 몽골리안들에게는
열대 지바 풍습인 식인 풍습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아마도, 자주 정복당한 유럽인들의
피해 의식에서 큰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훈족의 후예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헝가리에서는 거의 국민적 영웅으로 손꼽힐 정도이며
어마어마한 동상들이 곳곳에 세워져있다.
그의 행적은 불세출의 작곡가 R. 바그너의 걸작
<니벨룽겐의 노래>와 F. 헤벨이 쓴 <니벨룽겐의 사람들>이라는
희곡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틸라는 동방 문화를 서방문화에
접목시킨 몽골리안 노마드(유목민)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틸라에 대해서 글을 쓴 이유는
훈족과 우리나라선조들이
흡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글에서 이어서 쓰고자한다.
-이민화 선생님의 책"스마트 코리아로 가는 길,유라시안 네트워크"
이종호 선생님의 책"한국 7대 불가사의"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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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틸라...
글쓰다보니 햇갈렷네요 ㅠ.ㅠ 원문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틸라-->아틸다 수정 했습니다.
제목은 여전히 아틸다 ㅋㅋㅋㅋ
아틸라..와 신라왕 아달라.. 유물과 풍습 또한 똑같다..
세상이 변하면서 말은 타 세력이 유입되거나 지배당하면서 변하지만..
딱 한가지 변하지 않는것.. 바로 아빠 엄마..
그리고 유럽 및 투르크 지역에선 대부분 "아빠"를 "파파" 또는 "대디"라고 하지만..
헝가리는 "아파"라고 한다..
투르크족은 "파파"
중국도 "파파"
몽골은 "아압"
만주는 "아마"
북한은 "아바이"
남한은 "아빠""아버지"
아메리칸 인디언은 "아파치""애비"
일본은 아빠가 찌찌입니다.
아마 한국어를 지우기위한 대대적인 언어개혁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