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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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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知性 칼빈의 운명론을 추종하고 찬양하는 자들의 위선과 가증함 - 그림과 비유를 통해
레마의말씀 추천 0 조회 346 06.07.07 13:00 댓글 9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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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07.10 14:31

    그러면.. 님께서 생각하는 운명은 무엇인가요? 칼빈의 예정론이 왜 운명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지.. 그것에 대해.. 논거를 제시해주시길 바랍니다.. 막연히 피상적으로 아니라고 말씀하셔서는 않될 것입니다.. 입체적이고 심층적이라 하셨네요..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칼빈의 예정론이 왜 운명론이 아닌지 설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수긍이 가면.. 제 마음과 주장을 돌이키겠습니다... *^^* 칼빈의 이 이론에 대해.. 저는 골수로 들어갔다가.. 골수로 빠져나온 자입니다.. 막연히 예정론을 운운하는 분들하고는 조금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칼빈론자의 예정론과 이중예중론을 몰라서 막연히 말하는게 아니랍니다.. *^^*

  • 06.07.10 14:33

    바람직한 토론의 자세를 가지고 계시네요. 우선 칼빈주의는 예정과 운명을 상이한 개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차이는 이것입니다. 운명에서 인간은 절대자가 정한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철저히 배제된 제3입니다. 그러나 예정은 절대자가 정한 예정의 실행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역활이 허용된 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외형적으로 볼때 동일하게 비춰질수 있지만,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 이처럼 상이한 태도가 차이입니다. 일반적인 정의에 근거한 외형적인 형태만을 보려는 시각과 그 동기와 성취되는 과정을 살피는 일은 중요한 차이입니다. 예정논의에서....

  • 작성자 06.07.10 14:53

    제가 볼때에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입니다.. 그럼 제가 한가지 예를 들죠.. 어떤자가 태어나기도 전 수천억년전부터... 모일 모시에 구덩이에 빠져 죽기로 신이 결정내렸는데.. 그 사람이 구덩이에 빠지면서.. 이 구덩이에 빠질려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칼빈이 말하는 예정이란 것은.. 이미 짜여진 결과에 인간의 어떠한 것을 잠시라도 가입시켜서.. 운명론이 아니라고 반박하고자 하는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볼때.. 이미 결정된 운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의 입장에서 볼때엔.. 이미 그 결정이 그사람의 운명인 것입니다... 과정은 지극히 부수적이다는게 칼빈의 운명론의 한계입니다..

  • 작성자 06.07.10 14:49

    물론 그 과정에서도.. 전적타락론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론을 주장하면서... 이것도 모두 신의 능동적 결정과 개입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인간 자신은 신의 결정과 의지에의해.. 참여되는 것뿐입니다.. 겉으로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하나님이 조정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자동차가 빨리 달려간다고.. 자동차이 능동적 동참이 아닙니다.. 그 안에 타고있는 운전자의 동참이겠죠... 칼빈의 이론으로는 인간편에서의능동적 동참이라는 것은 없으며.. 그 결과의 불변성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운명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작성자 06.07.10 14:54

    어떤 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가기로 운명받았다면... 이사람이 제주도로 발을 옮겨도 결국 서울에 도착하게 되고... 미국비행기를 타도.. 결국 서울로 도착하게 됩니다... 과정은 운명론적 예정론에 비추어본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곧장 설로 가든.. 돌아서 설로 가든.. 결국 설로 가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입니다.. 물론 지옥가기로 정해진 사람도.. 교회를 가든 절로 가든 성경을 보던 기도를 하던 전도를 하던 무엇을 하든 이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울고 분다고 그의 운명이 바뀌는게 아니겠지요.. 그래서 칼빈의 예정론은 운명론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령과정이 그래도.. 과정이 결과를 뒤엎을수는 없겠죠

  • 작성자 06.07.10 15:04

    운명이라는 말은 결과에 대한 개념입니다.. 가령.. 내가 이것에도 실패하고 저것에도 실패하고 요것을 해봐도 실패했는데.. 아무리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봤는데도... 실패했는데... 어디 점쟁이 집에가서 물어보니.. 그 사람의 운명이 사업에는 실패할 운명이라는거죠.. 그리고, 사업을 접고 공부하라는 겁니다.. 판사가 될 운명이라네요. 그 점쟁이말이.. 그 사람은 판사가 되기로 신에의해 정해졌다네요.. 그 사람의 운명이 결국 판사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판사가 되기위해 무엇을 능동적으로 참여했을까요? 그건 별로 유치한 변명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시는지요? 결과에 있어 그 사람의 과정을 배재하는 것이 운명론이

  • 작성자 06.07.10 15:06

    말하는 바인데.. 설령 그 사람이 그 과정에 참여했다고 해도... 과정에 참여하였기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면... 이것은 운명론이 아닐는지 모르죠.. 그러나 처음부터 이미 그가 판사가 되는 것은 각본에 있는대로이며.. 어떤 식으로든 그 결과는 바뀌지 않습니다.. 설령 그 과정에 이 사람이 난 판사가 되기 싫어 한다고.. 그 사람이 판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쟎아요? 그는 세상말로 사주팔자적으로 과정이 어떠하든지 결국 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자체가 운명론이겠죠.. 더이상의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 06.07.10 15:03

    그렇치 않습니다. 레마님, 예정과 운명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 과정이라고 이미 언급했습니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운명은 이교도적인 사고요 예정은 기독교적 시각에서 이해한 구원입니다. 한계가 아니라 이둘을 구분하는 중요한 논점이라는 말입니다. 과정에서의 인간의 참여가 바로 이 둘을 구분하는 차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하긴 이교도의 관점에서 볼때 운명과 예정은 구분되지 않지요. 울고 부는 과정을 통해 예정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방식, 그 신비가 바로 예정입니다. 님의 주장은 가정을 전제로 할 뿐 입니다. 실상을 보셨으면 하네요. 멀리랄것도 없이 님이 서게신 지금의 실상 말입니다.

  • 06.07.10 15:11

    결과론 중심의 사고는 신앙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 동기와 과정까지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랍니다. 이러한 인간사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특권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신비에 의의를 제기하기 보다는 이를 부러워 하셔야 합니다.

  • 작성자 06.07.10 15:16

    칼바르트의 예정론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예정관과 거의 유사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참 예정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예정일 뿐입니다.. 아무렇게나 예정의 실제를 적용해선 않됩니다.. 야곱과 에서 이삭등은 모두 그림자일뿐입니다. 그건 칼빈식의운명론을 말하고 한것이 아닙니다.. *^^*

  • 작성자 06.07.10 15:11

    그렇지않습니다.. 칼빈의 운명론은 어그스틴의 운명론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며.. 어그스틴의 운명론은.. 마니교의 이교사상의 운명론에서 배운 것입니다.. 칼빈의 운명론은 결국 마니교사상의 전수일 뿐입니다.. 결과가 이미 불변적으로 결정되었는데.. 과정의 변화가 어떻게 운명과 예정이 구분되어진다는 건가요? 그 말씀은 칼빈론자분들의 지극히 유치한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미혹에 오랫동안 속았답니다.. 결국 칼빈의 예정론과 세상용어의 운명론은.. 말만 달라서 그렇지.. 결과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되었고 그 결과도 불변하다면.. 그것 자체가 운명이지.. 왜 운명이 아니라 그러시는가요? *^^*

  • 06.07.10 15:19

    결과중심의 사고는 신앙의 신비에 대한 결함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님 처럼 고민과 고민 끝에 발견한 이해랍니다. 신앙은 초월적인 세게입니다. 그 초월을 이성과 이해로 가두는 일은 불신이랍니다.

  • 작성자 06.07.10 15:25

    칼빈의 운명론 자체의 허구성에 대해 어찌 그렇게 신비스럽게 보시는지 이해가 잘 않된답니다. 물론 저도 오래전엔 그랬었지만.. 칼빈의 운명론 자체의 허구성과 궤악성도 염두해 두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칼빈론에.. 바탕을 두지마시고.. 하나님과 성경에 바탕을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칼빈이란 이 사람과 이 사람의 교리를 넘 신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작성자 06.07.10 15:30

    록키님께선.. 칼빈의 운명론에 바탕을 깔고 해석하시려고 노력하시기때문에.. 결과적으로 초월한다, 이해할 수 없다, 신비적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말을 직선적으로 말하면.. '이 논리가 모순이 되지만.. 나는 모르겠다라는 말입니다..' 결국 칼빈론의 운명론의 끝으로 가면.. 우리는 해석불가요.. 모른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자체가.. 허구요 하나님을 결국 아무연고없이 지옥에나 보내길 기뻐하는 악신과 바알과 마귀로 만들기때문에 거기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입니다...

  • 06.07.10 15:30

    이러한 님의 언급자체가 칼빈에 대한 님의 이해 부족을 입증할 뿐 입니다.

  • 작성자 06.07.10 15:32

    저는 칼빈이라는 사람의 인격도 심히 의심하고 있으며.. 님께선 칼빈을 어떻게 보시는지 몰라도.. 저는 하등 대단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답니다.. *^^*

  • 06.07.10 15:36

    님은 참 의하한 분이시군요. 신앙의 세계가 님이 가지신 논리로 입증이 되던가요? 입증된 주제만 신뢰 할수있다는 말인가요? 결국 님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 되지 않는 하나님은 '악신'인가요? 토론은 자신의 사고를 넓히는 기회입니다. 이를 애써 부인하며 악신운운하는 것은 '신성모독' 입니다.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같은 과오를 반복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06.07.10 15:47

    저는 칼빈의 운명론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말하는 예정과는 전혀 다른.. 칼빈이 마니교사상의 영향을 전수하여.. 고안하고 주창한 이교사상이 흠뻑 내재된 마귀론으로 봅니다. 성경의 예정에 관한 것은.. 칼바르트의 예정론을 참고해주세요..

  • 작성자 06.07.10 15:14

    구지 변명하시고자 하신다면.. 운명론이 맞긴 맞는데.. 그 과정은 세상의 운명론과는 조금 다르며 어떻게 다른 것인지.. 주장하시면서 근거를 제시하시면 몰라도 말입니다.. 물론 그 근거도.. 제가 볼때에는 거의 설득력은 없답니다. *^^*

  • 06.07.10 15:43

    네, 하나님의 예정을 운명으로 보는 일반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보편적인 시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세계! 그것이 바로 신앙이며,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양자의 다름을 이미 언급했급에도 근거를 요구하시네요? 님이 이해 할만한 근거는 무엇이지요. 우선 그 예를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설명 드리지요.

  • 작성자 06.07.10 15:31

    저는 제가 납득할 아무런 설명도 못받았습니다.. *^^*

  • 작성자 06.07.10 15:34

    과정이 그렇다면.. 그 과정은 운명론과 칼빈의 교리에 있어서 어떤의미의 과정이며.. 또 그과정의 차이가 어떻게 칼빈의 예정론이 운명론이 아닌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시받지 못했습니다.. 님은 다르니까.. 다르다고.. 단순히 말했을 뿐입니다.. 설득을 위한.. 구체적인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 06.07.10 15:51

    굳이 말씀 하셨으니, 대표적인 한 예를 언급하지요. 불교에서 말하는 운명론으로서의 윤회와 기독교에서 언급하는 예정의 차이를 구분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 작성자 06.07.10 15:53

    윤회를 운명의 개념에 부합되는 관점에서.. 서술하시는 건가요? 우선은.. 록키님이 이해하시는 운명의 개념부터 설명부탁드립니다..

  • 06.07.10 15:59

    아니지요. 이렇게 언급했슴애도 불구하고 '윤회와 예정'을 '부합'으로 보시는 님의 견해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상이의 개념을 그 예를 통해 언급한 것이지요. 운명의 개념은 제가 님께 먼저 드린 질문인데요? 정상적인 토론을 원하신디면 기본적인 룰은 지켜야 합니다.

  • 작성자 06.07.10 16:03

    다시 말씀드리지만.. 록키님의 주장은.. 거의 설득력이 없으십니다.. 또 설득에 합당한 설명도 전혀 없으셨구요... 논제만 제시하시고.. 그렇다고.. 믿으라 또 이해할 수 없고 초월하고 신비적인 것이니 그대로 믿어라 한 것입니다.. 이건 억지 주장이시겠지요.. ^^

  • 06.07.10 15:45

    님은 제가 이미 언급한 운명과 선택을 애써 왜면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설득력있는 구체적인 예를 요구하시는 군요. 님이 수긍할수 있는 예가 과연 무엇인지 언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본 개념의 구분은 예를 제시하기 위한 전제 입니다. 그럼에도 그 전제 자체에 대한 예를 요구하시는 것인가요? 이런 경우는 예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명확한 규정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 작성자 06.07.10 15:51

    운명과 미리결정함이.. 무엇이 다르다는 건가요? 이건 상식문제입니다.. 님께서.. 칼빈이란 사람을 너무 신뢰하기때문에.. 그 사람의 이론에 맞추려고 노력하다보니... 이런 상식적인 말도.. 다르다고 억지쓰는 것이라 보입니다... 칼빈의 예정론이 어찌하여 한 사람의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었다는 운명론하고 다른지.. 설명부탁드립니다.. 먼저 님께서 이해하는 운명이라는 정의가 무엇인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06.07.10 16:10

    안 그래도 바로 위 댓글에 언급했습니다. 그 상식우월을 극복하는 일이 신앙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입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06.07.10 16:01

    다시말씀드리지만.. 저는 록키님으로부터.. 아주 초보적인 억지주장외에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정도는 참으로 죄송한 말씀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때 다 뗀것입니다.. 억지 주장이시고.. 아무런 설득력도 없으신 생떼주장이십니다... 상식우월이라는 그 주장이.. 결국 하나님을 마귀처럼. 사람을 지옥에나 보내기로 결정해버리는 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요? 이 교리의 주장이 결국.. 하나님을 마귀로 주장하는 교리라고 저는 강력히 주장하는 것입니다..

  • 06.07.10 16:50

    그런가요? 지금까지 주고받은 주장을 초등하교 4학년의 학생때로 보신다면... 3학년으로 다시 편입하셔야 겠습니다. 토론은 상대의 언급을 귀 기울일줄 아는일로 부터 시작합니다. 운명과 예정의 차이를 제가 처음에 언급하지 않았던 가요? 님의 강력하신 주장이 왠지 그리 강력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지 못하는 미숙한 이의 독백으로 들리는 군요. 저의 상식우월(?)이 아니라, 님의 상식우월이라는 부당한 사고의 한계를 언급했습니다. 그 선입관을 속히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06.07.10 16:09

    전혀요.. 제가 부탁드렸습니다.. 님께서 운명이라고 판단하는 그 운명의 개념과 정의부터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개념정의를 해주셔야..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까? 근데 전 했는데. 님은 왜 않해주시나요? 그 운명이라는 개념과.. 칼빈의 천국,지옥갈자를 이미 결정한 것이 왜 운명이 아닌지.. 그것도 설명부탁드립니다.. 저는 님께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결코 설명받은 적 없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님께선 했노라고 억지하시는건 아닌가요? 죄송하지만.. 저는 전혀 이에대한 설명을 설득력있게 받은적 없습니다.. 피상적으로 말씀하시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06.07.10 16:28

    철저한 제3자의 수동과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차이가 운명과 예정의 차이라고 언급햇습니다. 그리곤 님이 그 예를 요구 하셨고... 요구에 따라 불교의 윤회와 하나님의 예정을 언급했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과연 님이 요구하시는 '구체'는 무엇이라는 말인가요? 님이 가지신 '상식우위'의 기준에 근거한 구체를 막연하기 요구하시지 말고, 이제까지 제시한 저의 언급에 대한 의견을 주시면 됩니다.

  • 06.07.10 16:27

    레마님, 님의 주장이 워낙 강력하시길래... 나름의 근거가 있으신가보다고.. 살펴 봤지만, 그 근거는 '일반상식' 이네요. 아직 상식을 신뢰하시고 상식에 머물러 계시는 님의 입장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네요. 다시말씀 드리지만, 이 한계를 극복하는 일... 그것이 바로 신앙의 시작입니다.

  • 06.07.10 16:51

    그것 참 이상 하네요. 강력히 예정은 곧 운명이라는 님의 주장을 접하면서, 우선 그 개념의 정리와 구분 부터 시작하자고 요청햇더니,... 오히려 저의 구분을 요구하고 나서는...양보해서 설명해 드렷더니...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시네요. 불신앙의 상식세계에서나 익순한 시장바닥 논쟁 방식이지요. 유감입니다. 최소한의 개념 구분도 없이 이처럼 극단적인 단정과 막발을 남발하다니요...

  • 06.07.10 16:40

    최소한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는 이해하고 사용하십시다. 레마의 말씀님~ 그럼 잠시의 시간을 드리지요. 외출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 작성자 06.07.10 23:36

    님께서도.. 다른 칼빈론자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개념정리도 없으시고.... 뜬구름만 잡으시네요... 그냥 여기서 그만 두었으면 합니다... 더이상 님에게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제가 운명에 대한 정의를 몇번이나 물어봤는데... 대답은 업으면서.. 유치한 생떼주장만 반복하시는군요.. 다만, 스스로 잘 판단해보세요.. 이말만 남깁니다.. 님이 알게되든 모르든.. 그것도 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의 결정과 의지 님이 인식하는 절대주권으로 되겠지만.. 제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랍니다.. *^^*

  • 06.07.10 16:52

    자리를 뜨는 발걸음 을 다시 잡으시네요... 결국 님이 믿는 하나님은 상식속에 제한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이군요. 레마의 말씀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신비를 이론이 아닌 깊은 내면으로 체감되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잠시의 대화에 감사~~

  • 06.07.11 14:55

    록키님은 운명과 예정의 차이에 대해 "운명은 인간이 절대자가 정한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철저히 배제된 제 3이 되나 예정은 절대자가 정한 예정의 실행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역할이 허용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운명은 이해가 되나 예정의 경우 하나님께서 멸망으로 예정한 인간의 경우 예정의 실행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한 예정에 동참하여 멸망당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멸망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참여하여 하나님의 예정을 거부하여 멸방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까? 이해가 안되는 군요.

  • 작성자 06.07.11 16:10

    록키님은.. 그에 대한 해답을 할 수 없습니다.. 왜인줄 아시나요? 칼빈식의 이중예정론은.. 그 의미상 완전 운명론이기때문에.. 결코 그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 확실한 논거를 제시할 수 없습니다.. 언어유희로 적당히 감추시고.. 적당히 신비로 몰아세우신후.. 주장이 인정되는 범위까지만. 말씀하실 것입니다.. 칼빈론자들은 열이면 열 다 그렇게까지 주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교리의 모순과 하나님 모독성이 계속해서 들어가면.. 드러나기때문이지요... 그래서 적당히 해놓고.. 은혜니 신비니 주권이니 하면서.. 더이상 알려고 하지말라는거죠.. 저 이런 거짓말에 정말 오랫동안 속았습니돠.. *^^*

  • 06.07.11 17:16

    불과 구름님에 대한 의견은 위에서 드렸습니다. '은혜'와 '신비'는 적당히 모순을 감추려는 언어유희가 아닙니다. 이러한 사고의 구조는, 아직 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들이미는 이들의 한계 이지요.

  • 09.03.06 23:36

    땅의 일을 말하여도 알지 못하거니와 하늘의 일을 말하여 알겠느냐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부분까지도 가까스로 알 수 밖에 없슴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예지 가운데 정하신 바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시간 밖의 섭리라고 저는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를 사모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비롯됨을 볼 때에 하나님은 예지를 통해 예정이 가능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 속에 있는 우리는 시간의 과정 속에서 인과적으로 보여지기에 운명론으로 받아 들여 질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성경이 언급하는 예정.. 그리고 칼빈이든 누구든 시간의 인과적 논리와 시간을 창조하시고 초월하신 하나님의

  • 09.03.06 23:41

    섭리에 그 누구도 완전하게 다가가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예지 예정이 어떠하시든지 ㅁ불합리한 예지 예정이 아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복음의 증거자들은 누가 복음을 받아들이고(예정)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않받아 들일 것 같은 악인이 죽기 직전에 받아 들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저 자는 분명 지옥에 갈 자라고 그 누구도 단정 지을 수가 없으며 단정 지어서도 안됩니다. 우리에게도 칼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허럭하신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전지 전능하신 그 분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 지는 일이기에 먼저 복음 받은 자는 그 복음을

  • 09.03.06 23:43

    증거하는 일에 충성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구원 가운데 들어 오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예지 예정하심 가운데 들어 왔슴이 이해될 수 있도록 성경은 가르쳐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예정되심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다시 구원을 잃을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없슴많은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삶을 살 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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