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 진란
꽃들의 구역에서
가장 생생한 아픔은
너와 내 뿌리가 맞닿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
서로 얽히고설켜도
둘의 뿌리를 섞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꽃으로 피어 마주 보는 시선이
뜻하지 않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다
너의 향기도 너의 속삭임도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 많이 쳐다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침묵하고
더 많이 주고 싶어지는 마음
세상에 함께 하는 시간에 우리는 살고
살아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뿌리와 뿌리를 맞대고 연리지가 되기까지
자유를 향하여 달려가는 네 도주의 흔적을 따라
나는 또 피어나고 피어나고
피어나고
톡 톡 톡 떨어지는 낙화는
문득 네 꿈속에서 또 다른 뿌리를 내리고
ㅡ계간 《미네르바》(2024, 봄호)
**********************************************************************************************************
어제 둘러본 지인의 무송산장은 돌무더기 고촌산자락을 장원으로 가꾼 20년 적공이었습니다
30년 서울살이를 접고 귀향하면서 함께 데려온 등나무와 모란이 활짝 꽃송이를 펼쳤듯이
1,000평 동산 곳곳에는 너럭바위와 입석이 조화로웠고 여기저기 봄꽃을 피우는 나무가 촘촘했네요
봄꽃이 지고나도 사계절 내내 꽃이 피고 이우는 곳으로 가꾼다하니 그네들의 여일이 부러웠네요
흔들의자에 앉아 꽃내음 풀내음에 취하고 너럭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는 내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문학박사 학위를 하나 더 취득한 학구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산장(무송)으로 이름지은 의미를 되새김하며 두 내외의 강녕을 기원했습니다^*^
첫댓글 인생은 한 줌 바람 같다. 허기야 바람이 없다면 "뜻하지 않은" 풍파도 없겠다 만 우리가 꽃이라는 사물을 바라볼 때 " 너와 내 뿌리가 맞닿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 을 실감하는 것. 꽃들은 제각각 아름드리 형형색색의 색을 피워 올리지만 그 本은 서로 다르다. 그러니 " 꽃들의 구역에서" 로 시작되는 시의 첫마디가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 인간은 " 자유를 향하여 달려가는 "성질이 있다. 서로 뿌리는 달라도 서로 얽히고 설켜도 나와 너를 섞을 수 없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세 지옥도가 아니라 나름 조화롭게 살아가는 까닭은 " 다 많이 듣고, 더 많이 침묵하고, 더 많이 주고 싶은 자비의 마음이다.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그런 따뜻한 배려나 자기 희생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 톡 톡 톡 떨어지는 낙화는 문득 네 꿈속에서 또 다른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