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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가와 히로시게 - 도카이도 53차
(保永堂版 : Hoeido Edition)
히로시게의 <동해도오십삼차(東海道五十三次)>는
에도의 니혼바시(日本橋)에서 시작하여 시나가와(品川)을 거쳐
교토의 가모가와(鴨川) 삼조대교(三 大橋)까지 모두 53개역의 풍경을 그린 판화로
히로시게가 다이묘 수행원의 일원으로 도카이도를 여행하고 나서 1년 뒤인 1833년 제작했다.
중간에 있는 53개 역과 시발역인 니혼바시, 그리고 종점인 교토의 삼조대교까지 모두 55장의 그림이 있다.
도카이도 53차는 1833년부터 시작하여 1850년대 말까지 계속하여
10여개의 서로 다른 판본으로 제작되었는데,
가로그림이 6가지, 세로그림이 4가지이다.
시기를 달리하여 크기도 다르고, 인쇄업자도 다르고
최근에는 더욱 선명한 채색으로 제작되기도 하고,
여러가지의 서로 다른 도카이도 53차가 유행하고 있다.
각각 그림의 느낌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크기별로 판형별로 다 모아서 갖고 있다
반응을 보아가며 게시할 예정이다
아래의 그림들은 1833년 보영당에서 출판한 것으로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차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발음으로 호에이도판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쇼판의 산뜻한 색채와 단순한 그림이 더 마음에 든다
또한 우타가와 파를 상징하는 이름인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더불어
원래 이름이었던 안도 히로시게로 소개되기도 한다.
또는 안도 우타가와 히로시게로 소개되기도 한다.
In Harmony - Thors
ANDO HIROSHIGE
TOKAIDO - HOEIDO EDITION
보영당판(保永堂版)
Title :
The Fifty-Three Stations of the Tokaido, Tokaido Gojusan no Uchi
Date: 1831-1834
Publisher: Takenouchi Magohachi (Hoeido)
Format: Oban yokoye
Number of Prints: 55/55
References:
Memorial Catalogue , Strange, Stewart (Chapter 7 , Chapter 10),
van Vleck (p.31-37), Albuquerque (8-62)
Notes:
The images can also be accessed through a Map of the Tokaido Road.
Each of the images is presented here with a commentary by Strange.
WebLinks:
This series proved so popular that Kunisada produced a Tokaido series
featuring figures in front of a landscape background
virtually identical to these Hiroshige prints. More at the Kunisada Project.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천하를 통일하고 에도를 수도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에도는 습지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후 100년 동안 에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일본의 다른 어떤 도시들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정치, 군사, 경제적 힘을 갖춘 중심지가 되었다.
에도시대에는 무사들이 에도와 그들의 영지를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교토부터 수도 에도까지
두 지역을 잇는 도카이도(東海道) 같은 도로가 발달하였다. 그 결과 사무라이 귀족계급뿐 아니라
승려와 일반인들까지 여행이 빈번해 졌다. 산야의 사찰과 신사와 경승지를 순례하는 것이
대중화 되었지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는 동부의 거대한 수도 에도였다.
히로시게 자신이 직접 여행하면서 사생과 인상을 담아 제작한 목판화는
유명한 명승지를 계절과 시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전통을 활용하여
신사와 사찰, 찻집과 식당, 극장과 가게, 강과 운하 같은
분주한 일상의 모습을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히로시게는 지형의 세부를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특이한 원근법과 계절에 대한 암시, 그리고 뛰어난 색채를 이용하여
각 화면마다 신선함과 함께 따듯한 서정성을 부여했다.
에도 경치의 아름다움과 물질적 번영을 찬미했던 히로시게는
에도시민과 여행객, 나아가 유럽의 일본애호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히로시게의 이 연작은 큰 성공을 거두어 훗날 프랑스 문화계와 인상파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도카이도가 있었던 지역
히로시게가 살았던 시절의 주요 5개 간선도로
도카이도 53개역의 위치
도카이도는 도쿄 니혼바시에서 교토의 산죠하시까지 약 495.5km에 이르는
에도 시대의 도로 이름으로 간토 지방과 간사이 지방을 잇는 주요 도로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듬해(1601년)에
기존의 도로와 설비를 확충하고 제도적 장치를 갖춤으로써 그 골격을 갖추었다.
이후 곳곳에 슈쿠바(宿場)이 발달하고 많은 이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으면서
이 도로는 일본의 주요 가도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도로가 되었다.
현재의 신칸센과 과거의 도카이도
오늘은 총 55장의 그림 중에서 20장의 그림을 골라
원본크기의 부분도와 축소판의 전체 그림을 올려 본다
역이름은 그림마다 한자로 기재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란다
1833년의 활기찬 에도(도쿄) 니혼바시의 아침 - 초판 그림
니혼바시가 처음 설립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연 1603년이라고 전해진다.
오늘의 니혼바시는 동경시에서 1911년 석조로 완성한 것으로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일본교는 동경의 중심지 천황이 거주하는 코우교(皇居)와 동격역이 바로 지척에 있고
긴자(銀座)와 간다(神田)를 잇는 다리로 유명백화점과 고급전문점이 즐비한 일본 경제의 중심가에 있다.
니혼바시 북쪽 미츠코시(三越) 백화점 정문에는 히로시게가 그린
<강호명소준하정(江戶名所駿河町)>이라는 그림과 함께
미츠코시 백화점이 창업 336주년을 기념한다는 작은 안내문이
남색 노랭이 아래 설치되어 있다. 한 우물을 파는 일본의 기업정신의 단면이다.
히로시게가 1833년 제작한 <니혼바시(日本橋)>는 긴자와 간다를 잇는 다리 위로
아침 일찍 상인과 짐꾼들이 부지런히 물건을 나르는 역동적이고 활기찬 표정을 그려내고 있다.
거의 200년 전 니혼바시의 풍경과 오늘의 풍경은 비록 다르지만
에도와 도쿄의 중심지로서의 삶의 활기는 여전하다.
역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여
세월의 구력과 삶의 지층이 쌓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키요에의 제작
위의 그림들이 직접 그린게 아니라 모두 판화로 찍어낸 그림들이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목판본으로 판화를 찍어내어 팔리고 있다
특히 해외의 우키요에 애호가 들에게 매우 고가로 팔리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쉽게 그 판매현황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세밀한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저렇게 세밀한 그림을 색채를 넣어서 찍어낼 수 있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성된 목판화가 나오기 까지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궁금할 것 이라고 본다.
초기 우키요에는 예외로 하고,
우키요에로 대표되는 니시키에 경우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우키요에 판화가 나오기까지,
판권자인 판원(版元)과 원화가인 에시(繪師). 조각공인 호리시(彫師).
인쇄공인 스리시(摺師) 등이 분업해 담당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설명하자면
요즘의 출판사 사장에 해당하는 <판원>이 모든 업무를 총괄했고,
원화를 그리는 <에시>와 직인(職人)이라고,
요즘의 기능공에 해당하는 <호리시>가 조각을 담당,
<스리시>가 인쇄를 담당했다고 보면 된다.
모두 4가지의 서로 다른 일을 나누어서 했다는 말이다
이 중에서 원화를 그리는 에시의 이름이 대표로 그림에 들어간다
다색인쇄목판화는 우선, 판원이 제작자본을 출자한 뒤
총괄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작품의 기획 및 예산에 맞추어
화가, 조각공, 인쇄공 에게 판 제작을 의뢰한다.
가끔은 화가쪽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내거나
작품판매에 관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대개의 경우 주도권은 판원에게 있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니시키에가 나오기 까지 과정을
프랑스 우키요에 화가 폴 자클레의 그림을 이용해 필자가 8장으로 구성해 보았다.
(Paol Jacoulet, 189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899년 어린나이에 도일(渡日)해,
일본의 우키요에에 심취, 64세에 사망했다.
한국의 풍속, 풍물 등, 한국과 관련된 작품은 총 38점이 있다.)
*제작 메카니즘은 대략 10단계로 아래 도표를 참고해서 보면 이해가 더 빠르리라고 본다.
각 단계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화고
그림을 주문을 받은 화가는, 화고(畵稿. 초벌그림)를 구성해 작품을 결정한다.
2. 밑그림
그것을 엷은 종이에 베껴옮겨, 밑그림(版下繪)을 제작한다.
3. 검열
완성된 밑그림은 먼저 검열(檢閱)을 거친다.
즉, 이제부터 출판하게 될 판화에 발매 금지가 될 내용은 없는가를 가리는 작업이다.
검열을 행하는 기관은 시대에 따라 지홍몬야나카마(地本問居仲間)라고,
우키요에나 대중소설류를 출판하는
판원들의 조합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관에서 파견된 지역의 책임자(町名主)가 맡는 일도 있다.
4. 주판 판각
검열을 통과하면 밑그림에 아라다 메인(改印)이라는 심의필 도장이 날인된다.
페이지(貞), 판형(版型)등도 이 때 결정되며 밑그림은 조각공에 의해 판각(板刻)된다.
판으로는 딱딱한 목질의 산 벚꽃(山櫻)나무가 사용됐다.
섬세한 조각을 요하므로 주판(主板)은 특히 양질의 판을 사용했다.
그러나 밑그림대로 조각이 되면, 그림을 찍어낼 때 원화가 반대로 인쇄되므로,
조각공은 반전(反轉.뒤집기)을 한 그림을 직접 판목(版木)에 붙여
종이 뒷면으로 투시되는 밑그림의 선(線)만 남기고 나머지 여백을 파내기 시작한다.
이때, 날인된 심의 필 도장도 판각하며 이 시점에서 밑그림은 소멸된다.
이렇게 조각된 것을 주판(主版)이라고 부르며, 윤곽선만 남은 판이 되면,
겹쳐 찍히는 부분을 맞춰 인쇄에 들어간다.
5. 견본 인쇄
주판이 완성되면 조각공은 먼저 먹(墨)색만으로 견본 10여장을 찍어 낸다.
뽑아낸 견본인쇄(校合摺)에 차이나는 부분을 찾아내 화가에게 넘긴다.
6. 색 넣기
이때 화가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색분해를 하는데 명도나 채도를 조금씩 다르게 해,
색이 인쇄될 부분을 견본위에 박주(薄朱. 엷은 붉은 색)를 둘러 색 지정을 한다.
7. 색판 판각
색넣기(色さし)작업에는 조각공이 색을 넣은 인쇄견본을 아래로 해(版下),
지정한 곳만 남겨 조각하며, 색판(色版)은 대개 7색판 정도로 작성한다.
이때, 당연히 견본상에 색을 넣을 부분을 차자 색판에 판각함으로 어느 색판에서나 똑 같이,
색이 지정된 곳을 찿아낼 수 있다.
주판(主版)과 색판(色版)은 한 벌씩, 차례로 인쇄공에 의해 인쇄된다.
이때, 종이는 겹치는 인쇄에도 잘 견딜 수 있는 강하고 부드러운 지질의 것을 사용하며,
표면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닥나무 껍질을 얇게 덧 바른 봉서지의 일종을 사용한다.
또한, 물감이 종이에 배어 듬을 방지하기 위해,
아교풀과 제지 정수제인 명반(明礬)녹인 것을 발라,
물감에 대한 반응을 높이기 위해 적당히 습기를 준다.
판(版)에도 똑같이 사전에 수분을 먹여놓아 물감에 의한 수축을 방지한 뒤,
인쇄하는 쪽에 물감을 바르고 종이에 판에 맞춰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하고 나면, 종이 뒤쪽에 유리가루나 고운 금모래 같은 것으로 바렌(馬連, 문지름 질)을 한다.
이런 방법은 매우 심플하달 수 있는데 인쇄되는 상태에 따라 압력이 다른 바렌을 사용하기도 한다.
8. 판 수정
인쇄공은 먼저 판을 조사해 어긋남을 수정한다거나 판각하고
남은 찌꺼기 제거 및 색이 빠진 곳은 없는가를 체크한다.
9. 견본 협의
판원이 화가와 견본인쇄상의 색조화 등에 대해 협의를 거친다.
10. 본 인쇄
본격적인 인쇄작업에 들어간다.
도중에 종이와 판이 수축에 의한 어긋난 부분이 생기는 것을 찾아내며,
본인쇄를 할 때는 화가도 입회해 자신의 이미지대로 작품이 인쇄되는 가를 살핀다.
그 과정을 마지막으로 완성된 우키요에 판화는 판원에 의해 팔려나가게 된다.
이런 일련의 제작공정을 알고 나면 조각공과 인쇄공의 기술에 의해
작품의 질이 담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실감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알맞은 종이에 그림을 그려냄은 물론,
그 그림에 색 채를 입힐 수 있는 화가의 재능없이는 우키요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하겠다.
결국, 그들 모두를 코디네이트 하는 판원의 수완이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끝으로 어느 정도 인쇄를 해야 한 작품 당
알맞은 매수가 될까하는 의문이 남을 것이라고 본다.
확실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하루에 인쇄되는 분량은 대략 2백매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 인쇄된 2백매 또는, 그것을 포함해 화가의 감독아래 인쇄된 분량을 초쇄(初刷)라고 한다.
화가의 의도가 색상인쇄에 반영된다고는 해도, 조각된 판에 인쇄되는 것이므로,
색 면이 가볍게 인쇄되는 경우, 색이 흐려진 면에 보이는 닥나무 무늬가
아름답게 보여 져야 하는 것 또한, 우키요에의 중요한 미덕중에 하나로 쳤다고 한다.
초판 인쇄가 호평을 받으면 곧, 재판에 들어갔고 이때, 찍어낸 것을 후쇄(後刷)라고 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그림을 사가는 구매자의 평이나 요구에 따라 색이 바뀌기기도 하는데
대부분 화가가 지정한 색 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따라서 같은 작품이라도 언제 인쇄하였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작품재고에 구멍이 나지 않게 인쇄하는 것을 중요시 했으나
급하게 한 인쇄 작업은 색판이 마모되거나 변질되는 등,
그림이 조잡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리즈리(空摺)라고 해서, 그림의 어느 한 부분을 빼놓고 인쇄하는 등,
고도의 손재주와 숙련도를 요하는 인쇄작업은 생략되기도 했다.
또한, 될 수 있는 한 제작코스트를 다운시키고 싶어 하는 판원은 언제라도 제작비를 아끼려고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공정에는 의례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보더라도 작품성이 우수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작품이랄 수도 없이 아주 조악한 상품들도 있는 것이다
사는 고객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그에 맞는 상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가의 이름과 조각공. 인쇄공 등, 직인(職人)들의 이름이 작품에 함께 기재되는 것 또한,
우키요에 만의 특징이랄 수 있으나, 당시에 있어서 우키요에는
어디까지나 작품이전에 상품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판매가 가장 우선시 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우키요에의 제작공정이 언제나 철저하게 지켜졌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마치,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가 오랫동안 우키요에 판화 공방시스템과 같은
분업형태의 도제시스템 하에서 수준 낮은 작품을 대량 생산하다가
인터넷의 출현으로 급속히 붕괴되어 가는 작금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은꼴이라는 생각에
혹, 실소를 금치 못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설명된 우키요에의 흐름만 이해한다고 해도
어딘가 만화의 전신(前身)같았다는 느낌과 흔적들을 발췌할 수 있다고 본다.
첫댓글 우타가와 히로시게 대단한 분이시군요
자연스런 색감에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
좋으네요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히로시게가 우키요에의 대가지요
풍경화 하면 히로시게입니다
미인화는 기타카와 우타마로구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이 히로시게에 매료됐지요
고호는 똑같이 모사하기 까지 하구요
노골적으로 우키요에를 칭찬합니다
세잔느의 풍경 연작시리즈도
히로시게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가히 프랑스의 자포니즘 열풍에
불을 붙인 것이 히로시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히로시게를 아주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