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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비전이 없으면 망합니다(잠29장18)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
출처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이 세상이 두려워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첫째는 자기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소유를 완전히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지만, 이거야말로 한 인간을 대단히 위대하고 두렵게 만드는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소유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을 초월한 사람. 참으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런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2) 이보더 더 무서운 사람이 있는데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덤벼든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덤벼드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무서운 사람이지요.
3)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곧 위대한 꿈을 가진 자입니다. 이 사람은 죽기를 작정하고 덤비는 자보다 더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찬란한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찬 내일이 그에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을 꾸는 자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내일을 향한 설레이는 비젼이 있고 희망찬 꿈을 꾸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워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 :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
NASB ;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are unrestrained...
번역하면 비젼(꿈)이 없으면 백성이 방종하게 되어 망한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묵시 : 히브리말로 "하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계시된 뜻은 언제나 미래적이고 내일을 향한 희망적인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 하존을 비젼이란 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방자히 행하다. : 히브리 말로 "이파라" ⇒ 방종하다. 멸망하다. 사라지다. ⇒ 어떤 말로 번역해도 됩니다. ※ KJV은 이 말을 "멸망하다"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KJV : Where there is novision, the people perish
번역 : 비젼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원뜻 : 비젼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꿈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꿈이 없으면 망하고 꿈이 있어야 흥하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 본문은 꿈이 없으면 망한다고까지 역설하고 있을까요? 그만큼 꿈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요한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그러면 왜 꿈이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을까요?
1) 꿈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믿음의 선물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언제나 제가 거듭 이야기하고 강조하는 말씀입니다마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민들에게 주신 축복은 모두 다 현찰로 주신 것이 아니라 어음형식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민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며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립니다. 바로 그것이 꿈이요 비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향해 꿈을 꾸게 하시고 가슴설레이는 비젼을 갖게 하십니다. 가슴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영상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러더니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합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의 별을 보거라. 땅의 모래를 보거라.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먼저 약속을 주십니다. 가슴속에서 영상을 그리게 합니다. 늘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를 보면서 자손들의 꿈을 꾸게 한 것입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비젼(하존)은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말합니다. 그저 춘삼월의 개꿈을 말하거나 자기 혼자 공상하며 꿈꾸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믿음안에서 하나님이 축복으로 준 꿈, 은혜로 준꿈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꿈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고 우리의 신실한 믿음에 기초를 한 꿈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꿈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언제나 믿음과 꿈은 같이 갑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꿈이 있고 꿈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11:1은 믿음과 꿈을 하나로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바라는 것들의 실상 :
이것이 비젼이고 꿈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루어진 것처럼 마음 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이 꿈이라는 말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 :
유가증권을 말함(엘겜코스) 아직 현찰은 아니지만 때만 되면 현찰로 바꿀 수 있는 유가증권, 어음카드란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꿈이 이런 것이고 믿음이 이런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꿈은 미래를 향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능력입니다. 미래의 축복을 창조하는 재료이고 원동력이고 위대한 능력인 것입니다. 꿈을 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은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꿈을 꿈꾸는 자를 위대하게 만들고 맙니다. 여러분이 지금 거룩한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은 5년이나 10년이 지난 후에 놀라운 축복을 이룰 것이고 15년이나 20년 후에는 엄청난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엄청난 꿈은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축복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꿈을 꾸는 자는 참으로 축복받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앞으로 찬란하고 희망찬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형통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꿈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겐 희망찬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찬 축복의 미래로 이끌어갈 능력이 없습니다.
그에겐 약속도 없고 비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축복이 없는자입니다.
그러니까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꾸어야지요.
오늘도 내일을 향한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가슴 설레이는 비젼을 품어야 해요. 믿습니까?
2) 꿈은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꿈은 반드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줍니다. 그러기에 꿈을 가진 사람은 목표가 있습니다. 인생의 방향이 분명합니다. 푯대가 확실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하존"이라는 비젼은 목표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는 자를 먼저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합니다. 성결하게 살게 합니다. 말씀안에 살면서 거룩한 목표,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젼이 없는 자는 방자히 삽니다. 방종하며 삽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푯대가 없습니다. 그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대로 흥청망청 방종하며 살아갑니다. 그저 자기 마음대로 엔죠이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망할 수밖에 없지요.
예) 어느 동물 심리학자의 실험 :
큰 운동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검은 안대를 씌워놓고 세시간 동안 마음대로 걸어다녀 보라고 했습니다. 그곳엔 전혀 장애물이 없습니다. 그냥 걸어다녀도 넘어질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시간 동안 이 사람은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다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젼, 목표(푯대)가 없는 사람은 늘 돌고 도는 인생을 삽니다. 자기 마음대로 방자히 살고 늘 동그라미 인생을 삽니다. 그러다가 죽는 것이 꿈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꿈이 없는 인생은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꿈꾸지 않으면 망합니다. 동그라미 인생을 살다가 똑같이 망하는 거예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을 꾸면서 인생의 거룩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미래는 희망이 있고 찬란한 축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꿈은 모든 역경과 운명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꿈은 미래를 창조하시는 재료요 능력이기 때문에 모든 역경도 물리칩니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처한 운명과 숙명도 초월하고 맙니다.
성경에서 꿈 하면 요셉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꿈꾸는 자였지만 얼마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까? 그는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영원히 노예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자식을 낳아도 노예가 될 운명입니다. 참으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졌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진 사람입니다. 세상에! 바르게 살고 깨끗하게 살아보겠다는데 왜 감옥에 가야 한단 말입니까? 이러면 누가 예수 믿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어요? 그는 헤어나올 수 없는 영원한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는 거기서 애굽의 술장관을 만나서 한가닥 희망을 잡습니다. 그에게 꿈해몽을 해줍니다.
"당신이 왕앞에 이르면 부디 내 억울함좀 아뢰어 주세요. 제발 원통함 좀 아뢰어 주세요."
술장관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밤에나 낮에나 가슴을 조이며 발자국 소리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끝내 술장관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술장관은 요셉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요셉은 영원히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살다가 언젠가 사형언도를 받고 죽게 될 운명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피맺힌 절규를 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그를 그렇게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입니다. 꿈이 높은 그에게 그의 꿈을 단련시키고 그의 꿈을 성숙시키고 그의 미래를 높이 높이 준비시키기 위해 그의 고난과 시련은 깊은 산의 골짜기로 존재했을 뿐 저주스런 운명의 사슬이 그의 인생을 묶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셉의 꿈은 언젠가 그의 절망의 사선으로부터 출애굽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준비되고 예정된 때가 왔을 때 마침내 요셉은 그 깊은 저주의 구렁텅이에서 당당하게 나와 애굽의 총리대신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늘의 별들과 달과 해가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 이루어뎠던 것 아닙니까?
과연 꿈은 모든 역경과 운명도 초월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꿈의 성취지점가지 우리를 반드시 도착하게 하고야 만듭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자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위대합니다.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끝까지 흥하고 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좌절합니다.
막히면 좌절하고 또 막히면 절망하고 또 막히면 주저앉고 맙니다.
그렇게 공허하고 초라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꿈이 없는 인생은 망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이 없으면 날마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인생을 삽니다.
그러다 망해요. 그러나 꿈꾸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환경도 이깁니다. 역경도 초월하고 운명도 초월해요. 믿습니까?
4)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반드시 그의 꿈대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키, 인물, 학력, 능력같은 것을 먼저 보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 내면에 이글거리고 있는 꿈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의 꿈을 보시고 꿈대로 쓰시고 꿈만큼 쓰십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자는 흥하고 없는 자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 꿈을 받고 꿈을 꿀 수 있습니까?
.꿈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꿈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비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받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①약속을 동반해 오고
②비젼을 가져오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는 이유 :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을 가져오고 비젼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확인해 주고 확신시켜 줍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든지, 성경을 읽을때라든지, 간증을 듣거나 기도를 할 때라든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받을 때에 약속과 비젼을 받고 계속 확인 받습니다. 이렇게 비젼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꿈꾸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기 때문에 꿈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수적으로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꾸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하는 신앙의 필수과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의무적으로 누구나 거룩한 미래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 만나고, 계속해서 은혜받고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겐 어떤 꿈이 있습니까?
그 꿈을 다 까먹어 버렸지는 않습니까?
2001년도에는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인생미래를 어떻게 꿈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 사업, 자녀, 그리고 교회를 향한 사명의 꿈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같은 것이 무슨 꿈을..."
그러나 여러분!
하찮은 먼지도 태양빛을 받으면 반짝거립니다.
하물며 우리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부족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면 우리의 가슴속에서 꿈이 반짝 거리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눈길은 꿈꾸는 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 꿈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다시 그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다시 거룩한 비젼을 가슴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도 꿈꾸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 요셉17살, 스펄쳔15살, 허드슨 테일러 15살, 소목사17살에 꿈을 꾸었습니다. 인생의 반은 십대에 그리고 20대에 인생의 승패가 판가름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에게도 꿈을 꾸게 해야 합니다.
3. 꿈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희생의 댓가가 있습니다.
꿈은 마술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력적으로 역사하거나 기계적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인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1) 꿈이 있는자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꿈을 꾸는 자는 언제나 오해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이가 형제들에게 미움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큰 꿈을 꾸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꿈꾸는자" 라고 별명을 지으며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큰 꿈을 꾸면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습니다. 허황된 사람, 뻥쟁이, 미친 사람이라고 미움을 받습니다. 예) 소목사 : 신학교 시절에 많은 사람이 허황된 친구라고 미워했습니다. 지금은 "뭔가 이룰 줄 알았어!"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오해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 오해는 행복한 오해입니다. 축복받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2) 그 꿈 때문에 고난도 당할수도 있어야 합니다.
꿈이 성취되기까지는 대부분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두운 고난의 터널에서 그 꿈이 단련되고 성숙되고 갈고 닦아지기 때문입니다.
록키산맥의 해발 3000m 높이에 수목 한계선이 있다고 합니다.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때문에 수목이 자라지 못합니다. 모든 나무가 무릎을 꿇고 있다고 합니다. 그 죽음의 사선에서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한 나무들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된 명품의 바이올린은 이 무릎꿇고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영혼으로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낼 줄 아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 온 사람입니다. 바로 꿈을 꾸는 자는 그런 고난을 거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A,B 심슨이란 사람은 "하나님의 보석은 주로 거치른 짐속에 넣어 검은 옷을 입은 하인을 시켜 우리에게 보내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왕궁의 진귀하고 온갖 반짝거리는 보물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꾸는 자는 저 고난의 골짜기에서, 저 어두운 터널에서 시련이라는 물을 몇사발을 먹고 나서야 하나님의 진귀한 보석들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꿈꾸는 자는 그 꿈의 성취를 위해 어떤 고난이라도 감수하는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3)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력을 갖추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중국 오나라 때 사주를 보고 팔자를 점치며 운명을 예언하는 처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사주가 반드시 천자(황제)가 될 운명임을 점치고는 아주 황홀해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몇 시에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게 될 것을 믿고 깊은 산의 고찰에 가서 수십 년을 태평세월로 보내며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의관을 정제하고 자기를 모시러 올 봉여를 기다렸습니다다.
'오늘이야말로 내가 황제가 되는구나.'하고 황홀감에 도취되어 하루 종일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있는 곳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산상에 올라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다. '내가 여기 있노라!" 목이 터져라 불렀으나 메아리만 울릴 뿐 아무도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다.
그는 초조해졌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자기의 사주팔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습니다.
틀림없이 오늘이 자기가 황제가 될 날이었습니다.
그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 백성들이 나의 행방을 모르는 모양이니 세상에 나타나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에 흥청거렸습니다.
알아보니 어제 새 황제가 등극해서 온 국민이 기쁨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처사는 '내가 황제가 될 것인데 다른 사람이 되었다니 그 황제가 누구인가.'하며 조사해 보았습니다. 황제는 송태조 조광윤이라는 사람으로서 그는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등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 황제 자리를 극구 사양했으나 강제로 곤룡포를 입히고 황제로 추대한 것이었습니다. 조광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자기와 똑같아서 처사는 자기만이 황제가 될 사람인 줄 알고 심심고찰에서 우두커니 태평세월로 허송하며 아무 노력 없이 익은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린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근면하게 나라를 위해 애써 일한 사람은 황제를 사양했으나 백성들의 강권에 의해 황제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좋은 교훈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진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더 기도, 더 열심히 일하고 그에 따른 실력을 갖추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4. 꿈이 성취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애당초 꿈의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애당초 목표가 자기를 위한 것이었으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야망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꿈을 이룬자는 영광을 돌리고 받은 축복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동시에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거룩한 꿈이 야망으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결론 : 꿈이 없는 자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이제 꿈꾸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BISSK(The Biggest Sermon Search Data Base in Korea:비스크:한국최대설교검색DB)
첫댓글 좋은말 씀 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