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습니다. 이자에게 거짓이 느껴지지 않으니 믿기진 않아도 그런 존재가 있긴 하겠죠."
"그래서 말입니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으셨다면 저희와 함께 동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보수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상인들이 들고 온 짐마차들을 훑어봤다.
"저 물건들을 거래함으로써 클리프 상단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어느정도 되죠?"
로베르트는 잠시 생각하는 듯이 가만히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리엔 은화로 약 4천리엔 정도 될겁니다."
"4천리엔이라.... 제가 보기에는 6천리엔 정도의 이익은 취할 수 있을것 같은데요..."
남자의 말에 로베르트는 뜨끔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숨을 한번 쉬고 말을 이었다.
"후... 저도 어엿한 상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나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법 안목이
있으신 것 같은데."
"하하. 그냥 떠본겁니다. 원래 상인들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고 기를 쓰는 무리들이니까요.
그리고 방금의 질문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이였습니다. 리젬블까지의
동행. 선불은 받지 않고 제가 저 괴수를 물리치면 100리엔을 받는 걸로 하죠."
"하... 하지만 너무 적은 것이 아닐런지..."
"제가 사정이 있어서 지금 돈을 모으는 중이긴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몸은 아닙니다. 부자가
되고자했으면 지금쯤 다른 비스트테이머들처럼 어딘가의 고위 관직이 되었겠지요."
"알겠습니다. 보수는 아까 말씀하신대로 드리기로 하죠."
"그런데 제가 비스트테이머라고 하는 걸 의심하지 않으시는군요?"
로베르트는 남자가 타고 온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마차 말입니다. 마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크죠. 저런 거대한걸 겨우 말 두마리가 더군다나 마부의
명령도 없이 잘 이끌고 간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음... 뛰어난 통찰력이시군요.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검은 머리의 남자는 손을 쥐었따 펴더니 손에서 새 한마리가 나왔다.
"이 녀석은 트위터 입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사람에게 전달해 줄 수 있죠. 제가 먼저 산을 넘겠습니다.
일이 다 처리되면 트위터를 보낼테니 그 때 저와 합류하시면 됩니다. 그때까지 제 짐마차를 좀 맡아주십시오."
"예, 잘 맡아 두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후 검은 머리의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입에 물고 박수를 한번 쳤다. 그러자 종이에서
말이 한마리 튀어나왔고 남자는 그 말을 타고 산 너머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베르트는
지긋이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말을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검은 머리의 남자는 산을 넘었다. 그 곳은 산을 넘기 전의 울창한 숲과는 달리
꽃밭이 펼쳐저 있었다. 꽃밭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의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연출했지만 그런
아름다운 꽃밭에 사람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고 늑대형상의 괴수가 살기를 담을 숨을 내뿜고 있었다.
"늑대 인간이라길래 라이칸인줄 알았더니 너에겐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크르릉..."
괴수는 남자의 말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듯이 계속해서 살기어린 눈빛을 보냈다.
"나는 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다. 부디 너에 관해 알려다오."
남자가 괴수를 향해 한 걸음 내딛자 괴수는 남자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쳇, 이런... 하운드!"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는 푸른 망토를 펄럭이자 붉은 빛이 감도는 개들이 나타나서 괴수를 향해 공격했다.
그러나 괴수가 팔을 한번 휘두르자 멀리 나가떨어지고는 형상이 사라졌다.
"강한건 알았지만 중급정령인 하운드를 저리 쉽게 처리하다니... 대화로 해결하려면 상급정령을 불러야 하는건가..."
남자는 잠시 망설였지만 괴수가 엄청난 속도로 남자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으므로 남자에겐 망설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어쩔수 없지. 스티지!"
남자가 스티지를 외치는 순간 허공에 수십마리의 박쥐떼가 나타나더니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괴수가 박쥐들에게
팔을 계속 휘둘러 보았으나 박쥐의 수가 많은 탓에 박쥐의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이 때를 틈타 오른 팔을 앞으로 뻗고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자 남자의 몸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주변의 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남자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대공의 신 미하일을 섬기는 긍지높은 시큐엘이여. 나의 육체를 그대의 그릇으로 삼아 그 고귀한 모습을 이 세상에
드러내라."
주문을 외우자 남자의 등 뒤로 나타난 한마리의 거대한 사자. 그 사자의 온몸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찬란한 은백색의 털로 뒤덮여있었고 눈빛은 보는이로 하여금 심장이 멎게 할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진 시큐엘의 포효는 산 전체에 거대하게 울려퍼졌고 괴수도 시큐엘의 위압감으로 인해 움직임을
멈췄다. 남자가 한번 손짓을 하자 스티지들은 사라졌고 남자는 조금 힘든 듯이 왼쪽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나는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크르릉..."
괴수는 아직도 남자를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이름은 이카르트 홀든. 나는 아무에게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너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들어주겠다. 대답해다오."
이카르트의 말이 끝나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건장한 성인남성보다 두배 이상 큰 체구를 가졌던 괴수가
열다섯, 열여섯 쯤 되어보이는 작고 왜소한 금발머리의 소녀로 변한 것이였다. 소녀는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이카르트는 생애 처음 본 광경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괴수(?)였던 소녀에게 더 이상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고는 시큐엘을 돌려보냈다. 소녀가 아무런 옷을 입고 있지 않아 이카르트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소녀에게 다가가 자신이 입고 있던 푸른 망토를 덮어주었다.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네 이름은?"
소녀는 몸을 떨면서도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레느..."
첫댓글 오오오오 재밌네요 오옹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앞으로 계속 보고 싶어요 힘내서 연재 부탁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