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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이라 읽는다." 작가 李炳注는 1960년대 어떤 잡지에 연재한 장편소설 "지리산"을 늘 이렇게 시작했다.
지리산에 관한 천가지 수사는 생략하자. 한마디로 지리산종주는 산꾼들의 성지순례다. 구도자의 열정과 소년처럼 떨리는 가슴을 안고 우리는 간다. 우리들의 성지를 향하여...
2005년 9월 8일, 산우회의 기념비적인 날이다. 17산우회원 18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대망의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다. 작전은 이미 8월 25일에 시작됐다. 007작전을 뺨치는 기습작전이었다. 인터넷 명교수 구총무의 지휘아래 벽소령대피소 인터넷 예약 공격조에 차출된 전사들은 김숭자, 김윤기, 박정수, 이정수, 임종수. 15일 전 오전 10시정각에 오픈 하는 예약 사이트는 오픈 하자마자 1분 이내에 예약이 만료되는 것이 보통이다. 고도의 민첩성이 요구되는 이 예약을 위해 6명의 공격조는 전날 밤 예비훈련까지 했다. 1인당 예약이 3인으로 제한되는 관계로 공격조 한 명 당 2사람의 회원이 배당되었다. 25일 아침 10시 5분,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알리는 낭보가 날아왔다.
9월 8일 낮 12시 20분, 용산역 대합실에 집결. 무궁화호를 타고 구례구까지 간다. 지난번 백두대간 산행에 참가하신 장문영 이건산업 부회장 외에 역시 회장님 고교동창이신 강일성사장께서 명예회원으로 참가하셨다. 2분의 명예회원을 환영한다. 산우회는 앞으로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 명예회원을 영입한다는 취지이므로 동문들의 적극적인 추천을 권한다.
회장님은 조카 결혼식 때문에 밤기차로 내일 새벽 구례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무궁화호를 처음 또는 굉장히 오랜만에 타보는데 실내가 KTX보다 더 좋다는 데 만장일치. 총무가 나눠준 표대로 좌석을 찾아가니 이번에도 또 임종수 단장 자리가 유수자여사 옆자리다. 아무리 단장 직권이라지만 이거 너무하지 않느냐고 김영길동문이 격렬하게 항의한다. 임단장이 자기는 총무가 준 표대로 앉았을 뿐이라고 시침을 떼자 김동문이 구총무에게 총무는 이런 농간부려도 되냐고 따진다.
수원역에서 아래위 카키색 차림에 군인작업모 같은 걸 쓴 전상희동문이 올라온다. 영락없는 '실미도 교관'이다. 선글라스만 썼으면 안성기로 착각할 뻔했다. 인터넷 신청자 리스트에 없었는데 모두 웬일이냐고 놀라면서 반가워한다. 구총무가 채필석 동문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신 전동문이 참가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역시 총무는 쎄다. 파트너도 마음대로 바꾸고 참가자 죽이기 살리기도 여반장으로 한다. "왜, 총무가 부럽냐?" 구총무의 귀여운 코멘트.
김숭자여사가 선물을 하나씩 돌린다. 기능성 땀수건이다. 뭘 이런 걸 다? 말은 그러면서도 아무도 사양 안 하는데 김여사가 "제가 많이 늦더라도 어여삐 봐주세요." 애교를 가득 담아 인사까지 하니 남자동창생들이 정말 어여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도 대견한데 선물까지...산우회원들은 복도 많다.
역시 먹는 문제는 사람살이의 근본인지라 집행부에서 해결해주지 않는 세끼의 식사에 관한 논의가 곧 화제의 중심이 된다. 산장에서 햇반을 판다, 그런데 데워주지 않는다, 데워주지 않으면 생쌀을 먹으란 말이냐,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니 레인지에 데워준다, 산장 전기는 자가발전인데 무슨 레인지냐, 난 C레이션 갖고 왔다, 낱개로 안 판다고 해서 한 박스나 샀다, 한 박스에 3만5천원 줬다, 3만원인이면 되는데 바가지 썼다,...난데없는 햇반과 C레이션 논쟁으로 기차 안이 시끌벅적하다.
농담따먹기와 군것질에 정신팔다보니 어느새 기차 옆으로 맑은 섬진강 물이 흘러간다. 압록, 이름도 예쁜 간이역을 지나 5시 20분 구례구역에 내렸다. 숙소인 구례읍으로 가야하는데 역앞 택시들이 인원수가 많으면 버스보다 택시가 더 싸다고 아무리 설득하고 꼬셔도 구총무는 들은 체도 않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화엄사 앞에 있는 숙소 화엄각까지는 구례읍 터미널에서 버스를 또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버스가 택시보다 비싸다는 말이 진실임은 나중에 결국 밝혀졌다. 그래도 구총무의 '초지일관'을 모두 칭찬했다. 터미널에서 각자 필요한 알코올을 구입했다. 짐무게 줄이려고 별짓을 다하면서도 알코올은 절대 포기가 안 되는 모양이다.
펜션모텔 화엄각에 체크인하고 근처 전주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기차에서 옆자리 노인으로부터 "학생" 소리 들은 전상희동문이 기분 낸다고 저녁을 쏜다. 돼지고기 볶음과 별미 박나물 안주로 모주와 소주를 마신다. 회장이 잠시 부재한 틈을 타 쿠데타 모의를 시도한 전상희동문. "내가 회장 되면 힘든 백두대간 같은 거 안 한다. 쉽고 재미있는 것만 한다." 우리 회원들의 회장님 절대숭배를 모르면 무슨 소리를 못할까.
서늘한 밤공기 탓인지 내일 산행에 대한 흥분 탓인지 모두 잠잘 생각을 안 한다. 숙소 앞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운다. 여학생 방 하나에 4명, 남학생 방 하나에 13명이 자도록 예약이 되었는데 김윤기동문 부부와 우리 부부가 분가를 했다. 다음날 아침, 여학생 방에 장변호사님과 김영길 동문이 잠입, 혼숙을 했음이 밝혀졌다. 풍기문란 비판이 드높은 가운데 강일성 명예회원은 '내실'에서 잤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음에 또 오면 우리 모두 공짜로 자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그 놀라운 실력에 감탄하자 회장님이 처음 만난 식당 아가씨와 12분만에 데이트 약속을 한 기록보유자라고 거든다. '현지조달의 지존' 임대장에게 한번 붙어보라 하니 회장님은 "택도 없다"하고 임대장은 "붙여보고 얘기해라" 한다.
주방 아줌마들과 점심용 김밥 준비하느라 구총무는 새벽 3시부터 바쁘고 4시에는 밤차 타고 온 회장님 목소리도 들린다. 4시 반, 총무가 방마다 다니며 쾅쾅 문을 두드려댄다. 5시 반, 아직 깜깜한 길을 랜턴 켜들고 다시 전주식당에 가 콩나물국밥을 먹는다. 6시 읍내버스를 타고 6시 30분에 성삼재에 도착했다. 말 잘하면 버스로 노고단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따지자 회장님이 그런 걸 두고 "희망적 유언비어"라고 한단다. 2년전 폭우 속에 노고단을 올랐던 산행 얘기를 하며 오늘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7시 10분, 해발 1,507m 노고단에서 증명사진 찍고 회장님의 산행계획을 듣는다. 오늘의 숙소인 벽소령대피소까지 18km, 선두기준 8시간, 후미 기준 9시간 예상한다. 5시 이전에는 대피소 입실이 안되니 일찍 가도 소용없다. 임걸령, 삼도봉, 토끼봉, 연하천에서 기념촬영할 테니 선두는 반드시 기다리기 바란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짙은 안개에 싸인 숲길은 어둡고 축축하다. 사실은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다. 하루종일 구름 속을 걷는다. 임걸령.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1시 45분, 煙霞泉 산장. 토끼봉에서 점심 먹고 연하천 산장에서 커피 마신다. 연기 연, 노을 하.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연하는 山水를 뜻한다고 하는데 煙霞仙境은 地異十景 중의 하나다.
다시 형제봉을 넘는다. 1,500m 급 봉우리를 몇 개나 넘었는데도 모두 선전, 오후 4시 30분 경에 후미까지 전원 碧宵嶺 대피소에 도착했다. 무려 10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쳤는데 지친 기색 하나 없다. 푸를 벽, 밤 소. '푸른 밤'이라... 碧宵明月 또한 지리십경 중 하나인데 불행히 오늘밤 달구경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어둠과 함께 사방에서 적병처럼 포위해오는 안개가 신비롭다 못해 으스스하다. 다행히 대피소 매점에서 햇반을 데워준다. 힘들게 지고 온 소주로 첫날의 성공을 자축한다.
삼청교육대 교관을 무색케하는 산장지기의 일장 훈시를 듣고서야 간신히 자리와 담요를 배정받아 숙소에 들었다. 신분증을 안 갖고 온 기자에게 본인 확인이 안 돼 입실을 허락할 수 없다고 버티는 산장지기한테 남편이 내 마누라임을 "몸으로" 확인시켜주면 되겠느냐고 빌어 간신히 들어갔다. 비누는 물론이고 치약도 못쓰게 한다. 치약 한 개면 나무 5그루를 죽인단다. 위압적인 산장지기의 태도에 처음엔 불쾌했으나 들어보니 잘하는 일이었다. 나중엔 칭찬했다. 7시경에는 여자숙소에 들어와서 15분 요가강습까지 해주는 친절을 보였다. 덕분에 몸이 많이 풀렸다.
잠결에 사나운 바람소리가 무서웠다. 비몽사몽간에 새벽 5시 기상. 대충 짐을 챙겨 대피소 앞마당에 나오니 거센 바람이 짙은 구름과 안개를 빠른 속도로 걷어내고 있다. 여명의 산장에서 아침 바람을 맞아본 일이 있는가. 살아있음의 기쁨에 온몸이 전율해본 일이 있는가. 황금빛 아침햇살이 새파란 동쪽 하늘을 뚫고 솟아오른다. 현출발이 "6시10분 전 출발!"을 외치며 대원들을 다그친다.
'푸른 밤' 대피소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천왕봉을 향한 종주 제2일의 발걸음을 뗀다. 6.3km 거리에 있는 세석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할 예정이다. 어제의 피로와 설친 밤잠에도 불구하고 전원 씩씩하고 싱싱하다. 구름이 걷힌 지리산은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망망대해의 파도처럼 이어지는 끝없는 산맥. 골짜기마다 소복소복 담긴 흰 구름. 능선길을 덮은 천상의 꽃밭은 또 어떠한가. 봄의 들꽃은 요염하고 가을의 들꽃은 청초하다. 지리산에서밖에 볼 수 없는 이 장관을 렌즈에 담느라 카메라맨들이 분주하다. 선비샘에서 물병 채우고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넘는다. 산구경, 꽃구경에 취해 9시 30분에야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인스턴트 비빔밥이 그런 대로 먹을만했다. 느긋하게 커피까지 한잔하고 앞길에 대한 의논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 5.1km 거리인 천왕봉까지 갔다 로터리산장으로 해서 중산리로 하산하겠다는 회원과 전에 천왕봉을 봤으니 장터목에서 바로 중산리로 내려가겠다는 회원이 갈렸다. 명예회원 두명과 전정원, 전상희동문 그리고 임대장이 천왕봉팀에 합류했다. 그 동안 늘 후미를 지키던 임대장이 오늘 웬일이냐고 모두 의아해하는데 임종수동문이 확실한 답안을 제출했다. 김숭자동문 에스코트권 쟁탈전에서 현해수동문한테 밀렸다는 설이다. 어제오늘 현동문이 줄곧 후미를 지키며 김숭자동문과 보조를 같이 했는데 자신의 세 불리를 간파한 임대장이 순순히 물러난 것이라는 명해설에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다.
구총무가 회장과 교신한 후 천왕봉팀에 중간 무전기를 주기로 했다. 4시에 중산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잔류회원들의 무운장구 축도 속에 천왕봉팀이 떠났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임대장의 비리를 고발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식사중인 우리 테이블에 임대장이 큰 비닐 봉투를 들고 와 쓰레기를 전부 여기 담으라고 했다. 각자 쓰레기를 하산지점까지 가져가는 게 상식인데 임대장이 처리할 계획이 있는가 싶어 모두 쓰레기를 거기 담았다. 그런데 천왕봉으로 출발하면서 자기는 천왕봉 가느라 쓰레기를 가져갈 형편이 못되니 뒷 사람이 들고 내려가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모두들 분개했지만 김영길 동문이 형님 잘못 둔 죄로 쓰레기 배달 책임을 떠맡았다. 대장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후미가 세석산장에 도착했을 때 중간그룹은 장터목을 향해 출발했다. 무전기가 없으니 바오로(구총무)하고 박교수의 말싸움도 못 듣고 심심하다고 김계숙여사가 불평한다. 구총무한테 장터목에서 만나면 무전기를 도로 압수하라고 주문했다.
촛대봉, 연하봉을 넘어 장터목에 도착하니 선두가 기다리고 있다. 산장에서는 술을 일체 팔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기자가 맥주 한잔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자 구총무가 배낭에서 맥주캔을 내준다. 아니, 무슨 요술을 부린 거지? 서울서부터 가져왔다는데 보온용기에 넣어와 아직도 시원하다. 총무와 대장의 아랫것들 챙기는 마음이 하늘과 땅 차이다.
점심용 햇반을 사 가지고 중산리로 하산을 시작했다. 중산리 하산길은 끝까지 바위길인데다 날씨도 다시 흐려져 숲속은 어둡고 바위는 미끄러웠다. 다리는 아프고 속도는 나지 않고 5.5km의 하산길이 마치 영원처럼 끝이 없다. 중간에 점심 먹고 유암폭포, 칼바위를 거쳐 4시 30분, 드디어 33km의 대장정을 마쳤다. 중산리 주차장 휴게소에서 다리 뻗고 찬 맥주를 마실 때의 행복감.... 5시에 천왕봉팀, 6시에 후미가 도착했다.
때맞춰 도착한 버스로 산청군 시천면 길리의 참숯찜질방 겸 사우나로 쫑파티하러 갔다. 장문영 명예회원께서 덕분에 지리산 종주를 하게됐다며 저녁을 쏘셨다. 이틀동안 부실했던 식사를 벌충하느라 참숯에 구운 돼지고기를 한없이 먹고 소주 맥주도 한없이 마셨다. 회장님은 대원들을 축하하고, 대원들은 회장님께 감사하고, 총무의 수고는 말할 수 없고, 숭자동문은 안 다치고 잘 와줘서 고맙고, 박수 또 박수, 건배 또 건배....
"출발 10분 전!" 현출발의 호령에 정신이 들어보니 9시다. 인삼랜드, 이종범동문이 송금해줬다는 돈으로 임대장이 아이스케키를 사왔다. 대원들이 아이스케키 물고 즐거워하는 시간에도 회장님은 다음 난코스인 설악산 공룡능선을 언제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참가자(18명): 강일성, 구명회, 김숭자부부, 김영길부부, 김윤기부부, 김종남, 박정수부부, 이정수, 임종수, 임한석, 장문영, 전상희, 전정원, 현해수(노순옥 기)
뱀다리: 오늘의 명언상을 빠트렸다. 장문영회장이 산행중 휴식시간에 경상도사투리 흉내를 냈는데, "빠이롱 야불떼기 찡구고 씨룬다"는 말을 피난 시절 부산에서 들었다고 하셨다. 번역하면, "바이올린 볼옆에 끼고 켠다." 경상도 출신들이 더 배꼽을 잡았다.
첫댓글 사진사들이 꼼짝 못하고 휴식 중인데 명 산행기 올려 줘서 감사 또 감사. 무릎 통증 빨리 회복 바랍니다. 우리 산악회에 보석 같은 종군기자임을 명심하시고 몸 단련에 배전 노력 바랍니다. 소생 山友들 염려 덕에 다음날 01시 05분에 무사히 귀가 했음을 보고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리산 정기를 받아서인지 집에 오니 다리가 말짱합니다. (노순옥)
몇년전에 종주한 후 지리산을 까맣게 잊어버릴 번 했군 ! 명 산행기 ! 반야봉, 벽소령, 연하천, 세석산장, 장터목이 눈에 선하구나 ! 덕분에 한 십년은 젊어진것 같구려 !
오늘, 말 그대로 이렇게 무사히 내려 올 수 있었는 것은 전적으로 회장님 힘덕분입니다. 여러분 모두 염려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중 나오신 분들을 만났을 때는 눈물 났읍니다. 이정수사장님, 매번 귀가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산행 . 산행기가 학실하게 옹땅 살려주네요
산행기를 일타보니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리움에 가슴이 지릿해지네요!
산행기 올리신 시간을 보니 쉬시지도 않고 생생하게 잘 도 쓰셨읍니다. 산행중 아프시던 무릅통증도 싹가셨다니 다행입니다. 이젠 산사람 다 되셨나베.......
30 여년전 70 년대에 똑 같은 코스로 종주를 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떠오릅니다. 등산로가 좀 넓어지고 산장이 호텔급으로 변했군요.(사진을 경기 55회 싸이트 에서 보았음).그 구름의 바다와 바람의 느낌을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같이 하지 못하여 섭섭하고,훌륭한 명예회원 두분을 모신것을 환영합니다.
지리산종주 사건은 지난 주간 내내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일부 雲海사진을 고교홈피에 올려 반응도 좋았고, 3년 선배인 서립규사장(서울공대출신, 산악인)과 통화중....그선배 말씀이 "1958년 같은 course를 무려 8일간 종주했다라고....그리고 그 당시 공비 잔당들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장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