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작은 아들 도이야!
새벽 어스름이다.
새벽 어스름이다.
밤새 뻗대던 너를 진정시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네 엄마가 형아랑 곤히 누워 있고, 너도 언제 그랬냐는 듯 더없이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자고 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먹던 엄마 젖이 아직도 생각이 나니? 입을 쪽쪽 오물거리면서 자는 모습이 귀여워 아빠도 모르게 뽀뽀를 할 뻔 했구나. 네가 엄마 젖을 오물오물 먹을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이야, 아빠는 지금 너를 안고 긴 터널에 서있는 듯하다. 저 기이인 터널의 끝에 뭐가 있을지, 터널 안은 도대체 뭐가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구나. 네가 나중에 커서 이 편지를 읽고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면 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힘겨움과 수고로움도 그저 지나가는 길 위로 스쳐가는 풍경처럼 흘려보낼 수 있을 텐데.
돌도 안 된 네가 갑자기 집에서 호흡을 멈추고 심장마저 멈추어 버렸던 그 날 이후로 2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심폐소생술로 호흡을 살리고 심장을 다시 돌리고 나서, 휴우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너는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를 걸고 온갖 감시 장치를 몸에 붙이고 누워있더구나. 바로 직전까지 중환자실을 활보하고 다니던 아빠는 졸지에 하루 두 번 있는 면회 시간을 기다려야 너를 볼 수 있는, 선생님이 아닌 환아 아빠, 보호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너를 만나서는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이마에 손만 얹은 채 ‘하느님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제 생명을 깎아서라도 제발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더구나.
“힘내세요. 신은 감당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그 사람이 이겨낼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하잖아요.”
“정말 신이 이런 일을 꾸민 거라면 내가 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감사한 위로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빠는 분노로 소리치곤 했었다.
진료실을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는 네 또래의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보다, 행여 붉어진 눈자위를 아이의 보호자에게 들킬까 봐 등을 돌리고는 차트에 머리를 처박고 진료를 보는 퉁명스러운 의사가 되어버렸지. 나의 불행이 남의 행복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 아빠에게는 남의 행복이 아빠의 불행처럼 느껴졌었다.
한 번은 외래에서 일하고 있는데 소아 중환자실에 심정지 환자가 있어 응급 심폐소생술을 요한다는 병원 방송이 스피커에 흘러 나왔어. 놀란 아빠는 한달음에 중환자실에 달려 들어갔고 ‘다행히’ 네가 아닌 다른 아이라는 걸 확인하고서 네가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밖으로 나왔단다. 그런데 중환자실 입구에 네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고 있더구나. 가운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아빠를 보더니 대뜸 “선생님, 우리 아기, 우리 아기…”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어. 아빠는 좀 전에 감사했던 게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하고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말았다.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얼마나 낯이 화끈거리던지. 다른 아이가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단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감사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누구보다 더 그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힘이 될 말을 한마디도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더구나.
도이야, 아빠는 지금 너를 안고 긴 터널에 서있는 듯하다. 저 기이인 터널의 끝에 뭐가 있을지, 터널 안은 도대체 뭐가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구나. 네가 나중에 커서 이 편지를 읽고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면 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힘겨움과 수고로움도 그저 지나가는 길 위로 스쳐가는 풍경처럼 흘려보낼 수 있을 텐데.
돌도 안 된 네가 갑자기 집에서 호흡을 멈추고 심장마저 멈추어 버렸던 그 날 이후로 2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심폐소생술로 호흡을 살리고 심장을 다시 돌리고 나서, 휴우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너는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를 걸고 온갖 감시 장치를 몸에 붙이고 누워있더구나. 바로 직전까지 중환자실을 활보하고 다니던 아빠는 졸지에 하루 두 번 있는 면회 시간을 기다려야 너를 볼 수 있는, 선생님이 아닌 환아 아빠, 보호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너를 만나서는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이마에 손만 얹은 채 ‘하느님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제 생명을 깎아서라도 제발 이 아이를 살려 주세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더구나.
“힘내세요. 신은 감당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그 사람이 이겨낼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하잖아요.”
“정말 신이 이런 일을 꾸민 거라면 내가 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감사한 위로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빠는 분노로 소리치곤 했었다.
진료실을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는 네 또래의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보다, 행여 붉어진 눈자위를 아이의 보호자에게 들킬까 봐 등을 돌리고는 차트에 머리를 처박고 진료를 보는 퉁명스러운 의사가 되어버렸지. 나의 불행이 남의 행복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 아빠에게는 남의 행복이 아빠의 불행처럼 느껴졌었다.
한 번은 외래에서 일하고 있는데 소아 중환자실에 심정지 환자가 있어 응급 심폐소생술을 요한다는 병원 방송이 스피커에 흘러 나왔어. 놀란 아빠는 한달음에 중환자실에 달려 들어갔고 ‘다행히’ 네가 아닌 다른 아이라는 걸 확인하고서 네가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밖으로 나왔단다. 그런데 중환자실 입구에 네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고 있더구나. 가운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아빠를 보더니 대뜸 “선생님, 우리 아기, 우리 아기…”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어. 아빠는 좀 전에 감사했던 게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하고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말았다.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얼마나 낯이 화끈거리던지. 다른 아이가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단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감사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누구보다 더 그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힘이 될 말을 한마디도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더구나.
한 달 가까이를 병원에서 아무 호전 없이 속 타는 시간만 보내다가, 퇴원 하는 날 처음으로 네가 신음소리 같은 울음을 터뜨리더구나. 눈은 초점이 없이 돌아가 있고, 사지는 나무 등걸처럼 뻣뻣한 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비위관을 걸고,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놓고, suction기를 옆에다 설치하고 나니 거실이 중환자실을 옮겨다 놓은 것 같더구나. 그러고 나서부터 엄마와 아빠의 힘겨운 전투가 시작되었단다. 엄마랑 아빠가 기대했던 것 보다 회복은 너무나 더디었고, 24시간 활처럼 몸을 뒤로 휘고 뻗대는 너의 곁을 지키고 앉아서, 너를 어르고 안고 먹이고 하는 일이 조금씩 엄마와 아빠를 참담함 속으로 몰아넣었다. 엄마를 송두리째 빼앗긴 형아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아빠를 따라 어린이집에서 온종일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잘 때까지 엄마 품에 한번 안겨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냈어. 부족한 수면과 정신적 혼란으로 아빠는 병원의 수련도 점점 버거워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하루 종일 너만 안고 있느라 온 몸이 성한 데가 남아나지 않았단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남들의 관심이 거북스럽고, 세상에 너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게 왠지 분하고 원통해서 아빠는 깊은 침묵과 외부와의 단절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불운은 아빠를 따라다녔다는 증거들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운명을 저주하고 남들보다 가지지 못한 아빠의 처지를 비관하곤 했다. 아빠의 논문이 지체되어 교수님의 재촉을 받고, 병원에서 하는 일들의 능률이 떨어지면 그 모든 원망을 그 당시에 닥쳤던 불행에 쏟아 부었지.
아빠가 의사라는 사실이 더더욱 참담하게 느껴지더구나. 아무 것도 해 줄 수는 없으면서 닥쳐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합병증만 머리 속에 가득 들어찼지. 네 엄마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안심을 시키면서도 정작 아빠는 혼자서 불안에 떨기도 했지. 의대생 시절에는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학교에서 새로운 병을 배울 때마다 혹여 내가 그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인턴, 공보의, 레지던트 생활을 보내면서 어쭙잖은 경력으로 병에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지. 질병이나 사고라는 것은 결코 나와 내 가족을 덮치지는 않으리라는 망상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의식 중에 환자라는 집단을 자신과는 다른 부류로 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 그래서 드물게는 환자와 보호자 위에 군림하려 하고 때로는 병에 걸린 것이 마치 환자의 잘못인 양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의사가 되는 수도 있지. 병실에서 너를 안고 회진을 기다리면서 아빠가 혹시 그런 의사는 아니었는지, 무심코 환자나 보호자에게 던진 말이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은 없는지 되씹고 되씹어 보았더란다. 그러면서 아빠가 가진 능력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아픈 너에게 아빠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껴지더구나.
‘만약에 네가 호흡이 멈춘 그 순간에 아빠가 네 옆에 있었더라면….’
‘그 날 술만 먹지 않고 일찍 들어왔었더라면….’
‘다급하게 아빠를 찾는 네 엄마의 전화를 받고 119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응급실로 들이닥치라고 했더라면….’
아침부터 밤까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을 헤매면서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아빠는 늘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화내는 사람, 후회하고 울먹이고 분통해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아빠에게 하루는 네 엄마가 병실에서 너를 간호할 때 이야기를 해주더구나.
“여보, 병원에 있을 때 내 소원이 뭐였는지 알아? 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밤을 꼴딱 새워 퉁퉁 부은 얼굴로 도이를 안고 그 흐드러진 벚꽃을 보면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짐작이나 가? 제발 집에 가서 우리 식구들이랑 같이 있고 싶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울고 웃고, 자기랑 머찌랑 도이랑 한 공간에만 있을 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금 우리 그렇게 살고 있잖아. 병원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모습으로. 느리기는 하지만 도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잖아. 그러면 내일이 다르고, 한 달 후가 다르고, 일 년 후가 달라지는 거잖아. 앞으로 점점 좋아지는 일만 남은 거잖아.”
엄마는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이야기하더구나. 늘 겁 많고, 항상 아빠에게 기대려고만 한다고 생각하던 엄마였는데…. 그 날은 아빠가 엄마라는 커다란 기둥을 안고 펑펑 울고 싶더구나.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생활이, 나의 인생이, 나의 삶이 죽기 전에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과 분노로 얼룩진 회한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엄청난 고통도 어깨를 짓누른 그만큼의 무게 그대로, 조금도 더하지 않고 덜하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만 있어준다면,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씩 덜해진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단다. 하물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이나마 그 고통의 무게가 줄어든다면 한결 편해지고 심지어는 행복해 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아 보여도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가 다 되어 이렇게 너도 벌써 세 살이 훌쩍 넘었구나. 다른 아이와 하나도 다를 것 없이 평화롭게 자는 너를 이렇게 내려다보니 그새 부쩍 많이 컸구나,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고 길어 보여도 그새 무척 많이 좋아졌구나.
행복이 저 길 끝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힘겹게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며 살아오다가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길고 그 끝은 훨씬 더 멀다고 느껴져 절망하기도 하고, 한 고비를 넘겨 목표점에 도달하고 보니 행복이라는 신기루가 그곳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기도 하지. 하지만 지나온 길들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지나온 그 과정 하나하나가 행복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왜 아빠는 그런 행복들을 모르고 살아왔을까?
네가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띠었을 때 아빠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단다. 아마 지난 여름이었을 거야. 새벽녘에 출근 준비를 하던 아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만 네가 깨버렸지. 자고 일어난 네가 여느 건강한 아이처럼 하품을 하는 모습이 예뻐서 아빠가 배에 얼굴을 문지르자 네 입꼬리가 거짓말처럼 빙긋 올라가더구나. 나중에 엄마 앞에서 네가 다시 그 미소를 보여 줄 때까지 아빠는 얼마나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지. 이후로 네가 소리 내어 크게 웃고,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에는 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 다른 사람들은 엄마랑 아빠에게도 이렇게 행복한 때가 있는 줄을 모를 거야. 그치?
도이야, 어제 밤에 형아가 우연히 꺼낸 앨범에서 네가 아프기 전 사진들을 엄마가 봤나 봐. 아빠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이리저리 두서없이 찍어댄 사진이었는데,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형아 뒤로 한 손으로 엄마의 다른 쪽 쭈쭈를 만지며 젖을 먹고 있는 네 뒷모습이 있었다더구나. 몽실몽실, 두루뭉술하게 보이는 너의 아프기 전 모습을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어. 행복한 시간도 많아졌고, 아픈 너를 안고 물리치료나 특수교육에 작업치료를 받고, 보조기를 하고 뻗치는 너를 안은 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아픈 것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빠도 엄마도 잘 극복하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아직 눈물이라는 것이 남아 있구나. 담담함을 지나 평온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지금도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자꾸 모니터가 흐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슬픔 가운데에도 행복이 있고 행복 가운데 눈물이 있고 또 그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게 사람 사는 모양샌가 보다.
2년 남짓 시간 동안 아빠는 힘든 가운데에서도 소중한 것들을 얻었어. 특히 의사로서 더 할 수 없이 귀중한 걸 깨달았지. 환자의 마음, 보호자의 마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겪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새카맣게 타 버린 그네들의 가슴 속을 알게 되었단다. 미루어 짐작하는 게 아니라, 글로 읽고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과 똑같은 처지에서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끼며 터득했지. 진료를 하면서 아빠가 무심코 던진 말에 환자들이 얼마나 상처 받을 수 있는지, 아빠의 작은 눈빛 하나로도 보호자들이 얼마나 큰 위안과 용기를 얻는지 잘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네 엄마와 형아랑 너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엄마는 긴 전투에서 훌륭한 베테랑 전우가 되었고 감사하게 잘 자라고 있는 너와 형아는 아빠의 든든한 용기가 되었단다.
도이야! 너를 안고 물끄러미 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빠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눈으로 네가 아빠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비록 몸이 말을 안 들어 옹알이 밖에 할 수 없지만 복지관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는 이 자체로 천재일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치?
“아빠, 내가 이렇게 잘 이겨내고 있잖아. 아빠도 힘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사회의 냉정한 벽들과 부딪쳐야 하고, 또 얼마나 힘겨운 가슴앓이를 해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할지는 모르지만 네가 잘 버텨온 것처럼 아빠도 잘 헤쳐 나갈 거야. 아들을 저승의 문턱에서 건져 올린 아빠가 무서울 게 뭐가 있고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니?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형아와 네 발을 조심스레 만져보니 따뜻한 감촉이 아빠의 손을 타고 들어와 가슴까지 훈훈하게 덥혀주는 구나.
도이야, 사랑하는 내 아들 도이야, 아빠와 엄마가 너를 부둥켜안고 굳건히 일어 선 것처럼 너도 이 두발로 씩씩하게 일어서고 힘차게 걸어보자꾸나. 저 기이인 터널의 끝을 향해.
성탄절 새벽에 아빠가
추신: 올 성탄절에도 어김없이 형아랑 너에게 선물을 주시러 산타 할아버지께서 다녀가셨구나.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남들의 관심이 거북스럽고, 세상에 너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게 왠지 분하고 원통해서 아빠는 깊은 침묵과 외부와의 단절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불운은 아빠를 따라다녔다는 증거들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운명을 저주하고 남들보다 가지지 못한 아빠의 처지를 비관하곤 했다. 아빠의 논문이 지체되어 교수님의 재촉을 받고, 병원에서 하는 일들의 능률이 떨어지면 그 모든 원망을 그 당시에 닥쳤던 불행에 쏟아 부었지.
아빠가 의사라는 사실이 더더욱 참담하게 느껴지더구나. 아무 것도 해 줄 수는 없으면서 닥쳐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합병증만 머리 속에 가득 들어찼지. 네 엄마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안심을 시키면서도 정작 아빠는 혼자서 불안에 떨기도 했지. 의대생 시절에는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학교에서 새로운 병을 배울 때마다 혹여 내가 그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인턴, 공보의, 레지던트 생활을 보내면서 어쭙잖은 경력으로 병에 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지. 질병이나 사고라는 것은 결코 나와 내 가족을 덮치지는 않으리라는 망상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의식 중에 환자라는 집단을 자신과는 다른 부류로 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 그래서 드물게는 환자와 보호자 위에 군림하려 하고 때로는 병에 걸린 것이 마치 환자의 잘못인 양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의사가 되는 수도 있지. 병실에서 너를 안고 회진을 기다리면서 아빠가 혹시 그런 의사는 아니었는지, 무심코 환자나 보호자에게 던진 말이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은 없는지 되씹고 되씹어 보았더란다. 그러면서 아빠가 가진 능력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아픈 너에게 아빠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껴지더구나.
‘만약에 네가 호흡이 멈춘 그 순간에 아빠가 네 옆에 있었더라면….’
‘그 날 술만 먹지 않고 일찍 들어왔었더라면….’
‘다급하게 아빠를 찾는 네 엄마의 전화를 받고 119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응급실로 들이닥치라고 했더라면….’
아침부터 밤까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을 헤매면서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아빠는 늘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화내는 사람, 후회하고 울먹이고 분통해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아빠에게 하루는 네 엄마가 병실에서 너를 간호할 때 이야기를 해주더구나.
“여보, 병원에 있을 때 내 소원이 뭐였는지 알아? 밖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밤을 꼴딱 새워 퉁퉁 부은 얼굴로 도이를 안고 그 흐드러진 벚꽃을 보면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짐작이나 가? 제발 집에 가서 우리 식구들이랑 같이 있고 싶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울고 웃고, 자기랑 머찌랑 도이랑 한 공간에만 있을 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금 우리 그렇게 살고 있잖아. 병원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모습으로. 느리기는 하지만 도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잖아. 그러면 내일이 다르고, 한 달 후가 다르고, 일 년 후가 달라지는 거잖아. 앞으로 점점 좋아지는 일만 남은 거잖아.”
엄마는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이야기하더구나. 늘 겁 많고, 항상 아빠에게 기대려고만 한다고 생각하던 엄마였는데…. 그 날은 아빠가 엄마라는 커다란 기둥을 안고 펑펑 울고 싶더구나.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생활이, 나의 인생이, 나의 삶이 죽기 전에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과 분노로 얼룩진 회한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엄청난 고통도 어깨를 짓누른 그만큼의 무게 그대로, 조금도 더하지 않고 덜하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만 있어준다면,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씩 덜해진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단다. 하물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이나마 그 고통의 무게가 줄어든다면 한결 편해지고 심지어는 행복해 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아 보여도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가 다 되어 이렇게 너도 벌써 세 살이 훌쩍 넘었구나. 다른 아이와 하나도 다를 것 없이 평화롭게 자는 너를 이렇게 내려다보니 그새 부쩍 많이 컸구나,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고 길어 보여도 그새 무척 많이 좋아졌구나.
행복이 저 길 끝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힘겹게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며 살아오다가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길고 그 끝은 훨씬 더 멀다고 느껴져 절망하기도 하고, 한 고비를 넘겨 목표점에 도달하고 보니 행복이라는 신기루가 그곳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기도 하지. 하지만 지나온 길들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지나온 그 과정 하나하나가 행복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왜 아빠는 그런 행복들을 모르고 살아왔을까?
네가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띠었을 때 아빠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단다. 아마 지난 여름이었을 거야. 새벽녘에 출근 준비를 하던 아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만 네가 깨버렸지. 자고 일어난 네가 여느 건강한 아이처럼 하품을 하는 모습이 예뻐서 아빠가 배에 얼굴을 문지르자 네 입꼬리가 거짓말처럼 빙긋 올라가더구나. 나중에 엄마 앞에서 네가 다시 그 미소를 보여 줄 때까지 아빠는 얼마나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지. 이후로 네가 소리 내어 크게 웃고,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에는 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 다른 사람들은 엄마랑 아빠에게도 이렇게 행복한 때가 있는 줄을 모를 거야. 그치?
도이야, 어제 밤에 형아가 우연히 꺼낸 앨범에서 네가 아프기 전 사진들을 엄마가 봤나 봐. 아빠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이리저리 두서없이 찍어댄 사진이었는데,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 형아 뒤로 한 손으로 엄마의 다른 쪽 쭈쭈를 만지며 젖을 먹고 있는 네 뒷모습이 있었다더구나. 몽실몽실, 두루뭉술하게 보이는 너의 아프기 전 모습을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어. 행복한 시간도 많아졌고, 아픈 너를 안고 물리치료나 특수교육에 작업치료를 받고, 보조기를 하고 뻗치는 너를 안은 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아픈 것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아빠도 엄마도 잘 극복하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아직 눈물이라는 것이 남아 있구나. 담담함을 지나 평온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지금도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자꾸 모니터가 흐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슬픔 가운데에도 행복이 있고 행복 가운데 눈물이 있고 또 그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게 사람 사는 모양샌가 보다.
2년 남짓 시간 동안 아빠는 힘든 가운데에서도 소중한 것들을 얻었어. 특히 의사로서 더 할 수 없이 귀중한 걸 깨달았지. 환자의 마음, 보호자의 마음이라는 게 어떤 건지, 겪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새카맣게 타 버린 그네들의 가슴 속을 알게 되었단다. 미루어 짐작하는 게 아니라, 글로 읽고 아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과 똑같은 처지에서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끼며 터득했지. 진료를 하면서 아빠가 무심코 던진 말에 환자들이 얼마나 상처 받을 수 있는지, 아빠의 작은 눈빛 하나로도 보호자들이 얼마나 큰 위안과 용기를 얻는지 잘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네 엄마와 형아랑 너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엄마는 긴 전투에서 훌륭한 베테랑 전우가 되었고 감사하게 잘 자라고 있는 너와 형아는 아빠의 든든한 용기가 되었단다.
도이야! 너를 안고 물끄러미 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빠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눈으로 네가 아빠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비록 몸이 말을 안 들어 옹알이 밖에 할 수 없지만 복지관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는 이 자체로 천재일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치?
“아빠, 내가 이렇게 잘 이겨내고 있잖아. 아빠도 힘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사회의 냉정한 벽들과 부딪쳐야 하고, 또 얼마나 힘겨운 가슴앓이를 해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할지는 모르지만 네가 잘 버텨온 것처럼 아빠도 잘 헤쳐 나갈 거야. 아들을 저승의 문턱에서 건져 올린 아빠가 무서울 게 뭐가 있고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니?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형아와 네 발을 조심스레 만져보니 따뜻한 감촉이 아빠의 손을 타고 들어와 가슴까지 훈훈하게 덥혀주는 구나.
도이야, 사랑하는 내 아들 도이야, 아빠와 엄마가 너를 부둥켜안고 굳건히 일어 선 것처럼 너도 이 두발로 씩씩하게 일어서고 힘차게 걸어보자꾸나. 저 기이인 터널의 끝을 향해.
성탄절 새벽에 아빠가
추신: 올 성탄절에도 어김없이 형아랑 너에게 선물을 주시러 산타 할아버지께서 다녀가셨구나.
파견 근무기간 동안 제 식구처럼 잘 챙겨주시던 강릉 아산병원 재활의학과 선생님들과 과내 행사에도 저희 식구를 챙겨 주시며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어울려 주시던 강릉 아산병원 안과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아이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달려 와주신 학교 선배님들에게도 늦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 주신 박미정 선생님, 김헌정 선생님과 언제나 감사의 말씀을 전해 주시는 김지형 신부님, 인생 선배로서 저희 부부의 아픔을 보듬어 주셨던 박일청 사장님과 사모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옆에서 간호하는 보호자분들, 그리고 그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께도 ‘파이팅!’이라고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투박하고 ‘거칠은’ 글을 예쁘게 봐주셔서 많은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청년의사 신문에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옆에서 간호하는 보호자분들, 그리고 그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께도 ‘파이팅!’이라고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투박하고 ‘거칠은’ 글을 예쁘게 봐주셔서 많은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청년의사 신문에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성탄선물에 부치는 편지’는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두 살배기 작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글로, 의사이면서도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처지에서 겪는 무력감, 아픈 아이를 기르면서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 등이 고백의 어조 속에서 생생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심사를 맡은 황동규 심사위원장은 “아이의 정확한 질병을 알 수 없는 게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로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고 말하고 “이 수상이 아이와 아버지에게 작은 ‘성탄선물’이 되기 바라마지 않는다”고 전했다.
우수작으로는 ‘청바지(안희경 삼성서울병원 내과 전공의)’, ‘내 마음의 손전등(전현태 제주 고신경정신과)’, ‘인연(채명석 부산OK오병원 외과)’ 세 편이 선정됐다.
동점자가 많아 우열을 가르기 힘들었던 우수작 심사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주제의 다양성 면에 손을 들어줬다.
‘청바지’, ‘인연’ 등이 바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주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만성정신질환 환자와의 사연을 담고 있는 ‘내 마음의 손전등’은 투고작들 가운데 표현이나 형식이 가장 세련됐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회는 또 장려작에 ‘눈빛을 읽다(전남대병원 정형외과)’, ‘8번 베드 환자(신홍범 코모피수면센터)’ 등 10편을 선정했다.
한미수필문학상 심사는 황동규 시인이 심사위원장을, 소설가 성석제 씨와 계명대학교 문예창장학과 손정수 교수가 심사위원을 맡아 진행했으며, 시상식은 1월 23일 있을 예정이다.
한편,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지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수필공모전으로 지난 2001년부터 실시됐으며, 올해로 9번째를 맞았다.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에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 2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1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유지영 기자 molly97@docdocdoc.co.kr
<제9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자 명단>
대상 조수근(서울아산병원 안과 전임의) 성탄선물에 부치는 편지
우수상 안희경(삼성서울병원 내과 전공의) 청바지
전현태(제주 고신경정신과) 내 마음의 손전등
채명석(부산ok오병원 외과)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