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왜 필요한가!
사람들이
바람직한 의료서비스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게되면, 대부분 떠오르는 것이 의료진의 실력, 훌륭한
시설, 친절한 서비스 등 일 것이다. 이러한 의견을 잘 들여다보면 병원의 특성과 성격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의료라는 것이 결국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평가 기준이 병원의
수준이나 의료진의 실력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인가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병원의 수준이나
의료진의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보편적 상식 속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한 교포기자의 영국* 의료서비스 경험담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임산부의 영국병원 체험기 - 임신 확인에서 백일까지
99년 6월 초순 진료소를 방문했더니, 가정의는 임신 확인과 2000년 1월15일 출산 예정을 계산해주며 진심어린 축하의
뜻과 임신 중 의료관리의 세부적인 일정과 장소, 그리고 주의사항 등을 영어에 매우 서툰 임산부에게 차근차근 반복 설명하며
지금부터 아기가 출생하여 만 1년이 될 때까지는 일체 본인의 약값(본인 부담분)은 무료임을 말해주고, 아기의 약값은 당연히
16세까지 무료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첫 방문에서는 8주분의 철분, 엽산 정제를 처방하여 주었습니다. 임신 8주 후 지역병원보다 훨씬 규모가 큰 런던대학 부속병원
초음파센터에서 미리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기다림 없이 초음파 검사를 받고 담당 의사로부터 이상이 없다는 것과 오늘 검사의
목적 등 친절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12주 후 지역병원의 초음파센터에서 그 동안 아기가 자란 상태 등의 검사를
위해 연락한다고 했습니다. 임신 12주 후 지역병원센터의 초음파 검사도 사전 약속에 의해 기다림 없이 끝났으며 검사 도중
여기저기로 화면을 바꾸어 아기의 여기저기를 지난번 런던대학센터 때와 마찬가지로 설명해주었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남아인지
여아인지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스'했고 남아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4주째 가정의, 다음 4주째 조산원(Midwife),
그 다음 4주째 가정의, 그 다음 4주째 조산원. 이런 순서로 진료소를 방문하며 99년 12월까지 계속 관리를 받았습니다.
99년 12월 중순부터 매 2주로 검진이 당겨졌으며, 이상 시 연락할 병원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주었습니다. 2000년
1월7일 진통은 없었으나 양수의 느낌이 있어 병원에 문의하니 바로 와서 검사하자고 하며, 구급차가 필요하냐 물었으나 사양하고
남편이 데리고 갔습니다. 검사 결과, 입원하고 다음날 오후에 아기 낳고, 하룻밤 병실에서 자고 다음날 검사 후 퇴원하였습니다.
병실이나 병원 건물은 200년도 더 되었다 하는데 내부 시설은 최신으로 위성TV, 전화도 침대마다 혼자 쓸 수 있게 되어
있고, 의사, 간호원의 친절함과 호의는 피부나 눈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출산 후, 2주간 조산원이 매일 집으로 방문하여
산후관리와 섭생을 지도해 주었습니다. 출산 1주 후는 가정의가 집으로 왕진하였습니다. 출산 8주, 1차 예방접종, 아기
몸, 무게, 키, 머리둘레, 가슴 등 제반 측정, 12주 2차 접종 측정, 16주 3차 접종 측정, 이후 매 월요일 오후
가정의 간호사 방문. 이렇게 관리 받고 있습니다. 엄마도 별도 예방접종 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2000년 8월 2일)
일단, 영국의 제도는 세금을 통해 운영되는 국민의료서비스이고 우리의 경우는 건강보험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 의료비 부담의
문제는 논외로 하도록 하자. 그래도 우리의 의료관행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이 병원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병원을 벗어나 가정이라는 일상 생활공간까지 지속된다는 점이다. 출산 후 2주간 조산사가
매일 집을 방문하고, 1주 후 의사가 집을 방문하여 아기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며, 아기와 산모의 예방접종도 간호사의 가정방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직은 우리 현실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둘째, 병원과 의사들의 기능 분담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고, 그들간 상호 연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어디에서도 중복검사를 요구하지 않으며, 그에 따르는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셋째, 병 수발을 들기 위해 보호자가 병원에서 수발 들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자의 편의는
병원에서 담당할 일이라는 원칙을 갖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친절하고 대단히 인간적인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의료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영국의료제도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데에는 외국인에게도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 말고도, 한 개인의 건강 에 대해 시공을 달리하면서 인격적이면서도 지속적이고 세밀한 도움과
관리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주변에 병·의원이 부족해서 불편함을 겪는 시절은 지났다. 남은 문제는
과중한 의료비 부담과 인격적이면서도 세밀한 서비스 제공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의료비 부담은 재원확보 방안의
문제와 연결된 사안이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인격적이면서도 세밀한 서비스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누가 담당해야 하는 것일까? 바람직한 의료서비스이기
위해서는 첫째, 건강과 질병을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병원이라는 고도의 집약된 치료공간에서부터 가정을 포함하는 생활공간까지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영국의 사례처럼 분만 1주일 후 의사가 가정을 방문하여 산모와 아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산모와 아이의 상태를 배려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거동이 불편하면서도 꼭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직접 환자를 찾아다닐 필요가 있으며,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더욱 시급한 실정이다. 둘째, 의료기관간 서비스 연계와 병원에서 가정까지 서비스 흐름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통합과 조정기능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중복검사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 수 있으며
일방적으로 요구받는 기다림의 시간이 단축될 것이고 다양한 공간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제
우리도 환자의 편의는 병원이 책임지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가 되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가정 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병원이라면 짜증부터 나는 그런 생활은 접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원이 설립되고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누가 담당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자세히 말하면, 환자를 찾아다니기 위해 충분한 인력의 가정진료팀을
운영하고, 다른 의료기관간 환자의 이동에 따라 자연스러운 연계가 이루어지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하여 병원서비스의 모범을 제시하기에 누가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정부나 자치단체 아니면 기타 공공기관에서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맡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민간부분이 중심이 되어 운영이 될 때는 시설과
장비 그리고 인력운영에 투자된 돈에 대한 보상과 이윤 창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공공부문 보다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가며,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이다. 다시 말해 공공병원을 통해 새로워진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OECD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병상수의 91%가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임에 비해서 영국, 호주, 프랑스 등 사회보장 체계가 잘 갖추어진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공공병원의
비중이 더 높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그런데, 이러한 병원의 모습이 우리 현실에서도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제규모 대비 사회복지
지출규모를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여러 선진국의 1만불 진입시 사회복지 GDP 대비 지출규모를 살펴보면, 사회복지
후진국이라는 미국이 13.7%, 일본이 10.4%이며, 호주도 11.7%에 이르지만, 우리의 경우 5.3%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짚어야 할 것의 하나는 스웨덴, 영국 등은 이미 1만불 진입 시점에서 거의 무상의료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영국의 경우 국민소득 1만불 시절에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표 1). 결론적으로 우리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앞서 살펴본 훌륭한 서비스가 우리 나라에서 전혀 불가능한
꿈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기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쉽게 달성되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대수준을 현실화하기
위한 주민들의, 시민들의 요구와 운동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제 그 첫발을 내딛을 필요가 있다.
왜 방지거병원의 공공병원화가 필요한가?
공공병원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동의가 이루어진다면 남은 문제는 돈이다. 요즘 제대로 된 병원을 짓는데 땅값 제외하고 시설과
장비구입에 병상 당 2억 원이 소요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방지거병원의 규모를 보면 407병상 규모의
18개 전문과목을 운영하던 종합병원으로 대지는 1,763평, 연면적은 3,801평에 이른다. 방지거병원과 같은 병원을
서울에 짓는다고 했을 때 400병상 규모의 병원이면 800억이 소요되며 땅값까지 포함하면 1천억 원을 넘나든다. 천억원을
들여 새로 병원을 짓는 것보다는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며 고의로 부도를 내어 폐업상태에 처해있는 방지거병원을 인수해서 리모델링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에서 공공병원을 새로이 만든다면 방지거병원과 같이 부도난 병원을 인수하여 개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가 방지거병원을 인수해서 공공병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제 우리지역에 이런 병원을 만들어보자!
방지거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모습의 병원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광진구에서 한강
다리만 건너면 바로 한국 최대의 병원이 있으며, 건국대학교 교정에는 이미 800병상의 현대식 병원의 골조가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지거병원을 기존의 종합병원 형태로 운영하는 것보다는 노인요양센터, 지역사회재활센터, 지역사회정신보건센터
등 지역사회에 의료수요가 높으면서도 기존 병원에서 제공을 기피하는 영역을 특성화한 보건의료센터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 병원과 환자 의뢰나 연계를 담당하는 담당자를 두며, 퇴원 이후에도 가정방문과 전화상담을 통해 건강상태를
문의하고 이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된다면, 지역주민들로부터 환영받는 공공병원이 될 것이며 결국
병원 수익성 측면에서도 적자를 보지 않는 병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공공병원을 만든다고 할 때 서비스 측면에서 기존 병원과는 차별화 된 그리고 다른 병원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병원진료뿐만 아니라 방문진료까지도 하는 병원을 가져보자! 병원에
가정 방문의사와 가정간호사로 구성된 가정진료팀을 새로이 만들어서 환자를 찾아오는 병원을 만들어보자. 그럴 때 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하여 제대로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병들어 누워 계신 부모나 장애인들을 위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병원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질병으로 인한 부담을 개인과 가족의 불행으로 떠넘기는 상황을 점차 과거의
일로 바꾸어갈 때가 되었다. 지난 20년간 의료보험을 통해 의료기관의 문턱을 낮추어 온 것이 우리의 역사고 경험이라면
이제는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그 부담과 책임을 더 많이 떠맡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지역 공동체를
부활시켜내는 지름길이다. 셋째,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누군가는 꼭 옆에서 수발을 들어야 하며, 집안 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리지 않아도 되는 병원을 만들어 보자. 이제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열심히 일한 만큼 정당한 대접을 받을 때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만 늙어 병든 부모를 앞에 놓고 형제가 다투지 않을 것이며, 살림살이 좀 낳아졌다고 한마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 전 TV 홈쇼핑에서 내놓은 이민 상품이 연일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아니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들이 그렇게 떠나고자 하겠는가?
*영국의 의료체계는 국민의료서비스(NHS : National Health Service)라고 불린다. 소수의 민간병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공공기관이며, 최근 들어 처방 약에 대한 조제 시 약국에 일정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신설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의료기관 이용 시 전액 무료이며, 그 비용은 평소에 납부하는 세금으로 조성되어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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