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진허박사의 사주,풍수이야기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기본 게시판 스크랩 너도 58년 개띠냐, ...지금 뭐하고 있니? ?
眞虛 추천 0 조회 145 13.11.22 11: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Issue]

 

너도 58년 개띠냐, 죽도록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뭐하고 있니?

 

 

 

 

어린 시절엔 미군부대에서 나눠줬던 옥수수 죽을 먹었고 통일벼로 지은 밥을 먹었다. 이제 대학 졸업반이 된 아들에게 미군부대가 어쩌니 죽이 저쩌니 하면 단 1초도 안 돼 또 그런 얘기한다며 분위기를 바꾼다.

행여 아껴 쓰란 얘기도, 솔선수범해 똑바로 살란 얘기도 그저 소귀에 경읽기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직장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퇴직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처지에 부하 직원에게 왈가왈부하는 게 스스로도 탐탁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않고 넘어가자니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껄끄럽기만 하다.

올해로 30년 째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범석 씨(가명)는 만 55세가 된 1958년 개띠 생이다.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해 77학번, 올해가 정년이다.

 

 

“20대에 대학을 다니고 50대까지 일하고 80대까지 노후를 보내는 사회에서 요즘은 100세 시대가 과연 축복인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퇴직을 하고 나면 고정 수입 없이 근 30년을 살아야 할 텐데 막막합니다. 어쩌겠어요. 나가라면 가야지. 그래도 수많은 고난을 헤쳐 온 58년 개띠 아닙니까.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겠지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비록 일밖에 몰랐지만 그런 내 청춘이 부끄럽지 않아요.”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1958년 개띠 생들이 서서히 청춘을 바쳤던 삶의 터전에서 퇴장하고 있다.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위엄은 떨어지고 건강은 예전 같지 않지만 또 다른 삶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새해 들어 이러한 분위기는 현실이 됐다. 우선 금융권이 심상치 않다. 유럽 위기 여파로 불황이 이어지면서 58년 개띠 생들이 겪어야 할 구조조정 강도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부서장과 지점장의 자리를 유지할지 아니면 보직이 변경돼 자리를 비워줘야 할지가 결정되는 만 55세 개띠 생들에게 2013년 뱀띠 해가 반갑지 않은 이유다. 자동차 업계의 분위기도 마찬가지. 지난 연말 연구개발·사무직 60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 한국GM의 경우 1958년생 이상은 내보낸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베이비부머를 대변하는 1958년 개띠 생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들을 찾아가 현재를 이야기했다.

 

바보 같은 58년 개띠 인생

 

전후 1955년부터 1963년생을 흔히 베이비붐 세대라 부른다.

6·25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에 태어난 세대다. 그 절정을 이룬 시기가 1958년.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1958년 개띠 생이 회자되는 이유다. 당시 인구조사를 살펴보면 1955~1957년생은 약 70만명대, 1959~1960년생은 80만명대인데 비해 1958년생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갑작스레 불어난 동갑내기들 수에 경쟁은 필수요 노력은 옵션이라, 어쩔 수 없이 평생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형제자매가 많은 이들은 잠시 한 눈 팔면 삼시 세끼 중 한 끼는 얻어먹지도 못했다. 자연스럽게 진학이나 취업, 결혼과 집, 부동산 등 모든 사회 활동이 치열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선 70명이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교실에서 2부제, 많으면 3부제로 돌아가며 수업해야만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땐 본고사가 면제된 첫 ‘뺑뺑이’세대였고, 소 판 돈으로 대학에 갔다 해서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리기도 했다. 1974년 고교평준화 제도가 시행될 땐 58년 개띠 동갑내기인 대통령 아들 때문에 입시 때만 되면 제도가 바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모든 제도의 테스트는 58년 개띠부터였다.

 

그땐 왜 그런지도 모르고 하라면 했다. 대학에 입학할 땐 당시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로 치러야만 했다. 같은 해 많이 태어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58년 개띠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스물 두 살이던 이들중 일부는 민주화 투사가 됐고 또 일부는 군 입대 후 진압군으로 거리에 나서야만 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장만한 총칼이 다시금 국민에게 비수가 돼 돌아온 그 시절, 민중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걸 눈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30세가 되던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넥타이부대의 중심에도 58년 개띠가 있었다. 하지만 역사의 기운은 이 모든 공과를 386세대로 돌렸다.

 

민주화에는 실패와 좌절을 맛봤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58년 개띠가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밤낮없이 일했다. 현 시기에 화제가 되기도 하는 ‘월화수목금금금’은 이들에겐 생활이었다. 주말엔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나가 일했고 공휴일에도 회사가 부르면 달려 나갔다.

 

결혼할 무렵엔 신혼 주거지를 위해 서울 주변 수도권이 개발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베드타운인 분당과 일산 신도시가 이 시기에 형성된 대표적인 개발도시다.

 

10여년 열심히 일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고 이제 살만한 세상 아닌가 고개를 들 무렵 58년 개띠 앞에 구조조정의 태풍이 휘몰아쳤다. 365일 중 360일을 직장에 매달렸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는 피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는 격이었다. 눈물로 호소했지만 직장에서 가장 먼저 잘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58년 개띠였다. 높은 파고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더 이상 누구도, 아무 곳도 믿을 수 없었다.

 

정년이 보장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일자리의 배신은 생각보다 생채기가 컸다. 노후에 대한 준비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명제가 현실이 됐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노후를 준비했다. 그렇게 약 15년이 흐른 후, 2013년 만 55세가 된 58년 개띠는 스스로 ‘끝물’이라며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뭔가 깔끔하지 못하다. 첫 직장에 입사할 무렵 환하게 웃으며 퇴직하던 선배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조직과 상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돌아온 건 ‘보수적인 성향’이란 꼬리표였고, 덕분에 아래세대(386, Y세대)와의 의사소통에선 권위적이란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젊은 시절을 직장에서 보낸 탓에 자식들과의 대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스로 생각해도 세대차이가 분명하고 서툴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온몸을 맞으며 살았던 58년 개띠. 사회의 격변기에 희생되기도 하고 여러 제도의 최초 시행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제 진정 제2의 인생이 코앞이다. 58년 개띠들의 고민은 이미 시작됐다.

 

단카이 세대와는 다르다

 

흔히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특히 58년 개띠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와 비교된다.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사카이야 다이치의 소설 <단카이의 세대>(1976년)에서 탄생한 단카이 세대의 ‘단카이’(團塊·단괴)는 덩어리란 뜻으로 제2차 세계대전 뒤인 1947년부터 49년에 대거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부머들을 지칭한다. 이들이 덩어리처럼 뭉쳐 새로운 현상과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58년 개띠와 단카이 세대는 진학과 취업에 극심한 경쟁률을 뚫고 성장했고 살 집을 마련하는 데도 온갖 역경을 이겨냈다. 두 나라의 경제성장에 선봉장으로 경제 기틀을 다졌고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두 세대는 현재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일본은 이미 2006년 노동자의 정년을 60살에서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65살로 사실상 늦췄다.

 

단카이 세대가 은퇴하면 연금과 퇴직금, 개인의 노후대비 저축 등으로 이른바 ‘단카이소비’가 생성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만큼 비교적 장밋빛이다. 하지만 58년 개띠들은 아직 멀었다. 떠날 날은 받아놨는데 국민연금 지급 시기는 평균 7년 이상 남았다. 퇴직 후가 막막한 이유다. 그런가하면 최근 58년 개띠와 단카이 세대의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설문조사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1일까지 인터넷 회원 2433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3.9%(1068명)가 정년퇴직 연령으로 ‘만 65세’를 꼽았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은 55세. 대다수 기업의 은퇴 시기보다 10년가량 늦은 나이다.

 

뒤이어 가장 많이 나온 연령은 ‘만 60세’로 28.1%(684명)였다. ‘만 70세 이상’이 11.4%(277명), ‘만 67세’가 8.5%(207명), ‘만 55세’가 4%(98명), ‘만 57세’가 3%(72명)로 뒤를 이었다.

 

태원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민의 지속 고용 요구가 절실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 설문 결과”라며 “(대선 공약인) 60세까지 정년 연장을 2017년 전에 점차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에선 희망퇴직 연령이 평균 62세로 조사되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대선에선 50대의 투표율이 판세를 잘랐다. 89.2%의 투표율을 기록한 50대 중 60% 이상이 정년 연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지했다.

 

 

 

 

 

 

 

 

 

 

[횡설수설/박용]공식 폐기된 가족계획

 

 

 

 

 

2006년 개봉한 ‘잘살아보세’는 1970년대 가족계획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다.

전국 최고의 출산율을 자랑하는 용두리 마을을 무대로 ‘출산율 제로’에 도전하는 보건소 여성 가족계획 요원(김정은)의 분투기다. 마을 사람들은 콘돔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도 모른다.

정관수술을 받던 이장 변석구(이범수)는 의사에게 “작동은 되겄쥬∼”라고 묻는다.

그토록 피임에 무지했던 마을 사람들은 40여 년 전 한국인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영화 속 가족계획 요원도 보건사회부가 1963년부터 각 보건소에 실제로 파견했던 공무원이 모델이다.

 

▷가난에 시달리던 1960년대는 ‘58년 개띠’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입’이 큰 걱정이었다. 1960년 인구 증가율은 3%, 가구당 평균 자녀 수는 6.3명이나 됐다.

전후(戰後) ‘베이비 붐’(1955∼1963년)을 잠재운 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였다.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1962년부터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도 인구 증가율 억제 목표를 넣었다.

셋만 낳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는 표어도 이 무렵에 등장했다.

 

▷1970년대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거리와 공중 화장실에 넘쳐났다. 1977년 아파트 입주 신청에 불임 수술자를 우대하기로 하자 50, 60대 남성까지 수술을 받으러 보건소로 몰려들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받으면 훈련을 빼줬고 기업들이 수입하는 피임약에는 관세도 물리지 않았다. 드디어 1988년 인구 증가율은 1%로 떨어졌다. 정부는 1994년 산아 제한 정책을 중단했다.

 

▷정부는 15일 국무회의를 열고 보건소의 가족계획 업무(산아 제한과 피임 교육 등)를 삭제하는 내용의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유명무실해진 가족계획 업무를 공식 폐기한 것이다. 정부는 1983년 합계출산율이 인구 현상 유지가 가능한 2.1명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1990년대 중반까지 출산을 억제해 정책 전환의 타이밍을 놓쳤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가 됐다.

 

1960년대 ‘3·3·35’(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까지만 낳자) 구호는 ‘1·2·35’(결혼 후 1년 안에 임신해서 2명의 자녀를 35세 이전에 낳자)로 바뀌었다. 한창 일할 젊은이가 줄고 복지 수요가 큰 고령자가 늘면 나라 곳간도 금세 바닥난다.

 

아버지처럼 ‘다시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건 박근혜 정부의 ‘21세기형 가족계획’ 카드가 궁금하다.

 

 

/ 동아

 

 

 

 

 

옥수수죽? 도대체 몇년생까지 그걸 먹었는지 모르겠다^^

 

미군부대라 했는데 잘 모르겠고 6.25 이후 우리나라가 기근을 못면하자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 무상대여라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에 옥수수와 탈지분유(버터 만들고 남은 것)를 보내줘 학교에서 점심을 못 먹는 학생들에게 죽을 쑤어 나눠줬다. 사료용을 줬다고 욕하지만 당시에 그나마 안줬으면 점심으로 맹물이나 먹어야 했을 것이다.

 

58년 개띠가 그렇게 많았나?^^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