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마주보다'란 말과 상응하는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려면 마땅한 단어가 없다. 해당되는 말이 없으니 굳이 찾아보자면 단어가 아닌 하나의 구(句)로서 'being opposite'란 말이 있다고 하는데, 머리 나쁜 내가 보기엔 'looking into each other'가 더 맞는 구절이 아닐런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opposite'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상대편', '건너편', 또는 '적대적'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마주보다'란 의미를 가진 영어에서의 'being opposite'는 호의적 또는 긍정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물의 가지에 붙어있는 잎들의 배열은 보통 마주나기, 어긋나기, 돌려나기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마주나기잎은 줄기의 같은 높이에서 정답게 마주보고 있는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로 볼 때 마주나기잎들은 서로 가족같이 효혜적(互惠的)이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와 같이 우리말에서 '마주보기'란 의미는 전혀 적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한다.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 마주보는 모습이 그렇고, 풀잎이 정답게 서로 마주 나는 모습이 또한 그렇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어머니와 자식이 가슴을 맞대고 호흡을 함께하면서 서로 마주 보는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떤 풍광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면이리라. 두 사람의 눈빛 사이에 무한한 사랑 이외에 또 무엇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그렇게 어머니는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자식은 어머니의 사랑을 먹으면서 세상살이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할로우(Harry F. Harlow)의 논문 『사랑의 본성(The nature of love)』에 실린 '원숭이의 애착 실험' 을 읽어 보면... 우리 속에 갖힌 어린 원숭이의 앞에 어미 원숭이 인형 두 개가 걸려 있는데, 하나는 헝겊으로 만든 인형이고 다른 하나는 철사로 만든 인형이지만, 아기 원숭이가 먹을 우유는 하루에 몇 번씩 철사 인형에게서만 나온다. 아기 원숭이는 어떻게 할까? 얼른 생각하면 먹이를 주는 철사 인형을 사랑할 것 같았지만 원숭이는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인형을 찾아가고, 그 이외의 시간엔 언제나 헝겊 인형을 만지면서 놀면서 철사 인형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기는 서로 마주 보며 살을 맞대고 숨을 함께 쉬는 가운데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요즘 길거리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으니, 가슴을 마주하고 같은 숨을 쉬면서 사랑을 나누며 마주보고 선 어머니와 자식의 모습은 아쉽게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길거리의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건 유모차를 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러니 어머니와 자식은 눈을 마주할 일도 없고, 호흡을 함께할 일은 더더욱 없다. 오직 같은 곳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해서리 우리는 그렇게 자란 아이에게 당연히 어머니란 얼마나 숭고한 존재인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