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불암 마애불의 전설
이 미륵 마애불의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고 민중의 염원이 담긴 전설이 함께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마애불 가슴 한가운데 배꼽처럼 네모지게 파고 돌 뚜껑을 회로 봉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를 "복장 감실"이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동불암 마애불 배꼽에는 비결서가 들어있고 그 비결서가 햇빛을 보는 날 한양이 망하고 거기에 손을 댄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절벽 한 면을 다 차지하는 거대한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에 조성한 듯하며 조각기법이 투박하고 온화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애써 위엄을 강조해서 표현하려 했는 듯 얼굴 모습이 위협적인 게 보인다.
백제 마애불의 시작은 서산 마애불인데 본존불이 석가불입니다. 또 하나 태안 마애불은 본존불이 아미타불인데 특이한 점은 중앙 본존불이 좌우협시불보다 크기가 작은 외형을 가지고 있구요. 두 마애불에 새겨진 불상은 법화사상을 나타냅니다. 마애불이 미륵불의 개념으로 정착된 것은 고려시대인데 고려 마애불의 백미는 거대한 크기에 있죠. 파주 용미리 마애불은 불상 놀이가 17.7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하구요. 선운사 동불암 마애불은 고려 초 지방 호족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보물 제 1200호) 신라시대의 마애불과 달리 탄력있는 양감이나 세부 조각의 정제미가 소홀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조성된 마애불은 바위자체가 지닌 신이성(神異性)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명치께에 있는 네모진 흔적은 부처님을 완성한 후 불경과 시주자의 이름 등을 적어 놓고 돌뚜껑을 닫은 뒤 백회로 봉한 자국이고 애래상의 머리위에는 누각식으로 된 지붕이 있었는데 인조 20년(1648)에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지금 마애불의 머리 위에 뚫린 네모난 구멍들과 드문 드문 끼여 잇는 부러진 못과 쇠못등이 그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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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상 조각의 특징으로 선운사 금동보살좌상에서처럼 웃음이 없는 사각형의 얼굴, 두터운 가죽 옷, 형식적인 의습(衣褶)처리 등 예술적 퇴보의 속도가 빨라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운사 주변은 다른 곳과 달리 볼거리 먹거리 천국이다. 산수가 좋은 고창지역은 옛부터 먹거리가 풍부하여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 풍류를 즐길줄 알아는 고장이라고 한다. 수박, 풍천장어, 복분자주, 바지락, 작설차등이 전국에서 으뜸이며 판소리 대가 신재효, 미당 서정주, 인촌 김성수, 녹두장군 전봉분등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앞서 말한 서정주의 고향마을과 그의 詩로 더욱 유명한 선운사는 고만고만한 거리를 두고 볼거리를 마련해 두고 있다.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우는 명승지로서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처에 기암괴석이 물형으로 이루어 위용을 과시하고 영봉이 봉우리 경관을 이루고 산이 높으니 골이 깊고 물이 맑으며 수림이 울창하여 절경을 이룬 가운데 천년 고찰이 자리잡고 있다. 많은 암벽등반가들이 기본코스로 찾을 정도로 유명하며, 봄에는 동백꽃, 여름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 가을에는 단풍과 상사화, 겨울에는 설경등이 너무나 아름답다.
첫댓글 한 수 읊지 않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