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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와이셔츠 선물의 감격
- 상사의 적절한 격려와 인정은 부하가 실력 이상 능력발휘케해
- 아무리 IT화, 시스템화하더라도 인간관계는 언제나 가장
중요
1960연대 중반 내가 그 당시 우리나라 수출실적 제 1위의 S무역 중견사원 시절의 일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자매회사, D수산의 사장으로 새로이 부임한 분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알만한 고위 공직자 출신의 L사장이었다
D수산의 제품을 수출하고 원자재와 생산자금을 공급하는 일이 내 주임무였는데 L사장이 취임한 이래 여러 면에서 뜻이 잘 맞아 생산시기
이전에 판매를 선행하고 신용장을 선취하여 수출금융을 일으켜 이자가 싼 자금을 적기에 공급하는 등으로 수출이 늘고 업무성과가 졸았는데 그 이유란 한마디로 그 분이 나를 잘 리드하여 내가 없는 실력까지 총 동원하여 온갖 노력을 다 하게 한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내 의견을 물어 그 사업을 배우는 자세를 취했는데 어떤
때는 사장실에서 점심까지 시켜 먹으며 온 종일 회의를 하면 완벽한
사업계획이 세워지는데 훌륭한 계획은 내가 세웠다고 하고 자기는 언제나 지원하는 입장을 취한다 다음회의를 할 때는 자기가 메모한 내용을 체크해가며 진행사항을 점검하는데 그것은 전부 내가 해내야 할
시한부의 일이기 때문에 공휴일 한번 맘놓고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 모두가 내 입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소연 할
데도 없었다 신역은 고달팠지만 기분은 언제나 신바람이 났고 내 자신의 사업을 내가 하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웠던 때라 연간 수출실적 삼백 만
불로서 한국 제1위의 수출업체로 금탑산업훈장을 받던 시절이므로 봉급생활자들은 와이셔츠의 칼라가 변색하고 낡으면 칼라를 떼어내고
새것으로 달아 그냥 입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루는 L 사장이 내 자리에 왔다가 새 칼라를 단 내 와이셔츠를 보고
"미스터리는 큰 회사의 엘리트 사원이 검소하기도 하다" 며 "장래에 크게 복받을 것" 이라면서 우리 회사 직원들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우리
과장님에게 "과장 덕에 미스터리가 일을 잘해주어 우리 회사는 실적이 크게 오르고 있다" 고 하니 우리 과장님도 기분이 짱이었다
그 날, L 사장의 호출에 가 보니 회사 근처 맞춤와이셔츠집 주인이 와
있는데 내 몸 치수를 재게 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 맞춤와이셔츠는 사장급이나 누리는 호사이며 물빨래해서 대리지 않고 그냥 입는 100 %
나일론 와이셔츠가 최고급이었는데 이것으로 두 벌을 만들어 며칠 후
자기 비서를 시켜 내 사무실에 전달해 왔을 때 우리 부서 직원들 모두가 부러워하고 L사장은 직원들 기분을 알아주는 멋있는 분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그 뒤 L사장은 수출대전으로 전도금을 갚아야 하는데 며칠 간 사용하고 갚겠다 하여 회사의 양해를 얻어 그렇게 하게 했더니 그 날 갚지 않아 우리 회사 자금계획에 차질을 초래케 했다 이런 일이 몇 번인가 되풀이되었을 때 나는 L사장에게 탄원했다
그는 그 때 갈릴레오 이야기를 해주었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죽음이 두려워 지구는 둥글다는 말을 번복하고 석방되어 나오면서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둥근데 - -" 했다고 한다
내가 탄원하는 말은 모두가 옳고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약속을 어기게 된 일에는 사정이 있었지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왜냐 하면 그 얘기를 내가 들어도 "그래도 지구는 둥근데 - - "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이 세상에는 자금에 관한 한 옳지 않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약속을 어기는 수가 있다는 것을 나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동안 갚지 않던 돈을 전부 갚아주었다
나는 그 분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회사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
분은 내가 진정으로 부탁하면 갚아 줄 것으로 굳게 믿었으며 그것은
와이셔츠 건으로 인한 감격이 컸던 것도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갈릴레오 이야기가 그 분의 고뇌스런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옛말에 봉황은 나무를 가려 깃들이고 선비는 주인을 가려 섬긴다고
하였는데 이 것은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말이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헌신한다 그 때 내 기분은 그 분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D수산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요즈음 컴퓨터가 하는 일이 많아짐으로 인해 사회는 시스템화, IT화하여 인간관계의 연이 엷어지고 IMF 이후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으로
더욱 각박해 진다고 한다 이웃 일본도 이 영향으로 평생고용제도가
무너지고 서양식 냉정한 구조조정이나 성과급이 많아지는 경향이라고 했다 이런 점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업이나 국가처럼 큰 조직도 실제 그것을
움직이는 중심세력은 소수의 몇 명이라고 한다 지도자가 부하를 인정하고 인간적으로 감동시키는 포용력, 용인 술이 있어야 보통을 초월한 인간관계, 지도자에 대한 헌신으로 상하 하나가 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물류신문】 2002년 10월 14일자 『이호영의 千字칼럼』(61) 에 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