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고 있지만 삶은 다 다르게 살지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사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라 생각 합니까? 존재는 바로 그 근본을 알면 그로 더불어 자유하게 됩니다. 오늘은 야다 히브리어를 생각하면서 나를 볼 수 있으면 합니다.
몇주전에 새로나온 인디에나 죤스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에 아르키메데스가 실재 인물로 나오면서 로마서7,8장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사람이 욕조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다가 물이 차오르는 것에 착안하여 물질의 밀도에 따라 비중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본래 그 원리는 처음 부터 있어왔던 것인데...)
즉 서로 다른 물질은 같은 무게라 할 지라도 차지하는 부피가 다르므로 물통에 집어 넣었을 때 서로 다른 비중을 가지게 되고 이것을 옻을 홀딱벗고 깨닫게 된 아르키메데스는 옷을 입는 것도 잊고 뛰쳐나와 “찾았다”(유레카:εὕρηκα!)를 외쳤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이론,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경험으로, 피부로 입증이 되지 않으면 그 이론, 가설은 그냥 쓰레기인데... 아르키메데스는 그것을 발견하여 그때 부터 저렇게 큰 배까지 물에다 띄울 수 있는 진리를 발견 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 7:21
바울은 7:21에서 Εὑρίσκω! 하면서 자기가 알아차린 원리를 이렇게 선포하며, 그 원리를 글로 편지로 온세상 만민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에 유듑이 있었으면 유튭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Zoom 으로 전했을것 같아요. 그런데 그가 발견한것은 난 그냥 사망의 몸이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죄,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몸...아! 나는 이 사망의 몸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슬픈 원리...를 발견했는데 왜 그는 이렇게 기뻐할 까요?
불가능속의 불에 던져졌음을 야다 할 그 때만이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실 분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어두울 때 그 빛이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나듯이...
아브라함의 눈이 모리아 산 나무에 걸려있는 어린양과 마주친 것 처럼,바울은 그리스도와 눈이 마주치면서 앎( 다아트), Spark가 일어나면서 다이나 마이트 처럼 터지면서 8장을 전개하고 있는것 으로 보였습니다
*** 야다를 더 깊이 파자하면 이렇습니다.
하(그) 아담이 그의 아내 이브와 서로 “야다” 했을때, 잉태와 출산을 하게 된다(창4;1)
그 성령(Πνεῦμα ἅγιον- 퓨뉴마 하기온 )이 마리아와 서로 야다 했을때…(눅1장)
야다, yada (יָדַע ) : to know
잉태 ; harah (הָרָה ): to conceive, become pregnant
출산; yalad (יָלַד );: to bear, bring forth, beget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
야다의 명사형은 -דָעָת 다아트 : 앎, 지식---
십자가, 완성(ת)을 보는 (ע) 문(ד)-
그 다아트가 있으면 그 앎이 마리아를 생명싸게로 쌓아서 영원히 열매맻는 길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