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라북도블로그 기자 정진희입니다.
먼저 정읍 샘소리터 김문선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샘소리터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정읍풍류의 대중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달, 모두 처음 만나뵀지만 한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푸짐하게 대접해주셔서 기쁜 마음 한 가득들고 전주 왔습니다.
좋은 소식있으실 때 초대해주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놀러가겠습니다.^^
참, 카페 회원님들도 아래 링크된 홈페이지 가셔서
애정가득 댓글도 많이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전라북도 공식블로그 "전북의 재발견" : http://blog.jb.go.kr/22018774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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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 흥이 어우러진 정읍풍류의 맥을 지키고 있는 풍류방 '샘소리터'를 아시나요? 소곤소곤 전북일상
2014/12/02 15:14
http://blog.jb.go.kr/220187747174
내장산자락 타고 흐르는 정읍향제줄풍류의 맥을 이어라! 풍류방 <샘소리터>의 ‘멋’있는 어울마당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 멀리 비춰 주소서. 시장에 가 계신가요? 위험한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놓으십시오. 당신 가시는 곳에 저물까 두렵습니다. 학창 시절 국어책 맨 앞장에는 늘 ‘정읍사(井邑詞)’가 있었습니다. 국문으로 표기되어 가사가 전해지는 유일한 노래라며 선생님이 힘주어 강조하던 대목도 생각이 나는데요. 우리 선조들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노래를 불러 한(恨)과 흥(興)의 감정을 풀어냈습니다. 정읍사 여인이 살았던 고장 정읍에서는 악기연주를 통해 정읍풍류를 재현하는 모임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멋’이 있는 풍류방, <샘소리터>
내장산 가는 길목, 달맞이골이라고 불리는 월영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안 저수지 근처에 <샘소리터>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대문이 없으니 자물쇠도 없는 이곳에는 누구나 찾아와 정읍의 가을을 맘껏 느끼다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샘소리터>는 샘고을 정읍(井邑)의 소리와 멋을 전승하고자 만든 공간입니다. 옛 선조들이 이웃들과 함께 율방에서 다과를 나누며 풍류를 즐기던 때의 모습을 재현하려 했다고 합니다. |
‘풍류(風流)’는 음악적으로 영산회상을 가리키지만, 쉽게 말해 풍치가 있고 멋있게 노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풍류’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각박한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풍류’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풍류는 일상에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며 커피 한 잔 마시는 일, 대학로에서 힙합공연을 보며 손뼉치는 일, 붉게 물든 가을 산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일 등 우리의 삶 자체가 ‘풍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향제줄풍류 강습과 차모임, 봄‧가을 두 차례 열리는 어울마당잔치 |
향제줄풍류의 본원지인 정읍에서는 <샘소리터>가 그 명맥을 잇기 위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줄풍류는 현악기가 중심이 된 합주를 말하는데, 서울에서 전승되는 경제(京制)와 지방에서 전승되는 향제(鄕制)로 나뉩니다. 경제줄풍류는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잘 전승되고 있지만, 향제줄풍류는 그 명맥이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민간줄풍류의 본원지인 정읍풍류를 이어가려는 노력은 <샘소리터>가 유일한데요. 대금, 거문고, 가야금, 양금, 단소, 해금 등의 악기를 이용해 향제줄풍류를 재현한다고 합니다. 한참 마당을 거닐다 <샘소리터>의 주인장 김문선 씨(59)를 만나 정읍풍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한 줄의 악보, 30년 외길 인생 정읍 월영마을이 고향인 김문선 씨(59)는 현재 정읍호남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데요. 내장산 아래 집을 짓고 풍류를 즐기는 생활이 여유로워 보였지만, 김문선 씨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으니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김문선 씨는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하여 방송통신고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가난했기에 더 열심히 살았다는 김문선 씨는 신문사, 목공소, 생산공장, 경찰서 등에서 배달‧잡부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어렵게 졸업을 하고 대학까지 입학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합니다. |
“혈혈단신이었기 때문에 고향이 그리울 때가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정에서 ‘둥둥’ 북소리, ‘궁따덩따’ 장구소리가 들렸어요. 국문학도였던 저는 고향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봉산탈춤, 송파산대놀이 동아리방으로 가게 되었어요. 타령 장단 한 소절에 바로 입단이 되었고 후에는 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히 활동했지요.” 그렇게 대학 시절을 탈춤으로 보내고 정읍으로 돌아와 고부여중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습니다. 국어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풍류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탈춤보다는 풍물이 익숙한 정읍에서 음악적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요. 1984년 전북 무형문화제 제7호 대금정악 보유자로 지정된 송파 김환철 선생에게 대금을 배우며 또 한 번 삶이 변하게 됩니다. 김환철 명인이 타계할 때까지 향제줄풍류의 가락을 익히며 정읍줄풍류의 맥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
“국어교사로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밤에는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국어공부를 하고, 틈나는 대로 스승께 대금을 배우며 풍류를 익혔어요.” 1988년부터는 빈사무실을 전전하며 무료 강습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91년 ‘샘기픈소리’를 정식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비를 털어 2004년 <샘소리터>를 짓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손으로 일일이 쓰고 지웠는데 지금은 컴퓨터가 있어서 편해요.” |
그는 현대 정읍풍류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정읍 향제줄풍류의 악보화>에 힘썼는데요. 악보 한 줄을 고증하기 위해 십수년간 전국 각지의 명인과 학자를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거문고, 가야금, 대금, 양금, 단소, 피리, 해금 등 악기마다 다른 정간보를 지금까지도 그려내고 있다고 합니다. 김문선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어느덧 ‘샘소리터’ 단원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습니다. 달빛이 엷게 뜰 무렵 샘소리방으로 자리를 옮겨, 정읍향제줄풍류 소리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풍류는 어울림입니다. |
향제줄풍류는 거문고가 중심이 된 합주입니다. 거문고, 가야금, 대금, 양금, 단소, 피리, 해금 등의 각양 악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납니다. 연주자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는 이유도 아마 서로의 연주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번 ‘샘기픈소리’모임에서는 다음 주에 있을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습니다. 김문선 선생님이 정읍 경찰서에 초청돼 강연을 한다고 하는데요. <샘소리터>의 ‘샘기픈 소리’와 차(茶)모임을 함께 연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으로 정읍 향제줄풍류 연주를 들었는데요. 작년부터 전주전통문화관에서 매주 국악공연을 들어온 터라 정악(正樂)연주도 거리낌 없이 들어보았습니다. 정악(正樂)이라 고요하고 차분한 가운데, 장구 장단에 맞추어 흘러가는 소리가 여유로웠습니다. |
각 악기의 음색이 한데 모여 있어 그런지, 비어 있는 듯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얌전한 듯 야무진 장구 리듬에 맞춰서 대금, 단소, 양금, 거문고, 가야금 소리가 가을밤을 아늑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김문선 선생님은 제가 가만히 연주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시곤 해금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아마 정읍에 살았더라면 그러겠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옆자리에 놓인 해금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쓸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악기를 배우고자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전공자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정읍풍류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샘소리터>사람들 덕분에 든든했습니다. "풍류는 음악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묻어간다는 말이 있지요? 악기 전공자가 아니라서 실력이 출중하진 않아요. 저희가 더불어 가는 모습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김문선 선생님과 30년지기인 박성경(대금)단원의 말처럼 서로의 악기 소리에 기대어 연주하는 듯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김문선 선생님과 ‘샘기픈소리’ 단원들이 이 모임을 이토록 지키고자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풍류는 음악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어요. 더불어 놀고, 더불어 나누는 것에 제한이 없었던 옛 정읍 풍류말입니다. 정읍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악기 명인들이 많은데, 음악적인 부분뿐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통해 삶을 노래했기에 찬사를 받습니다. 저희 ‘샘기픈소리’모임도 정읍풍류의 명맥을 이어 후세에도 이러한 풍류문화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최미애(단소) |
샘기픈소리 모임에 처음 참석한 저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김문선 선생님은 1학년 학생들에게 ‘샘기픈소리’의 ‘잔도드리’를 가르쳐왔다고 합니다. 지난 21일 호남고등학교 축제 때 50인의 국악오케스트라의 첫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정읍향제줄풍류의 명맥을 잇기 위한 김문선 선생님의 열정은 아직도 진행중인 것 같습니다. 내장산 가는 길, <샘소리터>에서 국악기 하나쯤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
첫댓글 정진희님의 바람대로 샘소리터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풍류방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묵묵히 선생님의 길을 걸어가고 계시는군요! 정말 멋지십니다~^^ 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