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세요?>
나무가 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지?
가로수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곱다.
10월 하고도 중순, 가을이 깊어진다. 더불어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던 전국의 명산들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제 아무리 세상이 어수선해도, 오늘도 하늘은 부쩍 키가 컸다. 더불어 붉은 때깔 단풍은 하루가 다르게 남(南)으로 번진다. 단풍을 찾아 산으로 가고 싶어진다.
혹시, 단풍이 왜 붉게 물드는지 아시는지. 그건, 호된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다. 매운 겨울바람에 얼어죽지 않으려고 몸 안의 물기를 제 스스로 빼내기 때문이다.
1. 단풍은 보통 붉은색․노란색․갈색의 3가지 색깔로 나타나는데 단풍나무․신나무․담쟁이덩굴 등은 붉은색이 돋보이고, 은행나무․아까시나무․자작나무는 노란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감나무는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 더욱 오묘한 색채를 자랑한다. 가을철이 되면 월동준비의 첫 단계로 나무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만드는데 이 떨켜층이 형성되면 나뭇잎은 뿌리에서 충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이때 생성된 양분은 잎 안에 남게 되고 이로 인해 잎 안 산성도가 증가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잎 안에 쌓인 녹말로 인해 엽록소가 파괴되고 대신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카로틴(Carotene)’이나 ‘크산토필(Xanthophyll)’ 같은 노란색을 띠는 색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또 ‘안토시아닌(Anthocyanin)’ 같은 붉은색을 보이는 색소가 새로 생성되기도 한다.
곱게 물든 은행잎. 은행잎을 물들이는 색소는 잔토필(크산토필)이다. 나뭇잎에 들어있는 카로티노이드가 공기 중의 산소를 만나면서 잔토필로 바뀌어 노란색을 내는 것이다.
단풍잎이 붉게 물드는 과정은 은행잎이 노랗게 되는 것보다 복잡하다.
단풍잎에서 붉은색을 내는 색소는 ‘안토시아닌’이다. 그리고 안토시아닌은 나뭇잎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당분이 여러 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치면서 생성된다. 특히 식물들이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해 잎이 낙엽으로 변하는 것을 늦추려고 안토시아닌을 만든다는 것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참고로 타닌(Tannin) 성분이 있는 참나무류나 너도밤나무의 나뭇잎들은 낙엽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잘 보면 커피색의 아름다운 단풍을 품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외국의 식물학자들이 단풍잎은 원래 노랗게 물들었는데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붉은색을 띠도록 진화해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 환경 변화는 다름 아닌 ‘진딧물’이라는 것이다. 잎에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진딧물이 특히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국 미국 캐나다는 산줄기가 대부분 남북으로 뻗어있는 지형이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기온이 변해도 진딧물이 남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번성할 수 있었다. 나무가 일부러 복잡한 화학반응을 거쳐서라도 잎을 붉게 물들여야 했던 이유다. 이에 비해 유럽에는 많은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있다. 진딧물을 포함해 산 속에 사는 여러 동․식물이 기온변화에 따라 옮겨갈 장소가 부족해 자연스럽게 줄었다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때문에 유럽의 단풍잎은 굳이 붉게 변하는 수고를 안해도 됐다는 얘기다. 한편, 어린잎이나 줄기가 새롭게 발생하면서 일시적으로 붉은색을 보이다 잎이나 줄기가 성장하면서 붉은색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풍이 아니고 어린잎이나 줄기의 엽록소를 만드는 세포 내의 구조가 완성되지 않은 게 나타나는 것이다.
안토시안은 자외선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고 안토시안을 많이 갖고 있는 조직은 나뭇잎의 표피뿐이다. 때문에 연약한 어린잎이나 줄기가 빨갛게 됨으로써 자외선의 해를 피하는 것이다. 잎이 성숙함에 따라 안토시안은 분해돼 없어지며 엽록소에 의해 녹색으로 변하게 된다. 대부분 식물의 잎들은 녹색을 나타내나 예외적으로 단풍나무의 개량종인 공작단풍, 홍단풍과 같은 나무나 자주색 양배추, 베고니아 등과 같은 초본은 계절과 관계없이 붉은색을 띠고 있다. 이들 식물은 정상적인 녹색종에서 갈라져 나온 변종인 경우가 많은데 안토시안과 공존하는 엽록소에 의해 정상적인 광합성을 해나간다.
2. 설악산이 이번 주말(17일)부터 단풍이 절정기를 맞는다고 한다. 기상청이 정의하는 ‘단풍 절정’이란 정상에서부터 80%가 물든 때를 말한다. 첫 단풍이 들었다고 할 때의 단풍은 산의 20~30% 가량 단풍이 드는 것을 말하며, 올해 단풍 절정기는 이번 주말 설악산부터 시작돼 10월 말, 11월 초 내장산까지 이어진다.
보통 우리나라 단풍은 설악산과 오대산 정상에서 시작되며 단풍은 산 아래 쪽으로 남쪽으로 하루 약 25㎞씩 내려가는 현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9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단풍은 11월 상순이 되면 남해안 지방의 두륜산과 국토의 최남단 제주도 한라산까지 물들게 되며 대체로 내륙지방이 해안지방보다 10일 정도 빨리 단풍이 시작된다.
단풍이 드는 시기는 기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먼저 단풍은 서서히 기온이 낮아질 때 더욱 아름다우나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면 단풍의 멋이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단풍은 하루 중 최저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가야 든다. 그런데 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높게 유지된다면 그만큼 단풍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기온이 떨어지면 나뭇잎 안에서는 초록색을 내는 엽록소(클로로필)가 파괴된다. 봄 여름 내내 엽록소의 기세에 눌려있던 색소들이 바로 이때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보통 나뭇잎에는 색소가 70여 가지나 들어있다. 그리고 기온이 단풍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대략 1개월가량이다. 즉 10월 초에 단풍이 드는 설악산은 9월 초부터 1개월 동안의 기온을 분석하면 단풍이 언제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또 단풍은 일교차에도 영향을 받는데 일교차가 크면 단풍이 빨리 든다. 일교차가 크면 그만큼 최저기온도 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안보다는 일교차가 큰 내륙 지역에서, 평지보다는 높은 산에서 단풍이 빨리 찾아온다.
단풍은 강수량에도 영향을 받는다. 강수량이 적으면 단풍이 들기 전에 잎이 말라버려 낙엽이 돼 버린다. 또 강수량이 많으면 잎이 일찍 떨어진다. 정상 부근은 좋다가도 가을가뭄이 이어지면 단풍의 원색이 살아나지 않고 바짝 말라버린다. 그래서 좋은 단풍을 보려면 적정 수준의 강수량이 중요하다.
사계절 기후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단풍은 세계적인 절경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 코로, 마음으로 보고 맡으며 느낄 수 있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가. 하늘의 축복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은 더욱 그렇다.
한편, 건국대 지리학과 이승호 교수팀이 서울․부산 등 전국 14개 지역의 1989~2007년 단풍 절정시기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의 가을철 단풍 절정시기가 10년에 나흘 정도씩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풍나무는 평균 4.2일씩, 은행나무는 3.7일씩 늦어졌다. 지역별로는 서울․부산․울산과 태백산맥 지역에서는 단풍의 시작과 절정 시기가 10년에 8일씩, 대구와 강원도 철원, 강원도 동해안, 호남 지역은 4일씩 늦어졌다. 특히 충남 보령 지역은 12.4일씩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해안 지역과 제주도는 단풍 시기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연구팀은 단풍 시기가 늦어지는 이유가 10월 평균기온과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10월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하면 단풍 시작과 절정 시기가 3.1일씩 늦어진다는 것이다.
3. 겨울로 들어설 채비를 하는 요즘, 새삼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낙엽이 구른다.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며 어릴 적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상큼한 아침, 높고 푸른 하늘, 따갑지만 싫지 않은 햇볕, 산들바람, 색색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꽃들이 파노라마처럼 추억 속에 피어난다.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밟히는 낙엽에선 향기가 난다.
작가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 “잘 익은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지 않은가. 지난봄부터 힘들게 목숨을 지켜오면서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한 거름이 되는 낙엽의 ‘고귀한 삶’에서 어찌 향기가 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어스름을 타고 지는 낙엽을 밟으며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르몽의 시를 외우거나,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로 시작하는 가수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왜 낙엽이 지는 것일까? 그리고 왜 어떤 나무는 낙엽이 지고 다른 나무는 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야 한다. 잎에는 수분이 많아 이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 동해(凍害)를 입게 된다. 겨울에 물이 부족해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물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잎의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인 기공을 닫아야 한다. 그런데 기공은 수분을 증발시키는 곳일 뿐 아니라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가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분 부족을 피하기 위해 기공을 닫으면 잎에서 광합성이 일어날 수 없게 된다. 또 주변의 온도가 낮으므로 잎에서의 생화학 반응의 속도는 더욱 느려져 잎은 죽고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낙엽은 식물이 온도와 수분 부족에 적응해서 생긴 현상이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낙엽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낙엽수는 늦가을에 떨켜를 만들어 일제히 잎을 떨어뜨리고 벌거숭이가 된다. 그러나 밤나무나 떡갈나무는 떨켜를 만들지 않는다. 본래 이들 식물이 더운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떨켜를 만들어 낙엽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된 학설이다. 그 때문에 이들 식물은 겨울이 되어 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바싹 마르더라도 가지에 붙어 있다가 겨울의 강풍에 조금씩 나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낙엽수로 유명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담쟁이덩굴 역시 떨켜를 만들지 않는 식물이다. 낙엽수의 잎 수명은 보통 1년이다. 상록수의 잎은 많은 종류가 2~3년간 유지되다가 새로운 잎이 나게 되면 떨어진다. 보통 상록수로 불리는 침엽수는 낙엽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침엽수도 낙엽수와 다른 생리 메커니즘을 가졌을 뿐 낙엽을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낙엽수처럼 가지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전부다 털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어느 정도 몸의 부피를 줄이는 수준에서 잎을 떨어낸다. 침엽수 역시 동절기에는 광합성이나 증산작용 등의 대사작용이 줄어듦으로 인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가을산에 가보면 소나무 숲 안에 노랗게 변한 솔잎들이 떨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나무의 잎은 한 번 생기면 계속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잎이 새로 나고 2년이 지나면 잎을 감싸고 있는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 잎이 죽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즉 3~4년은 걸려야 새로운 잎이 생기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참고로 침엽을 가진 상록수 중에는 30년 이상 잎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첫댓글 단풍든 콩잎이 영양이 많다고 하던데...바로 크산토필 때문인가요? 올해 삭힌 노란콩잎으로 반찬 만들었는데 맛있어요
콩잎 맛 알면 갯잎은 거덜떠 보지도 않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