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고려대역> 부근을 걷다
1. 전철 내부에는 역에서 갈 수 있는 유명 장소가 안내되어 있다. 상당히 좋은 정보제공 방식이다. 역에서 내리면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특정한 무엇’을 적시하는 행위는 ‘역’이 지닌 핵심을 알게 해준다.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역은 다만 일상적인 과정에서 지나가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겠지만 ‘역’에 대한 특정한 정보는 역이 본래 갖고 있는 낭만적 장소성과 연결성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저 하나의 익명 장소가 아닌, 찾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6호선 ‘고려대역’의 연결점에는 ‘홍릉’과 ‘세종대왕기념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2. 고전 작품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읽은 사람이 적듯이, 때론 유명 장소도 이름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찾고 만나는 경험을 갖는 사람이 적은 경우도 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일상의 장소여서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장소가 갖고 있는 개성적인 매력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함’이 주는 새로움의 부족이 특별하게 찾아가는 노력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어쩌면 ‘홍릉’도 그런 장소인지 모른다. 서울의 많은 장소가 익숙하지만 주목받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홍릉’ 주변에 마련된 산책길을 걸었다. 최근에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치단체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좋은 길’을 만나게 된다. 대한민국의 변화 중 최고의 가치를 지닌 행정이라는 점을 매번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
3. 홍릉 주변을 걸으면서 이 곳의 변화가 유독 느리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오랜 시간 속에서 한 자리에 머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대 주변은 40년 전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여전히 낡고 허름한 집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고 소규모 공장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치구에 의해 ‘산책길’이 만들어지고 공원이 조성되고 주차공간을 만든 것 이외에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전형적인 서민들의 모습이다. 길 주변에 버려진 폐품들과 쓰레기들이 가파른 길을 가진 낡은 동네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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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대 주변의 허름한(?) 풍경은 신촌 연세대와는 대조를 이룬다. 연세대는 엄청난 내부의 개축을 통해 거대한 도시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변화가 낯설지 않는 이유는 주변의 풍경 또한 대학의 변화와 동일한 모습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학과 거리의 동시적 변화는 신촌의 익숙한 풍경이며 세련되고 활기찬 젊음의 거리를 확인시켜 준다. 반면 고려대와 주변 거리는 먼 거리의 서있는 ‘당신’과 같은 느낌이다. 고려대 또한 화려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특히 고려대 대학 건물은 중세의 유럽 건물을 닮아 장중하고 위엄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6호선 <고려대 역>에서 나오면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눈에 띄지 않았다. 고려대 주위는 여전히 낡고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었다. 고려대의 화려함과 주변의 소박함은 ‘대학’이 가져오는 후광효과와는 거리가 있는 듯했다. 곳곳에서 보이는 ‘중국문자’와 원룸촌은 오히려 부천 ‘가톨릭대’ 주변의 풍경과 비슷해 보였다. ‘고려대’를 지워버린다면 이곳은 서울 중심지역 ‘대학가’의 느낌을 전혀 감지하게 어려웠다. 경박하게 신축된 건물들만이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5. 고려대에 직접 방문할 일은 없었지만, 고려대 주변은 나에게 젊은 날의 작은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고려대에서 조금 이동하면 홍파초등학교가 있다. 교대 시절 처음으로 ‘교생실습’을 한 곳이다. ‘홍파초등(국민)학교’에 등교하기 위해서는 당시 양천구 신월동에서 2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어설프게 출근 시간을 잡으면 출근정체로 지각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그래서 거의 새벽 6시 이전에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다행히 일찍 온 학교에서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거리’가 있었다. 당시 홍파초등학교에는 ‘연식 정구부’가 있었는데 아이들의 아침 훈련에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테니스에 대한 입문이 막 이루어지던 시기여서 ‘연식정구’가 낯설지 만은 않았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침의 ‘정구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이 난다. ‘정구’를 핑계로 양복도 입지 않고 청바지로 출근할 일도 내 나름의 ‘자유’의 시간이었다. 실습활동을 마치고 가끔 도형과 나눈 술자리에서 들었던 당시 친구들의 ‘연애’이야기도 흥미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청춘의 꽃은 ‘연애’이지 않은가? 당시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50%의 성공률로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 워즈워드의 시 <초워의 빛>처럼 젊음이 주었던 그 뜨겁지만 불안했던 기억이 고려대 주변 낡은 포창마차에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것이 고려대와 별개로 오랜 동네의 굳건한 힘이었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음이 반가웠다. ‘추억’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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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홍릉 ㅡ 어렸을 때 왕릉 잔디가 좋아 뒹굴며 놀았던 장소로 기억난다. 옆에 철길도 있었는데......
* 고려대 주변 ㅡ 막걸리 거리로 남아 있는... 돈 있는 서울 학생들은 서양풍의 신촌 독수리, 가난한 시골 학생들은 민족 안암골 호랑이로 회자되던 시절이었지!
* 신기하다! 똑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서도 홍파에서의 실습 기간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