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느냐-
내가 말할 때나 들을 때 기분 좋은 단어는 가족, 식구, 우리들이다. 이 말들은 여러 사람이 모인 인연 공동체이자 따뜻한 가슴들이 모인 덤불 공동체라는 느낌이 크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도 식구를 더 즐겨 쓴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가족은 혈연 집단이란 의미가 강조되지만 식구는 가족 중에서도 밥상을 같이 하기에 정겨움과 친밀감이 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가족 모두가 바빠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옛날 내 어릴 적 시골에서는 아침과 저녁 식사를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했고, 그때 밥숟가락이 밥그릇 둘레를 스치고 국물을 들이켜는 소리는 얼마나 축복스러운 것이었던가?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가족이란 말보다 식구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 시절, 식구들 간에 자주 서로 건네던 말은 '이제 오느냐 어서 오거라'라 였다. 혹 할아버지께서 늦게까지 논밭에서 일한 후 귀가하면 가족은 모두 "이제 오세요"라 하면서 맞이 했고, 또 내가 학교 수업 후 사립문을 열고 들어 설 때나 하교 후 바깥에서 놀다 먼지 뭏은 옷으로 저녁 늦게 들어와도 어머니는 "이제 오느냐. 옷털고 손씻고 들어가거라"하셨다. 하도 자주 들어서 지금 이 말을 입 안에 굴려도 단맛이 돈다. 왜 일찍 귀가하지 않았냐는 책망의 맛도 있지만 이제라도 왔으니 안심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자식들이 학교에서 귀가하면 대부분 이런 인사 대신, "빨리 씻고 학원갈 준비하고... 학원마치면 학습지하고.."라 재촉하거나 좀 늦게 귀가하면 "뭐 한다고 이래 늦었냐?"고 추궁하니 인자함이 사라진 세월의 흐름과 교육 환경의 변화가 원망스럽다. 참으로 요즘 아이들은 바쁜 하루를 보낸다. 하교 후 바로 학원에 갈 경우도 있어 가방에는 한원교재가 가득하거나 학원 몇 곳을 다니기에 놀이터, 골목길,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도 만나면 서로 바빠 "안녕"하고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꽃밭에서 꽃 냄새도 맡아보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보고 싶다. 어머니들도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 행복해해야 한다.
옛날 척박한 환경의 어르신들은 대체로 그러했지만, 특히 나의 할아버님은 하루 종일 일이 연속되는, 힘든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곱 남형제 중 여섯 번째인 할아버님은, 당시 형제순으로 재산을 차등 상속받았기에 넉넉한 생활이 못되었다.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할머니는 모시배 장사를 하셨고, 할머니 일을 도우시느라 할아버지는 지개를 멀리하지 못했다. 시골장에서 사 온 모시를 하얗게 손질해 팔려면 양재물에 담가 푹 삶아야 했고, 양재물을 인은 무거운 삶은 모시를 바지개에 싣고 냇가로 옮겨시곤 하셨다. 그런 일이 없는 날에는 할아버지는 늘 논밭으로 나가셨고, 장마가 져 골물이 마을을 빠져나갈 때에는 밤새 들에 나가 물꼬를 열거나 닫으셨다. 가뭄이라도 들면 밤 늦게까지 논가에 머물면서 물길을 잡았으니 논에 물을 가두려고 흘린 땀이 얼마였을까? 전답은 금맥을 숨겨 둔 광산같은 것이 못되어 해를 거듭할수록 더 큰 가난에 바쳐지던 농사였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하루도 논과 밭에 나가는 일을 멈춘 적이 없으셨다. 이러니 할아버지의 귀가는 가족 모두에게 하루 일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모습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래서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귀가 모습에 '이제 오십니까"하고 맞이했다. 왜 지금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생활 모습이 아버지의 것보다 나에게 더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감명은 강할수록 느낌은 클수록 오래가고 긴 생명력을 갖는가 보다. 그런 마음에서 나도 지금 모두 출가한 자녀들이 어렸을 때 귀가하면 자주 "이제 오느냐, 어서 오거라"라 했다. 물총새 같은 아이들 시절 때는 내가 한 말이 무슨 깊이가 있는지 모르고 밥술을 들듯 "네"하고 자녀들은 짭게 대답했지만, 이제 모두 출가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기 자식들을 두고 있는 그들이기에 어릴 적 자신들이 들었던 이 말이 얼마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말인지를 지금은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 각자는 자기 몫인 격량의 바다를 한 척의 배가 되어 건너가고 있지만, 가족과 식구는 우리가 되어 그 건너가는 한 척의 배를 더 격렬한 고통으로 바라보는 인연 공동체이다. 그런 가족과 식구곁에서, 특히 아이들에게 자주 따뜻한 말인 "이제 오느냐, 어서 오거라"라고 말해 줄 일이다. 이 말이 푸른 바다처럼 얼마나 깊고 넓은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우리 아이들이 비록 당장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가족과 식구는 서로 영원한 후원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