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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고백의 역설(逆說)과 기지(機智) - '개의 형상' 에 대한 짧은 생각 - 황세준(화가)
김명조 첫 조각전 팜플릿
다소 비약해서 말하자면 작업은 자기 고통의 세목(細目)이다. 우리는 작품으로 구체화된 어떤 개인들이 작성한 고통의 열람표를 통해 우리 삶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고, 그곳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의미화한다. 이제 나는 김명조가 작성한 그의 목록들을 들여다본다.
김명조는 83학번이고 전남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술자리 같은데서 그가 언뜻 언뜻 들려준 바로는 군대생활을 어디 '특공연대' 같은데서 보냈다. '그는 지금 이 연대기적 사실과 싸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싸움이 그의 작가로서의 구체이다' 라고도 생각한다. 왜냐하면 80년대 중반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놓은 희망과 좌절, 자존과 자괴의 그 뜨거운 답답증의 가운데 그의 20대 일부가 속해 있다면, 또 다른 일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환멸을 느낄 만큼 폭력적인 '특별한 군대'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밖에서는 이미 희망의 이름인 한 도시에서, 고여있는 희망의 무표정에 숨이 막혔을 것이고, 그를 겨냥해 폭력을 휘두르던 상급자에게서 절망이 얼마나 빠른 유속으로 가슴에 차 오르는지를 느꼈을 것이다.
김명조의 조각을 보면서 나는 예전에 화집에서 본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키르히너'가 만든 목조를 떠올린 적이 있다. 멍하니 서있는 남자와 그에 못지 않게 멍하고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여자를 거칠게 깎아 놓은 그 남녀 입상은 그 이전의 조각이 가지고 있던 인간의 숭고미, 비장미, 또는 역동적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훨씬 후에 '자코메티' 같은 작가가 보여준 바 있는 존재론적으로 찌그러진 인간의 처연한 아름다움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그냥 부자연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거머쥐고 있는 여자와 남자였다. 그런데 마치 어떠한 빛에도 닿아본 적이 없는 것같이 내버려진 남녀의 발거벗은 육체에서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신성(神聖)'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무슨 무슨 미' 이전에 있는 버림받은 자의 지복(至福)의 수난 같은 것이었고, 그건 삶의 역설이기도 하다. 김명조의 조각을 보면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그런 역설적 순간의 한 표현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다.
김명조가 만든 개의 형상들은 '친근한 타자'라는 형용모순의 존재인 개를 통해 객관적 타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거기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태를 비추어보고자 하는 것이면서 또한, 타자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그의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타자의 기념비' 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개의 형상들은 조각품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아우라'를 배반한다. 비웃는 것이다. ...타자를 통한 자신의 성찰이거나 소통의 열망이거나가 김명조가 '개'라는 소재를 택한 자못 진지한 이유라면 또한 그것은 '개'라는 관용적 이미지 때문에 우리가 갖게 되는 선입견에 기대어 이토록 마음에 안드는 세상을 '마음껏' 야유해보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왜 있잖은가. 개 같은 세상이라든가. 개 같은 놈들이라든가 하는.
그러면 개의 형상들이 보여주는 기지에 찬 야유의 대상은 우리 자신이자 더 정확하게는 작가 자신이다. 그는 개라는 타자를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다시 타자의 자리에 자신을. 자신의 문제들을 놓는다. 객관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우스꽝스러움을 동반하고 그는 그것을, 그러니까 바로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이다.
'개'라는 형상이 품고 있는 중의성은 그가 자기 고백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가드레일이었던 셈이며 그 가드레일 너머에서 작가는 타자화된 자신을 고백시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고백 '시키는', 그것은 오히려 몹시 쓸쓸한 광경이다. 그러나 부득부득 자신에게 퍼붓는 야유는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정직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며 자기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 들끓고 있는 혼돈을 '상처'라는 집약된 형태로 끄집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형상의 밑에 깔려 있는 자기 성찰의 정직성은 새로운 조각의 방식을 구축할 터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김명조의 전시는 자신에게 하나의 숙제이다. 자기 고백으로부터 비롯된 자기 어법의 맹아를 어떤 방식으로 키워나가고, 그걸 통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를 숙고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의 거리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명조
1965년생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
광미공 정기전(10년), 이작가를 주목한다 전, 삼백개의 공간전 등
epilogue 조각가 김명조가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을 유화로 했을 때 내가 술잔을 빌어 따갑게 대한 적이 있다. 그의 조각이 드물게 상징적이고 신화적이며 원시적이던 내 즐거움에 꽤 혼란을 주었다는 이야기겠다. 세월이 또 흐르고, 이 여름에 나는 귀한 손님맞이를 위한 답사 목적으로 명옥헌을 찾았다. 명옥헌 초입 연못가에는 한 때 시인 황지우가 깃들었던 허름한 작업실이 있다. 지금은 폐가가 되었지만 이 방 통유리로 밖을 내다보면 배롱나무 얼비친 달빛도 좋고, 꽃잎 한없이 내린 물 위의 분홍 옷자락도 촉촉했던 바, 널브러진 이곳에서 우연히 김명조의 팜플릿 하나를 주웠다. 그러니까 황지우가 떠나면서 맡기고 간 이 공간에서 김명조가 그의 첫 조각전을 준비하였던 것. 김명조는 말없이 술을 진하게 잘 마신다. 행동이 간혹 말보다 이르며, ‘진실’ 이 참 무겁고 견고한 친구다. 돌덩어리 안에 돌이 있고, 떨켜 없는 나무라 해야 할까, 그런 사내가 쪼개는 돌덩이나 나무등걸은 자연 단칼에 서슴없는 만큼 매사 자분자분하지는 않다. 만들다 만 듯 괴이하다. 나는 그 가 기질적으로 주술적 미감에 반응하며 프리미티브를 동경하는 것을 안다. 인간과 동물의 궁극은 차이가 없으며, 생명에 관한 한 만물은 오직 '하나' 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끌이나 망치를 들기 전에 미리 못을 쳐두려는 듯하다. 그가 창조한 문명시대의 삶에서 반인반수의 파트너는 공교롭게도 ‘개’ 다. 인간의 수성을 음산하게 몰고 간다. 고개 를 틀어 ‘측면성’ 으로 이를 강조하는가 하면 ‘본태성 미완’ 으로 되돌려 자궁 안으로 밀어넣어버리려는 것을 시도 한다. 그의 '개' 는 잡아먹을 수 있으며 또 잡아먹을 수 없는 귀엽고 잔인한 충돌의 이중적 정서를 반영한다. 그것 은 오월광주를 통과하면서 그가 만난 표현(예술)의 알레고리로 역시 보통 변혁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앞세운 ‘현실주의’ 의 모델로부터 그는 따로 자기 내면 에서 발광하는 반응체와 씨름하며 그 동물적 본성에 충실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원래 '개'였으며, 그의 무덤 속에서 죽은 '원시의 시제를 컹컹대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조각에 떠도는 상징의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오늘, 삼십년으로 내닫는 오월의 함수풀이에서도 긍정적으로 읽힌다. ‘현실주의 미술’ 에의 믿음은 곧 ‘사실주의의 형식’ 을 몰고 온 측면이 강한데 비해 그는 당당히 ‘내면을 향한 성찰’ 의 대가로 그 흔한 유행과 형식의 굴레로부터 꽤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명조가 보고 싶다. 내가 괜한 말을 해가지고 그의 ‘오픈’ 기분을 망친 것 사과도 하고, “다음 전시회 때 한번 보씨요” 하고 벼르던 봉선동의 밤을 충동질하고, 그때 발문은 내게 맡기겠노라던 약속 을 환기시켜야겠다. 때로 애정의 표현이 넘치면 이토록 오래 서로에게 영어(囹圄)가 됨을 한잔에 털어내고 싶다. 2008. 9.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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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0년을 회고하셨네요..명옥헌 작업실이 반가워요..극히 단순화되고 덜 정제된 작품에서 자연과 원시를 동경하는 '프리미티브'를 발견합니다...자기 고백을 통한 내면의 고독한 성찰로 인하여.. 돌덩이 안에 온기가 느껴지는 평화를 이루게 되시길...
명옥헌 통유리 작업실 : 대작이젤 아직 성한 것 한나, 개인전 방명록, 갓전등, 찬장, 써금써금한 탁자, 바둑판, 타다만 벽난로 장작, 닫힌 블라인더, 갇힌 뱀눈나비, 뭉갠 그림, 해진 창호지, 파고드는 담쟁이넝쿨... 사람들은 사진을 박고 주인은 뜬지 오래고... 거기 방명록에 혹 내 이름 적혔나, 내가 옛적 받아마셨던 그 찻잔 아닌가, 바둑돌은 명조와 찬욱이가 두었던 그것, 찌그러진 책장은 지우형 거. 본채의 허문 천정과 흔들의자, 깎다만 목조. 잡초에 묻힌 모가지 석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