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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이 쓰는 김춘추의 일대기는 참으로 특이하다. [삼국유사] ‘기이’ 편의 ‘태종 춘추공’ 조는 그의 일생을 그린 것이지만, 뜻밖에도 이 조 전체에 춘추는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 이것이 일연이 보는 춘추의 생애이다. ‘기이’ 편에서도 꽤 긴 분량을 가지고 있는 ‘태종 춘추공’ 조는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째, 춘추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 결혼하는 이야기. 둘째, [삼국사기]에서 인용한 백제 정벌 이야기. 셋째, 기타 서적 4종에 나타난 정벌 이후의 이야기. 넷째, 사후담 몇 가지.
춘추와 문희의 결혼 이야기는 자신이 당사자이므로 당연히 주인공이라 하겠으나, 여기서 실제 주인공은 김유신과 문희 남매에 가깝다. 남매의 ‘김춘추 꼬이기’ 성공담이라고나 할까. 문희는 언니가 꾼 꿈을 비단 치마를 줘가며 사고, 김유신은 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옷깃을 밟아 찢어 놓는데, 두 남매가 벌인 연극 속의 등장인물처럼 춘추는 움직이고 있다. 물론 결과는 춘추에게 ‘좋은 일’로 맺어지지만.
왕이 된 춘추가 백제를 정벌하는 이야기에 오면 더욱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일연은 이 대목에서 [삼국사기]를 인용하는데, 신라와 백제의 전쟁 대목을 춘추가 진짜 주인공인 ‘신라본기’에서가 아니라 의자왕이 주인공인 ‘백제본기’에서 따왔다. 그러다 보니 승자인 춘추보다 패자인 의자왕이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왜 그랬을까? 번연히 ‘신라본기’가 있음을 아는 일연이 애써 외면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기타 서적 4종에서 인용한 정벌 후의 이야기는 더욱이 춘추가 주인공이 아니다. 춘추는 백제 정벌을 막 끝낸 바로 그 해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의 일에 개입할 일이 없다. 마지막의 사후담에서 다시 춘추가 등장하지만, 이것은 전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춘추가 주변인물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춘추가 있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이나, 기묘하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주인공일 뿐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이라 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