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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0 강 - 付囑品- 6 --最終會
師- 說偈已하시고 告曰, 汝等은 好住하라 吾滅度後에 莫作世情이니 悲泣雨淚어나 受人弔問커나 身着孝服하면 非吾弟子며 亦非正法이니라 但識自本心하고 見自本性하면 無動, 無靜, 無生, 無滅, 無去, 無來, 無是, 無非, 無住, 無往이니 恐汝等이 心迷하야 不會吾意일까하야 今再囑汝하야 令汝見性케하노니 吾滅度後에 依此修行하면 如吾在日이어니와 若違吾敎하면 縱吾在世라도 亦無有益하리라 復說偈曰
兀兀不修善하고 騰騰不造惡하며
寂寂斷見聞하고 蕩蕩心無着하라
師- 說偈已하시고 端坐至三更하야 忽謂門人曰, 吾行矣라하시고 奄然遷化하시니 于時에 異香이 滿室하고 白虹이 屬地하며 林木이 變白하고 禽獸哀鳴이러라
十一月에 廣, 韶, 新三郡官僚와 洎門人僧俗이 爭迎眞身하야 莫決所之라 乃焚香禱曰, 香烟指處에 師所歸焉이라한대 時에 香烟이 直貫曹溪어늘 十一月十三日에 遷神龕과 倂所傳衣鉢而回하니라
次年七月二十五日에 出龕하야 弟子方辯이 以香泥로 上之하고 門人이 憶念取首之記하야 遂以鐵葉漆布로 固護師頸하야 入塔이러니 忽於塔內에 白光이 出現하야 直上衝天이라가 三日에 始散이어늘 韶州秦聞하야 奉勅立碑하야 記師道行하니 師의 春秋는 七十有六이며 年二十四에 傳衣하고 三十九에 祝髮하시니 說法利生하시기 三十七載에 嗣法이 四十三人이며 悟道超凡者- 莫知其數러라
達磨所傳信衣와 中宗이 賜한 磨衲寶鉢과 及方辯의 塑인 師眞相과 幷道具는 永鎭寶林道場하고 流轉壇經하야 以顯宗旨하야 興隆三寶하고 普利群生하더라
六祖法寶壇經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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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사) 說偈已(설게이)하시고→ 스님께서 게송을 설해 마치시고,
告曰(고왈)→ 고 해서 말하기를
汝等(여등)은 好住(호주)하라→ 그대들은 잘 있으라. “그대들은 잘 있으라.”
吾滅度後(오멸도후)에→ 내가 열반한 뒤에. 멸도 후에,
莫作世情(막작세정)이니→ 세상 정을 짓지 말라. 이 말입니다. “세상 정”이라는 것이 모시던 스승이 돌아가셨다고,
悲泣雨淚(비읍우루)어나→ 비 오듯이 그냥 눈물을 흘린다든지 또,
受人弔問(수인조문)→ 사람들의 조문을 받는다든지 그리고,
身着孝服(신착효복)하라→ 상복을 입는다든지, 이거 다 세상 사람이나 하는 일이지, 그렇게 하지 말라 이겁니다. 그렇게 하면
非吾弟子(비오제자)다→ 내 제자도 아니다 이겁니다.
亦非正法(역비정법)이다→ 정법도 또한 아니다.
但識自本心(단식자본심)하고→ 그저 자나 깨나 내가 죽었던지 살았던지 관심 말고, 스스로 그저 자기 본심 알려고 하고,
見自本性(견자본성)하면→ 자기 본성을 본다면
無動(무동) 無靜(무정)→ 내가 죽으나 사나 동도 없고 정도 없고,
無生(무생)→ 생도 없고,
無滅(무멸)→ 멸도 없고 無去(무거)→ 거도 없고,
無來(무래)→ 래도 없고, 無是(무시)→ 시도 없고,
無非(무비)→ 비도 없고, 無住(무주)→ 머무는 것도 없고,
無往(무왕)이니→ 가는 것도 없다 이겁니다.
본래 그러한 도리가 있어요. 그러한 도리가 있어서 그냥 그렇게 그 도리로 내가 있을 뿐인데, 거기에 대해서 과연 이렇다면. 이렇다면 이런 차원으로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모든 존재. 생멸의 문제. 생명의 문제. 이런 문제를 이런 차원으로 이해된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지요.
恐汝等(공여등)이 心迷(심미)하야→ 염려 하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이 미혹해서,
不會吾意(불회오의)일까해서→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할까 그렇게 염려 돼서, 今再囑汝(금재촉여)해서→ 지금 늘 이야기 해왔지만, 지금 또 재차 그대들에게 부촉을 해서, 令汝見性(영여견성)케하노니→ 그대들로 하여금 見性케. 제발 좀 그대들 “자성”을 보라. “자성”을 좀 깨닫도록 하라. “자성”의 영원과 “불생불멸”의 그런 내용을 깨닫도록 하라. 보도록 하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吾滅度後(오멸도후)에 依此修行(의차수행)하면→ 이런 가르침에 의지해서 수행한다면
如吾在日(여오재일)이어니와→ 내가 늘 그대들과 더불어 함께 있는 것과 같다.
若違吾敎(약위오교)하면→ 만약에 내 가르침을 어긴다면,
縱吾在世(종오재세)라도→ 비록 내가 세상에 너희들 하고 계속 그냥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그렇게 생활 한다 하더라도
亦無有益(역무유익)이야→ 아무 이익이 없다.
내 정신을 받들고, 내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서 수행한다면, 그것은 내가 없어도 내가 있는 것 하고 똑 같고, 내가 또 살아있다 하더라도 내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겁니다.
육조스님이 아니라 부처가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게송 하나를,
復說偈曰(부설게왈)→ 다시 게송을 설해 말하기를,
[兀兀不修善(올올불수선)하고 騰騰不造惡(등등부조악)하며→ 올올이. 이것은 오똑하게 앉아 있는 겁니다. 오똑할 兀자입니다. 올올이 선도 닦지 아니하고 “騰騰이” 이것은 아무 걸림 없이 사는 겁니다.
“任運騰騰 (임운등등).” 이라고 해서 휘적휘적 아무 악도 짓지 아니해요.
寂寂斷見聞(적적단견문)하고→ 고요하고 고요히 보고 듣는 것을 다 끊고, 蕩蕩心無着(탕탕심무착)하라→ 탕탕히 마음을 확 풀어서 아무것에도 집착 하지 말라. 이것 참 아주 멋진 게송이지요. 시원한 그런 게송입니다.
처음에 말씀하신 것이 뭐였지요? “不思善(불사선) 不思惡(불사악)” 그랬습니다. 가사를 가지고 도망을 가다가 도명이라는, 장군 출신의 오조스님 제자한테 붙들려서, 가사와 발우를 뺏으려고 하고, 안 주려고 하고, 바위 위에다 얹어 놓으니까 떨어지지 않으니까 이 사람이 깜짝 놀라서,
“내가 뭐 옷을 뺏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법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그 때, 하신 첫 법문이지요.
육조스님이 행자 때 하신 첫 법문이 “不思善(불사선) 不思惡(불사악)” 그런데 또 마지막 게송이
兀兀不修善(올올불수선) 騰騰不造惡(등등부조악)→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 이건 불교공부 아니해도 선 · 악 문제는 다 이야기할 줄 알고 다 분별 한다 이겁니다. 불교에서 까지 선 악 이야기 하면 안 되지요. 그건 불교가 아니고 人天因果 敎(인천인과 교)지요. 세속적인 가르침이고요.
물론 선 악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그런 차원의 불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스님께서도 처음에 “不思善 不思惡 하라”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여기도 “不修善 不造惡” 선도 닦지 말고 악도 짓지 말라. 그리고
寂寂斷見聞(적적단견문)하고→ 고요히 보고 듣는 것을 척~ 끊어 버리고,
蕩蕩心無着(탕탕심무착)하라→ 蕩蕩. 이거는 툭 터진 마음자세를 “蕩蕩”이라고 그래요. 탕탕히 마음에 아무런 집착이 없도록 하라.]
참 좋은 게송입니다. 아주 시원하게... 이런 것 하나 방에다 떡~ 써 붙여놓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면 마음이 많이 가벼워지겠네요. 착한 일 하려고 그렇게 애 쓰고, 나쁜 일 안 하려고 그렇게 애 쓰고... 나쁜 일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요. 착한 일 하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라... 설사 나쁜 일했어도 잊어버리고, 착한 일했어도 잊어버리고 그저 마음으로 부터 다 放下著(방하착) 해 버리면, 그것이 해도 아니한 것이 됩니다.
師(사) 說偈已(설게이)하고→ 게송을 떡~ 설하고,
端坐至三更(단좌지삼경)이라→ 딱~ 단좌해서 삼경에 이르렀어요. 삼경은 자정을 말하는 것이지요.
忽謂門人曰(홀위문인왈)→ 홀연히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吾行矣(오행의)→ 내가 가겠다. “내 이제 갈란다.” 그리고
奄然遷化(엄연천화)라→ 고요히 遷化했다. 죽음을 “遷化”라고 표현합니다. “옮겨 갔다.”이겁니다. 천화 하시니,
于時(우시)에 異香(이향)이 滿室(만실)하고→ 그때에 아주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해. 그리고
白虹(백홍)이 屬地(속지)하며→ 흰 무지개가 땅에서 푹 솟아서 어디로 향해서 그 무지개가 섰더라 이겁니다. 그리고
林木(임목)이 變白(변백)이라→ 숲의 나무들이 전부. 도량의 나무들이 전부 하얗게 변하고,
禽獸(금수)도 哀鳴(애명)이러라→ 금수들도 모두 슬피 울더라.
十一月(십일월)에 廣韶(광소) 新三郡官僚(신삼군관료)와→ 3군 관료들이, 洎門人僧俗(계문인승속)이→ 그리고 문인승속들이
爭迎眞身(쟁영진신)이라→ 爭迎. 전부 육조스님의 몸을 가져가려고...
그것은 火葬(화장)을 안 하고 그대로, 등신불에도 있듯이 그대로 몸을 어떻게 잘 관리를 해서 그대로 말려요. 수분이 어떻게 다 빠지도록 그렇게 해서 거기다 금을 칠하지요. 금을 칠해서 지금도 있습니다. 육조스님의 몸이... 그런데 육조스님의 몸을 서로 가져가려고 하는 겁니다. 육신이 眞身(진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높이 봐서 그렇게 진신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門人들은 문인들대로 승속. 신도들은 신도대로, “우리가 시주 많이 했는데, 육조스님 몸 우리가 갖다 모실란다.”하고 가져가려고 하고... 광주. 소주. 신주 삼군의 관료들도 자기네는 또 관료라고 서로 가져가려고 하고... 이렇게 했는데요.
莫決所之(막결소지)라→ 갈바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乃焚香禱曰(내분향도왈)→ (그럴 때는 어떻해요?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지요.) 향을 사르고 기도해서 말하기를
香烟指處(향연지처)→ 향기가 가는 곳으로 육조스님의 몸을 그쪽으로 모시고 가겠다 이 겁니다.
師所歸焉(사소귀언)이라→ 이렇게 약속을 했지요. 그럼 “좋다. 그렇게 해결하자.” 해서 時(시)에→ 그 때에 향을 피워놓고 기도를 하는데,
香烟(향연)이→ 향의 연기가
直貫曹溪(직관조계)라→ 조계산으로 촤~~ㄱ 가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조계산에다 모셨지요. 지금도 거기에 계시잖아요?
十一月十三日(십일월십삼일)에→ 그 쪽. 남쪽에는요. 공산당이 올 겨를도 없고 해서 상당히 불교 유적 이라든지 이런 것이 보존이 잘 되어 있지 않습니까? 북쪽으로만 많이 파괴가 됐지 남쪽으로는 상당히 보존이 잘 되어 있습니다. 오대산 같은데는요. 그 문화혁명 때 얼마나 많이 파괴 되었는지 모릅니다. 광주 옆에 있는 소관 이라는 데에 조계산이 있거든요.
그래 이 스님의 사상을 한국불교에서 고스란히 전수 받아왔다.
法脈(법맥)도 이어왔고, 그 전에 물론 신라 백제 때부터 우리는 불교 역사가 상당히 오래지만 그 후, 법을 정식으로 禪法(선법)을 이어 받아왔다고 해서 법을 이은 뜻에서 송광사를 조계산 이라고 본받아서 짓고, 또 조계종. 그 傳統宗風(종풍전통)을 이어 받은 宗團(종단) 이라고 해서 조계종이라고 합니다. 조계종의 연류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十一月十三日에 遷神龕(천신감)→ 육조스님을 모신 龕室(감실)을 “神龕”이라고 그래요. 그것이 관이 되겠지요? 그것을 옮겨감과 그리고
倂所傳衣鉢而回(병소전의발이회)하니라→ 가사하고 발우. 그러니까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그 가사와 발우를 옮겨서 돌아가니라.
次年(차년)→ 그 다음해에 七月二十五日(칠월이십오일)에
出龕(출감)→ 그 관을 열고,
弟子方辯(제자방변)이→ 제자 방변 이라는 사람이
以香泥(이향니)로→ 좋은 향을 이겨서
上之(상지)하고→ 올리고
門人(문인)이 憶念取首之記(억념취수지기)라→ 머리를 베어갈 거라는 그런 예언이 있었지요? 그런 이야기가 지난 시간에 있었지 않습니까?(78강)
그래서 쌍계사에 베어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베어 와서 지리산 쌍계사에 【六祖頂相塔(육조정상탑)】이라고 그래요. “육조스님의 이마를 거기에 모셔놓은 탑이다.” 그렇게 해서 “六祖奉讚會(육조봉찬회)”도 매년 하고, 육조스님을 거기서 상당히 기리고, 또 육조단경도 거기는 목판본이 있습니다. 그런예언이 있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베어갈 거다.” 그런 이야기가 이런 본에도, 육조단경에도 다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 생각을 하고는 못 베어 가도록,
遂以(수이)→ 드디어 鐵葉漆布(철엽칠포)→ 그러니까 쇠로, 또 삼베에다 옷칠을 해서 겹겹이 그냥 목을 칼로도 못 잘라 가도록,
固護師頸(고호사경)하야→ 그렇게 굳게 師頸 = 스님의 목을 보호를 해서, 入塔(입탑)이러니→ (탑을 조성해서)탑에다 넣었다.
그러니, 忽於塔內(홀어탑내)에→ 홀연히 탑 안에서
白光(백광)이 出現(출현)이라→ 흰 빛이 척~~ 나타나고,
直上衝天(직상충천)이라→ 곧 바로 하늘을 향해서 곧게 뻗어 올라갔어요. 그리고는 三日(삼일)에→ 3일 후에사
始散(시산)이라→ 비로소 그 빛이 흩어지더라. 지금 “소관”이라고 하는데, “소주”라고 했나 봐요.
韶州(소주)에 秦聞(진문)해서→ 다 이제 들려서,
奉勅立碑(봉칙입비)이라→ 나라의 왕도 칙명을 내리고 해서 그 칙명을 받들어 비석을 세워서,
記師道行(기사도행)하니→ 스님의 道行을 기록하니,
師(사)의 春秋(춘추)는 七十有六(칠십유육)이며→ 스님의 춘추는 76이고,
年二十四(년이십사)에→ 나이 24세 때,
傳衣(전의)하고→ 법을 전해 받았어요.
三十九(삼십구)에 祝髮(축발)하시니→ 39세에 중이 되었어요. 참 희한하지요?
행자의 몸으로 스물네 살에 부처님의 법을 이미 깨달아서 전해 받고, 정작 머리 깎은 것은 15년 후에, 그러니까 사냥꾼들 틈바구니에서 몸을 숨기고 보림 하고 수행을 더 강정진 하면서 15년이라는 세월을 사냥꾼들 틈바구니에서 몸을 숨기고 살다가, 내가 법을 펼 때가 됐다 해서 처음으로 법성사에 척 가서는...
齋(재)를 지내려고 幡(번)을 달았는데, 바람에 나부끼니까 “바람이 번을 흔든다.” “번이 흔든다.” 수행자들이 자기들 소견대로 그렇게 한참 떠들고 있는데, 이 어떤 떠꺼 머리 총각이 나타나서, “바람이 번을 흔드는 것도 아니요. 번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요. 그대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하고 아주 특별한 법연을 이렇게 피력하니까 모두들 깜짝 놀라서, “당신 어떤 사람이요?”하고...
서른아홉 살이나 되어 있을 때니까요. 나이도 들만치 들었지요.
“혹시 당신이 소문났던 바로 육조 혜능이 아니오?” 그때 사 비로소 머리를 깎게 됩니다. 참 이런 아주 세상에 그야말로 내가 “부처님의 법을 받은 육대 조다.”라는 큰 선언을 이렇게 할 때, 육조스님의 그 마음이 오죽 했겠어요? 참 그 심정을 생각한다면 정말 지금도 가슴이 떨리지요.
왜냐하면 15년이라는 세월을 숨어서 사냥꾼들 틈 속에서 지냈으니까요. 사냥꾼들이 짐승을 몰면, 짐승들이 오면 사냥꾼들이 있나 없나 봐서, 슬쩍 그물을 들어서 산 짐승들을 도망가게 하면서 그런 세월을 15년이나 보내다가 비로소 당당하게 사찰에서 머리를 깎고 비로소 계를 받는 겁니다.
계도 못 받고 도망 나왔으니까요. 법은 이어 받았지만 계도 못 받고 도망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그때야 비로소 머리를 깎고, 계를 받고, 진짜 중노릇을 그 때부터 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른아홉 살부터요. “祝髮(축발)”이라는 것이 머리를 깎았다는 뜻입니다. 머리를 깎으니,
說法利生(설법이생)하시기→ 법을 설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가,
三十七載(삼십칠재)에
嗣法(사법)이→ 법을 이은 사람들이
四十三人(사십삼인)→ 확실하게 도를 깨달아서 육조스님의 법을 이은 사람이 43명이나 되었다.
悟道超凡者(오도초범자) 莫知其數(막지기수)라→ 법을 이은 사람.
내법을 확실하게 이었다고 할 만한 사람이 마흔 세 사람. 그 다음에 보통 도를 깨달았고, 범부의 경지에서 뛰어난 훌륭한 제자들은 莫知其數다.
그 숫자를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達磨所傳信衣(달마소전신의)와→ 달마스님께서 전해준 信衣.
믿음을 표한 가사와 또
中宗(중종)이 賜(사)한→ 중종이 내린 이것도 마납가사입니다. 아주 뛰어난 훌륭한 천으로 만든 가사! 그리고
磨衲寶鉢(마납보발)과→ 전해 내려오는 그 寶貝鉢(보배발). 발우하고 가사하고, 아마 중종이 존경을 표하는 뜻에서 해드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及方辯(급방변)의 塑(소)인→ 방변이 조성한
師眞相(진상)→ 형상하고 그리고
幷道具(병도구)→ 스님이 사용하던 도구들. 그것은,
永鎭寶林道場(영진보림도량)하고→ 길이 寶林道場. 보림 도량에다가 유전했다 이 말입니다. “寶林道場”이라고 써 붙여 놨어요. “보림사” 소관에 있는 절 이름도 보림사입니다. 지금도 “보림사” 라고 그래요.
永鎭寶林道場(영진보림도량)하고
流轉壇經(유전단경)→ 이 단경을 전해서
以顯宗旨(이현종지)라→ 그 스님. 혜능스님의 宗旨(종지). 근본취지를 종지라고 그러지요. 종지를 드러내서
興隆三寶(흥륭삼보)라→ 불 · 법 · 승 · 삼보를 興隆시켰다.
이롭게 하더라. 그리고
普利群生(보리군생)하더라→ 널리 群生들. 중생들을 이롭게 하더라.
지금까지도 육조스님의 사상은 참으로 佛家(불가)에서. 불교에서 정말 “뛰어난 가르침이다.”라고 해서 연구한 사람이 많아요 이 육조단경은...
특히 근래에 와서는 성철스님께서 이 육조단경을 연구를 아주 많이 하고, 또 돈황 본을 구입해서 돈황 본 까지도 같이 비교를 해가면서, 연구한 서적도 있고 번역도 하시고 그랬지요. 이와 같이 우리도 여기서 얼마나 느낌이 오고, 많이 깨달았을 줄 믿습니다.
여기 興隆三寶(흥륭삼보)하고 普利群生(보리군생). ←이 속에 우리도 어느정도 동참 했으리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육조법보단경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만 3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한 달에 한 번씩 해서... 受甘(수감) 하셨습니다.
六祖法寶壇經(육조법보단경) 終(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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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혼신을 기울여 최선을 다 했습니다.
밖에는 찬바람이 쌩쌩 이지만, 우리 거실엔 스님의 1억 소리로 훈훈합니다.
무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06.11.11 18.03.28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면 만 사 형 통! 이라는, 이 1억 보시는 묘용의 효능이 있다는 격려였고,
무비: 우야노 2006.12.05 14.12.31 ←이것은 “니는 엄살 그릇이 아닝기라. 주저 앉으만 우야노. 힘 내그라마. 니는 할 수있다아이가”하신 천수천안의 자비였습니다.
도움주신 법우님들 감사합니다.
이 불사는 우리 극락행님의 도움도 큽니다.
어떻게? 차를 자주 끓여 주셨으니까요.
이 공덕을 온 누리에 회향하오니
모든 중생이 그릇된 길 벗어나 정법을 체득하여
대승의 바른 믿음과 실천으로 자타일시 해탈하기를 발원합니다.
석대원성님! 어떠한 상황도 이겨내는 당신의 백절불굴의 정신력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언제나 행복하십시오.
釋大圓性! 이름값 하셔야죠. _()()()_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不思善 不思惡
兀兀不修善 騰騰不造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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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너무나 고맙고 고맙습니다 ㅏ..() 제 블로그에 모두모셨습니다 큰 스님께도 깊은 고마움으로 머리숙이며 옴겨주신 대원성님께도 깊은 고마움 전합니다 _()()()_
우선 마지막 불사선 불사악 부터 공부하곘습니다 고맙습니다
1-80강 단숨에 독파한 기분은 환희입니다.
엄청난 기쁨에 혜능부처님 무비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본문에서 귀중한 문구를 서예로 남겨 지인들에게 전파합니다.
* 正劍不邪(정검불사) 邪劍不正(사검부정)
* 安閒恬靜(안한염정) 虛融澹泊(허륭담박)
* 融通無碍(융통무애) 通達無礙(통달무애)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 法泉 金鎭弼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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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가끔씩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또 이따금인 인간적인 정으로서 눈물도 나고 했지요마는,
연이 닿지 않아서 환희용약까지는 못 갔습니다.
입만 열었다하면 중국 스님을 들먹이냐고,
자기 살림살이를 내놔야 할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사 그런 일들이 이해가 됩니다.
여기서 많은 것을 읽고 보니,
청각에 장애가 있어 듣지 못한 법문의 갈증을,
마음껏 풀었습니다.
대원성님 정말 고맙습니다.
법의 향연을 펼쳐주신 무비 스님,
지극한 정성으로 삼배를 올립니다.
탕탕심무착 !!!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
감사합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석대원성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스님의 강의를 실감나게 공부하였습니다.
화엄성중 _()_
감사합니다.기쁩니다. 구절구절 사유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깨달음 얻겠습니다.
나무육조법보단경 나무육조법보단경 나무육조법보단경 _()()()_
무비스님 감사드립니다. _()()()_
석대원성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_()()()_
_()()()_ 화엄성중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 육조단경 시원하게 풀어내신 무비스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강의내용을 글로 풀어내 주시는 석대원성님의 공덕을 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