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공원 무등산은 일명 서석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거대한 무덤처럼 멀리서보면 날카롭지 않고 무덤덤하게 보여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살아도 이 산기슭에 살다가 죽어서도 이산에 묻히므로 무덤산 이었고,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서석대, 입석대, 규봉암등 거대한 주상절리의 암석미로 천연 신전과 같은 제단역할을 하고 있어 소원을 빌기 위해 이곳에 찾아와 밤낮 굿판이 벌어졌던 민간신앙의 성지 무당산 이었다. 이로써 무덤산, 무당산등을 음역한 것이 무등산이다. 한편, 높이로 보나 몸집으로 보나 이산에 비길 만한 산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때문에 지리산 서쪽에는 더할 나위 없이 높이 경쟁을 할 만한, 이 보다 더 높은 산이 없어 명실 공히 호남의 이정표가 된다.
서쪽으로 광주와 북으로 담양 동남으로 화순 땅과 경계를 이루며 호남정맥의 고리역할을 하는데 정상에는 군사시설물이 있어 극히 특별한 날에 제한적으로 출입이 되므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상을 밟아 보기가 쉽지 않다. 평소 정상 역할을 하는 서석대에 서면 서쪽으로 아래에 광주시가지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고 서해가 보이며 동으로는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고 남으로는 월출산이 보이고 날씨가 좋으면 남해도 보인다. 봄의 진달래와 가을의 억새 그리고 겨울에 설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광주시가지를 벗어나 무등산 품속으로 파고들면 곧장 숲이 좋아 그윽한 풍치가 펼쳐지는 충효동, 이곳에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장군의 사당인 충장사(忠壯祠)가 있고, 인근에 환벽당(環璧堂)과 취가정(醉歌亭)이 있으며, 가사문학의 산실로 무등산을 바라보고 앉은 식영정(息影亭)의 풍치를 노래한 송강가사의 “星山別曲(성산별곡)”의 무대와 인근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알려진 소쇄원(瀟灑園)등이 있으며, 이 산 자락에는 충장공 김덕령장군을 비롯하여 의병장 제봉 고경명 장군 송강 정철, 우암 송시열, 정암 조광조, 눌재 박상, 석주 권필, 그리고 방랑시인 김삿갓 난고 김병연선생이 화순 땅 동복에서 방랑생활을 마감하고 별세하기도 하는 등 수다한 인물들과 인연을 갖고 있다.
무등을 타고 무등산 정상에 오르다
<MBC송신탑 부근에서 바라본 원효사 계곡풍경>
醉歌(취가) 충장공 김덕령 (金德齡1567~1596)
醉哠歌此曲無人聞 (취호가차곡무인문)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들은 사람이 없네
我禾要醉花月 (아화요취화월) 나는 꽃과 달에 취함도 바라지 않고
我禾要樹功勳 (아화요수공훈) 나는 공훈을 세움도 바라지 않네
樹功勳也是浮雲 (수공훈야시부운) 공을 세우는 것도 뜬 구름이요
醉花月也是浮雲 (취화월야시부운) 꽃과 달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네
醉胦歌此曲無人知 (취앙가차곡무인지) 취할 때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이 없네
我心只願長劍報明君 (아심지원장검보명군) 내 마음은 장검으로 명군께 보답만하고 지고
答詩 (답시) 석주 권필(石洲 權韠1569~1612)
忠貫日月 (충관일월) 충성은 일월을 꿰고
氣壯山河 (기장산하) 기개는 산하를 덮었도다
醉歌於地 (취가어지) 취하여 땅에서 부르는 노래
醒聞于天 (성문우천) 감동하여 하늘에 들렸도다
<중봉에서 바라본 장불재와 KBS송신탑>
조선중기 정치가로 급진적 정치개혁을 주장하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1519년) 때 반대파의 모함으로 유배지 화순에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문정공(文正公)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1482~1519)의 장례식 때 문간공(文簡公) 눌재 박상(訥齋 朴祥1474~1530)의 만시(輓詩)을 생각해본다.
첫댓글 많은 신청하시어 이달에두 두대 갔으면 좋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