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혁명> 퇴계, 21세기에 도전장을 던지다! |
번호 4685 글쓴이 미래연 조회 87 누리 5 (5/0) 등록일 2008-12-8 14:38 | 대문 1 추천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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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퇴계를 새롭게 재조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퇴계에 대한 평가는 ´보수적이다´, ´관념적이다´, ´사대적이다´, ´모방적이다´라는 정도였다. 여기에 양반 지배질서의 기반을 닦은 유학자에 지나지 않으며, 봉건사회의 통치제도와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전적으로 기여한 철학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헌법의 눈으로 퇴계를 본다>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퇴계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부정적인 평가를 던진 지식인들의 실명과 저술, 그리고 발언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전면적인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들은 학자, 철학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총 13명이다. 퇴계의 사상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이 시대 저명한 학자 및 필자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적시, 비판함으로써 밝혀낸다. 특히 이 책은 국사학자들의 퇴계관도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는데, 두계 이병도 박사 이래 국사학계에 만연된 ‘오로지 율곡이 최고’라고 하는 율곡 중심주의가 퇴계에 대한 인식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 책은 이러한 오율주의를 비판하면서 퇴계를 율곡의 눈으로 혹은 율곡 편에 서서 보지 말고 퇴계를 ‘직접’ 사유(思惟)하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다음의 목차처럼. << ‘오율주의’ 비판 ― 일부 한국사학자들의 퇴계관 문제>> (1) 국사학자들의 퇴계관은 어떤 것일까
헌데 그 방법이 ‘도발적‘이다. 퇴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날선 비판을 날린다. 그가 칼을 들이대는 대상은 이진우 계명대 교수, 서양철학자 탁석산, 재야 사학자 이이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강명관 부산대 교수, 故이병도 박사,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들까지 싸잡아 비판한다. 먼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들. 저자는 서울대학교의 한국사 교재인 <한국사 특강>(서울대학교출판부. 2005)을 예로 든다. 다음은 <한국사 특강>의 일부다. “...이이가 ‘만일 주자가 참으로 이기가 호발한다고 생각하였다면 주자도 잘못된 것이니 어찌 주자가 되랴’고 한 말에서 그의 기발리승일도설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상 16세기 심성론에 비추어본 퇴율의 상이점은 퇴계 이황이 주자 성리학의 완벽한 이해와 철저한 계승에 충실하였음에 대하여 율곡 이이에 와서는 그 문제점을 보완하여 이론적 심화를 보이면서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p368) 이를 두고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들이 “사상의 흐름을 획일적으로 보고, 이 땅의 사상가로서 퇴계의 주체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이웃한 동양철학 전공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참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대의 한국사 교재는 주자학의 조선적 전개를 주자->퇴계->율곡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됐다. 저자는 “율곡은 고봉 기대승 계열”이라며 “율곡은 고봉의 논리를 기반으로 해서 붕당시대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고봉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과연 율곡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그는 “서울대 교재는 퇴계에 대해 주자학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철저한 계승에 충실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사상가로서의 퇴계의 주체적인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견해”라고 지적한다. “퇴계의 학문 연구는 단지 주자학을 습득하는 데 목적이 있었을까. -중략- 퇴계는 주자학의 이념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면서도, 16세기 조선의 특별한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여 ‘실천을 위한 무기’로 창조적으로 재구성했던 사람이다.” 이름값 높은 재야 사학자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10>(한길사. 2000)도 뭇매를 맞는다. 저자는 이이화가 퇴계 이론을 보수적이라고 규정한 점을 문제 삼는다. 그는 “16세기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퇴계의 철학 행위는 훈구, 척신의 지배를 극복하고 사람의 시대를 열기 위한 실천적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며 “이론에서나 실천에서나 퇴계는 보수적 사상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대표 진보 논객인 박노자 교수의 “퇴계는 수많은 노비를 부리며 살았던 귀족”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퇴계의 모습을 오늘의 잣대를 가지고 비판할 수 없다”며 맞불을 놓는다. 한 때 화제를 모았던 탁석산 박사의 <한국의 정체성>(책세상. 2000)에 나오는 “퇴계는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없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퇴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경천동지할 말”이라며 꼼꼼한 논리를 들어 비판한다. 이 밖에 숱한 실명 비판이 눈길을 끈다. 저자가 이런 ‘겁 없는’ 도전을 한 건 세간에 알려진 퇴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한국적 인문학 출현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그는 서문에서 “가장 불행한 책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책”이라며 “비판에 비판이 이어지면서 이 시대 퇴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저자의 날선 비판에 학계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2008년 11월 18일 (화) 09:26:35 purmae33@pimedia.co.kr
"자유의 이름 아래 사(私)가 공(公)을 능멸하는 시대, 정치도 언론도 교육도, 심지어 법조까지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시대"에 퇴계를 징검다리 삼은 지은이의 글은 산림에 거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의 충정을 닮았다. 책은 퇴계 비판자들에 대한 역비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퇴계보다 칸트를 더 좋아한다는 서양철학자, 퇴계를 꽉막힌 책벌레 또는 소극적ㆍ현실도피적 인물로 폄하시키는 한문학자, 그의 학문을 관념의 유희로 내모는 대입 논술 대비서 비판 그의 퇴계 바로 보기는 전방위적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무덤에서 끌어내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헤겔의 영웅론에 기댄 어느 보수 논객을 두고 ''지적 사대주의'' 혹은 ''지적 식민성''이라고 질타하는 대목은 이 책의 조준점이 결국 현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결국 문제는 지금 여기서 학문하는 주체에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복고주의니 폐쇄적 민족주의니 하는 것은 부수적인 문제"이며 "옛것을 다루는 사람의 성향과 이념의 문제일 뿐, 옛것 자체가 갖는 속성의 문제는 아니"라며 연구자들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촉구한다. 책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솔직히 말해 우리가 퇴계, 퇴계 하지만 퇴계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자니 한심하고 부끄럽고 억울하다"라고 썼었다. 그 같은 감정의 더께를 얼마간은 걷어줄 책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지은이는 혁명의 이름으로 16세기의 퇴계를 부른다. 김호태 지음/미래를여는책·1만2000원. 한겨레신문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머리말―퇴계를 세상 밖으로, * 프롤로그―21세기 퇴계의 부활을 위하여 1. “나는 퇴계보다 칸트를 좋아한다”―서양철학 전공학자의 퇴계관(1) 2. “퇴계는 우리의 정체성과 무관하다”―서양철학 전공학자의 퇴계관(2) 3. ‘오율주의’ 비판―일부 한국사학자들의 퇴계관 문제 <이슈의 창> 율곡을 신화에서 현실로―보수주의자 율곡 4. “퇴계는 조선의 학문 기틀을 다졌지만 ‘사상의 편협성’을 초래했다”―어느 한문학 전공학자의 퇴계관 5. “퇴계는 주희의 모방자”―어느 주자학 전공학자의 퇴계관 6. “퇴계는 이론 편향의 소극적, 현실 도피적 인물”―<<조선유학사>>의 퇴계관 7. "퇴계철학은 일제시대 황도유교의 근간이었다”―일부 한국철학자들의 퇴계관 문제. 8. <<철학콘서트>> 저자의 퇴계관―대입 논술용 철학입문서에 나타난 퇴계관의 문제 9. “퇴계는 수많은 노비를 부리며 살았던 귀족”―‘진보파’ 지식인들의 퇴계관 10.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비판―퇴계의 敬사상이 주는 교훈 11. ‘한국적 인문학’을 위하여―일부 서양철학전공학자들의 동양철학관 비판 12. 퇴계와 헤겔과 나폴레옹과 박대통령과 그리고 조갑제 * 에필로그 - 내가 보는 퇴계 /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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