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들은 불행하게도 로마카돌릭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그대로 개신교에 옮겨왔습니다. 종교개혁의 강령은 전신자제사장주의의 회복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인제사장설에에 관해서 모든 신자제사장주의를 마르틴루터가 회복시몄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크나큰 오산입니다. 루터, 캘빈, 쯔빙글리 등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신자가 제사장임을 긍정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인간 중재자의 필요없이 하나님과 직통한다고 옳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반 쪽짜리 ㅎ히복이었습니다.
개혁자들이 실패한 것은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신자가 제사장임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속사적으로는 모든 신자 제사장주의를 회복시켰다고는 볼 수 있지만 교회적으로는 회복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8세기에 들어서 '목사'라는 말이 통용이 되었는데 이 영향은 루터교의 경건주의자들에 의해서 왔습니다. 그 때부터 이 날이 기독교 주류 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목사는 구별되고 고귀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천국의 열쇠는 모든 믿는 자에게 소유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의 사용은 교회의 직책을 맏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었습니다.
루터의 결정적인 말은 이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다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름으로 사역하려고 우리 중에서 택함을 받은 사역자들이고, 그들이 맡은 제사장으로서의 활동이 곧 우리의 사역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게 뭐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직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특별한 직책을 맏은 사람들에게 속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주장을 한 번 더 들어보면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기독교 설교자는 따로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역자이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요, 하나님이 보내신 바로 그 감독이요, 많은 사람의 구원자요, 그리스도 나라의 왕이요 왕자이다. 지상에서 그리고 이생에서 진실하고 믿음직한 성직자나 목사보다 더 고귀하고 숭고한 사람은 없다"
이것이 마르틴루터의 종교개혁 실체입니다. 들어보니 로마카돌릭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 별로 없지요. 이런 생각을 저변에 까고 있는데 무슨 종교개혁의 가치를 논하겠습니까. 그 종교개혁 다시 한 번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날 주의 종이니 택함 받은 자이니 하는 말들이 목사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주체인 루터가 한 말이니 루터의 종교개혁을 두둔하는 사람은 루터의 말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요?
만인제사장이 아니라 '소수제사장'이며 종교개혁이 아니라 로마카돌릭에 대한 딴 살림 차리기인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쿠데타'입니다.
첫댓글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설이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직접성을 천명한 것이라고 봅니다.
즉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소위 성직자(사제)라는 중간 매개체(브로커)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없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개신교 또한 카톨릭의 사제를 목회자로 대체했을 뿐이니, 실제로 달라진 점은 없다고 봅니다.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이 본래의 뜻대로 실현되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목회자가 앞장 서서 만인제사장의 정신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만인제사장설도 성서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신약성서가 말해주는 것은, 제사장이라는 중간매개체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