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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스크랩 나폴레옹이 넘었던 그 길 1,000km 제 1일차
까치대장 추천 0 조회 114 09.01.09 23: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 지도 사진은 친절한 한 외국인 순레자가 인터넷에 올린 지도임을 밝혀둡니다.

 

  제1일차(9월 27일)  ST.JEAN PIED PORT-(24,8KM)-RONCESVALLES(지도상의 노랑색 길 입구에 물음표가 있으니 잘 찾아가야 함)

 

 

9월24일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을 숙박지로 경유하면서 하루 뒤(25일) 프랑스 샤를르 드골 공항 착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지하철을 찾아 (B선)북역으로 가서-환승 오스테릴리츠역- 역사에서 기다려

노숙자 숙소같은 침대칸 밤기차를 이용 26일 아침 7시45분 루흐드역 도착 후 하루 종일 도심을 방황하다가

늦은 시간 기차를 갈아탄 후 드디어 출발지 생장역에 도착

 

출발지에 저녁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립 알베르게는 사람들이 이미 다 찼고 비싼 사설 알베르게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설 알베르게는 다음에라도 한국사람들이 찾지않았으면 하는데 협회에서 소개할 때 아침식사 포함 12유로 라고 안내를 받고 갔는데

막상 짐을 풀고 등록을 할려니까 15유로를 내라고 한다.

 

협회에서 골목  내리막길을 내려가 교회 다리 건너 30m 왼쪽 조그만 빵집이 있는 알베르게이다.

 

설레임으로 잠을 설치고 3유로를 준 아침 식사라는 게 고작 마른 바게뜨 두 조각에 비스켓과 커피 한잔이 고작인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아직도 채 여명인 푸르스름한 하늘의 새벽별을 머리에 인 채 

40 여일 동안 야금야금 아껴 가며 걸어먹을 일천 여 킬로미터의 길 위에 드디어 섰다...

 

알베르게 앞 약간 언덕진 골목을 다 올라가면 넓은 아스팔트가 있는 찻길이 나오는데 언덕 위에서부터 길은 세갈래로 나누어진다.

나와 걷게 된 일행은 인도행 여성회원 한 분과 해군 대령 출신인 남성 한 분과 셋이서 동행을 하게 되었다.

안개가 낀 새벽길이서였을까...

 

세 갈래길 가운데 맨 우측 길은 집 앞 골목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제외했었고 (이 길은 우회 하는 편안한 아스팔트 길이었음)

가운데 길은 오르막인 피레네 산맥을 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포장 길이라 생각해서

맨 좌측 생 미첼 성당 방향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그 길을 선택해서 한참을 걸어 갔는데 한 시간 여를 가도 아스팔트 길이 계속해서 나오고

도대체 오르막 산 길이 나오지 않길래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멀리 아침 해가 안개 뿌연 마을 사이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첫 출발지 생장 도착 전 성모 발현지라는 중간 기착지 루흐드 도시를 방황하다가 공원 동상 앞에서...

 

 

 인도행 깃발을 달고 다녀서 무슨 홍보가(^^)되랴만 좌우지간 줄기차게 인도행 깃발은 배낭 뒤에다 달고 다녔다...

 

 

 골목길이 하도 예뻐서 찍었었는데 똑딱이 카메라 파인더로 보이는  것과 내 시야로 보는 것에 차이가 있나보다... 

 

 

 분수대 하나 하나에도 다 조각이나 조형물이 있다...

생각 같아서는 저 노천 카페에 앉아 카페콘레체 한잔 하면서 갖은 개폼을 떨어보고 싶기도 했었지만...아서라~ 말어라~

 

 첫 출발지인 생장 피드포르 마을의 기차역이 무슨 마을 입구의 조그만 예쁜 이층집 같이 생겼다...

 

 

 

첫밤을 자고 걷기 시작한 마을 입구의 예쁜 집

창문마다 덧문이 다 달렸는데 처음엔 그 옛날 이슬람인들이 쳐들어 왔을 때 숨느라고 덧문까지 단 것인가 했었는데

한여름의 내려쬐는 햇빛을 막기위한 것이란다.

 잘못든 길이야 나중에 다시 제대로 찾기로 하고 우선 일출사진 담기에 다들 바쁘다...^^

드넓은 목초지 끝에서 아침 해가 떠 오른다.

아침형 인간과는 정 반대인 올빼미형인 내가 희뿌연 안개 사이로 올라오는 아침해를 본지가 언제였던가...

폐 깊숙히 맑고 신선한 아침공기를 양껏 들여마시고 나니 다시금 잃어버려 잘못 들어선 길에 대한 불안감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하네...

 

지도를 펼쳐보니 이 길이 분명 맞는 것 같은데 ...

할 수 없이 지나는 차를 세워 손짓 발짓 하며 나폴레옹 길을 물었더니(나폴레옹 할배가 스페인 쳐들어갈 ? 넘은 길) 

가운데 길이 그 길이고 이쪽 그러니까 맨 왼쪽 길은 생 미첼 성당 가는 길이고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가듯 생긴 그 길이 우회 포장도로라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면서 이 길을 조금만 더 가면 우측 언덕 길을 따라 공원묘원을 지나면 나폴레옹 길과 중간에 합류 할 수 있단다...

 

40여일 간의 고난장정 길 첫날부터 이 무신 고생이람...(지도상의 1번을 보면 중간에 생 미첼에서 올라가는 나폴레옹 루트와 세 갈래길 보임)

 

예쁘게 조성된 생 미첼 공원묘원을 지나 언덕 길을 올라 가는데 (우리나라의 등산로 같은 곳은 없었음)언덕길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한 시간 여 마을도 지나고 목초지를 굽돌아 나가다 드디어 합류하는 길을 찾았다...

 

그대는 아는가~

등 뒤에서 따라오며 나를 비쳐주는 아침햇살과 해발 1500미터의 산을 올라가는데 온통 푸른 목초지 가 완만한 능성 형태로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는  달력 속 그림 같은 유럽의 풍경을...

 

 

언덕을 다 올라서서 나폴레옹길과 합류되는 갈림길에서 잠시 쉬면서 올아오던 길을 뒤 돌아 보니

마을은 아직도 안개속에 갇혀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소/말/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지나온 마을들은 아득히 멀리 보여지기 시작한다...

어젯밤에 빨아서 채 말리지 못하고 배낭에 달고 가는 발가락 양말과 인도행 깃발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름하여 피레네 산군...산맥...나폴레옹 할배가 그 옛날 스페인을 세 번씩이나 침략하면서 넘나들던 산이라는데

지금은 차들도 넘을 수 있고 소 같은 가축들도 넘어 다닌다...

중간 전망대 쯤에 그림으로 만든 지도가 새겨진 동판이 있고 순례를 처음했을 야곱이라는 성인이 걸어가는 모습을 새겨 놓았다... 

 

무려 이천 년 전인가... 서른을 갓 넘긴 나이로 세상을 구원하고 죽었다는 에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야곱

그런데 과연 그는 당시 전쟁이 수 없이 치러지던 이 길 위에서 어떻게 먹고 어디서 자면서 이 길을 그렇게 걸어갔을까...

 

천 년도 더 지나서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순례자들이 지나갔던 길을  종교적인 이유도 없이

순례라는 목적이 아닌 그저 길이 아름다워서 걷는 게 너무 좋아서 이 길 위에 선 사람들과

순전히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된 산티아고 길 위에 나도 서게 됐다.

 

걷는 행위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2007년도 부터 잠시 산행을 접고 길 위에 서서 일년 동안 대한민국 땅을 무려 4천 여 킬로미터를 걸어다녔다.

하지만 항상 무언가 모를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내가 살지 않았던 곳이고 걸어보지 않았던 낯 선 도시의 길들도 있었지만

전혀 생소하거나 아무런 설레임이나 막연한 두려움조차 없었던 것이었는데 아마도 한국 땅이고 언어소통이 쉽게 될 수 있는 곳이라서

먹고 자고 하는 행위에 대한 편안함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늘 끝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보았으면 하는 욕망이 꿈틀거렸었는데

마치 자동차를 몰고 먼 길을 오래도록 달리고 싶어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주 먼 길 길고도 긴 길에 대한 그리움이 내 속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접하게 된 산티아고 가는 길

많은 정보들과 먼저 걸은 사람들이 쓴 책들을 읽어보면서 정보수집을 하고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었다.

 

지구의 반대편이지만 우리나라 해남 땅 끝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 스페인의 세상 끝이라는 피스테라

비록 북한 땅이 가로막혀 다 걸을 수는 없겠지만 해남에서 걸을 수 있는 길은 이미  다 걸었으니 그나마 연결은 되는 것 같아서

이 정도면 산티아고 길을 걸을만한 자격은 충분치 않겠는가...

 

출발하기 전 읽었던 이전에 쓰여진 책에서는 한국인들의 순례 참가 숫자가 조금씩 많이지고 있다는 정도였고 산티아고 길을 걸을려는 이유를 묻곤 했다는데

지금은 순례목적을 굳이 묻지는 않고 한국인의 순례숫자가 곧 2위가 될지도 모를 정도로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헉...모진 사람들...무자비하다 그래야 하나...

양의 머리를 통째로 울타리 기둥에다 걸어 두었네...살은 다 해치우고 뿔만 덩그러니 마치 무슨 조각마냥 얹어놓았다...

 

 

 출발 5,5km지점에 있는 알베르게 오리손

 

하룻밤 자는데 30유로씩이나 줘야 하는 그것도 반드시 선착순으로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라길래 한국에서 예약을 할까 말까 노심초사 했었는데

출발한지 두 세 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고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는데 선택을 참 잘했다시푸다...

 

늦게 도착하면 침대가 모자라 뒤에 보이는 바깥 텐트에 자야 한단다...

여자든 남자든 한 텐트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런 경우 한극여자들은 많이 불안해 할 것 같다. 

 

 

 

전망 좋은 오리손 야외 카페...맥심 오리지널 모카골드 믹서 한봉에 대략 7-80원이면 해결 가능한데 이곳에서는 자판기도 없지만

믹서커피는 더 더욱 촌스러워서 없는건지 좌지우당간 한잔에 1,5유로씩이나 주고 

 

야외 의자에 앉아 그넘의 카페 콘레체를 한잔 시켜 들고 나와 아주 조금 한모금씩 아껴가며 마셨더랬다...

피레네 산군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 오고 싶은 곳인데 김남희라는 아가씨는 이곳을 제대로 못보고 지나쳐서 아쉬웠다 그랬던가...

 뒤에 가시는 분들도 경비 걱정 없다면 모를까 가급적이면 첫 알베르게가 나오는 이곳 오리손을 예약하지 말고 부지런히 지나치라고 권하고 싶다...

여기 까지는 첫날 걷는 거리가 지나치게 짧고(생장에서 도착 후 자지 않고 바로 걷기 시작한다면 또 모를까) 당일 밤을 잘 숙소까지의 거리가

너무 많이 남아서 숙박만은 피하라고 하고 싶다.(주인은 한글 못 읽을테지 아마도...)

 

 

 사람들이 지나쳐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멀뚱히 쳐다보는 양떼들...

길은 이렇듯 아스팔트 길과 초록 잔디로 이루어진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갓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홀한 넓은 길로 이어져있다.

 

 

 

 꽤 높다고 할 수도 있는 산꼭대길 길인데 전혀 힘들지 않고 한가로이 그야말로 평화롭게 나는 길에서 어기적거리고 있었거늘...

어찌 이런 길에서 바삐 그냥 지나쳐 걷기만 할 수 있으랴... 

 저 산 등성이를 한번 보라~

마치 어미 소의 잔등처럼 부드럽지 않은가...

하늘은 드 없이 높고 푸르르고 양들과 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나는 내일 아침에도 출근 걱정없이 그냥 이런 길 위에서 노닥거리기만 하면 된다...

으아악~ 크아악! 너무 신난다~

 소나 양들이 뜯어먹어서 이렇게 골프장 같은 잔디밭이 형성된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일부러 곱게 깎았을까...

 

 

 누군가가 신고가던 신발이 헤져 더 이상 신고 갈 수 없어서였을까...

나무 기둥에 메달아놓고 간 주인 잃은 신발 한 짝...작은 돌무더기로 표시한 길 안내표시들...

멀리 내 앞을 지나쳐 걸어간 페르그리노(순례자)들

 거의 정상부분에 세워진 작고 초라해 보이기 까지한 예수상의 발 아래엔 온갖 기념될 물건들이 놓여져있다 .

인도행 노란 삼각 깃발을 한장 두고 지나간다...

 햇살이 너무 좋다...

풀밭에 앉자 햇살 쪼이기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탱자탱자~

뒤에 보이는 양들은 머리부분이 시커먼 좀 덩치가 큰 녀석들이다. 뿔이 멋있는...

 오늘 넘어갈 최고 높은 마지막 언덕이 멀리 보인다.

전혀 화려하지 않은 돌 무더기와 나무 판자로 된 표시이지만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는 더 없이 친근한 길 안내이리라...

 

 오래 전 어느 분의 무덤인 이곳을 인터넷의 사진에서 보고 저 길을 지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곳이었는데

기대를 져버리지 않을만큼 죽은 자가 있는 곳이라기엔 너무도 평화로운 곳이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과 늘 교감을 하는 것일까 고이 잠드소서~

 벌러덩 누러누워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가소~

길을 걷던 나도 멀리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는 저 말도 하늘에 쉬어가는 구름도 너무도 예쁘고 아름다운 평화 그 자체이다.

살아있음이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드는 곳이다...

 보라~

저 유려한 곡선의 뒤태를...

인도행 삼각 미니스커트를 입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내 배낭의 엉덩이가 통통하고 예쁘지 않은가...

 최초 순례자가 묶었던 토굴인지 돌을 쌓아서 임시 숙소로 만든...

그 후에 지나가던 순례자가 자고 갔던 토굴일까 ...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최근까지 사람이 잤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불도 피웠던 것 같고 지붕도 어지간한 비바람은 다 막아줄 것 같다.

 

비록 초라하지만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게되면 산능성을 지나는 바람소리 짐승들의 울음소리 

비라도 내린다면 지척에서 때려주는 지붕 위의 그 음악소리는 혹 감미롭지나 않을까...

 산 정산을 내려서는 길가의 식수대

아주 고즈넉한 숲 오솔길을 한참 지나면 나오는 곳이었다.

 

산 높은 곳에 이런 식수를 마련해둔 사람들 복 받을지니....

여기도 순례자들을 위한다는 가리비 조개문양이 새겨져있다....

 

이곳에서 부터는 드디어 스페인 땅이 시작된단다.

나라와 나라사이의 국경지대를 통과하는 국경의 산맥을 넘는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사뭇 비장함 같은 게 있었는데

이렇게 아무런 거리낌조차 없이 지나갈 수 있다니 남북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생각하니 아름다운 길도 길이지만

이런 평화로움의 유럽이 또 한번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유네스코에 등재 되어있는 길이라니...그래서 이렇게 예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건지...

전혀 사람의 손길로 조성을 했거나 편리하게 다듬지 않은 채 그냥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길처럼 보존해둔 그들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드디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곳에 섰다.

거기서 만난 한국 아가씨는 무대뽀 기질 그 자쳬인지 청바지에 배낭은 좀 큰 콩알만 했었는데 다리가 아파 저러고 있는 중이다.

하산하면서 데리고 내려갔었다가 나중에 길에서도 몇번 만나기도 했다....통통한 얼굴만큼 눈도 큼지막하고 웃음이 참 싱그러운 아가씨다...

 엄청 큰 달팽이 녀석이 겁도 없이 길로 나왔다.

언능 길 숲으로 숨어들 것이지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에게 밟히면 어쩌려고...

사진 한 장 찍고 지팡이를 들이댔더니 금새 몸을 오무려 작게 만든다...해치려는 게 아닌데도...길 숲으로 옮겨주고 지나쳐 간다...오래 오래 살거라~

 프랑스에서 국경을 지나 스페인 땅으로 들어섰다...

피레네 산맥을 기점으로 생장은 프랑스 땅이고 론세스 발레스는 스페인 땅이다...유럽..국경이래봐야 아무런 표시나 흔적을 일반인은 알 수도 없다....

스페인의 야생 산딸기 ...완전히 익으면 점점 새카만 색깔로 변하는데 단맛은 우리나라 산딸기만큼 못하고 부드럽지도 않다.

순례 첫날을 걸어서 도착한 실제 첫 숙소인 론세스 발레스 알베르게

백 몇십명이 잘 수 있는 터널처럼 지붕이 둥글게 생긴 대형 알베르게이다.

2층 침대 수십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런  숙소에서도 이곳 청춘들은 밤 사이 진한 애정행각을 하면서 침대의 리드미컬한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자장가로 들려준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주여...)

 

순례자 저녁식사 예약 10유로/숙소 6유로(4시 오픈)/ 다른 식당이나 가게 없음/부엌 없음/접수 테이블에  따끈한 차는 준비됨

언덕길 다 내려와 마을을 끼고 돌아 나와 길 건너에 알베르게 있고 맞은 편에 등록하는 협회가 있음...

 

보통 사람들의 걸음으로 도착할려면 9시간 소요되는 코스(아침 일찍 출발해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는 게 여러모로 여유가 있음)

 

유명한 성당이 있는데 8시에 미사

마을 광장에 성지 재탈환 기념탑

이곳은 스페인 교회 역사에서 의미가 깊은 곳이라고 함,

1212년에 나바라 지역의 왕 산초 엘 푸에르타가(Sancho El Fuerte) 이슬람 군대를 물리치고 기독교 성지 재탈환의 신호탄이 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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