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고향, 그리고 나의 뿌리
어머님의 고향은 나에게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어머님의 어린 시절 꿈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곳은 어머님이 태어나고 자라며, 첫사랑을 꿈꾸고, 가족과 함께 웃으며 울던 곳이다. 그곳은 어머님의 삶이 시작된 곳이자, 나에게는 어머님의 정서와 사랑이 깃든 고향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주 외가를 찾았다. 외가는 나에게 단순히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곳만 아니라 풍성한 음식이 가득한 따뜻한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찾아가거나, 때로는 영산강을 따라 삼십 리 길을 걸어 돌아오던 그 길은 마치 우리 가족의 역사처럼 길고 깊었다. 그때는 몰랐다. 외가가 단순한 한 가정의 터전이 아니라, 어머니의 꿈과 낭만이 숨 쉬던 공간이며, 어머니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리움의 장소였다는 것을.
어머니는 공산면 중포리에서 태어나 두 자매와 함께 자랐다. 형제 방죽을 두고 펼쳐진 너른 들판에서 뛰어놀며, 집 앞에 있던 커다란 벌집에서 흐르는 꿀처럼 달콤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넓은 안마당 한편에는 장독대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은 언제나 보물창고처럼 풍요로웠다. 어머니는 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봉숭아 물을 들이며 깔깔대던 순간들, 쑥과 나물을 뜯으며 마을 밖을 거닐던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소중한 추억이었다. 어머님은 그곳에서 언니, 오빠, 동생과 함께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 시절의 어머님은 아직 세상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지 않은, 순수한 소녀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난 숙명 앞에서 어머니는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 순간, 어머님의 마음속에는 어떤 그리움이 자리 잡았을까? 나는 어머님이 고향을 떠나며 느꼈을 아쉬움과 슬픔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갯머리로 시집을 가며, 그 순간부터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길로 이어졌다. 아들 아홉을 키우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머니는, 오직 제삿날이 되어서야 친정으로 향할 수 있었다.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고향집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그리움이 교차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짧은 순간,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평생 가슴에 새겨진 보석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그곳을 찾을 때마다 나는 어머님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셨을지, 얼마나 마음속으로 고향을 떠올리셨을지 생각한다. 어머님의 고향은 어머님의 정서와 삶이 깃든 곳이자, 나에게는 어머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부모님이 떠나고, 이제는 반겨줄 이 없는 고향집이지만, 어머니에게 그곳은 여전히 따뜻했다. 고향의 푸른 동백나무와 커다란 백송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집 안 곳곳에 스며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어머니는 밤마다 이불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도 한때는 꿈 많던 소녀였고, 그 소녀에게도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외가는 단순한 ‘외가’가 아니라, 어머니의 유년 시절이 깃든 곳으로 다가온다. 어머니가 나고 자란 그 마을, 어머니가 어린 날 꿈을 꾸었던 그곳을 걸으며, 나는 어머니가 평생 품어온 그리움을 이해해 보려 한다. 내가 미국에서 살아가며 한국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어머니도 시집온 후 자신의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을까.
어머니는 결혼 반지를 끼우신 적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를 위해 팔아버린 것이 아닐까. 그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온 가족이 떠나고, 어머니는 홀로 고추를 따며 기다림을 견디셨다. 모시적삼이 땀에 흠뻑 젖어도, 자식들을 향한 사랑은 마르지 않았다. 바람만이 그 쓸쓸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 넉넉한 미소처럼, 우리 집 담장에는 접시꽃이 피어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모진 세월 속에서도 자식들 곁을 지켜주셨던 어머니,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감내하셨던 어머니,
세월의 흔적이 주름마다 새겨져 버린 어머니.
나는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헌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어머니의 그리움에 대해 깊이 헤아리지 못한 불효를 용서해 주세요. 당신의 고향이,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의 유년 시절이 당신에게 그리움으로 남았듯이, 이제는 나에게도 당신의 고향이 나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어머님, 이제는 제가 어머님의 고향을 대신해서 찾아봅니다. 그곳에는 어머님의 어린 시절 꿈과 추억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어머님이 그리워하셨던 그 고향은 이제 제 마음속에도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고향은 어머님의 사랑처럼 항상 제 곁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