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와 대본
전위대 창단 대회장에서 행사 도중 갑자기 나타나 김좌진 장군의 죽음얘기를 한 박용직은 두한이 자신에게 정말 공산주의자가 아버지를 죽였냐고 물어보자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과 어울린다며 부끄러워하라고 한다.
행사후 신불출은 아주 성공적이었다며 좋아하지만, 두한은 그일로 인해 마음이 무겁다. 이를 의식한 정진영은 공산진영을 분열시키려는 민족진영의 더러운 음모라며 박용직의 얘기는 잊어버리라고 한다.
이승만은 해방된지 얼마되지도 않은 이 시기에 소련에 나라를 맡긴다는 공산당들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며 박헌영을 만나기로 한다. 김구는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이 공산당의 전위대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며 엄항섭에게 만남을 주선하라고 한다.
한동안 심각하게 생각을 하던 김두한은 삼수를 불러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박용직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또한 두한은 최동열을 찾아가 아버지가 친일파의 총탄에 살해되신게 맞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뚜렷한 대답을 얻지 못한 두한의 머리속은 더욱 복잡해지기만 하는데....
명동에서 이화룡은 시라소리와 만나게 된다. 시라소니는 이화룡에게 경성에서 지낼만 하냐고 물어보지만, 이화룡은 고향이 그립다고만 한다. 또한 경성에서는 두한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이화룡의 말에 시라소니는 김두한을 꼭 만나보고 싶어한다.
1.대회장
지난 회와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두한은 뻣뻣하게 굳어있다. 진영을 비롯한 전위대원들의 험악한 분위기에도 박용직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계속 두한을 노려보고 있다.
두한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내 아버님을 공산주의자가 죽였다고 그랬나?
박용직 :그렇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김두한!! 아들이 그 아비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과 어울리다니,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니냐?
두한 :닥쳐. 내 아버님은 친일파들에게 암살되셨어.
박용직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직접 알아봐라. 네 아버님은 친일파가 아닌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돌아가셨다. 바로 지금 네 주위에 있는 저 파렴치한 자들에게 말이다!
진영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두한아, 저런 미친 작자의 말을 더 들을 필요도 없어. (주위를 둘러보며) 뭣들 하는 거야. 어서 끌어내.
전위대원들 :예.
진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위대원들이 박용직을 끌고 나간다.
박용직 :이거 놓거라. (계속 두한을 향해) 김두한, 저들에게 속지 마라. 너는 지금 저들에게 속고 있다. 김두한.. 김두한...
두한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해져 있다.
진영 :신경 쓸 거 없어. 우익 놈들이 창단대회를 막아보려 보낸 자가 틀림없어. 그자들이 농간을 부리는 거라구. 아직 행사가 남아있어. 그만 가자.
진영은 두한의 어깨를 툭 치고는 전위대원들 사이로 사라진다. 그러나 두한은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사내2 :아무래도 이 새끼가 오늘 병신 되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말해, 말해 이 자식아, 병신 안되려면 말해, 말. 너 어디서 왔어?
그들은 계속 무더기로 짓밟는다. 박용직이 그야말로 걸레처럼 두들겨 맞고 있다. 그러다가 때리던 사내들이 갑자기 흠칫하며 모두들 정지한다. 괴 사나이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이들을 말없이 보고있는 것이다. 백의사 단원 백관옥이다.
백관옥 :그만들 하시지.
사내1 :너희들은 뭐냐?
백관옥 :그만들 해. 배에 바람구멍 나기 싫거든 돌아들 가. 어서. 어서.
사내2 :누구냐, 너희들은?
백관옥 :허허, 그래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묵중한 말에 사내들은 뒷걸음친다. 단원 하나가 박용직을 일으킨다. 그들은 곧 그 골목을 빠져나간다.
3 한식집
신불출과 진영을 비롯한 전위대 대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두한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잠시 신불출과 담소를 나누던 진영이 그런 두한이 걸리는 듯 자꾸 쳐다본다.
신불출 :정말 좋았어. 오늘의 행사는 아주 성공적이었어. 공산당의 미래가 결정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 말이오 동무.
진영 :정말 그랬습니다.
신불출 :당의 앞날이 젊은 동무들에게 달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아주 뜻깊은 행사였소. 두한 동무, 다시 한 번 열렬히 축하합니다.
두한 :. (마음이 어둡다)
진영 :두한아... 아직까지 그 이상한 작자의 생각을 하는 모양이로구나? 잊어버려라. 그 일은 마음에 담아둘 것 없어. 우리 공산진영을 분열시키려는 저 민족진영 놈들의 더러운 음모라고, 우익 앞잡이들의 상투적인 수법 말이야, 비열한 놈들!
두한 :......
진영 :너희 아버님은 분명히 일본 놈들과 싸우시다가 돌아가셨어. 너도 알고 있잖아.
두한 :그 자의 말을 믿는 건 아니야.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게 그런 황당한 거짓말을 했을까.
진영 :너는 우리 조선 청년들의 우상이야. 저들이 시기하고 설치며 방해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야. 내가 그 배후를 알아볼게, 더러운 놈들, 다시 그 자를 만나게 되면 주리를 틀어서라도 사실을 실토하게 만들겠어. 두고 봐. 내가 확실하게 해놓을께.
두한 :.......
4 백의사 비밀 아지트 외경
5 동 아지트 안
어두컴컴한 그곳에 염동진과 유진산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군데군데 찢겨져나간 양복 차림의 박용직은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박용직을 구해온 단원들이 옆에 함께 서 있다. 염동진은 조용히 손짓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그리고 습관처럼 짙은 색안경을 올려 쓴다.
염동진 :박동지가 고생을 많이 했구먼.
박용직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사실을 전달할 방법이 있어야지요.
염동진 :그건 그래요.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제일 무서운 것이 인의 장막이지. 사람들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 있나..? 김두한이는 지금 사람들의 장막으로 갇혀 있어요, 아무튼 고생했소.
박용직 :아닙니다 단장님, 두고 보십시오. 김두한은 반드시 우릴 찾아올 겁니다.
염동진 :그거야 아직은 모르는 일이요.
박용직 :김두한은 장군의 아들임을 긍지로 여기고 살아온 자입니다. 그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종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본 야쿠자들과의 싸움에서는 물론이고 그 지독한 일본 고등계 형사 앞에서도 그는 자신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똑똑히 밝혔습니다.
염동진 :음.....
박용직 :그런 김두한이 김장군님에 관한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십시오. 김두한은 우리에게 옵니다.
염동진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소. 그 일이 아니라도 우리들의 손이 필요한 일은 너무 많아요.
박용직 :그 만큼 김두한은 중요한 인물이고 반드시 우리편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더구나 조선 청년전위대는 우리측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공산당 최고의 단체입니다. 더욱 커지기 전에 사전에 분쇄시켜야 합니다.
유진산 :그 점은 나 역시 동감하네. 미군정은 아직 공산주의자들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여기를 미국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정치적인 자유를 누구에게나 준다고 하지만 그건 공산당을 모르는 이야기야.
염동진 :딱한 일이지요.
유진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유석과 창랑과 같은 이들이 경찰력을 장악한 것인데.그렇다고 해서 미군정의 지시를 받고 있으니 드러내놓고 우리를 지지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박용직 :조병옥, 장택상 선생도 그 일로 고민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 분들의 고충을 우리가 덜어드려야만 합니다.
염동진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지.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일하지만 역사는 우리의 충정을 알아줄 것이오. 우국충정을 말이야. 경찰이라..? (고개를 저으며) 지금은 어렵지. 암.
[해설] :염동진. 백의사의 두령이다. 본래는 일본군 정보하사관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나중에는 중국 군관학교로 이적하여 중국 군인으로서 항일운동을 했던 경력이 있다고 한다. 일제의 고문에 의하여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었으나 항일운동에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대동단이라는 암살단을 조직, 운영했다. 그는 해방 후 45년 10월 1일 조선공산당의 국내파 거두 현준혁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북에서 월남하였다. 남하해서도 그는 박헌영 등 좌익 계열 인사를 민족분열분자로 규정,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행동주의를 내세워 다시 조직한 것이 바로 백의사였다. 백의사는 한때 북으로 단원들을 보내 대중연설 중인 당시의 젊은 김일성을 저격하고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기도 하였다. 백의사라는 이름은 대만 장개석 정부의 비밀결사인 남의사를 본딴 것이라 한다. 염동진은 다방면에 특히 발이 넓어서 미군정의 정치거물들과 관계도 깊었고 국내 민족진영의 정치인들, 그리고 경무국에도 선이 닿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들은 염동진이 반공주의자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단체의 내막이나 깊이에 대해서는 단원으로 입단한 몇몇 사람들 이외는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조직을 횡적으로 운영하여 단원들 사이에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극비결사단체였던 것이다.
염동진 :우리는 한때 해방이 되었다고 모두들 춤추며 좋아하였소. 그러나 일본이 물러가고 다시 미국이 들어왔소.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왔고 말이오. 이것은 조선민족의 또다른 불행이오. 게다가 빨간물이든 공산당이 설치는 것은 더욱 큰 불행이지.
박용직 :그나마 미군정이 조병옥 박사에게 경찰권을 맡긴 것은 천만다행히 아니겠습니까? 조병옥 선생은 우리 우익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염동진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개인의 뜻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군정을 대변하고 있어요. 군정은 아직 이 조선을 몰라요. 그게 안타깝다는 것이오. 조선, 조선말이오. 미국은 조선을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거요. 우리의 권리, 우리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 말이오. 아니, 진정한 우리의 주권과 국가를 찾기 위해서이지. 아니 그렇소, 진산?
유진산과 박용직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6 미군정청 외경
장택상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경찰들의 경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병옥의 목소리가 걸걸하게 들려온다.
조병옥 :(소리, 영어로) 아, 그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래요...?
7 동 경무부장실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장택상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조병옥은 전화를 계속한다.
조병옥 :(영어, 계속) 아, 알았습니다. 그건 곤란하지요. 즉시 압수하겠습니다. 아, 오늘 내로 하겠습니다, 예.
전화를 놓으며 장택상을 반갑게 맞는다.
조병옥 :어서 오시오, 창랑.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시오?
장택상 :(앉으며) 그렇게 되었어요.
조병옥 :기분이 좋아 보이질 않으십니다, 그려.
장택상 :유석은 지금 내가 어디에서 오는 길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요?
조병옥 :.......?
장택상 :바로 시공관에서 돌아오는 길이오. 우리의 경찰력으로 좌익 공산당들의 전위대 창단행사를 지켜주고 오는 길이라 이 말이오.
조병옥 :(이해하겠다는 듯) 그랬구려. 하긴 지금 미군정에서도 막 전화를 받는 참이었소이다. 백야의 아들이 전위대 대장이 된 모양이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지난날 일본 해군무관부를 무장 해제하면서 감추어놓은 무기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걸 압수하라는 게요. 공산당 손에 무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런 얘기지요.
장택상 :그야 당연합니다. 언제든 폭도로 변할 수 있는 자들이에요. 그러나 저러나 이거 우리도 참 한심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미군정의 눈치만 보며 내키지도 않은 짓을 해야하는지, 원.
조병옥 :어쩔 수 없지 않소. 허나 너무 걱정 마시구려. 좌익은 반탁에서 찬탁으로 돌아서면서 대다수 민중들의 지지를 잃었소. 아니, 나라를 강대국들에게 맡기자고 데모를 하다니.. 이게 제정신들이오?
장택상 :하지만 그들의 조직력은 여전히 굳건해 보였소. 아니 오히려 더욱 세력을 넓히고 있단 말이오. 참으로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오. 저들을 저렇게 놔두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조병옥 :미군정과 공산주의자들은 기름과 물과 같이 절대로 어울릴 수 없소.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순리대로 풀어 가십시다.
장택상 :나라고 괜히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오. 돌아가는 판국이 너무나도 심상치가 않단 말이오. 이보시오, 유석..
조병옥 :말씀하시오.
장택상 :유석이나 나나 이 나라 경찰력을 맡고 있소이다.
조병옥 :.......?
장택상 :악명 높던 일본 경찰들이 물러가고 우리가 떠맡은 경찰이오. 그런데 옛날에 우리 독립투사들을 잡아넣던 그 왜경의 끄나풀들이 대부분 모두 경찰로 돌아와서 떡하니 앉았소이다.
조병옥 :아, 그거야. 어쩔 수가 없지 않소이까? 경찰에 경험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소이까? 그러다 보니 아마도 더러 일제에서 밥을 먹던 경찰들이 다시 들어온 모양인데..
장택상 :허허.. 내가 오늘 들었소이다. 더러 온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경찰의 상당수가 친일 경력이 있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치안을 유지합니까? 과거의 청산이 없이 어떻게 말이오.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조병옥 :(계속 한숨)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질서는 유지해야 하고 사람은 없고 말이오.
장택상 :나는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법을 관리하는 경찰들이 바로 친일파들이라면 국민들이 제대로 따르겠소이까? 안타까워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 경찰은 대부분 친일파들이고 정부라는 것은 미군이 맡아 가지고 있고 이게 어디 해방이고 독립이겠소이까?
조병옥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하나하나 고쳐갈 때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조병옥은 한숨만 계속 쉰다. 우울한 그의 표정에서.
8 수도경찰청 외경
총경 :(소리) 아, 이름이 뭐라고..?
9 동 수사과 책임자 방
총경이 이정재를 보고 있다. 경찰복을 입은 이정재이다.
총경 :(서류를 보며) 이정재라고 했나..?
이정재 :네, 그렇습니다.
총경 :(끄덕인다) 아주 잘 왔네. 지금 이 나라에는 경찰이 턱없이 모자라. 보아하니 자네는 근로보국대에 있었구만. 거기서 순사 일을 보았어?
이정재 :네, 그렇습니다.
총경 :그만하면 경력은 충분하네. 나도 일제 때에 오래 경찰에 있었지. 그래도 나는 독립군은 잡아넣지 않았다고. 자네도 여기 경력사항을 보니까 마찬가지구먼. 보국대에서 일했다면 거 뭔가. 김두한인가 하는 사람이 있었던 곳 아닌가?
이정재 :네, 총경님.
총경 :자넨 학력도 좋구먼 그래. 하하하... 이런, 주특기가 씨름이로구먼. 무려 열한 번을 우승했어. 허.. 대단하구먼. 좋아. 계급은 경사로 하세. 근무처는 수사주임을 한번 해봐.
이정재 :감사합니다, 총경님.
총경 :감사는 무슨..? 나는 말일세. 우리처럼 친일경력이 있는 경찰들은 해방이 되면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라고. 잘해 보세. 음..?
이정재 :예, 총경님.
총경 :요즘 아주 시끄럽고 어려워. 그놈의 찬탁인지 반탁인지.. 자네도 부서는 수사 쪽이지만 어쩌다가 데모진압에도 동원될 걸세.
이정재 :알겠습니다.
총경 :아니, 이 나라 독립 투사들의 상징인 김구 주석도 오셨고 이승만 박사도 오셨는데 이거 정치는 갈수록 암흑이야, 암흑... 앞이 안 보인단 말일세.
10 인서트
데모대가 지나가고 있다. '신탁-통치-반대-'를 외치는 학생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기자들이 계속해 카메라를 눌러댄다. 거기 최동열의 모습도 보인다. 뭔가 열심히 메모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찬탁-찬탁-' 혹은 '신탁- 통치- 찬성-', '위대한 공산주의 만세' 등등 구호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이 마주 온다. 그들은 싸움을 하듯 대항하며 서로의 구호를 지지 않으려고 외쳐댄다. 몸싸움이 비롯되더니 주먹과 각목이 등장한다. 경찰들이 호각을 분다. 계속되는 호각소리. 그 어지러운 소용돌이에서. 바라보는 최동열의 우울한 표정.
[해설] :해방이 되었고 이승만과 김구가 각각 돌아왔지만 그들은 그들이 할 일을 찾지 못했다. 북쪽은 빠르게 소련에 의해 공산주의로 변해 가는 동안 남한은 수십 개의 정당과 저마다 독립투사임을 자처하는 인사들로 인해 혼란의 연속이었다. 특히나 신탁통치가 강대국들에 의해 결정되자 그 혼란은 더욱 커졌다. 임시정부를 이끌고 온 김구는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전 국민의 궐기를 촉구하였고 이승만 또한 나름대로 돈암장에 거처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에 국민들은 이승만보다도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를 더 지지하였으나 미군정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공부하며 투쟁해오면서 미국수뇌부와 인연이 깊은 이승만을 더 신뢰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이승만이 집권하는데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나머지대본은 이곳 http://cafe.daum.net/connection123 에서 보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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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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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어느 술집
이화룡들이 들어서자 입구에 지켜서 있던 기도들이 길을 비키며 정중하게 인사한다. 너무도 조용한 술집 한가운데로 세 사내가 마주해 앉아있다. 이화룡은 곧바로 그들에게 다가가 아주 작고 못생긴 한 사내를 보며 반색한다.
이화룡 :성순이.!
시라소니 :이게 누구야? 화룡이 아니네. 이게 얼마만이야.
이화룡 :하하하. 경성에 왔다는 소식 듣고 바로 달려오는 길일세.
시라소니 :기랬구만. 어서 앉으라.
명동파 보스 정팔과 행동대장 신상사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것은 이화룡도 마찬가지다.
시라소니 :뭣들 하는 기야? 어서 인사들 나누라우.
정팔 :오랜만입니다, 형님.
이화룡 :그렇구만...
시라소니 :내래 이야기는 대강 들었어, 야. 화룡이 자네, 정팔이하고 사이가 좋지 않다던데. 그게 사실이네?
이화룡 :좋을 것도 없지만 안 좋을 것도 없네. 다만 좁아터진 명동에 함께 살려니 좀 불편할 뿐이지.
시라소니 :이거. 이거. 같은 니북 사람들끼리 싸우디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우. 알갔어?
이화룡 :어쨌거나 자네도 왔고 했으니 술이나 한 잔 하세.
시라소니 :그거 좋디. 자 다들 잔들 들라우. 이 시라소니가 오지 않았네? 맨날 자주들 볼 텐데 웃고들 살아야디.
[해설] :시라소니. 못난 호랑이 새끼라는 뜻이다. 과거 낭만파 주먹시대에 있어서 이 사람보다 더 싸움을 잘하는 이는 없다고 전해져온다. 중국 전역을 떠돌며 수많은 강적들을 주먹으로 눕혔고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타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조직은 없었으나 모두가 존경하고 두려워한 인물로서 해방 이후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하여 이때부터 명동파에 머물게 된다.
이규갑 :그랬지. 우리는 의형제였네. 하지만 나는 늘 백야를 존경했어. 백야에게는 나 같은 범인과 비교할 수도 없는 존귀한 사람이었지. 정말 그랬어.
두한 :......
이규갑 :언젠간 자네가 만주에 다녀갔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네. 아마도 자네가 아주 어렸을 적이었던 것 같은데 백야는 늘 그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더군.
두한 :그 일을 어떻게.?
이규갑 :노백열 동지와 유동렬 동지에게서 들었었네.
두한 :......?
이규갑 :안타까운 일이야. 백야가 살아있더라면 해방정국도 이렇게 엉망이 되진 않을 터인데...
두한 :선생님.. 아버님을 죽인 자가 누굽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이규갑 :그래.. 자네도 알아야 하겠지. (사이) 25년 전에.. 소련이 막 공산국가로 변할 무렵 그곳 자유시라는 곳에서 커다란 변이 있었네. 그것을 흑해사변이라고 하지. 우리의 대한독립군단이 소련의 적군에게 배신을 당해 몰살당한 사건이었어. 공산당들은 끔찍하게도 우리의 독립군을 이중으로 포위하고 장갑차와 기관총으로 난사했네.
두한 :......
이규갑 :그 일이 있고 나서 백야는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끊었고, 그 때문에 박상실이라는 사회주의자에게...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네.
잠시 흑해사변의 실루엣들이 지나쳐간다. 그리고 김좌진이 암살자에게 죽어 가는 모습과 에코우로 들려오는 총성이 계속 울린다. 두한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 듯 동공이 흐려져 있다. 이규갑도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유진산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두한의 앞에 내민다. 두한은 어리둥절하며 그 문서를 본다.
유진산 :자네가 간직하게.
두한 :이건....?
유진산 :총독부 관리들이 작성한 기밀 문서일세. 자네 부친이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일본인들이 떠난 총독부 청사에서 발견한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