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의 테마는 단종이다.
그래서 그가 귀양을 가서 죽음을 맞이한 영월의 청령포와 관풍헌으로 향했다.
청령포로 들어갈려면 배를 타야 된다.
예전에는 물이 없을때는 걸어서 물이 있을때는 줄배를 타고 갔다고 하던데 요즘은 이렇게 생긴배를 타고 간다.
약 2분쯤 걸리나? ㅎㅎㅎ
이 소나무는 단종어소 밖에서 안으로 굽어 있어서 일명 엄흥도 소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청령포 단종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종이 이곳에 유배를 왔으나 홍수로 인하여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단종유지비각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망향탑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관음송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 서편에서 있다. 이곳에서 단종이 어린나이에 슬픔에 쌓여 있었던 보습을 보고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이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금표비
금표비는 강봉된 노산군이 이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른바 행동 반경을 제한하는 금지령 팻말이다.
관풍헌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관풍헌은 1392년(태조 1)에 건립된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지방 수령들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건물이다. 1456년(세조 2)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에 홍수가 나자 단종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단종은 관풍헌에 머물며 인근의 자규루에 올라 자규사(子規詞)와 자규시(子規時)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1457년 10월 24일 단종은 17세의 일기로 관풍헌에서 사사되었다. 관풍헌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단층 맞배지붕 이익공집으로, 치석된 한 단의 장대석으로 된 기단 위에 선 이익공 두공을 장치하고 전면 3칸에는 사분합(四分閤)의 띠살문을 달았다. 관풍헌 객사 정문을 백운루(白雲樓) 또는 관풍루(觀風樓)라고 부른다.
장릉
사적 제196호. 1458년(세조 3) 성삼문(成三問) 등이 도모한 상왕복위계획이 탄로되어 영월에서 사사(賜死)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관을 갖추어 장사지낸 뒤 숨겨져왔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조심스럽게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묘의 영조(營造)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더니 선조 때에 이르러 김성일(金誠一)ㆍ정철(鄭澈) 등의 장계로 영역(瑩域)을 수축하고 돌을 세워 표를 하였다.
1681년(숙종 7)에 이르러 대군(大君)으로 추봉하였고, 1698년 추복(追復)하여 묘호를 단종이라 하여 종묘에 부묘(附廟)하고 왕으로 봉하여 장릉이라 하였다.
상설(象設)은 추봉된 정릉(貞陵 : 태조의 계비 神德王后康氏의 능) 등의 예에 따라 난간과 무석(武石)을 설하지 않았고, 양식은 왕명으로 가장 간단하며 작은 후릉(厚陵 : 정종의 능)의 양식을 따랐다.
따라서, 장릉의 석물(石物)은 숙종과 정조 연간에 만들어진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능석물의 선구를 이루며, 명릉(明陵 : 숙종의 능) 이래 만들어진 사각옥형(四角屋形)의 장명등(長明燈)은 장릉에서 그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이 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令) 1원과 참봉 1원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선돌
높이 약 70m의 기암으로,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영월군영월읍방절리 날골마을과 남애마을 사이의 서강(西江) 강변에 있으며, 서강의 푸른 물과 어우러져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1820년(순조 20) 문신 홍이간(洪履簡 1753~1827)이 영월부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문신이자 학자인 오희상(吳熙常 1763~1833)과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이 홍이간을 찾아와 구름에 싸인 선돌의 경관에 반해 시를 읊고, 암벽에 ‘운장벽(雲莊壁)’이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한반도지형
서강(西江)의 샛강인 평창강 머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를 꼭 빼닮은 절벽지역인 한반도지형이 있어 유명해졌다. 선암마을에는 고려 때 선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한때는 역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간재 전망대에서 남산재를 바라보면, 한반도를 빼닮은 절벽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오간재는 이 절벽지역을 처음 발견하고 외부에 알린 이종만의 이름을 따서 종만봉이라고도 부른다. 절벽지역은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도 있으며, 동쪽으로는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듯한 작은 바위도 있다.
참 아름다운 곳 영월이다.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음에도 못가고 있다가 이번 답사를 통해 다녀왔다.
피곤에 쩔어...죽을지경임에도 마음을 정화하고 온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