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린토교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자랑할만한 것들을 자랑할만한 것 다시말하면 그가 본 환상과 그가 들은 계시와 그의 학벌과 집안과 그의 지식과 그의 열정 등을 자랑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가 교만하게 될까봐 자랑을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교만해 질까봐 하느님께서 자신을 간섭하는 가시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가시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혹시 가시에 찔려 가시와 함께 몇시간 또는 며칠을 지내보셨습니까? 가시가 찔려있으면 불편하고 아프지만 그 가시 때문에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가시로 인해 괴로움이 심해지면 이 가시를 빼내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시가 빠지지 않으면 결국은 온 몸이 고생하게 됩니다. 왜 미운 사람을 말할 때 '손톱밑의 가시같다'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를 인해 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세 번이나 하느님께 이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였지만 하느님은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는 말씀으로 '너의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말로 하면 :"됐어. 오바하지 마" 이런 말입니다.
바울의 가시가 무엇일까라고 성경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 중의 한가지는 바울이 심한 안질에 걸려 고생했다라고 말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어두워져 아나니아의 기도로 고침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계획가운데 그 눈이 침침한 상태로 회복되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본문에서 바울의 안질에 관한 언급으로 볼수 있는 말씀이 없진 않지만 확정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이들은 간질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탄의 괴롭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사탄이 가져다 주는 질병중에 한 가지를 간질로 보았습니다. 간질이라는 병이 지금도 고질병이며 이 모습이 귀신들린 사람의 형상과 흡사합니다. 그러다보니 사탄이 가져다주는 병이라고 생각들했나 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심각한 말라리아에 자주 노출되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은 추측이고 성서는 단지 '가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로 말미암아 자신을 약한 존재 부족한 존재로 느끼고 그로 인해 그는 늘 하느님과 사람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바울에게 이 가시가 없었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능력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의 집안과 학벌과 지식과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일을 해결함으로써 사람들과 하느님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는 엄청난 아픔의 가시는 하느님을 자신의 파트너로 또 주변의 형제들을 자신의 파트너로 믿고 그들과 함께 사역을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 본문은 우리에게 주님이 파견하시는 제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열 두 제자를 불러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그리고 여행하는 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마르코 6장)
주님은 제자들을 한명씩 보내지 않으시고 둘씩 파견합니다. 이것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위한 뜻이 있겠지만 파트너와 하나됨을 위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파트너쉽이 없는 사람은 목회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능력은 함께하는 능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데 몇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하시면서 지팡이 외에 먹을 것도 자루도 전대에 돈도 여부의 신발과 속옷도 가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인해 형제들과 하나되는 일 겸손해 지는 것을 하지 않는 것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을 것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우스게 소리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열두제자는 혼자 있으면 참 보잘 것 없는 이들이기에 임무수행의 능력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외모는 대머리에 키도 작고 돋보기까지 쓴 보잘것없는 모습이었지만 개인적인 능력을 보자면 혼자서도 넉넉히 임무수행의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하느님의 간섭하시는 그 괴로운 가시가 없었다면 바울은 12제자를 무시하면서 또 많은 제자들을 무시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며 하느님없이 교만의 절정가운데 서서 오늘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약하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위기라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입니다. 이 약함은 하느님을 구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결국은 기회를 만듭니다. 바울에게는 기가막힌 가시가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가시는 바울에게 '강함보다 약함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겸손의 덕을 배웠고 결국은 하느님의 쓰림을 받는 능력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는 강함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약함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약함과 부드러움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할 때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상은 구약성경에 이미 여러차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강한 이 바로의 하느님이 아닌 약한 이들의 하느님, 히브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골리앗의 하느님이 아닌 다윗의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분은 의지할곳 없는 룻의 하느님이셨으며 사렙다 과부의 하느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할때는 성서에 하느님이 함께하지 않으셨고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해 약해졌을 때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강대해졌을때도 물론 하느님이 함께 하셨으니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뒤로 밀치고 그들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구하기 보다는 그들의 힘에 의지했을 때 그들은 결코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약함을 알고 하느님을 의지하고 나아갔을때는 하느님이 함께 하심으로 결코 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카페 들어갔더니 서대구 마리아님이 오늘 설교에 딱 도움이 되는 바울의 기도와 하느님의 응답과 같은 글을 올리셨어요. 읽어드립니다.
하느님!
"나의 교만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드렸더니 하느님께서는 "NO"라고 하시며
"교만이란 하느님이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슬픔이 없게 하소서."라고 간구했더니 하느님은 "NO"라고 하시며
"슬픔은 네가 만드는 것이지, 누구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고통이 없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더니 하느님께서는 "NO"라고 하시며
"고통은 우리를 세상에서 멀리하고 하느님을 가까이하게 하는 은혜"라고 가르쳐주셨다.
"하느님,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남을 사랑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소서."라고 기도했더니 하느님께서는 미소를 띠며, "이제 겨우 네가 나를 기쁘게 하는 기도를 배웠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기도의 응답은 세가지라고 말합니다. 하느님 하고 외쳤을때, Yes와 하느님 하고 부르짖을때에 No, 그리고 하느님 했을 때 Wait 하며 침묵하신다고 합니다. 바울에게 하느님은 NO 하셨지만 바울은 하느님의 응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해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날 것을 알고 가시로 인한 엄청난 고통속에서도 기뻐하며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나의 약함을 인해 하느님의 능력과 영광이 더 크게 드러남을 인해 기쁨으로 그 약함과 부족함을 자랑합니다라는 말이지요.
우리가 약할 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강함과 능력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의 강함과 능력은 자신감을 표출하게 되지만 이는 때론 교만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강함은 다른 사람을 또는 하느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 약함이 되고 맙니다.
반면에 우리가 약하고 부족하다고 느낄때 우리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약함과 부족함은 때론 열등감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이는 때론 겸손을 통해 사람들과 하느님과 함께 하는 능력을 가지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약함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힘을 가지게 하고 또 하느님을 가까이 모심으로 강함이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약함으로 인해 자꾸 작아지십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의 모습이 작고 부족하지만 우리를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작고 부족하여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되어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큰 능력이 되어 하느님의 일을 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작은 성공회 포항교회를 사랑하시고 또 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이 하느님과 하나되어 하느님의 일을 행할 때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큰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