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은 서울로 상경하라는 아버님의 명령에 어쩔수 없이 700점 만점에 커트라인이 350점인 서울 동양공업 고등전문대학교에 1971년도 입학 드디어 서울생활을 한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서울로 상경하여 임시소집일날 안내한 교실에 입실했는데 하필 인창중학교 출신이 50% 그리고 동양중학교 출신이 50%인 교실에 배정됐는데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패싸움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걸상이 나한테 날라와 이래맞으나 저리 맞으나 같은데 때리고 보자고 나도 그 패싸움에 휘 말려버렸고 선생님들이 출동해서 잡으러 오니 피할데가 없어서 2층에서 밑으로 뛰어내려 피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신입생 중 기계공학, 전기공학, 화학공학, 건축공학과 전체가 동양애들은 내가 인창 출신인줄 알고 인창애들은 내가 동양 출신인줄 알더라고 전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학교 밑에 당구장에 친구들과 몰려가서 놀고있는데 고척동에 고아원 출신아이들이 시비를 걸어서 당구장 후면에 있는 골목길에서 싸움이 났는데 골목 앞뒤로 열댓명이 포진하고 으름장을 놓는데 여기서 저놈들 한테 꿀리면 나의 학창시절은 중학교 저학년 시절로 복귀한다 생각하니 맞더라도 용기있게 맞자 하고 붙었는데 붙자마자 고아원애들이 다 도망을 쳐서 의아해 하는데 골목길 뒤쪽에서 학교 선배들과 친구들이 몰려와서 애들이 도망을 간것이었다.
고아원 사건 후에 우리학교에 불량써클이 2개가 있는데 돌담과 동심에 선배들이 와서 자기네 써클에 들어 오라고 권유를 한다. 그리고 촌놈을 데리고 종로, 명동등등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방, 술집에 가서 이것 저것을 사주는데 촌놈이 혼이 나가고 출세를 한것처럼 명동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어떻게 알어는지 내가 잘나가는 명동 주촌골목에 동굴이란 주점으로 부여 후배들과 동창 은옥이 얼굴을 면도칼로 그은 황덕진이란 친구가 찾어 왔다.
하루는 동굴 주점에 앉아있는데 웨이터 2놈이 나를 찾아와서 도와 달란다 너회들이 나를 아는냐 하고 물으니 부여 후배들이란다 그래서 후배들이 근무하는 주점에가서 상대편 놈들을 혼내주고 부여 후배들 한테 나를 어떻게 아느냐 하니까 같은 동네 김창옥이란 친구의 동생과 반도전기 사장 아들이란다.
또 하루는 황덕진이란 친구 말 같은 동네 동남리에 살던 친구라해서 그런줄 알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1년 선배인데 어울릴 사람이 없으니까 친구라고 찾아 왔다 그런데 이친구 싸움만 하면 상대편 얼굴이든 팔이든지 이 친구와 맞닿는 부분은 피가 흐른다.
그러던중 어느날 동생들이 찾아와서 황덕진이가 싸운다고 애기하길래 쫓아갔더니 3놈과 싸우는데 상대편 애들 얼굴, 몸에 피가 흘러서 황덕진의 손목을 잡고보니 손가락 사이사이에 면도날이 있길래 황덕진 너는 빨리 피하라고 하고 내가 3놈을 처리하는데 그중 일행 한명이 명동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짭새들이 출동하여 명파에 잡혀 갔는데 긴 나무의자에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안 풀어 준다
소변이 마러우니 풀어 달라고 해도 안풀어 주길래 옆에 있는놈 한테 바지 앞 자크를 내려 달라고 하고서는 나무 의자를 들고 명파소장 놈 책상에 대고 그냥 쉬를 했더니 곧 바로 중부경찰서로 넘긴다.
여기서 너무 웃긴 이야기가 있다. 중부경찰서에서 피해자가 중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라서 합의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친구 태봉이란놈이 자기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나의 이모라고 하면서 피해자와 합의를 볼려고 하니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하여 피해자와 어렵게 합의를 보고 경찰서 담당형사앞에 우리 아버지와 친구 엄마가 같이 만났다 이모라면 아버지의 처제일텐대 서로 모르고 있는것이다 이에 담당형사가 친구끼리 의리가 좋다면서 경찰서에서 서류를 빼고 훈방조치를 하여 주었다.
그 뒤에 명동생활을 하다가 코치한테 잡혀와서 다시 태권도 선수생활에 졸업때까지 하였다.
서울대표와 대학부는 고향으로 출전해야 해서 충남대표로 활약하고 졸업 후 울산 현대조선소 직장 생활로 태권도와 이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