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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비드 로빈슨
득점왕과 올해의 수비수를 둘다 수상한 두명중의 한명. 압도적인 스피드의 센터. 1옵션 시절에는 우승을 못했지만, 걸출한 후배 팀 던컨의 영입으로 두차례 우승 후 명예롭게 은퇴했다. 은퇴 후 자선 사업가이자 투자자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2. 아르멘 길리엄
복싱을 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농구의 길로 늦게 접어들었으나 UNLV 3년간 93승 11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86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2번째 픽에 선정되었다. 커리어 13년 통산 13.7득점으로 기대치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블루워커로 팀원들의 신뢰를 받은 선수였다. 농구를 끊을수 없어 은퇴 선언 이후 41세에 ABA에서 한 시즌을 더 뛰었다. 이후론 지도자 생활을 했으며 2011년. 픽업게임을 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 데니스 홉슨
대학 득점 2위에 오를만큼 뛰어난 스윙맨이었지만, NBA에서는 온전히 그 기량이 발휘되진 못했다. 뉴저지에서 15.8점을 올렸으나, 시카고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조던의 백업으로, 팀의 신뢰를 거의 받지못했다. 그래도 우승반지를 하나 차지할수있었고, 한시즌 더 NBA에서 뛴 이후 해외에서 좋은 커리어를 보냈다. 지도자 생활을 거쳐 현재 바우셔 고등학교의 체육교사로 재직중이다.
4.레지 윌리엄스
조지타운대학 84년 NCAA챔피언. 신입생이 최우수선수. 4년간 좋은 활약으로 4픽에 올랐다. 하지만 팀이 클리퍼스.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못하며 세개팀을 떠돌던 윌리엄스는 덴버에 정착하면서 주력선수로 자리잡는다. 94년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업셋했을때 덴버의 팀내 득점 2위, 어시스트1위를 기록했다. 10시즌동안 NBA에서 뛰었다. 빌 시몬스는 그가 클리퍼스에 드래프트 되지않았더라면 다른 커리어를 보냈을것이라 평가했다. 이후론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으며, 마지막으로 확인된 커리어는 2018년 킹스기독학교의 감독직.
5. 스카티 피펜
악의적인 팩트 : 피펜없이 조던은 정규시즌 154승 170패. 플레이오프 1승 9패를 거뒀다. 역대 최고수준의 수비수이자 다재다능함으로 조던이 '나는 득점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피펜이 다한다'고 말했을 정도의 선수. 전처 라르사 피펜에 따르면. 23년의 결혼생활동안 거의 매일 4회씩 섹스를 했다고한다(역시 코가....). 이를 정직하게 계산하면, 약 33,600회에 달한다. 아들 스카티 피펜 주니어는 현재 멤피스에서 뛰고있다.
6.케니 스미스
'블랙캣'조던도 따돌릴만큼 뛰어난 스피드와 운동능력의 소유자로, NBA에서 10년간 12득점 5어시스트를 올렸고 우승 2번을 했지만, 선수 시절보다는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이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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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케빈 존슨
1990년대 초반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중 한명. 20-10을 세차례나 기록하는등 공격형 가드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고, 올스타, 세컨팀, 서드팀, MIP등 명예로운 커리어를 보냈다. 바클리와 함께 우승을 노렸으나, 조던에 가로막히며 반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새크라멘토의 시장을 역임했으며, 킹스가 타 연고지로 이적하려 할때마다 존슨이 백방으로 노력했던 모양.
8. 올든 폴리니스
아이티 출생의 센터. 16살때 185cm의 키가 206으로 성장하며 농구선수의 길로 뛰어들었다. 시애틀은 피펜을 뽑아놓고, 이 선수와 트레이드했다.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15년간 NBA에서 근속했다. 최근들어 매체와 잦은 인터뷰(주로 과거와 현대의 NBA가 어떻게 다르다는)를 하고있다.
9. 데릭 맥키
6'10의 큰 신장에 슈팅과 다재다능함. 그리고 수비력을 겸비해 당대의 강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했다. 15년간 NBA에서 뛰며 디펜시브팀에 두차례 선정되었다. 근래엔 고향 미시시피에서 지역사회 활동, 농구캠프등을 개최하며 지내는 모양.
10. 호레이스 그랜트
9분차이로 하비그랜트의 형이된 호레이스 그랜트. 1차 쓰리핏 불스의 3번째 남자로 기여했다. 조던이 1차 은퇴했던 시기엔 올스타에도 오르기도. 강한 체력과 힘을 바탕으로한 블루워커였다. 4번의 우승반지를 따냈다. 조던과는 앙숙으로, 실력은 인정하지만 조던의 리더십은 옳지않다고 생각하는듯. 45번 조던을 상대한 그랜트는 시리즈 평균 18득점-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슬하에 아들셋과 딸 다섯을 두고있다.
11. 레지 밀러
한팀에서 18시즌 이상을 보낸 7인중의 한명. 인디애나의 심장. 누나가 여자농구의 전설, 셰릴 밀러로 고교시절 40득점 하고 왔더니 누나가 105득점을 했다고해서 시무룩한 일화는 유명하다. 은퇴 이후로는 방송가에서 일을 하고있다. MTB에 진심으로 현역시절만큼 몸관리를하며 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고한다.
12. 먹시 보그스
NBA역사상 최단신선수. 160cm 중학교 코트에서도 핸디캡일 작은키로 거인들의 리그에서 14시즌을 뛴 거인. 학창시절엔 레슬링을 병행했는데, 8학년까지는 무패였다고한다. 은퇴 이후 여자농구팀의 감독을 맡은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모든 선수들이 보그스보다 컸다고. 불우했던 어린시절 때문인지, 현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하는 먹시보그스 재단을 운영하고있다.
13. 조 울프
슛이 괜찮았던 빅맨으로 NBA에서 11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이름탓에 경기에 나오면 관중들이 하울링을 하곤했다. 은퇴 이후론 지도자 생활을 했다. 23년 벅스의 G리그팀 허드의 보조코치로 재직했는데, 24년 사망했다. 향년 59세.
14. 텔리스 프랭크
NBA에서는 총 5시즌을 뛰었고, 이외에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뛰었다. 19-20 브로니 제임스, 자이르 웨이드와 함께 고교를 제패한 4성 유망주 출신 테렌 프랭크가 그의 아들. 아마도 어딘가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을 가능성이 높은것이 근황.
15. 호세 오르티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농구선수. NBA에서는 3년만을 뛰었으나 그리스, 스페인, 푸에르토리코등 많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80년 17살에 데뷔해서 2006년 은퇴 하기 전까지 프로 생활만 26년을 뛰었던 선수. 2004년 미국 대표팀을 꺾은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은퇴 이후 식당, 정치, 사회운동등을 했으나 잘 풀리지않았고, 2011년에는 마약 문제로 징역을 살기도했다. 23년부터 대장암 투병을 시작했고, 26년 5월 5일 사망했다. 향년 62세.
16. 크리스티안 웰프
서독출신의 농구선수. NBA에선 세시즌을 뛰었다. 유럽에선 좋은 활약을 펼쳤고 독일리그에선 수차례 우승했다. 은퇴 이후엔 친구의 건설자재회사에서 일했다. 2015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51세.
17. 로니 머피
단단한 체구를 바탕으로한 플레이를 바탕으로 대학무대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 하지만 이 체중으로 발부상을 입었고, 이 발부상 이후 체중은 계속해서 불어나 방출 당했다. 은퇴 이후론 잠시 지도자 생활을 했던것 같고, 현재 근황은 불명.
18. 마크 잭슨
데뷔와 동시에 13.6점에 10.6어시 2.5스틸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이 해의 신인왕에 뽑혔다. 이듬해엔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으나 그 이후 커리어는 이전 같지는 못했다.
2011~14년 워리어스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며 골든스테이트 왕조의 기틀을 잡았지만 프런트와 갈등으로 영광의 시대 직전에 교체되었다. 이후 espn에서 오래 일했으나, 23년 해고되었다. 거구의 스트릿볼러, AND1의 전설 Escalade의 형이기도하다.
19. 켄 노먼
운동능력과 체격조건이 좋았던 'snake' 켄노먼은 NBA에서 10년을 뛰었다. 2년차 18득점을 올렸지만 그게 커리어하이. 92년 팀 역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클리퍼스의 주전멤버이기도했다. 딸도 wnba에 입성한 운동선수였으며, 손자들도 여러 스포츠들을 하고있다고한다. 정작 본인은 은퇴하고서는 스포츠에 흥미를 잃어버렸다고. 은퇴 이후론 특별히 하는일 없이 부동산투자, 농구코칭들을 가끔 하며 지내는듯.
20. 짐 파머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1라운드 드랩되었으나 NBA에서 살아남을만한 기량은 없었다. NBA에서는 5시즌, 통산 5.3점을 기록했다.
은퇴 이후 삶이 참 가관인데, 2019년 경찰의 함정수사에 단속되었다. 16살이라 밝힌 상대와 170달러로 성매매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2020년에 인신매매 미수, 매춘알선미수, 미성년자 유인미수 3건의 혐의가 추가되었다.(....)
21. 댈러스 코메지스
블락슛에 능했던 파워포워드. 2시즌간 NBA 생활을 하고는 해외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NBA에서 살아남기엔 체격이 다소 작았지만, 해외무대를 지배하는데는 오래 걸리지않았다. 2006년까지 선수생활을 했고. 현재는 필라델피아 지역 청소년 지도등을 하 소박한 2의 인생을 살고있다.
22. 레지 루이스
전년도 2순위 렌 바이어스가 비극적으로 사망하고, 이듬해 보스턴에 뽑힌 스윙맨. 루키시즌은 미약했으나 이듬해부터 18.5점을 넣으며 급성장. 92년에는 20.8점을 넣으며 올스타까지 성장했다. 이듬해 래리버드가 은퇴한 보스턴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만큼 성장했지만. 플레이오프 첫경기에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그게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듬해 비시즌기간중 쓰러져, 그대로 일어나지못했다. 사인은 비대성 심근병증. 향년27세. 그의 사망으로 보스턴은 폴 피어스 등장 이전까지, 암흑기를 걸어야만했다.
23. 그렉 '캐딜락' 앤더슨
6'10의 거한이 자전거로 등하교하는걸 보며 친구들이 '야 그렉이 캐딜락 타고온다ㅋㅋ' - 이게 '캐딜락' 앤더슨의 유래이다. 운동능력이 괜찮았던 블루워커 타입 빅맨으로. 루키시즌 11.7점에 6.3리바운드를 올리며 올루키 세컨팀에 선정되었으나, 그 이상 재능이 개화하는 일은 없이 평범한 벤치선수로 10년을 NBA에서 뛰었다. 샌안토니오 지역 행사나 대학모임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지내고있다.
2라운드 이후
26. 스티브 알포드
JJ레딕 이전의 JJ. 대단치않은 사이즈와 운동능력이었지만, 정확한 점프슛만으로 대학시절 4년간 19.5점을 때려박았다. 하지만 그 능력이 NBA에서 통용되지는 못했고, 4년간의 프로생활 이후엔 빠르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대학을 거쳐 현재는 네바다 대학의 감독이다. 아들들도 농구를 했고, 짧게 프로생활을 한 후 아버지를 따라 지도자의 길을 걷고있다.
28. 리키 윈슬로우
고공농구로 시대를 풍미한 '파이 슬라이 자마'의 마지막 후예. 뛰어난 운동능력이었지만 NBA에서 뛰기엔 기량이 모자랐고, 7경기 이후엔 해외무대에서 뛰어야했다. 올스타, 우승등 스페인과 터키에서 많은 영예를 얻으며 200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 이후엔 휴스턴 지역에 거주하며, 문맹퇴치를 위한 자선사업을 하고있다. 마이애미에서 뛴 저스티스 윈슬로우의 아버지이다.
33. 토니 화이트
대학시절 한경기 51점을 뽑을만큼 득점력이 있던 가드였지만, NBA에선 루키시즌 3개의 팀을 떠돌며 49경기에 5.3점을 올리며 뛴것이 전부였다. 이후 해외무대로 건너가 득점왕, 우승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200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2018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나 골수이식을 받았고, 2025년 테네시대학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36. 듀안 워싱턴
루키시즌을 보내자마자 코카인 사용으로 2년간 출장징계를 받았다. CBA를 전전하다 92-93시즌 클리퍼스의 부름을 받았으나 4경기 무득점에 그친것이 그의 NBA커리어 마지막이었다. 2000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NBA에서 두시즌을 뛴, 듀안 워싱턴 주니어가 그의 아들. 데릭피셔의 이복형이기도하다. 2012년 뺑소니 사고를 치고 복역하기도했다. 그 때문에 주니어는 매체에 나올때 주니어를 빼버려야했다고.
39. 빈센트 에스큐
14경기만에 76ers 에서 방출된 에스큐는 하부리그를 전전하며 절치부심했다. CBA MVP를 리핏하며 기량을 가다듬은 에스큐는 워리어스의 부름을 받았고, 여러팀을 돌다 당대의 강팀 시애틀에 자리를 잡는다. 뛰어난 수비와 팀플레이로 95-96 시카고와 자웅을 겨뤘던 시애틀의 핵심 벤치멤버로 뛰었다. 은퇴 이후엔 지도자 생활을 잠시했었고, 은퇴 이후론 자선사업과 강연을 한다고 전해진다. 버논 맥스웰이 빈센트가 자신에게 돈을 빌려가서 갚지않고 있다고 팟캐스트에서 폭로했다. 현역시절, 이래저래 조금씩 돈을 빌려다 안갚았다고.
40. 윈스턴 갈랜드
늦은 순번으로 뽑혔으나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는등 12.4득점에 6.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루키 세컨팀에 선정되었다. 그 이상 성장을 이뤄내진 못하고 7시즌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후엔 아들교육에 헌신하여, 1라운드 5픽으로 키워냈다. 다리우스 갈랜드가 그의 아들.
45. 브래드 로하우스
7풋의 키에 섬세한 슛터치를 가졌던. 현대 스트레치 빅맨의 초기버젼쯤 되는 선수. 당대 전쟁터였던 골밑을 사수하기엔 마른체격이었지만 큰 키로 나름대로 블락은 해줬으며, 92-93시즌엔 2.9개의 3점을 시도(.370)할만 전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1년을 NBA에서 뛸수있었다.
은퇴 이후엔 상업용 항공기 중계, 부동산 개발등 사업가로 일하고있다. 이 특별할것 없는 선수가, 90년대 아케이드 게임 'NBA JAM'에 블루 에드워즈와 함께 대표 선수로 나왔는데. 당시 밀워키엔 정말로 그럴듯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
68. 빌리 도노반
NBA에서 1년, CBA에서 1년을 뛴 후 장기적으로 프로 선수로 미래가 밝지않다는걸 깨닫고, 월가에 취직을 했었다. 이게 적성에 맞지않았던 도노반은 대학시절 은사의 도움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감독으로는 노아, 호포드등과 함께하며 NCAA정상에 2번 연속 오르는등 많은 명성을 쌓았으나, NBA 무대에서는 신통치않았다. 올해를 끝으로 시카고의 사령탑 자리를 내려놓았다. 여담 - 주식중개인이 적성에 맞지않았던것과는 별개로, 주식으로 제법 큰 돈을 만졌다고.
74.조 알라우크스
4라운드 74순위. 단 한시즌. 9경기가 NBA 커리어의 전부. 하지만 유럽무대에서 그는 전설이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엔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호흡을 맞추며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이외에도 많은 활약과 우승으로 2018년 유럽농구 역사상 위대한 101인에 선정되기도 했다.은퇴 이후엔 유로리그의 공식 해설가이자 분석가로 활동중이다.
75.크리스 더들리
1형 당뇨병을 어릴적부터 앓았던, 예일대학에서 정치와 경제학 학위를 복수전공한 이력의 이 센터는. 통산 야투율이 .412에 자유투는 .458득점은 3.9점에 불과하지만, 매 쿼터 혈당을 체크해가며 전투적으로 골밑을 지켰고, 무려 16년을 NBA에서 뛰었다. 한 포제션에서 슈팅파울-테크니컬파울-바이얼레이션으로 총 5개의 자유투를 던졌는데, 모두 실패한 이력이 있다. 0분출전 2테크니컬, 퇴장이란 이색적인 기록도 가지고있다. 은퇴 이후엔 자산관리사가 되어 활동해왔고, 2010년 주지사를 목표로 정치에 뛰어들었으나 낙선했다. 2026년 다시 오레건 주지사 공화당 후보로 재도전하고있다.
79. 잭 헤일리
9시즌 통산 9.6분, 3.5점을 넣은 별볼일 없는 선수였지만, 위대한 72승 불스의 일원이었다. 95-96당시 1경기, 7분을 뛰며 6개의 슛을 던진게 출전의 전부였지만. '로드맨의 베이비시터'로 제 역할을 다 했다(선수 본인들 불쾌해했지만). 파이널 6차전, 팀을 이탈하려고한 로드맨을 달랜것도 헤일였다고(6차전 로드맨은 19개의 리바운드를 따냈다). 스퍼스시절 로드맨이 같이 게이바에 가자고했을때, 불쾌해하지않고 어울렸던게 헤일리였고 그 계기로 친해졌다고한다. 은퇴 이후론 방송일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로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2015년, 심장질환으로 불과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07. 바트 코포예드.
루키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스타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질기게 수비하며 인상을 남겼던 이듬해 소포모어 시즌. 새해맞이 행사에서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갔던 코포예드는 주요 로테이션 멤버인 바비 한센과 말다툼을 벌였는데, 원펀치에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혔고, 한센은 한달동안 결장했다. 1월 2일 코포예드는 빠르게 방출되었다(...) 총 5시즌을 NBA에서 뛰었다. 은퇴 이후엔 요식업을 운영하며, 데이비드 톰슨과 바비 존스라는 스타들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청소년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2xSalt Ministry라는 비영리 기독재단을 설립해 운영중이다.
127. 사루나스 마르치울리오니스
나이제한으로 지명이 무효화된 마지막 케이스에 이름을 올린선수. 89년 NBA에서 뛴 최초의 소련출신의 선수이기도하다. RUN-TMC의 핵심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91-92시즌 올해의 식스맨 2위에 올랐다. 88년 소련 대표팀으로 참가해 금메달을 땄던 마르치울리오니스는 92년 대회에 나가기엔 예산이 부족했던 조국 리투아니아를 위해 적극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인 덕분에 리투아니아는 결국 참가할수있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구소련의 연합팀, 독립국가연합을 상대로 82-78로 신승하며 모국에 동메달을 안겼다. (이 스토리는 '또다른 드림팀'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었다) 네이스미스 명예의 전당과 FIBA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은퇴이후론 리투아니아에서 농구계를 위해 일했으며, 최근엔 아들의 경기를 보러다닌다고. 유로스텝을 실질적으로 NBA에 처음 선보인 인물로 여겨진다.
언드래프티
앤드류 게이즈
NBA에서 그는 98-99 스퍼스의 벤치멤버로 19경기에 출전했고 우승반지가 있다는것 이외에 특별한것 없는 선수였지만, 고국 호주에서는 그냥 전설로 통한다. MVP7회, 15회 퍼스트팀, 득점왕 14회. 통산 30.9점. 5회연속 올림픽 진출. 오스카 슈미트에 이은 올림픽 득점 2위. 호주의 MVP트로피의 이름이 앤드류 게이즈 트로피이다. 22년부터는 35년간 멜버른 타이거즈의 감독을 맡았던 아버지 린지 게이즈에 이어 멜버른 타이거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데이비드 우드
88년 루키시즌. 2회 출전 1분 출장. 그 어떤 스탯도 기록하지 못한것이 그의 프로 데뷔였다. 하지만 굴하지않고 노력한 우드는 7시즌을 NBA에서 살아남았다. 98년 직장폐쇄로 NBA선수들이 출장하지 못한 미국 농구 대표팀 선발되었다. 최약체로 분류되었던 당시의 평가를 이겨내며 우드는 베테랑으로써 팀을 이끌며 동메달을 따냈다. 은퇴 이후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현재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 MAGA 되시겠다.
스캇 브룩스
정교한 슛터치를 가졌지만 5'11의 단신 백인가드가 드래프트 되는 일은 없었다. CBA에서 독하게 허슬을 펼치며 CBA루키팀, 우승을 차지하며 이듬해 세븐티식서스에서 뛸수있었다. 그 이후로 무려 10시즌을 버텨내며 벤치멤버로 NBA의 일원이 되었다. 휴스턴 시절엔 세번째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우승반지도 하나 따냈다. 은퇴 이후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10년 올해의 감독상도 수상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현재는 레이커스에서 JJ레딕을 보좌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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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써야지 써야지 1년이 넘었네요. 언제까지 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좀 더 해보겠습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아는 선수, 이름은 들어본 선수들이 많네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오 87년도 진짜 화려한 멤버였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잼있어요~~
이런 좋은 글에 추천 기능이 없다니....
감사합니다!
피펜도 윌트 못지 않네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피펜 관련 내용은 팩트를 교묘하게 뒤틀어 놨네요. 피펜 입단 전 시즌(조던3년차)에 2옵션이 찰스 오클리 3옵션이 존 팩슨인 상태로 이미 거의 5할까지(40승 42패) 올려놨고 조던의 4년차 시즌이자 피펜이 루키로 거의 활약이 없던 시즌 이미 50승까지 올려 놨습니다. 그 다음 시즌도 47승이고 마찬가지로 피펜의 활약은 아직 미비했고 피펜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건 9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죠.
그래서 '악의적인 팩트'라고....;;; 농담한겁니다;;;
기다리던 시리즈
재밌게 봤습니다
올드 팬으로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고인이 되신 분이 많네요. 그나저나 피펜형 대단하시네.
오랜만에 글 너무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피펜 형아 진짜 어우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