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를 찾는 분들의 내방 이유를 살펴 보면,
과도한 자기 검열이나 끊임없이 돌아가는 과잉 사고로 인해 괴로워하시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렇게 정신건강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땐,
기분을 쇄신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데,
보통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취미 활동입니다.
인간은 좋아하는 걸 하며 행복감을 느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취미 활동이야말로 정신 에너지를 생성시키는 원천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 이를테면, 수원(水原)이라고 생각해 보자.
물을 쓰기만 해서 수원이 점점 말라간다면 곧 그 지역은 단수가 될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를 쓰기만 하고 다시 채워넣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곧 에너지 고갈(번아웃)에 시달리게 된다.
통상적으로 보자면,
멘탈이 완전 꺾여 취미 활동마저 스킵하며 지내는 경우가 예후가 가장 안 좋고,
(ex. 좋아하던 것들도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냄)
루틴이 무너지지 않아 취미 활동을 통해 연명하는 경우는 조금씩 심리 상태가 우상향하게 돼요.
(ex. 기분은 거지 같아도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꾸역꾸역 버텨 나감)
그래서 전 내방하신 분들께 꼭 취미 활동에 대해 여쭈어 봅니다.
취미 활동이 뭐고, 취미 활동을 평소에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알 수 있어도,
그 사람의 과거-현재-미래의 내적 상태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취미 활동이 꼭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역할에만 한정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취미 활동들은 에너지 낭비를 막아주는 에너지 세이버 역할을 하기도 해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것 같은 일들,
이를테면, 킬링타임용 취미 활동 같은 것들 말이죠.
킬링타임 = 힐링타임
킬링타임용 취미 활동이 인간,
특히나 내향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간단한 신경과학 정보를 하나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뇌 활동에는 크게 두 가지 모드가 있습니다.
DMN(Default Mode Network)과 TPN(Task Positive Network)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즉 DMN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활성화됩니다.
반면, TPN은 현실 과제에 집중할 때 활성화되는 모드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DMN입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멍만 때리고 있다고 해서,
우리 뇌까지 개점 휴업 상태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DMN 상태일 때 우리 뇌는 여러가지 필수적인 과제들을 수행하고 있죠.
<내면 정리 작업>
① 자기반성 (self-reflection)
② 기억통합 (memory consolidation)
③ 미래예측 (simulation of the future)
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DMN : 내면 세계 정리
TPN : 외부 세계 체험
즉, 인간의 신경망은 TPN과 DMN을 끊임없이 오고가며 정보를 얻고 정리해 나가는 것이죠.
여기서 눈치 빠르신 분들은 벌써 예감하셨겠지만,
이게 성격적인 요소와도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어떤 성격?
DMN : 내면 세계 정리 - 내향인 우세
TPN : 외부 세계 체험 - 외향인 우세
아마도 뇌과학이나 심리학 쪽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멍 때리는 시간이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내용의 컨텐츠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건 외향인들에게만 통용되는 내용(!!!)입니다.
외부 자극을 추구하는 외향인들의 경우,
DMN보다 TPN 쪽이 항상 우세하기 때문에,
내면의 바탕화면이 정리되지 못한 채 폴더들이 우후죽순 난립하게 되죠.
이러한 상태가 신경망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멍 때리는 시간을 통해 DMN을 의도적으로 활성화시켜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럼 내향인은?
반대로 DMN이 항상 우세하기 때문에,
내면의 정리 작업에서 그치지 않고, 이게 반추(Rumination)로까지 과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끊임없이 과거의 시간들을 되새기며 생각의 늪에 깊이 침잠하게 되는 것이죠.
이를테면, 이미 폴더 작업은 완료됐는데, 이걸 무의미하게 계속 반복하는 행위 같달까?
따라서, 내향인들은 정반대로 TPN을 켜 줘야 합니다.
시끄러운 머릿속 생각들을 끄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감각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죠.
외향인 :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멍 때리기"로 안정
내향인 :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감각 자극"으로 안정
그렇다면, 내향인들의 뇌는 어떤 활동을 통해서 TPN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향인들의 경우, 외부 자극에 상대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너무 강한 자극은 오히려 신경망을 과자극하여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① 저자극 에센스처럼 은은하고 잔잔한 자극들이 필요하죠.
또한, DMN으로부터 멀어져야 하기에 ② 생각이 강요되는 깊이 있는 컨텐츠들도 금물입니다.
이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생각없이 할 수 있는 킬링타임용 취미 활동들입니다.
ASMR, 여행 다큐, 브이로그, 뜨개질, 잔잔한 일상물 드라마나 영화, 만화, 동물의 숲 같은 키우기 컨텐츠 등등.
그래서 저는 과도한 자기 검열과 과잉 사고로 고통받는 분들께
생각을 멈추려 애쓰지 말고, 몸이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시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TPN이 켜지며, 머릿속 과부하에서 해방되기가 한결 수월해지거든요.
아마도 많은 분들께서 이미 경험하고 계실 겁니다.
머릿속 생각을 멈추기 위해,
주의분산(Distraction) 전략으로 그냥 유튜브를 틀어놓거나 TV를 틀어놓고 있는 거죠.
그게 나에게 특별한 의미나 즐거움을 주진 못해도,
즉, 에너지 충전이 되진 못하더라도,
과잉 사고를 방지함으로써 에너지 낭비를 막는데는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런 의미없는 킬링타임용 취미라 할지라도,
내향인들에게는 또다른 의미의 힐링타임일 수 있습니다.
취미가 뭐, 남들이 보기에 있어 보이거나 꼭 생산적인 필요가 있을까요?
나를 살릴 수 있고, 나에게 꼭 필요한 취미라면,
나부터가 그러한 활동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지만,
그러한 활동들을 통해 진정으로 회복하고 성장해나갈 수 있습니다.
내향인들이 머릿속 생각에서 해방돼,
지금 여기(Here-and-now)로 돌아올 수 있기를 언제나 응원합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NBA 게시판에 잘못 업로드됐네요. 죄송합니다. 운영자 분들께 관련 게시판(무명자의 알기 쉬운 심리학)으로 이동 부탁 드립니다. (꾸벅)
안녕하세요, 확인하여 이동조치 하였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저도 항상 감사드립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위안이되었어요
이미 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새롭게 배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