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고은 (고은태) 출생 : 1933년 8월 1일 신체 : 키173cm, 체중69kg 출신지 : 전라북도 군산 직업 : 시인 학력 : 군산고등학교 데뷔 : 1958년 현대문학에 '눈길', '봄밤의 말씀' 발표 경력 : 2007년 2월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2005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위촉 수상 : 2007년 그리핀 시인상 평생공로상 2007년 노던 캘리포니아 북 어워즈 수상 대표작 : 산천을 닮은 사람들, 그대는 내가 죽어도 못 잊을 사랑입니다 산하여 나의 산하여
남대문 폐허를 곡함
/ 고 은
머리 풀고 울어에야 하리 옷 찢어 던지며 분해야 하리 오호 통재 이 하루아침 남대문 폐허를 어찌 내 몸서리쳐 울부짖지 않으랴 돌아보라 6백년 연월 내내 한결이었다 이 도성 남녀노소들 우마들 이 나라 이 겨레붙이 모진 삶과 함께였다 혹은 청운의 꿈 안고 설레어 여기 이르면 어서 오게 어서 오시게 두 팔 벌려 맞이해 온 가슴인 나의 남대문이었다 혹은 산전수전의 나날 떠돌이 하다 여기 이르면 어디 갔다 이제 오느뇨 활짝 연 가슴 밑창으로 안아줄 너의 남대문이었다 단 하루도 마다하지 않고 단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지켜서서 숙연히 감연히 의연히 나라의 기품이던 저 조선 5백년 저 한민족 1백년의 얼굴이었다 온 세계 누구라도 다 오는 문 없는 문 온 세계 그 누구라도 다 아는 만방 개항의 문 정녕 코리아나의 숨결 서울 사람의 눈빛 아니었던가 이 무슨 청천벽력의 재앙이냐 이 무슨 역적의 악행이냐 왜란에도 호란에도 어제런듯 그 동란에도 끄떡없다가 이 무슨 허망의 잿더미냐 여기 폐허 땅바닥에 엎드려 곡하노니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멈추지 말고 떨쳐 일어나 다시 바람 찬 천년의 남대문 일으켜낼지어다 여봐란듯이 저봐란듯이 만년의 내일 내 조국의 긍지 우뚝 세워낼지어다
<사진: 출판기념회에서>
고은 시선집/『어느 바람』(창작과비평사. 2002) 서평
큰 시인 큰 세계
고은 시인이 시선집 『어느 바람』을 펴냈다. 축하할 일이다. 알려진 바처럼 고은 시인은 당대 최고의 시인 가운데 한 분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작품의 수준이나 양으로 봐서도 명실공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게 시단의 중평이다. 그간 발간한 저서만도 순수 단행본 시집을 비롯하여 장시, 서사시집, 소설집, 비평서 등 100여 권에 해당되는 다작의 시인이다.
시선집 해설에서 백낙청 교수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런 다작 때문에 정작 고은의 시를 제대로 정독하거나 성실하게 읽는 독자는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도 고은 시인의 시집 등 저서를 웬만한 것은 다 갖고 있지만 워낙 작품의 양이 많아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아득한 사막 한 가운데 선듯한 느낌이 들어 대충 읽고 그냥 밀쳐 놓기 일쑤였다.
고은 시인에 대해 적어도 나같은 느낌을 갖고 있는 독자에게 이번 시선집은 반가운 선물인 셈이다. 고은의 고희를 맞아 중견시인 네 분과 평론가가 동원된 이번 작업은 독자들에게 고은의 시세계를 정수만 뽑아 보여준다는 서비스 측면 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고은 문학 연구의 한 계기로도 작용할 성 싶다.
대부분의 고은 시인의 독자들이 갖는 의문은 고은 시세계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그리고 고은 시인은 과연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써왔고 또 그런 자신의 다작 성향에 대해 정작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점이다. 이와 함께 약간 세속적인 관심은 매스컴에서 자주 거론되 듯 중국의 시선(詩仙)이라는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처럼 한국 시단에서는 고은과 신경림 시인의 관계가 자주 비교되는데(당사자들은 이런 비교를 반기지 않을 지 모르지만) 과연 신경림 시인은 고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가 하는 점이다. 이 글은 이런 점에 촛점을 맞춰 쓰겠다.
신경림 시인은 『시인을 찾아서·2』고은 편에서 고은을 큰 시인으로 부른다. 작품의 양과 질 양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은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그의 시의 성격을 몇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끊임 없이 그리고 발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그의 시여서, 이렇구나 싶으면 저렇고, 여기 와 있구나 하고 보면 벌써 저 만치 딴 데 가 있다. 아니, 변화란 그의 시에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지 모르겠다. 끝없이 나아가고 끊임없이 부딪친다는 표현이 오히려 맞을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덧붙여 승려로 출발하여 허무주의 시인으로 방황하다가, 다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기수로 온갖 고난을 다 겪고, 다음에는 선과 지혜와 생명 사랑의 시인으로 변모하고 거듭난 고은 시인의 인생역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데 이 지적 역시 고은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이면서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번 시선집도 허무주의 탐미주의 시와 반독재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의 도도한 역사의식의 민중통일시, 그리고 근래의 선(禪)과 생명시가 실려 있다.
고은 시인은 한 좌담에서 "80년대 중·후반에도 가령 『만인보』를 하루에 50편 정도 썼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루 여섯 시간에 집중적으로 소설 160장을 쓴 것이 기록이었습니다. 그것은 워낙 잡지사의 독촉이 심해서였고 요즘은 하루 50장을 넘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손을 아끼고 있습니다."(신경림·백낙청 엮음 『고은 문학의 세계』 창작과비평사 1993)라고 밝히고 있다. 잡지사의 원고 청탁에 쫓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마감 기한이 지났을 때의 시달림이나 스트레스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고은 시인처럼 전업 문인인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글을 쓰기 마련인데 이런 시달림에 노출되었을 빈도도 그 만큼 큰 셈이다. 이 진술에 미루어 보건데 고은 시인의 모든 작품이 언제나 넘치는 충일한 창조력이나 쓰지 않으면 안 될 내적 필연성 때문에 글을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되레 자본주의 아래서 생존해야하는 시인의 안타까운 숙명이나 혹시나 허명(?)에 쫓기는 듯한 시심을 떠올리기가 더 쉽다.
또다른 한 대담에서 고은 시인은 자신에게는 무속인 기질이 있어 자기 내부의 무당이 입을 열면 시가 소낙기처럼 쏟아져 나온다거나(『시경』창간호. 「한국시의 오늘과 내일」 고은·오봉옥 대담), 시인 10명이 들어 있어 서사시 쓰는 시인도 있고 선시 쓰는 시인도 있다는 투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신경림·백낙청 편 같은 책). 보통 사람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선뜻 납득이 어려운 점도 있는 대가의 발언이지만, 인생에서 해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예술의 시초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발언을 상기해보면 굳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이런 고은 시인의 발언들은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게 도움을 준다. 그의 왕성한 다작, 그의 시가 갖는 비약과 선적인 요소, 민중적 에네르기의 강렬함 등은 고은의 이런 발언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게 간다.
자신의 다작에 대해 고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근래 창간된 시전문지『시경』권두 좌담에서 그는 빅토르 위고나 괴테와 비교하면서 자신은 다작이 아니라 중작(中作)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다작을 너무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파악하지 말라, 우리 근현대문학사의 부피가 두껍지 않아서 그렇다는 항변을 하고 있다. 고은 시인의 이 주장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우리나라 문인들의 소작주의는 게으름의 결과이지 문학적 염결성의 상찬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머리를 돌려 다른 이야기 좀 해보자. 한 기록에 의하면 한국문단에 문학상이 180여개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영직) 명색이 문단 데뷔 20년이 가까워 오는 시인인 나는 이 많은 상 가운데 그 흔해빠진 수상 후보에도 오른 바 없는 정도니까 상에 대해 관심도 없을뿐더러 차라리 냉소적인 입장인데, 그러니 노벨상이라고 특별히 내가 높이 쳐줄 까닭도 없다. 그런데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을 국내 언론을 통해 접했다.
나는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남들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황성한 창작 열정 하나만으로도 자격은 충분하다. 근래 문단 일각에서 고은 시인이 6·15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연회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과 노래 부른 것을 두고 정치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은의 이런 행동은 그가 추구해왔던 민중시운동, 통일문학운동의 한 과정으로 파악해야지 평소 순수문학을 주장하면서 친일행위나 군사독재시절 대통령의 생일에 맞춰 축시를 갖다 바치는 따위의 행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고은의 시에 대해 논의를 해보자. 흔히 많은 비평가들은 고은 시에 보이는 비문법적 통사구조나 뒤틀린 조사 쓰임 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식민시대 머슴 대길이에게 언문을 배운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민중들이 우리에게 우리 모국어를 보여준 것이지요. 이것은 게급의식으로서의 민중과 비민중 구분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에 관한한 그래왔던 것이지요...... 언어의 중심은 구어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시에서 근대까지 있었던 구어를 어떻게 재대응 시키는가 하는 점, 현대와 근대의 언어생활 속에서 시를 형상화 시킬 때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냥 선천적으로 그 언어에 내가 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내 생각은 자동기술적이어야하지 사전에 그 의미를 찾아서 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 역대 조선 민중들이 조상대대로 내려 왔던 민중적인 언어의 구어가 오늘의 시를 있게 하고,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요.(『시경』박이정, 2002. 50쪽)
이 주장을 읽어보면 고은 시에 보이는 빈번한 조사 오용과 비문은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민중언어적, 구어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언어가 갖는 문어의 문법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수사활용과 생동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데서 오봉옥의 주장처럼 창조적 오용이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인은 모국어를 갈고 닦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또달리 상세한 논의를 해봐야 할 것같다.
이번 시선집에 실린 150편의 시 가운데 나는 개인적으로「詩人의 마음」「文義 마을에가서」「청진동에서」「화살」「자작나무 숲으로 가서」「조국의 별」「역사로부터 돌아오라」「골리앗 크레인」등의 작품을 좋아한다. 이 가운데 고은 시인의 초기 작품이면서 그가 시를 근원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한 편을 읽어보겠다.
시인은 절도 살인 사기 폭력 그런 것들의 범죄 틈에 끼여서 이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태어났다
시인의 말은 청계천 창신동 종삼 산동네 그런 곳의 욕지거리 쌍말의 틈에 끼여서 이 사회의 한 동안을 맡는다
시인의 마음은 모든 악과 허위의 틈으로 스며나온 이 시대의 진실 외마디를 만든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다른 마음에 맞아 죽는다
시인의 마음은 이윽고 불운이다 -「詩人의 마음」전문
고은의 초기 시이지만 초기 작품이라기보다는 그가 민중시에 몰두할 때의 시처럼 느껴진다. 범박하게 이해하자면 첫 연은 시인의 신원 소재 즉 민중성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 연은 시적 언어의 민중언어를 말한다. 그리고 세째 연은 시의 시대적 역할과 내용을 말한다. 시는 시대의 불의와 악과 어둠과 싸우고 진실을 말해야한다. "그 마음은/ 다른 마음에 맞아 죽는다"는 표현은 시인의 아니 시의 자기갱신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하더라도 자기 갱신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타성이요 관료주의이다. 그런 점에서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긴장하면서 줄기찬 자기 갱신을 보여준 고은의 시적 궤적과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 연 "시인의 마음은 이윽고 불은이다"는 형태적으로 고은 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윽고'라는 부사의 돌연한 쓰임과 '불운'과 같은 개념어를 동원해 앞의 부사와 마찰하면서 빚어내는 시적 분위기는 고은 시의 장기이다. 그리고 내용도 시인의 마음은 불운이어야 한다는데 공감이 간다. 왜냐하면 시인의 마음이 행복이라면 그것 역시 이미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 김용락(시인, 문학평론가)
<출처 :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 김용락>
고은 시모음
고은(高銀 1933 ~ )
시인, 재야인사
1. 출생 및 성장
1933년 4월 11일 전북 군산 출생. 본명은 은태(銀泰), 법명은 일초(一超). 군산중학교 수학 중 한국전쟁 발발. 1952년 입산, 효봉선사의 상좌가 됨. 이후 10여 년 동안 수선(修禪)과 방랑생활을 하다 1962년 환속. 1956년 [불교신문] 창간. 1958년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장,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민족예술인총 연합회 의장등을 역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1975), [고은 전집] 발간(1988), 제3회 만해 문학상 수상(1989), 장시집 [만인보] 발간(1989),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수상(1991)
2. 활동 및 작품경향
1958년 [현대시]에 시 <폐결핵>이,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이 추천되어 등단.
60년대 : 허무의 정서에 바탕을 둔 생에 대한 절망을 노래. 시적 자아의 형상에는 삶에 대한 의지나 집착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짐. 허나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심미적 탐닉의 대상이며 초기 시적 언어는 지나치게 탐미적이고 감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정서의 편린을 표출하고 있음. -작품 :<피안감성>('60), <해변의 운문집>('64), <신 언어의 마을>('67)
70년대 : 시적 자아는 자기 혐오나 허무감을 떨치고 역사와 현실 앞에 서기 시작하며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민중 중심의 역사관에 바탕을 둔 자기 인식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격렬한 투쟁의지를 노래.고은의 시적 변모는 이전 시에서 보여지던 삶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생의 무상함에 대한 인식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작품 :<문의마을에 가서>('74), <입산>('77), <새벽길>('78)
80년대 이후 :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다면성을 그려내려 시도. 연작시 <만인보>와 장시 <백두산>이 창작됨. -<백두산>은 역사에 대한 신념을 서사적으로 구성한 것이고 <만인보>는 민족의 삶과 그 진실을 서정의 언어로 통합시켜 놓은 작품.
시집 : [피안감성(彼岸感性)(1960)], [해변(海邊)의 운문집(韻文集)(1963)], [신 언어의 마을(1967)], [새노야(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부활(1975)], [제주도(1976)], [입산(1977)], [새벽 길(1978)], [고은 시선집(1983)], [조국의 별(1984)], [지상의 너와 나(1985)], [시여 날아가라(1987)], [가야 할 사람(1987)], [전원시편(1987)], [너와 나의 황토(1987)], [백두산(1987)], [네 눈동자(1988)], [대륙(1988)], [잎은 피어 청산이 되네(1988)], [그 날의 대행진(1988)], [만인보(1989)], [독도(1995)] 등 다수
소설집 : [피안앵(彼岸櫻)(1962)], [어린 나그네(1974)], [일식(日食)(1974)], [밤 주막(1977)], [산산히 부서진 이름(1977)], [떠도는 사람(1978)],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1980)], [어떤 소년(1984)], [화엄경(1991)]
고은(75) 시인에게 2008년은 뜻 깊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게 1958년. 올해로 등단 50년이다. 올해는 우리 현대시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의미 있는 새해 첫날에 그는 본보에 사유로 가득 찬 에세이 ‘고은의 지평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9일 만난 시인에게 시력(詩歷) 50년을 맞는 소감을 묻자 “현대시 100년과 겹치기도 해서인지 2008년은 문학적 운명 의식을 절감하는 해”라고 말했다.
그의 기억은 현대시 100년을 아우른다. 현대시의 효시 육당 최남선을 만나 ‘오래된 바위처럼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말솜씨가 근사했던’ 인상을 받았고 춘원 이광수의 부인이 눈을 빛내며 들려주는 남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도 했다.
중학생 때 길에서 한하운의 시집을 주워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그는 그전에 자신을 뒤흔든 시인이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 들어가서 배운 첫 시가 이육사의 ‘광야’였어요. 거기엔 말입니다, ‘광야’라는 공간이 있고, ‘천고’라는 시간이 있고, ‘초인’, 그것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습니다. 시 한 편에 그야말로 위대한 시간과 공간, 인간이 있는 것이죠.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시는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지요. 6·25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약간 수준 낮은’ 화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웃음).”
그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그림 솜씨를, 본보에 연재하는 ‘고은의 지평선’에 처음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의 시력(詩歷)은 상처 많은 한국 현대사와 겹쳐진다. 초기의 탐미적이고 허무적인 시세계는 문학과 예술 자체에 대한 탐닉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순정이 찢긴 시골 청년이 갈 수 밖에 없던 길이었다.
그때 가장 기억난다는, 1962년 제주도행 배 위의 하룻밤.
“처음엔 배에서 뛰어내려 죽어 버리려고 했어요. 술을 잔뜩 먹고 취한 김에 감행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먹어도 취하질 않아서….”
결국 제주도에 닿아 살게 됐다. 3년 뒤 서울로 와서도 매일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서 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전태일의 분신(1970년) 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고선 충격을 받았다.
“젊었을 때 몇 번 자살을 시도했는데 내가 죽으려던 것과 이 사내의 죽음을 나란히 놓아보고…, 그러다 보니 환경, 상황, 시대, 민족, 사회가 나오게 되더군요.”
1970, 80년대 저항의 시기, 그의 도드라진 기억이다. 이후 그는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발언하기 시작했다. 자유실천모임협의회 결성, 1987년 6월 항쟁 중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현재 한국작가회의) 창립…. 이 시기 그는 네 번의 감옥 생활과 잦은 구금, 연금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았다. “당시 받았던 탄압과 감옥, 그리고 온갖 불이익은 차라리 축제였다”고 기억하는 때다.
시인은 1990년대 이후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선시(禪詩)의 세계로 접어든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시세계이기도 하다. 이 변화에 대해 그는 “모순의 끝에 존재하는 조화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이라며 “‘동지들끼리의 무도회’가 아니라 낯선 것들과 만남으로써 큰 조화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말 시집을 냈을 때도 “갈등을 품을 수 있는 중도가 모자란다. 좌우는 얘기하는데 중도가 설 자리가 없다”면서 ‘조화’와 ‘중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본보 연재물 ‘고은의 지평선’에 대해서도 설명을 더했다.
“많은 사람이 ‘스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머무는’ 문화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사유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사유가 우리 영혼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란 걸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겁니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지 수년. 시인은 외신에 이름이 나오고 국내에서 관심을 주면 어깨에 가당찮은 짐을 진 것 같다고 한다.
이 세계적인 시인은 올해도 분주하다. 2월에 스페인의 말라가 시청 광장에 세워질 자신의 시비를 보러 가고 3월 중 ‘만인보’ 완간을 계획하고 있으며 4월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시인대회에 참가한다. 6월에는 그리핀공로상을 수상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한다.
(김지영기자)
<시가 머무는 곳 / 신숙>
시인 고은, "盧대통령 언어는 대통령의 언어 아니다"
원로시인 고은(74)씨가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는 일단 대통령의 언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노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또 연말 대선을 앞두고 시끌시끌한 정치권에 대해서도 "자신만이 진리요 정의라고 외치는 입만 있지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귀는 없다"고 질타했다.
고은 시인은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광화문문화포럼(남시욱 회장) 주최로 열린 제73회 아침공론 마당에 강연자로 참석, "최근 대통령과 언론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한 회원의 질문에 "(파격적 언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미증유의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언어에는 위선적 품위나 품격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명분을 벗고 적나라한 언어를 하는 것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치에서(품위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필요한 자격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은 씨는 또 "나는 역대 대통령의 언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사람은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명에 불과했다"고 회고한 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늘 문장화된 문자언어를 썼으며 비서가 써주는 문장이 아닌 자기만의 문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장면 전 총리는 정치보다 종교를 우선하는 사람이었다"며 "종교를 내세워 정치를 하려는 것은 신정정치 시대에나 있는 것으로 현대의 정치 논리에는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은 씨는 "최근 언어들이 참 뜨겁다. 나도 올 대선용으로 발언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러 발언들이 나오고 있어 내 언어는 필요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집에서 시나 쓸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시인은 인간-인간, 산자-죽은자, 인간-우주 등 만물의 '만남'과 '소통'을 주제로 60여 명의 광화문문화포럼 회원들을 상대로 1시간30분 가량 강연했다.
특히 시인은 눈, 코, 입 등 사람의 신체기관을 통한 안과 밖의 만남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대선 정국 아래에서는 자기 언어만이 진리고 정의다. 자신의 입만 알지 귀의 소중함은 잊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는 귀는 없고 입만 필요한 시기에서 뜨겁게 살고 있다"며 현 정치권을 향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세계와의 '만남'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20세기적 논리였던 민족"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고은 씨는 "20세기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자아의 집합체인 민족을 내세웠다. 겨레가 망가졌을 때 겨레를 꽃피우는 것은 우리의 지상과제였으며 유일선이었다"며 "그러나 21세기는 근대적 자아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민족이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야한다. 내가 세계화주의자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시대며 종교에서도 유일신이 아닌 범신론의 세계가 될 것"이라며 "문화는 교역상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