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山寺를 다시 출간하며

[숲과사람(강영란)]

다시 山寺를 출간하며


지금도 산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오랜 세월 그곳을 일삼아 드나들고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산사는 신생의 숲처럼 싱그럽다.  

암자로 오르던 대숲의 바람소리가 생각난다.
비안개 자욱한 봄날, 우화루에 올랐던 추억이 그립다.
스치듯 지나던 수행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본 적도 있다.
산비알에 올라 겨울 산사를 내려다보는 일처럼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늘 그리운 것은 저녁 어스름에 두고 온 산사의 적막과 쓸쓸함이다.

그러나 나의 연모는 여전히 먼 길을 서성이는 배후자와 같았으니
특별히 깊어지거나 그림자를 드리울 도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애초 세 권쯤으로 산사를 펴낼 생각이었는데 
이내 마음이 시들해졌다.
나의 말들이 너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탓이었다.

세월이 십년 쯤 흘렀다. 
출판사는 묻을 닫고 책은 잊혀졌다.
그렇게 묻어둔 일이었는데 지난 해 영문판 번역작업이 시작되었고
프라하에서 체코어로 곧 출판된다는 소식이 찾아왔다.
또 학연문화사 권혁재 사장님이 개정판을 내겠다고 했다.
시절 인연이 다시 찾아왔음인가.
사진첩을 들추어 옛사랑을 그리듯 새 단장을 하게 되었다.

내 마음의 산사는 오래된 마을처럼 여백이 깊다.
산사의 길을 걷다보면 생각의 뼈들이 가지런해지고
처마 끝 허공을 울리고 가는 풍경소리처럼 명징해질 때가 있다.
슬프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 시간의 파편들이
내 마음 속에 출렁일 때를 기다려본다.

2013년 4월  무심재에서 이형권





걷지 않고 절에 가기，이형권의 <산사> - 씨네 21 서평


방방곡곡으로 부지런하게 혹은 바지런하게 산과 절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아픈 발바닥과 공기상쾌한 피로감, 그리고 세속의 찌든 때가 휘발하기 직전 
땀의 광경 속에 나타나는, 분명 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집보다 더 안온하게 자리잡은, 다시 동시에 인간-자연 너머 청정 자체가 쉬는
안도의 한숨 같은 광경으로 절을 만나는 게 제격이겠지만 
그럴 성격이나 사정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제격이다.

더군다나 요새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신세대적’으로, 젊게 제격이다. 
심지어 ‘절 취향’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조차 이 책을 한번 읽어봄직하다. 
‘구세대’ 절책들은 너무 고답적이거나 딱딱하거나 아니면 
불교에 대한 맹신(불교는 탈이론적 종교라서 맹신이 정말 무섭다)으로 
건물(혹은 불상, 탑 등등) 미학을 대신하거나 그랬었다.

이 책은 우선 사진의 내용과 수준과 배치가 
정말 오래 절을 다녀본 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닮은 듯 적절하다. 
색감이 다소 화려한 듯하지만 절의 시간적 낡음을 분식하는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살아 있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문에 은은히 밴 시적 정취가 
산문의 격을 높일 뿐 아니라 우리를 절의 마음속으로 
곧장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 시도 절도 산문도 젊어지는 대목이다. 가령 다음 같은 글.
‘초겨울 노루꼬리처럼 짧은 햇살이 머물다가 산등성이를 넘어가버리면 
추녀마루는 어느새 산그늘에 젖어 쓸쓸한 빛이 역력해진다. 
항아리 속같이 깊은 산골이라 유난히 밤이 길다는 곳, 
극락전 뒤란의 대나무숲이 몸을 뒤척이며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절마당에는 하나둘씩 초롱초롱한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표4글로 특별히 뽑아놓았지만 대부분의 글이 인용문 수준에 달하고 있다.

저자 이형권은 본 적이 없는데,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발의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약력 보니 알겠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문예운동지 <녹두꽃>으로 등단을 했네…. 
참으로 요란굉장하던, 운동권의 한 유파를 당당히 선언하고 이끌던, 
거의 피투성이로 이끌던 그 잡지 출신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토록 고결하고 유구한 서정에 달할 수 있었을까? 
그가 걸었던 길은 또 얼마나 고되고, 고된 만큼 아름다웠을까? ‘
'피안의 겅계가 어찌 먼 곳에 있으리’(개심사),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과 애달픈 상사화’(선운사), 
‘빗장을 걸어잠근 깨달음의 공간’(화암사), 
'진리의 바다를 향해 떠나가는 배’(해인사)…. 
아 정말 가보지 않아도 간 듯하구나. 모든 길은 통하는구나…. 

김정환/ 시인·소설가

도서명: 산사,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여는 곳
출판사: 학연문화사(02-2026-0544)
저자: 이형권
장정: 351쪽 양장본
가격: 28000원

[숲과사람(강영란)]

저의 벗, 30년지기 대학동창 이형권 시인이 책이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우리연구회 식구들과의 인연도 있지요.
제 벗의 영혼을 따라 여행 한번 떠나 보십시오.

[숲과문화연구회]

마침 3,4월호 신간 안내가 나가야 하는데 함게 실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