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주 2011. 5. 15. 설교문
묵상 60. 그가 상함은
묵상기도 예수님 마음은, 어머님 마음은 그런데 나의 마음은
신앙고백
찬송 469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
기도인도 노미례 집사
성경말씀 이사야 42:1~4
찬양
설교 마음
찬송 470 내 평생에 가는 길
봉헌기도
광고 어려운분 함께 하면 좋아집니다. 2층 증축
찬송 505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축도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 당신의 마음-방주연 )
어제는 토요일이었습니다.
날씨도 참 좋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벼르었 던 일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겨우내 창고에 두었던 잔디 깎기 기계를 꺼냈습니다.
혹시 녹이 슬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기름을 잔득 채우고 엔진을 힘껏 잡아 당겼습니다.
휭 ~ 휭 ~ 잘 돌아 갔습니다.
저는 머리가 좀 길어도 답답합니다.
거기에 하얀 머리가 있어 더 꺼칠하고 나이 들어 보입니다.
턱 밑에 수염도 하얀 털이 있어 면도를 하지 않으면 흉합니다.
월요일, 토요일 날은 종종 세수도, 면도도 하지 않곤 합니다.
그냥 그대로 있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제 머리와 수염대신 잔디밭을 깎아주었습니다.
약 400평되는 꺼칠한 잔디를 땀을 찔찔 흘리면서 다듬어 주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넓다란 푸른 잔디가 평온해 보였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 누워 넓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추억을 떠 올리며 불렀던 노래입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그렇습니다.
10년을 살았어도
20년, 30년을 살았어도 못 그린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의지
그리고 상상력의 복합체입니다.
또한,
마음은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비추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당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알 수 없고 그릴 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합니까?
지금 내 마음결은 아름답습니까?
지금 내 마음보는 바른지,
지금 내 마음씨가 착한지 확인 해 봅시다.
마음과 관련 된 관용어나 속담도 재미있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마음이 침울하다고 합니다.
마음에 못을 박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자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음을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분한 마음을 삭힐 때도 있습니다.
몹시 괴로워 마음이 썩을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빼앗길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간지럽다는 말도 있습니다.
치사스럽거나 겸연쩍어서 마음이 자리자리하게 느껴질 때 표현입니다.
마음이 돌아섰다.
마음이 무겁다
하고 싶지 아니한 일을 마지못해 할 때 마음 없는 염불을 한다고 합니다.
속담에 마음 좋은 녀편네 동네에 시아버지가 열이다.
마음에 없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은 걸걸해도 왕골자리에 똥 싼다.
말로는 잘난 체 큰소리를 하여도 실제로는 못난 짓만 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된다.
착한 마음씨를 지니고 살면 죽어도 유감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맞으면 삶은 도토리 한 알 가지고도 시장을 멈춤다.
가난하더라도 서로 마음이 맞으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뭉치면 물방울로 강철판도 구멍을 뚫을 수 있다
마음이 바르고 고와야 옷깃이 바로 선다.
마음이 열두 번씩 변사(變詐)를 한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도 지척인다.
서로 정이 깊고 가까우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깝게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천 리면 지척도 천 리라.
서로 정이 깊지 못하면 가까이 있어도 매우 멀게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1절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익을 베풀리라
2절입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 아니하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절입니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그린 말씀도 있습니다.
이사야 50장 6절입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 우지 아니 하였느니라
이사야53장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에게 얼굴을 가리 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절,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참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미친 바보였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은
미치지 못하면 달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요즘 TV에서 ‘나는 가수다’는 프로가 있습니다.
저는 그 프로를 보면서
가수는 노래에 미친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이소라 가수가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온 힘과 마음을 다 받쳐 부르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노래에 깊이 미쳐있었습니다.
본문의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도 미친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리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따라
3년 동안(주전713~711)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녔습니다.(사20:3)
미친 짓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에 미쳐 있습니까?
예수님은 사랑에 미쳤기 때문에 다 이루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이고 자녀입니다.
인생이
한정된 삶 안에서
생명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라면
무엇을 채우시겠습니까?
바보였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인생이,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
예수님은 참 온유하신 분입니다.
변덕스럽지도 않으십니다.
말씀도 없으십니다.
십자가상에서 죽음으로 다 이루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사람의 마음을 보려면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는 외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도 아니하였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겼습니다.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겼습니다.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았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고
우리가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완전하신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 우주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햇빛이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서도 보이듯
사소한 일이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2% 보이지 않는 ‘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격입니다.
그것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평소 괜찮았던 내가,
2%, 사소한 일로 돌변해
본심이 반짝 흐트러질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실수는 합니다.
그러나
‘나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나는 성도’입니다.
2%어리석은 순간의 행동에도 목사, 성도의 인격이 묻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나의 행동을 잘 살펴야합니다.
죽을 때가 되면
새는 슬피 운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선한 말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도 하나님께서 겪으시는 가슴앓이가 바로 나의 허물, 죄악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여린 분입니다.
어제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앉아 있노라니
바람이 불었습니다.
좀 서늘해 겉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이 상한 갈대 사이를 지날 때 저는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숨결을.
탈무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김 집사님께서
오 집사에게 충고하기를
내가 젊을 때 목사님 같은 분을 만났더라면 크게 성공 했을 것이라며
정신 차리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 집사님이 술 중독에서 빨리 회복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허물투성이인 나를 향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좀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
마지막 한 가지 남은 것은
지금은 알 수 있는
당신의 마음,
주님의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