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KSTF 회장배 코리아오픈 슈퍼시니어 테니스 대회가 양재코트에서 막이 올랐다. 대한테니스협회 주관 한국시니어연맹에서 주최하는 이 대회는 만 60세부터 80세 까지 개인복식과 혼합복식 등 대한민국 시니어들을 위한 최고의 품격 높은 대회로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꿈나무 육성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온 한국 시니어 테니스 연맹은 1987년 대한테니스협회 산하 한국 베테랑 테니스 연맹으로 창설하여 2005년 한국 시니어 테니스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88년 국제 테니스 연맹(I.T.F)에 가입했고 홈페이지(http://www.kstftennis.com/)를 만들어 시니어 국제대회 유치와 인터시티등의 국제무대에 파견하는 일들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시니어 연맹의 역사는 대한민국 테니스 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굵직굵직한 회장단만 보아도 알만하다. 작고하신 초대 홍종문 회장과 2대 민관식회장, 90세로 대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시던 3대 최재정회장, 4대 김교성 5대 김두환 현재 6대 최부길 회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멋진 노후를 예약한 수백 명의 회원이 있고 앞장서서 노력 봉사하는 임원진들의 구성 또한 탄탄하여 해가 흐를수록 명성이 자자한 가운데 올해 스물 두 번째의 대회를 열게 되었다.
만 60세 이상 최고 94세까지 출전한 이번 대회는 제주도를 비롯해 부산 광주 전주 광양등 전국 곳곳에서 참석한 반면 일본선수들까지 참석하여 대회의 위상을 높였다.
최부길 회장은 "내년부터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홍콩까지 오픈해서 글로벌대회로 정착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을 모시고 대회를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때마다 고문들과 임원진들이 큰 힘이 된다"며 국제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위한 첫 시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게임은 정확하게 아침 아홉시부터 시작되었다. 첫날 경기는 70세,75세, 80세까지 세 개의 부서가 진행되었는데 80세부만 뽑기를 하여 파트너를 정했다.
김철기 총무이사는 "지방에서 여는 대회와는 달리 참가자 수에 연연하지 않고 파트너를 고집하는 이유는 연맹의 정통성 유지를 위한 것이다. 참가자들이 연로한 까닭에 인터넷 접수가 힘이 들어 유선 상으로 전화를 하거나 공문을 발송, 대회 때마다 600여장 정도를 보낸다"며 나이 드신 분들이 시간관념이 철저해 배워야 될 점임을 강조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많은 참가자들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한 분이 있었다. 흰 수염이 한 뼘은 되고 머리카락은 처녀처럼 길었다. 올해 78세, 조선대 교수로 퇴임한 김병옥. 70년대 전국 종별테니스대회에서 단식으로 12년을 연속 우승을 할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졌던 분이다.
건강하게 130세까지 살기위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괴짜로 이미 매스컴에 여러 번 알려졌다는 김병옥은 "테니스를 하는 분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복 하나가 더 있어 육복을 가진 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야말로 장수의 비결이다. 매일 아침 33세 가지의 다양한 스트레칭까지 해 지금 신체나이 50세를 유지하고 있다. 매년 4년마다 열리는 월드마스터스가 3012년 이태리에서 열릴 예정인데 그곳에 갈 목표로 열심히 테니스를 하고 있다"며 청년다운 자신감을 보였다.
일본에서 아홉 명의 여성회원들을 인솔하고 온 도시꼬다나까 단장은 "김교성 회장과 인연이 되어 한국에 총 6번째 방문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시니어 대회가 재미있다고 일본 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번 방문에서는 특히 코리아나 하우스에서 본 전통 쇼가 인상적이었다"며 매우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전했다.
오랫동안 국제적인 교류에 힘을 써 온 김교성 명예회장은 "대회 때마다 일본에 있는 테니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여 대회신청을 받는다. 이번에는 여성들만 출전해서 혼합복식 파트너 엮어주는 중매일 까지 하게 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60세 이상의 실력 좋은 여성들이 많아 선수층이 두텁다"며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해 매력을 발산했다.
각 부서별 결승이 마무리 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순간까지 우승팀을 예측 할 수 없었던 80세부 결승은 갤러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최소 40년 이상 라켓을 잡아 온 그 연륜에 걸맞는 게임운영은 이시형 박사의 '에이징 파워'에 나온 한 대목을 그대로 재현시킨 듯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는 굳어져도 나이든 뇌는 나이 값을 한다. 뇌의 유연성 측면에서는 젊은 층을 압도한다"는 내용 그대로였다.
87세의 박순배 비뇨기과 원장과 일본여성 나가자와 구미조의 환상적인 조화는 2대4, 3대5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 대처한 정재교 조희선 팀에게 졌지만 많은 여운을 남긴 플레이였다.
80대부 여성으로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정재교는 우승 소감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팔순부에는 젊은 시절 데이비스컵 선수출신들도 함께 뛴다. 결승에서 만난 일본 선수의 실력이 상당해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역전으로 이긴 것은 파트너 덕분이었다'며 좋은 기회를 주신 시니어 연맹에 깊은 감사의 인사 또한 잊지 않았다.
모든 대회가 막을 내렸다. 청청했던 한때 이 사회의 곳곳에서 당당히 한 몫을 해 냈던 분들이 70이 되고 80이 되고 90이 되어 이 대회를 출전했다.
인생을 정말 알차게 잘 살아 건강한 신체로 종일 테니스의 즐거움에 취한 참가자들과 조용한 발걸음으로 수족처럼 움직여 매끄럽게 대회운영을 해 온 임원진들은 멋진 하모니를 이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한 대회다.
취재후기
필자는 20년 넘게 대회장을 다녔지만 주로 10시에 시작하는 일반적인 동호인대회와는 달리 아침 아홉시부터 시니어 대회를 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 7시 조금 넘어 양재코트로 향했으나 출근시간과 겹쳐 버스에서 전철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 같은 위기의 현장을 체험했다.
양재역에 도착해 보니 전주에서 올라온 김재철씨등 몇몇의 동호인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 어르신들 곁에서 모범택시를 타고 양재코트에 9시 무렵 도착했다.
그때 운동장에는 거의 모든 선수들이 막 첫 게임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분들은 대부분 새벽에 출발했거나 지방에서는 하루전날 도착해 하룻밤 유하고 온 분들이었다.
일단은 정각 9시에 대회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에 놀랐고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70대부터 90대 되신 분들이 탱탱한 젊은이들처럼 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랐다.
평소의 건강관리가 세월이 흐를수록 얼마만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지 그 현장에 가 보면 절로 깨닫게 된다. 우승에 대한 목표로 질주하고 있는 그 모습들은 여전히 이글거리는 열정의 한 복판에 있는 젊은이들과 같다.
젊은 시절 국가대표를 했거나 선수생활을 했거나 상관없이 현재의 시니어 랭킹으로만 시드를 배정해서 나이별로 대회를 진행하는데 인생 정말 충실하게 잘 살아온 분들의 향연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50중반인 필자보다 무려 40년 혹은 30년 인생을 더 사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이 사회를 이끌어 오던 분들이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고 즐거운 인생을 향유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한때 전국대회 우승을 50번 했는가! 100번 했는가는 이 현장에서 중요하지가 않다. 오로지 좋아하는 테니스를 90세가 되어도 즐길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게 와 닿는다.
무리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대회에 출전하는 젊은 동호인들도 이 슈퍼시니어대회에 나와 하루 종일 관전하다보면 젊음이 유한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재미'다. 평균연령 90세를 치닫고 있는 시대에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치도록 재미있는 테니스를 즐기기 위해서는 자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하루 종일 조용조용한 걸음으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 봉사하는 분, 일본에서 건너온 참가자들을 위해 통역과 가이드를 해 주는 분, 예선 접수부터 진행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분들, 모두가 인생 충실하고 알차게 잘 살고 있는 분들이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산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우고 돌아온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