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5일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창립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2012년 1월 보건복지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다양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정책결정을 위한 전문적 조사, 연구 및 교육 등을 지원하고 국가 생명윤리 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이날 주제는 그 동안 우리 사회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논의해온 ‘연명치료 중단’ 문제를 다루었다. 의료윤리학자, 법학자, 윤리학자, 임상의사 등이 사전의료의향서를 중심으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10여년 이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답습하는 위치를 탈피해서 작은 합의점이라도 이루기를 바라는 자리였다.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바라본 연명치료 중단 및 사전의료의향서에 관한 자료와 문제점들이 발표되었다. 많은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쉽게 합의점을 찾기 힘든 토론이었다.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이고 주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생각과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했다.
주제를 발표한 몇 분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먼저 연명치료 중단에 있어서 단국대 이석배 교수의 주장이 이채롭다. 그는 “연명치료 중단과 사전의료의향서의 정의(定義)와 내포하는 의미가 각 나라의 의료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시행한다고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경우 환자가 의료비를 직접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환자가 의료비를 지불하는 나라와는 사전의료의향서가 작성되는 의료 환경이 전혀 다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환자가 아닌 의사가 결정한다. 무의미한 치료에 해당한다고 의사가 판단을 하게 되면 그 이상의 치료는 하지 않고 중단된다. 사전의료의향서의 경우도 치료를 받을 권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치료행위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소극적 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사전의료의향서에 사용되는 용어의 선택 문제를 제기한 서울대 허대석교수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는 “사전의료의향서에 사용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서 ‘무의미한’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가 아니고 미리 옳고 그른 것을 정해두고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연명치료’는 연명치료보다는 ‘연명시술’로 표현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심폐소생술의 경우, 급성질환에서는 도움을 주지만, 말기암환자에서 시행하는 것은 환자에게 고통을 가중하고 손해를 끼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치료중단·중지’라는 표현도 의사의 입장만을 주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시행중인 연명시술을 중단(withdrawal)하겠다는 것만 표현되고 유보(withholding)의 개념이 빠져 있다고 했다. 환자의 자율권 차원에서 표현을 수정해야 일반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말을 ‘연명시술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말로 대체 할 것을 제안했다.
보라매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을 통해 이슈화 된 연명치료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말기환자도 말기암 상태, 만성 호홉기 질환이나 희귀병으로 인한 말기 상태등 환자의 병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이, 경제력, 종교관, 교육정도, 인생관 등에 따라 환자가 원하는 치료의 범위가 다르다.
우리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입법화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할 부분이 있다. 사회 전체가 존엄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한 토론과 생명과 삶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졌으면 한다. 용어 선택이나 제도도 환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입장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하나 뿐인 생명의 가치는 탄생과 죽음 모두가 존중되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와 소통 없이 만들어진 제도는 득이 아니고 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