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찌나 바람이 차던지 거리에서 두 팔을 벌릴라치면 그대로 꽁꽁 언 허수아비가 될 거 같았는데, 오늘은 길가 듬성듬성 앉은 햇살에 온기가 섞였습니다.
추운 일기가 계속되어 서민들 살기가 어려워지고, 저도 어제 아침 아파트 썰렁한 복도에 쪼그려 앉아 헤어 드라이기로 수도 계량기를 녹였었지만, ^^. ㅎㅎㅎ... , 날씨는 어떤 날이든 날씨 자체로만 보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물감처럼 파란 날도, 햇살 공중에서 부서져 내리는 날도, 비가 지겹게도 추적이는 장마철도, 눈이 비처럼 내리는 엊그제 같은 날도, 안개 낀 신비스러운 날도, 구름이 음침하게 물들고 하늘이 불길하게 휘날리는 날도, 너무도 맑아 쨍하고 금이 갈 것 같은 명징한 날도 ... 모두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활과 조금만 떼 놓고 본다면 모든 날들의 모든 날씨는 그 유일함과 더불어 독특함의 매력이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날씨들도 하나님이 맨 처음 세상을 지으시고 "참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이유 중 중요한 하나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날씨들을 끼리끼리 모아 놓으면 계절이 됩니다.
처음엔 아마 하나님도 날씨를 계절로 묶어 놓을 생각은 못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는 비가 왔다가 오늘은 꽃이 피고, 내일은 눈보라가 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그 모든 각자의 아름다움에서 질서를 보셨겠지요. 꿈틀대고 미숙하고 약동하는 봄, 치열하고 성장하고 절정에 도달하는 여름, 익숙해지고 지쳐가고 풍성해지는 가을, 피곤하고 어둡고 휴식하는 겨울.. 봄은 따듯하게 여름은 뜨겁게 가을은 서늘하게 겨울은 차갑게... 그렇게 짝 맞춰 놓으신 거지요.
세상은 그렇게 풍성하고 다양하고 독특하고 아름답게 시간을 흘려 보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빚어 사람을 지으셨대네요... 사람은 세상 위에서 하나님의 총애를 받고 권위와 행복을 누리며 잘 지냈는데, 아.. 글쎄 사람이 사과 하나 따 먹었다고 삐지신 하나님.. ^^;... 사람을 각박한 세상 안으로 밀어 넣지 않으셨겠어요? . ㅎㅎ...
그러나 하나님이 여전히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을 죽게 하고 그 영혼을 다시 거두어 그의 곁에 두시는데, 그 사람의 일생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 치장하여 인생에서 사계를 겪게 하시고 날마다 날마다의 날씨처럼 예측 못할 독특한 하루하루를 선사하셨지요.
그래서 ... 우리 인생도 날씨처럼 하루하루 독특하고 유일한 일상으로 채워지고, 계절처럼 인생의 단계 단계를 거쳐 마침내 그 영혼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게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어떤 계절 어떤 날씨로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한신대학도 폐쇄되고 이 카페도 언젠가 분명히 폐쇄될 것이듯이 우리 인생도 분명히 폐쇄될 겁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무슨 생각을 떠올리게 될까요?
맑고 향긋한 기운이 세상에 충만할까요? 바람이 불고 비가 올까요? ...
...
...
햇빛이 거리를 따라 길게 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