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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당詩 원문보기 글쓴이: 개밥바라기
서러운 몸국과 삭지 않는 터무니의 상흔
- 오승철 시집 『터무니 있다』 -
정용국(시인)
1. 들어가며
1920년대에 제기된 바 있는 민족문학론이 다시 재론된 것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와 맞물리게 된다. 전쟁과 분단으로 황폐화되었던 문단도 60년대 이후 조금씩 자생력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의 문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결과물들이 60년대 참여문학론, 시민문학론 등을 거쳐서 1970년대에 이르러 일정 수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구중서, 염무웅, 임헌영등이 제기한 문제들을 백낙청이 체계 있게 정리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론들은 급변하는 사회와 문학이 중요한 연결고리를 맺으며 발전, 정리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분단 상황을 한민족의 최고 위기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성취를 문학의 한 단계로 보는 시각이 바로 민족문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팽팽한 논쟁을 거치며 어느 정도 체계화된 민족문학론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성격과 변혁과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 그리고 변혁의 주체에 대한 성찰에 까지 도달하며 성숙해졌다. 이와 같이 민족문학이 진보적 문학운동의 이념으로 발전해온 과정에는 민족문학 연구자들이 현실의 문제들을 문학에 적극 반영하고 투사하는 실질적 시각에서 한국문학의 역사를 재조명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여 진다. 결국 민족문학은 사회의 진정한 민주적 변혁을 과제로 삼고 현실 문제를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적 실천에서 시작하고 발전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오승철의 새 시집 『터무니 있다』를 읽다가 백낙청의 『민족문학론과 세계문학Ⅰ』에 마음이 간 것은 그의 시집을 읽는 내내 모질고 참담했던 근대사의 한 복판을 통과하며 제주도가 겪어 낸 질곡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저간에 보아 온 오승철의 시들이 급진의 색을 띠거나 드높은 목소리로 외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새 시집도 서정의 순이 보드랍고 살가워서 자꾸 읽을수록 그 여린 시의 순이 뿜어내는 향이 감정의 말초들을 지그시 누르고 속살거려서 마침내 그 어떤 깃발보다도 오래도록 독자의 촉수를 붙잡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치 제주도가 육지와는 별도의 한 공화국인 양 느껴지고 나아가 세계문학 속의 한국문학처럼 한국문학 안에 독립된 제주문학으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제주 사람들이 자기들 외의 다른 이들을 ‘육지사람’으로 호칭한다는 습성, 즉 ‘섬’과 ‘육지’라는 이분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통설을 기억하며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되새기는 것과 <한국문학과 제주문학>이라는 가설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2. 반역의 시간과 역설의 시들
제주 시인들의 시를 다룰 때마다 거론했던 자료들을 모아 정리해보면 고스란히 제주의 상흔들과 마주치게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개인의 일이거나 더 나아가 국가 차원의 사태일지라도 당사자와 타자는 엄연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인간 세계의 비정함이다. 제주에서의 사태를 수십 년이 지난 시기에 국가가 해명하고 정중히 사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식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은 역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엄중함이란 잘못된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다시 유사한 억울함이나 국민의 피해가 없도록 대책을 강구할 때 드높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타자들은 늘 친여 성향의 언론들이 주도하는 ‘지난 일을 가지고 언제까지 그러느냐’는 식의 통념에 젖어 있기 쉽다. 더구나 특별자치도인 섬 제주의 소식에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지만 한 번도 4.3기념식에 대통령이 오지 않았다는 뉴스조차도 제주에서는 예민한 사건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의 피해의식들은 제주 출신 시인들의 작품에 스며들어 끈질기고 당차게 제주의 의식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승철의 시가 조용하고 목소리 드높지 않지만 “한 양푼/ 서러운 몸국” 으로 우려나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모습을 이 시집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그의 새 시집 『터무니 있다』는 이러한 제주의 의식들을 올올이 모아 야문 손길로 직조해낸 서러움 가득 밴 제주 갈옷과도 같다. 그래서 시 편편에는 제주에 휘몰아친 반역의 시간들에 대하여 굵고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영등굿 비나리로 나부낀다. ‘터무니’는 대체로 ‘없다’라는 부정어와 결합하여 사용되는 것이 통례지만 시인은 굳이 ‘있다’라는 강력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고 더구나 이것을 시집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강력한 소신의 발산이라고 생각된다.
홀연히
일생일획
긋고 간 별똥별처럼
한라산 머체골에
그런 올레 있었네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
그해 겨울 하늘은
눈발이 아니었네
숨바꼭질 하는 사이
비잉 빙 잠자리비행기
<4․3땅>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찔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꿩으로 우는 저녁
- 『터무니 있다』 전문 -
얼마나 깊은 한이 맺혔기에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봄마다 피는 찔레조차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것이리라. 그 은밀하면서고 마지막 칼날처럼 배반의 숨소리 가득 들어있는 ‘삐라’였기 때문에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음신으로 구천을 떠돌고 있을 “꽁꽁 숨은 무덤 몇 채”에다 대고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라는 고시레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누이」 「한라산에 머체골 있었다」 「겡이죽」 「몸국」등 걸출한 작품들을 제치고 시집 제목으로서 또 시집의 제1선에 우뚝 서있는 이 표제작품은 오승철이 작정을 하고 내민 승부수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래서 『터무니 있다』는 제주에서 벌어진 반역의 시간들에 대한 역설의 시이며 국민과 국가에 보내는 강력한 탄원서라 해도 무방하다.
3. 국토의 끝에서 시작되는 최전선의 울음
쇠똥이랴
그 냄새 폴폴 감아올린 새순이랴
목청이 푸른 장끼 게워내는 울음이랴
초파일
그리움 건너
더덕더덕 더덕밭
- 『누이』 전문 -
5
팔자 사나운 게
사람만의 일이겠나
제주와 일본 사이 일본과 제주 사이‘죽을 운속에 살 운 있다’는 밀항의 바다, 현해탄 그 허기의 바다 <4.3>이며, <재팬 드림>, 끝내 못 돌아온 내 누님의 별 하나
엎어적 갈라적하며
칠성 끌고 가는 밤
- 『판』 부분 -
기차처럼 떠나네
그리움 다 내뿜고
달강달강 온몸으로 감당해낸 끌탕의 세월
가을 볕 아래서 보면
아,
저 금빛 관음불상!
- 『주전자』 전문 -
나란히 적어 본 시 세 편을 읽고 있으면 한반도의 제일 끝인 제주가 마치 최전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4.3항쟁도 사상의 최첨단 자락들이 부딪힌 것이고 <재팬 드림>도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일본과의 교류를 시작하며 빚어낸 허황된 꿈이었으니 제주는 국토의 끝이면서도 가장 먼저 아프고 시린 상처를 입어야 했던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전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꿈이었다면 아마 재팬 드림은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소용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 관광객들로 제주가 몸살을 앓던 시절에 제주에 모인 전국의 처녀들은 현해탄 너머 무지개 같은 재팬 드림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이야기조차 꺼내기 쑥스러운 ‘누이’들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초파일/ 그리움 건너/ 더덕더덕” 피어나는 아련한 그 생각을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은 “현해탄 그 허기의 바다”로 각인되어 버렸다.
이젠 그 “끌탕의 세월”을 잘 감내해낸 수굿한 초로의 시인은 농익은 “가을볕 아래” 순하디 순한 부처님의 눈으로 제주를 관(觀)하고 있다. “달강달강 온몸으로 감당해낸” 시절이 저리도록 아팠겠지만 이젠 “기차처럼 떠나네/ 그리움 다 내뿜고”라고 말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반란의 봄과 격정의 여름을 보내고 “가을볕 아래” 선 시인에게는 주전자조차 “금빛 관음불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진솔한 눈길이 더욱 독자들의 가슴을 옥죈다.
4. 이름만으로도 아픈 몸국
서두에 민족문학론을 거론하며 ‘한국문학과 제주문학’을 말하였을 만큼 제주도의 풍습과 음식은 사뭇 다르다. 특히 그 지방의 기후와 토질에 따라 생산되는 식자재에 따라 섭생을 운위해야 하는 인간은 지방의 특성 아래 놓인 생명체로서의 한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육지에서 제주로 쌀을 실어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식을 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육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그만큼 제주에서의 생존은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오승철의 새 시집에는 이러한 제주의 음식들이 옹이로 박혀 있다.
따져보면,
수평선은 넘겨야할 낙선落選이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사람팔자 윷가락 팔자
장마철 생비린내도 녹여낸
저 겡이죽
- 『겡이죽』 부분 -
쌀이 귀한 제주에서는 곡식이 조금만 있어도 여럿이 먹기 위해 죽을 쑤었나 보다. 그냥 곡식만으로 쑤는 죽은 덤덤하니까 흔한 해물을 넣고 끓였을 것이다. 전복은 비싸고 그저 바닷가 돌 틈 사이에 흔한 작은 게들을 여럿 잡아다가 살을 발리기도 난감해서 돌절구에 껍질 채로 짓이겨 체에 받쳐낸 국물에 쌀도 아닌 잡곡으로 쑤었을 겡이죽. 요즘이야 키토산이 많다고 별미로 먹는다지만 해녀들은 물질로 지친 몸을 위해 그나마 보양식이라고 먹었던 것이 겡이죽이다. 험한 자연과 거친 세태를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체념이라는 것이 마음에 깃들기 마련이다. 내가 뚫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한계가 빤히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겨우 물질로 연명하고 권력의 난도질에 치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사람팔자 윷가락 팔자”라는 한 줄에 엿가락처럼 눌어붙어 있는 모습은 겡이죽 한 그릇보다도 서럽고 안쓰럽다.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별빛 따라들면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바다
그마저 우려낸 몸국,
몸국이 되고 싶네
- 『몸국』 부분 -
솥뚜껑 베옥 열고
익어신가 한 점 설어신가 한 점
4․3동이 내 누이 시집가던 그날처럼
한 양푼
서러운 몸국
걸신들린 밤이었다
- 『돗 잡는 날』 부분 -
두 작품에 나오는 몸국은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는 제주 특산 음식이다. 육지에서나 제주에서나 예전에는 돼지고기조차도 쉽게 얻어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러니 고기를 삶고 남은 국물도 버리지 않고 기름진 국물에 모자반을 넣어 부드럽게 해서 먹었던 국이 바로 몸국이다.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바다”에는 ‘펄펄 끓는’ 제주의 난제들이 가득하고 “한 양푼/ 서러운 몸국”에는 말 그대로 서럽게 살 수 밖에 없었던 4.3의 하늘이 녹아들어 있다. 삶을 기억하는데 가장 뚜렷한 증표가 음식이다.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근본이기 때문일 터인데 누구나 부모님이 해주신 유년기의 음식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하루에도 초고속 보잉 항공기가 수 십 편씩 오가는 요즘 제주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기신기신 먹었던 시절의 음식이 유행인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음식과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음식을 먹으며 견뎌낸 통한이 뒤섞여 버무려진 세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끝끝내 잊지 못할 살아있는 역사가 아니었겠는가.
5. 나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특성을 고스란히 머리에 이고 살아간다. 음식과 풍습은 물론이요, 그곳의 희망과 좌절까지 다 받아 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의 숙명이고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처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넓고 뚜렷한 안목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순서라 하겠다. 안에 갇히면 그곳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라’라고 했던 임제록(臨濟錄)의 강설은 그래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일체의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임제 스님의 강론처럼 제주를 죽이려면 제주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끝없이 사랑해야 하고 그것을 뛰어 넘어야만 하리라. 오승철이 새 시집에서 우려낸 제주의 이야기들은 어디에도 드센 목소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제주의 아픔과 처연한 역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똥돼지 국물’같이 우러날 대로 우러나 그저 먹기 좋게 슴슴한 ‘몸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터무니’는 늘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다’라고 외친 소음탄(消音彈)이 바로 이 시집이다. 그래서 오승철표 소음탄은 은근한 속도와 구수한 매력으로 서울 권부의 주요 목표물을 소리 소문 없이 날려버릴 지도 모른다. 시집을 읽는 내내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키게 한 그의 시는 힘이 세다.
-정용국 - 경기 양주 출생. 2001년 계간 『시조세계』로 등단.
계간문예 <다층> 2015,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