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박물관 2곳(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 박물관)에서 구경했던 우리 도자기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에 나타난 문양과 고대 그리스 도기 문양을 비교해봤습니다.
기원전 4세기말, 북인도(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까지 진출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아 CE 1-2세기 무렵에 탄생한 간다라 불상이 대승불교와 함께 중국으로 전해지고 이어서 한반도까지 전래되었듯이,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 문양도 불상과 함께 전해졌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접한 북인도 지역에 무려 300년 가까이 존재했던 그리스 문명이 불상(즉, 조각) 딱 한가지에만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려청자 및 조선백자에 나타나는 고대 그리스 문양에 대한 연구"는 필자의 향후 연구과제입니다. 오늘은 제가 발견한 우리 자기에서 보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양 몇가지 가운데 그간 소개하지 않았던 문양을 처음 소개합니다. ^^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네 전통자기(청자, 백자)에 나타나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양은 대략 다음과 같으며, 그간 카페에서 몇차례 소개했습니다.
1. 고려청자의 산딸나무 꽃무늬 (일명 칠보무늬) --> 로마제국 및 비잔틴 제국에서 널리 사용한 문양임
2. 고려청자의 들국화 무늬 --> 고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지역, 즉 지중해의 고대문명에서 널리 사용한 문양임
3. 고려청자의 파도 무늬 (일명 번개무늬-A형, B형) --> 고대 그리스 문양임
4.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꼬불이 무늬 (일명 번개무늬-C형) --> 고대 그리스 문양임
5. 고려청자의 요철무늬 --> 고대 그리스 문양임
6. 고려청자.조선백자의 기하문양 : 오늘 소개할 문양으로 아직 문양 이름을 짓지 못했습니다. 일단 임시로 "목걸이 문양"이라 부르겠습니다.
[1] 백자청화 시명병 (조선시대, 서울대 박물관 소장)
위 사진의 (가) 문양이 바로 필자가 "꼬불이 무늬 (일명 번개무늬-C형)" 이라 부르는 무늬로 고려청자에 흔히 사용된 문양이며, 아래와 같이 그리스 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위 사진에서 (나)로 표시된 가칭 "목걸이 문양"입니다.
고대 그리스 술잔인 퀼릭스 바닥에 그려진 그림(일명 도기화)의 테두리 문양을 필자는 가칭 꼬불이 무늬-C형이라 부르고 있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백자청화 시명병에 그려진 기하문양과 매우 흡사하다.
[2] 고려 동채(구리색, 즉 붉은색) 긴목병 (소장처: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확대해서 살펴보면, (가)로 표시한 기하문양(그리스에서 유래된 문양이다.)이 있고, 그 옆에 (나)로 표시된 "목걸이 문양"이 보입니다.
[3]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 (조선, 서울대박물관 소장): 여기서 "인화문"이란 꽃무늬를 도장찍듯 찍었단 뜻입니다. 그릇 바닥 한가운데에 큰지막한 들국화 문양을 찍고 그 주변과 그릇벽 둘레에 꽃무늬를 도장 찍듯 찍었습니다. 바닥 둘레에 목걸이 문양도 보입니다.
여기서, (가) 국화문양은 지중해 문명(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에서 왕가에서 널리 사용된 문양입니다. 오늘날 서양고고미술사에서는 "아시리아 데이지(Assyrian Daisy)"로 불리는 문양입니다. (나)는 오늘의 이야기 주제인 "목걸이 문양"입니다.
[4] 청자 모란무늬 항아리 (+ 목걸이 무늬) (소장처: 일본 오사카 시립동양도자 미술관)
항아리 입구 주위에 목걸이 문양이 보입니다.
필자는 이 목걸이 문양이 앞에서 언급한 5가지 문양 (산딸나무 꽃무늬, 들국화 무늬, 파도무늬, 꼬불이 무늬 등)과 함께
간다라 불상이 중국에 전래될 무렵에 함께 전달된 고대 그리스 문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목걸이 문양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5] 고대 그리스 붉은색칠 도기의 목걸이 문양 (소장처: 아테네 고고학박물관)
[6] 고대 그리스의 목걸이 문양 도기 (소장처: 코린토스 고고학박물관)
앞에서 보인 목걸이 문양을 확대해서 비교해 봤습니다. 매우 비슷하지 않습니까?
(가), (나): 우리네 자기(백자, 분청사기)에서 보이는 목걸이 문양
(다), (라): 고대 그리스의 목걸이 문양
보너스로,
필자가 "파도무늬"라 부르는 고대 그리스 문양과 정확히 일치하는 고려청자 기하무늬를 소개합니다. 한국고고미술사에서는 "번개무늬"라고 부르는데, "번개"로 불려야 할 근거가 매우 희박합니다. 정말 족보에도 없는 잘못된 이름입니다.
[7] 청자 물가풍경무늬 판 (소장처: 일본시립오사카 동양도자 미술관)
매우 아름다운 청자 타일이다. 필자는 이 청자타일이 현대사회에서도 장식용으로 널리 사용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현대인이 좋아할 수 있도록 질감이나 색감, 문양이 현대적 감각으로 변형되어야 합니다.
타일의 테두리 문양이 "파도 무늬"이며 그리스 문명에서 전래된 문양입니다. 이 문양을 서양미술사에서는 뱀 문양 (Meander pattern)이라 부르며, 우리 고고미술사학계에서는 "번개무늬" 라 부릅니다. 저는 이 문양이 전혀 번개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도대체 누가 왜 이 문양에다 번개라는 이름을 갖다 붙혔는지 정말 궁금해서 열심히 구굴검색을 해봤습니다. 언제 누가 번개라고 작명을 했는지 근거자료는 찾지 못했으나 번개문양에 대한 상세해설 자료는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럴싸하게 번개의 상징성에 대해 전문가 해설을 해놨지만 "이 양반이 전문가 맞어?" 하고 의심이 들만큼 해설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작명법 하나를 봐도 우리 고고미술사학의 뿌리가 얕고 폭이 좁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올해 여름 무렵에 출간예정인 저의 책 (가칭) "올리브 나무와 그리스 여행"에서 제가 청자에서 발견한 고대 그리스 문양 종류에 대해 상세 해설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고미술학계에서 명명한 번개무늬 (아울러 청자 동전무늬)가 얼마나 근거가 없고 족보에도 없는 용어인지 명확하게 밝힐 생각입니다.
[8] "파도 무늬"로 장식한 고대 그리스의 검정색 인물상이 있는 도기(Black-figured pottery) (소장처: 올림피아 고고학박물관) 파도무늬가 위 [7]에 보인 고려청자 판(타일)의 테두리 장식문양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 아래 도기의 소장처: 코린토스 고고학박물관
* 아래 붉은색 인물이 그려진 도기(Red-figured pottery)의 소장처: 아테네 고고학박물관
도기의 목 부분에 "파도 무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