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공무원을 바라고, 호갱이 되기를 거부하는 90년대생이라는 큰 틀에서 그들 세대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통계를 활용했다. 일부 '글로벌 종합사회조사(GSS)'와 같이 매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사회의 주요 흐름을 포착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통계 지표를 활용하였다. 또한 다양한 직군의 90년대생들을 인터뷰하고 관찰조사했다.
'우리가 받은 사회의 혜택과 따스한 호의는 반드시 사회를 향해, 모두를 향해 돌려주고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땀과 꿈으로 넘어선다.'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마다 되뇌던 문장이다. 나는 기존 세대의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통해 지금까지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주고 싶다.
- 에스컬레이터 대신 놓은 유리 계단
한국은 1960년 이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고도성장을 이룩해왔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에게는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들은 당시 현대, 삼성, 대우, LG와 같은 굴지의 기업에 평사원으로 고용됨으로써 이 직업 세계에 올라탔다. 그리고 업무 경력이 쌓이면서 조직 내 사다리를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되고, 평사원이라는 직급은 새로 회사에 입사한 야심만만한 졸업생들에게 내주게 되는 나름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했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끊임없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같았다. 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기만 하면, 큰 문제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한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서 매 단계마다 더 많은 권한과 직업 안정성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암묵적으로 55세 정도가 되면 마침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맡고 있던 고위 임원 자리를 후배 중간관리자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는 회사와 정부가 제공하는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은퇴 생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자동으로 움직이던 에스컬레이터의 전기 공급은 끊겼고, 졸지에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에 남게 된 자들은 이제 자기의 힘으로 종착짂지 올라가야 했다. 이제 그들이 올라서 있는 곳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다. 언제튼 깨질 수 있은는 난간 없는 유리계단이다. 오늘도 이러한 직업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구멍으로 빠지고, 옆으로 밀려나서 떨어진다. 두렵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위만 보고 더 힘차게 달려 올라가는 방법뿐이다.
- 90년대생들은 어떤 세대인가?
동일한 세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각 중 하나는 '동일한 경험'이다. 이러한 세대의 경험은 국가적인 단위의 제도 변화 혹은 대형 사건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1987년의 민주항쟁을 통한 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인 변화나 1997년 일어난 IMF 외환위기 같은 경제적인 변화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대형 사건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특정 세대의 경험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어떤 동년배 집단이 이러한 대형 사건과 사회적 변화로 고유한 사유, 감정, 행동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그들은 같은 의식을 지닌 세대가 될 조건을 갖추게 된다. 지금의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기지 않고 특정 이상을 실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현 시대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1970년대생,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세대인 1980년대생과 비교하면 명확해질 수 있다.
- 90년대생의 첫 번재 특징(간단하거나)
길고 복잡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간단함'이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이 주는 풍요를 누리고 이후 24시간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앱 너티티브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조용하고 집중적인 기존의 선형적 사고는 구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온라인상으로 제공되는 축약된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고, 필요할 때 바로 찾는 비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게 되었다.
(예) 초단편 소설
- 90년대의 두 번째 특징(재미있거나)
병맛이란 대체로 어떤 대상이 '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시초는 카툰-연재갤러이에서 '정재황'이란 만화를 연재하던 '무악공고'다. 처음엔 '병신 같으나 재미있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병맛 만화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병맛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게 된 이유를 완전무결함만 살아남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와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증가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경기침체로 자기 비하에 빠진 청년층이 스스로를 병맛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획일화된 기성품만을 내놓는 교육 제도에 대한 반동 또는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취향에 대한 소극적인 표현이라는 분석도 있다. 2000년 이후는 패배의식을 지닌 청년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병맛 개념이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예) 나무위키(개인적인 견해가 기본적인 정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위키): 나무위키는 스스로를 하찮고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말처럼 누가 보기에 이곳은 '쓸데없는 곳'이다. 그리고 하위문화와 관련된 정보 외의 것들은 신뢰하지 못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 공간은 정보의 곳간인 동시에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유희의 공간이다.
- 90년대의 세 번째 특징(정직하거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지,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당연히 혈연, 지연, 학연은 일종의 적폐다. 그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의 폐지를 외친다. 학종을 못 믿겠다는 것과 있는 자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온전한 정직함을 담보하지 못할 대안은 없는 편이 낫다.
그들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솔직함뿐 아니라 남들의 솔직함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를 들어 본인들을 고용한 기업이라든가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에서 솔직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기업 입사 지원자들이 기업체에 갖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지원 회사로부터 제대로 된 피드백이 없다는 것이다. 구직자들은 보통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만 실제 피드백을 받는 경우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구직자에게 성적표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롯데가 대표적이다. 면접 불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전형별 평가 결과 피드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모 씨는 '다른 기업과 달리,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이 기업에 합격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이러한 피드백을 통해 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불편러'란 단어는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개인의 권리 의식과 지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문제인지 몰랐던 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중이 자유롭게 의견을 풀어놓을 수 있는 인터넷의 발달로 토론과 비판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중심에 90년대생들이 있으며, 이들로 이해 기존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기도 한다.
- '참견'이 아닌 '참여'를 원하는 세대, 적절한 참여를 통한 인정 욕구 충족, 호갱의 탄생 그리고 반격, 연결이 권리가 된 세대, 스몰비어의 등장과 기존 프랜차이즈의 몰락, 해외 직구, 호갱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Slow-Death 시키기): 해당 제품과 서비스에 조용히 발길을 끊기, 정직한 제품과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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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읽혔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자가 몰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고, '초단편 소설, 병맛, 불편러, 나무위키' 등에 대해 재미있고, 깊이 있게 알 수 있어 좋았다.
글쓴이의 이력도 참 인상적이었다. KAIST에서 정보경영 석사학위를 받고, CJ에서 신입사원 입문 교육 등 다양한 직무를 경험했던 점이 이 글의 바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통계 자료를 통한 글이라 힘이 있었고, 90년생을 겪으면서 가졌을 글쓴이의 고민이 깊이 있게 녹아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있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한 내용이, 다양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현장감있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