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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여년 전, 고 김종철 선생님과 문학동네 지면에서 대담을 한 적이 있다. 긴 대담이 끝날 무렵, 선생님께 여쭸다. 혹시 가고 싶은 나라가 있으세요? 선생님은 코스타리카를 한 번 방문하고 싶다고 하셨다. 코스타리카는 확실히 녹색의 나라였다. 나는 우루과이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그랬다. 호세 무히카의 나라였으니까. 또 에너지 전환의 기적을 들여다보고 싶었으니까. 그게 그 대담의 마지막이었다.
세계에서 에너지 전환을 가장 빠르게 이룬 나라가 어디일까? 아무래도 우루과이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이전만 하더라도 우루과이는 에너지 빈곤 국가였다. 수력과 화석연료로 에너지를 생산했는데 화석연료 비중이 40% 가까이 됐다. 하지만 항상적으로 전기 부족에 시달렸고 때론 정전에 시달렸다. 이웃 국가에서 전력을 구입해야만 했다. 그렇듯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2015년경이 되면 거의 98%에 가까운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게 된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98%, 화석연료는 2%로 뚝 떨어졌다. 전력이 남아 이제는 이웃 국가에 전력을 판매한다. 심지어 2019년 이후에는 에너지가 곧 우루과이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되었으며, 어떤 해에는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정도였다. 어느새 '녹색 부'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사진출처=양상현 기자 팟캐스트
바야흐로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에너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 놀라운 반전은 2008년부터 시작된다. 먼저, 이론 물리학자인 라몬 멘데스 갈랭(Ramón Méndez Galain)을 주목해야 한다.
애초에 그는 이론 물리학자였다. 빅뱅 직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연구하던 차에, 에너지 기근과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경유하며 갑자기 관심사가 바뀌었다. 왜 우루과이는 전력난에 시달려야 할까? 왜 늘 국제 유가에 허덕이며 해외 화석연료에 종속되어야 할까? 왜 우루과이 민중들은 늘 에너지 빈곤에 시달려야 할까? 궁리 끝에 라몬 멘데스는 화석연료 발전소를 풍력 발전소로 전환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즉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루과이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 종양학자 출신의 타바레는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었다. 당시 179년간 이어졌던 거대 양당체제를 끝내고 좌파가 막 대권을 잡은 터였다. 소득 분배에서 에너지 그리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새롭게 재구성하는 단계였다. 전화를 건 이유는 이거였다. 혹시 자네, 우루과이의 에너지 전환의 책임자가 될 생각은 없는가? 그렇게 해서 라몬 멘데스의 지휘 아래, 에너지 자립과 주권을 위한 전환의 서막이 올랐다. 곧바로 풍력발전소가 50개 이상 건설되었고, 도시 인근에 있던 화석발전소가 퇴출됐다. 2019년 기준으로 수력 발전은 56%, 풍력은 34%, 바이오에너지는 6%, 태양광은 약 3%를 차지했고 화석연료는 2%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수력, 풍력, 바이오, 태양광으로 교차되고 연결된 에너지 시스템은 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대한 세간의 입방아를 모두 잠재울 정도로 효율적이었다. 2008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이뤄낸 놀라운 속도의 전환.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간단한 예로 살펴볼 수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인이 연간 1인당 16톤의 탄소를 배출할 때, 우루과이 시민들은 그 수치가 1.8톤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입을 떡 벌렸다. 한국 언론들도 2015년 이후 감탄의 시선으로 이 나라의 에너지 주권 혁명을 보도한 바 있다. 누가 봐도 단시간에 이뤄낸 기적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 전환을 민간시장에만 맡겨놓았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전개될 수 있었을까? 이 놀라운 전환이 가능한 데는 세 가지 배경이 존재한다.
첫째, 호세 무히카. 2010년 타바레에 이어 두 번째 좌파 대통령이 된 호세 무히카는 에너지 주권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라몬 멘데스에게 계속 계획을 실행하도록 독려했고,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도록 좌우파 할 것 없이 모든 정치 세력을 설득하고 초당적 협치를 독려했다. 이렇게 관련 법령과 정책적 기반이 토대를 이루면서 획기적 전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둘째, 우루과이의 공공성. 다른 국가에서 에너지 전환을 민간 시장에 맡겨놓은 채 간헐적인 형태로 느리게 진행하고 있다면, 우루과이에서는 국영 전력기업 UTE를 중심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전환을 빠르게 진행했다. 다행히 우루과이는 신자유주의에 굴복하지 않은 터였다. 다른 남미의 많은 정부에서 공공서비스를 매각할 때, 우루과이는 정유, 통신, 상하수도, 기타 공공서비스를 여전히 국유화하고 있었다. 또 2005년경부터 신생 좌파 정부가 공공 지출과 공공서비스 투자를 진행하던 차였다. 바로 이런 공공성 기반이 국가적 에너지 전환을 수월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작은 나라다. 전력망 전환을 위해 공적 자금 투입이 부담스럽다. 그 때문에 민간 자본을 '입찰' 형태로 받아 안으면서 재정적 위험을 상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론 민간 자본이 참여하지만 국영 전력회사가 송-배선망을 비롯해 에너지 유통과 소비 전반을 통제함으로써 사실상 공공재가 되도록 설계했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 우루과이는 강력한 노조운동과 사회적 대화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꽤 정의롭고 민주적이었다. 화석연료 발전소 폐쇄는 에너지 노조와 전국중앙노동조합(PIT-CNT)과의 협상을 통해 진행했다. 일방적으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일방적으로 인력을 감축하면서 김용균-김충현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재생산하는 한국과 사정이 완연히 다르다. 정부와 노조의 협상을 통해 발전소 폐쇄를 결정하면서 노조는 협상 과정에 꽤 만족했다. 조기 퇴직이 결정되었고, 직업 전환을 위한 노동자 재교육이 광범위하게 실시됐다. 또 우루과이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 국가 프로그램(Decent Work Country Programm )'과 녹색 일자리 창출에 노력을 기울인바, 무려 5만개의 새로운 녹색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에너지 전환을 위한 테이블에 노동자들이 앉아 있을 때, 그러니까 정의로운 전환이 존재할 때, 에너지 전환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또 그 압력으로 인해 녹색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될 수 있는 것이다. 전환 기간에 창출된 5만개의 녹색 일자리는 우루과이 노동력의 무려 3%에 해당된다. 또 정부와 노동단체 간의 이러한 파트너십은 전력망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민간 자본을 받아 안았기 때문에 여전히 전기요금이 비싸다. 라몬 멘데스는 이에 대해 세수가 많지 않은 작은 나라의 한계를 지적한다. 우루과이의 에너지 혁명이 가능했던 게 이 나라가 작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거꾸로다. 공적 자금 투입이 많을수록 에너지 공공성이 강화되고 에너지 요금이 더 저렴해지게 된다. 최근, 우익 정부가 물러나고 새로운 좌파 정부가 막 들어선 우루과이는 전기요금 인하를 놓고 새로운 정책적 지평이 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글이 길어져 여기에서 줄이면. 에너지 전환과 공공성 강화를 고민한다면 우루과이 에너지 주권 혁명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정부-시민의 강력한 의지, 공공성 강화,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이 전제되면 에너지 전환이 더 빠르고 강력해진다는 교훈.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공공재생에너지법. 안 하신 분들은 얼른얼른.
이송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