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이 선선하다. 가끔 성난 바람이 불어와 탁자 위에 놓인 안경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자바 해(Java S
ea)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짠 내음이 코 끝을 스치며 맥주의 향과 함께 공기 중에 잘 버무려진다. 내가 머물
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마카사르는 그런 곳이다.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태양의 뜨거움만큼 유명하고 더
불어 이곳을 기착지 삼아 드나드는 수많은 배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리라.
이 먼 타국(他國)에서 나는 나의 고향, 서울을 생각하고 또 그 가을의 맑고 시원한 단풍잎의 싱그러움과 함께
바쁜 도시인(都市人)들의 거친 숨소리와 ‘또깍또깍’소리 내어 걸어가는 구둣발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크한 듯 속도 있는 서울 말씨와 도시 이곳 저곳의 카페에서 스며져 나오는 볶은 커피의 구수함과
때론 불쾌하지만 또 때론 그 역시도 거대한 서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늦은 오후, 자동차들의 뿌연 매연 연기와 고막
을 따갑게 만드는 경적 소리의 소스라침이 더욱 더 그리운 것이다. 그 수많은 그리움의 눈물이 이 섬을 감
싸는 커다란 바다가 되어 다시금 인도양을 거쳐 한반도의 남해(南海), 혹은 현해탄 어디쯤에 닿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렇게 하루의 꿈을 꾸고 또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생
각해왔던 도시 풍경에 대한 ‘자의적 이별(恣意的 離別)’의 결과이겠거니 생각한다.
이곳은 세련되고 첨단의 서울 풍경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곳이다. 인구도, 면적도 서울의 십 분의 일에 지
나지 않으므로 이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저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작은 이 도시의 매력은 지
척의 바다와 도시를 감싸 안은 바람, 그리고 도로 곳곳에 서 있는 거대한 코코넛 나무와 용광로처럼 뜨거
운 태양일 것이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 사람들의 까무잡잡한 얼굴 속에 그려지는 정직하고, 순박
한 미소일 것이다. 가식적이지 않고, 건조하지 않은 엷고, 깊은 미소 말이다. 특히나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
는 맑은 눈의 아이들은 그 자체로서 자연의 일부 혹은 자연의 모든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초라한 행색으로 동전 한 닢을 구걸하는 거리의 아이들과 신문과 잡화 등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은 괴로운 그들
의 삶과 더불어 한 폭의 풍경처럼 오버랩 된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70~80년대의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 마
카사르의 모습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이다. 똑같은 청춘과 똑같은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의 도시, 마카사
르는 그렇게 어느새 나에게 중요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쩌
면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서울의 복잡다단함과 끝도 없는 경쟁으로부터 잠시나마 나
에게 긴 호흡으로 마른 숨을 뱉어낼 시간을 부여하며 검붉은 심장으로부터의 상상력을 재장전 할 수 있는 그
러한 삶의 ‘변압장치’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나의 도시, 서울을 사랑한다. 특히나 서울의 스산한 겨울 공기 말이다. 겨울바람을
느낄 수 없는 마카사르에서는 그것이 이곳의 지나친 한가로움과 더불어 유이한 단점으로 느껴질 때도 있
다. 그렇다. 나는 사실 여름의 열기보다는 겨울의 한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두툼한 코트를 입고 사람들
의 옷깃을 스치며 서울 시내를 활보하기 좋아하는 나는 매일 밤 꿈 속에서나마 서울과 마주하고픈 상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마카사르에서 그곳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약 5,279킬로미터, 비행기로
는 아직 직항은 없지만 직항로로 대략 7시간 남짓 떨어져 있으며, 1시간의 시차까지 두고 있는 터라 지척
의 바다에 나가서 고국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맡아보려 해도 앞바다의 짠 내음과 물고기의 비린내 밖에 느
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고국의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메시지는 타국의 나에게 꽤나 포근한 모국(母國)의 품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다행히도
시간의 축적 속에 매일 조금씩 희석되곤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해변에 나가 너른 바다 어디쯤에 있을
저편의 고국을 향해 눈길을 돌린다.
내가 느끼는 공간의 이질감이 때론 새로운 상상력을 보충하기도 하고 감각의 동질감이 팽창하는 그리움
의 크기를 위로하기도 한다. 서로 상반 된 두 장소에서 문화적 노마드(Nomad) 족(族)으로 살아가는 나는
그렇게 느림의 미학 속에 하루의 일상을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자 하나하나에 담고서 끊임없이 읽고, 고치
기를 반복한다. 그것이 이 도시 숲에서 내가 생산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놀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