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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승예수 원문보기 글쓴이: 디모테아
성경밑그림69-성전봉헌축제(하누카) 유다인들에게는 과월절, 오순절, 초막절이라는 율법에 규정된 꼭 지켜야 할 3대 축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해부활제4주일 복음인 요한복음 10장의 배경인 성전 봉헌 축제는 율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계속 지켜오던 축제입니다. 이 성전 봉헌 축제는 기원전 164년에 유다 마카베오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를 물리친 다음에 적들에게 파괴되고, 더렵혀진 성전을 복구하고 새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12월 말경에 열립니다(1마카 4,36-59; 2마카 1,9.18; 10,1-8).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축제 때에 의미 깊은 행동을 하셨다고 자주 강조합니다. 이는 복음서 저자의 시대에 그리스도교와 유다교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오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하시던 시기는 과월절 축제가 가까운 때였습니다(6,4). 예수님께서는 이제 진정한 과월절은 유다인들이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는 과월절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 성자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우리 모두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은 포도를 거두어들이는 9월에 여드레 동안 지내는데, 그 기간에는 한 해의 수확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면서, 이집트 탈출 때에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구원 업적을 기립니다. 이 축제에는 또한 예언적인 차원이 있어서, 메시아 시대에 펼쳐질 하느님의 복을 예고하기도 합니다(즈카 14,16-19).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그 하느님의 복 자체이시라는 것입니다(7,2). 이 성전 봉헌 축제 전례 안에 늘 선포되었던 가장 중요한 성경은 에제키엘 34장인데, 에제키엘 예언자는 유다인들의 정치 지도자들(목자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보호하는 대신 잡아먹고 있었고, 목자들이 양떼를 잡아먹는 늑대로 변했다고 고발합니다. 이 주제는 이미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태생소경을 치유하신 일화에서도 나옵니다. 예수님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 및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을 착취하여 그들을 비참한 상태(자선을 구걸하는 거지의 상태)에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의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지도자들이 백성이 처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처음부터 예수님은 그 지도자들을 도둑이며 강도라고 부르고(10,1.8) 그 다음에는 삯꾼이라고 부릅니다(10,12). 오늘날 우리 각자도 혹시 도둑이나 강도, 삯꾼은 아닌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각 개인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자신의 정체성에 따르는 의무와 직무를 소홀히 할 때, 우리 모두도 도둑이며 강도이고 삯꾼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지도자이든, 종교의 지도자이든 모두 가정에 속해 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어려서부터 정직하게 진실하게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사랑의 삶을 배운다면, 그들이 어른이 되어 하는 모든 일은 서로를 살리는 아름다운 나라를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 이십니다. 예수님은 암울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건설하는 방법을 보여주시며, 몸소 살아내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지구촌 사람들에게는 주님이고, 스승이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왕을 목자라고 일컬었습니다. 목자의 절대 의무는 백성을 외세의 침입에서 막아주고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정치인들은 가난한 백성이 아닌, 특정인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잊은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특정인들만을 위한 정치를 견제해야 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종교가 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외모만 그리스도인인 가짜신앙인들이 요즈음 넘쳐납니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합법적인 종교, 나라 지도자들로서 둔갑한 도둑, 강도, 삯꾼들 손에 가난하고 버림받은 예수님은 횡사하고 계십니다. 그들 마음이 주님의 성전이 되도록 회개의 기회를 주시면서(디모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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