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에 대한 효능과 전설, 그리고 노래들..
찔레꽃이 흐트러지게 피고지는 계절입니다.
모든 들꽃들이 그러하듯 찔레꽃도 누가 봐주든지 말든지
있는 그대로의 순박한 모습으로 피어 있다.
사하라님홈에 휘뚜루님이 올려 놓은 찔레에 대한 사연들을
여기에 옮겨 봅니다.
즐감하십시요
어느 님의 Saxophone 연주곡 / 찔레꽃(장사익 노래)
▒ 찔레에 대하여..
찔레나무는 장미과 장미속에 딸린 떨기나무로 장미의 원종이다.
그러므로 장미는 찔레를 기본으로 하여 장미를 개량한 것이다.
찔레는 늦은봄 하얀 꽃을 피우고 향기가 좋으며 가을철에 빨갛게 열매(영실)을 맺는다.
한의학에서는 [석산호]라 부르고 그열매를 영실, 색미자라 하여 약으로 귀하게 쓴다.
민간에서는 꽃,열매,뿌리,새순,뿌리기생 버섯등을 약으로 쓴다.
옛사람들은 꽃을 증류하여 화장수로 이용하였다.
◈
찔레의 약리적 효능, 효과
1. 열매에는 여자의 생리통,생리불순,변비,신장염,방광염,각기,수종등에 쓴다.
8∼9월에 반쯤익은 열매를 따서 깨끗하게 씻어 독한술에 6개월쯤 두었다가
마시거나 영실고나 영실엑기스를 만들어 사용한다.
2. 열매에는 약간의 독이 있으므로 술에풀어 시루에 쪄서 말리기를 아홉번을 가열 건조하여
가루로 만들어 사용한다.(변비에 아주 좋음)
3. 뿌리는 산후풍,간후골절통,부종,어혈,관절염등에 효과가 있다. 가을철이나 이른봄에 캐어
율무쌀로 막걸리를 빚어 자기전 취하게 마신다.
4. 뿌리기생 버섯은 어린이 기침,경기,간질의 명약이며 항암효과도 뛰어나나 흙속에 기생하므로
찾아내기가 어렵다. 10∼15그램을 한시간쯤 달여서 그 물을 하루 세번 복용한다.
5. 찔레순은 어린이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된다. 흑설탕이나 꿀과 버무려 발효시켜 복용하면
성장 발육은 물론 변비.수종. 어혈등이 없어진다. 큼큼~
▒ 찔레꽃에 엃힌 전설
고려시대에는 우리나라가 힘이 약해서 몽골족에게 일년에 한번씩 예쁜 처녀를 바쳐야만 했다.
그 시대에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마음이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도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골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찔레는 몽골에서 그나마 착하고 여유로운 사람을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그리운 고향땅과
부모와 형제들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십여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이 사람을 고려로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그래서 찔레의 마음은 더 아팠고, 더욱 더 가족들과 고향이 그리워 병에 걸리고 말았다.
찔레의 병은 누구도 고칠수 없는 병이었고 보다못한 주인이 찔레에게 고향의 가족을 찾아가도록
허락을 하며 단 한달만 있다가 돌아오라는 조건을 붙였다.
고향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고향집은 불타 없어진 상태였고, 찔레는 동생과 부모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여기저기 산 속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한 달의 기한이 다가도록 찾지 못하고 몽골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고 슬픔에 잠긴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해서 고향집 근처에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듬해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고...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 엄마,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큼큼~
▒▒▒ 찔레꽃 / 이연실 ▒▒▒
엄마 일 가는 길에 햐얀 찔레꽃
찔레꽃 햐얀 잎은 맛도 좋지
배 고픈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햐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햐얀 엄마꿈
산등성이 넘어론 흔들리는 꿈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 쪽에
묻어주 비 오면 덮어 주고
눈 오면 쓸어 주 내 친구가
날 찾아도 엄마 엄마 울지마
울밑에 퀴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 기럭 기러기 날려 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라 갑니다
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밤
시골집 뒷산길이 어두워 질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이 [가을밤]이란 동요다. 어릴 때, 일하러 나간 어머니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날이면 누나랑 같이 집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가
걸어올 길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곤 했다.
이 노래는 또 [새색시 시집가네][목로주점]을 부른 1970년대 포크 가수
이연실씨가 제목과 노랫말을 달리 해서 부르기도 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아프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오는 꿈
이 [찔레꽃]이란 노래는 또 이원수가 1930년 [신소년]에 발표한
동시(童詩) [찔레꽃]을 바탕으로 다시 쓴 듯하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한 詩는 또 다른 詩를 낳고..한 노래는 또 다른 노래를 낳는가 보다.
이 가을, 동요 [가을밤]과 이연실이 부른 [찔레꽃],
그리고 이원수 동시에 붙인 [찔레꽃]을 함께
들어 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큼큼~
▒▒▒ 찔레꽃 / 백난아 ▒▒▒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2.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객창 푸른별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 [찔레꽃]에 망향의 恨 담아낸 원로가수 백난아에 대하여..
훈풍이 불어오는 오월, 산기슭이나 볕 잘 드는 냇가 주변의 골짜기에는 하얀색,
혹은 연붉은 빛깔의 꽃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피어납니다.
그 이름도 정겨운 찔레꽃입니다. 가지는 대개 끝 부분이 밑으로 처지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습니다. 이 찔레꽃에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좀찔레, 털찔레, 제주찔레, 국경찔레 등으로 나누어
지는데, 대부분 하얀 꽃이지요. 하지만 유독 불그레한 꽃이 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경찔레입니다. 흔히 찔레나무로도 불렀지요.
고향을 떠나 만리타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온 사람들은 두고온 고향을 내내 잊지 못합니다.
아련한 추억의 스크린에 고향의 모든 것은 온 통 그리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기어이 눈물
방울을 적시게 하지요.
그러한 그리움의 테마들 가운데 우리는 단연코 찔레꽃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통과해온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고향은 항시 가난과 서러움, 눈물과 시련으로 가득했던 공간입니다.
그 어렴풋한 실루엣 속에서 찔레꽃은 언제나 향수의 단골 테마로 떠오릅니다.
바로 그 때문일까요..?
1942년 가수 백난아(白蘭兒·1923∼92)가 취입한 노래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태평
레코드 5028)]은 한국인이 언제 어디서나 가장 즐겨 부르는 민족의 노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어떤 고난에 시달려 마음이 쓰리고 아플 때, 혹은 고향 생각에 시름겨울 때 우리가 나직하게
읊조리는 [찔레꽃]의 한 소절은 마음의 소란을 차분히 위로하며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로 다가옵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에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겁던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옛노래는 가사를 음미하면서 곡조에 맞춰 흥얼거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지닌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가 가슴속으로 소르르 흘러들어오게 되지요. 가사를 어디 한번 훑어볼까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이라고 했으니 이 노래는 필시 만주와 시베리아를 비롯하여
바람찬 북쪽으로 울면서 떠나갔던 북간도 유랑민의 처연한 삶을 다룬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타향에서 바라보는 달과 별은 항상 서러움을 재생시켜주는 장치입니다. 고향집을 떠날 때 친구들과
이별을 하던 장면이 추억의 장막 위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재생되고 있습니다.
[자줏빛 옷고름]은 또 얼마나 한국적인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적절한 소도구이겠습니까.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틈날 때마다 옛 친구들과 함께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꺼내보며 눈물에
젖습니다.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다고 왈칵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 떠돌이 유랑민의 부평초 같은 신세이겠지요.
이 노래의 3절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취입된 음반을 들어보면 분명
3절까지 선명하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3절은 너무도 아름답고 애잔합니다.
가슴속은 고향 그리움으로 가득하지만 이제 터를 잡은 타향에서 새로 뿌리를 내려가야만 한다는
다짐이 느껴집니다. 이 다짐을 우리는 춥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북간도에 [연분홍 봄바람]이
불어온다는 대목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북간도에 활짝 핀 찔레꽃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며
고향 그리움을 참고 이겨가는 몸부림이 무척 대견스럽습니다.
가요곡 [찔레꽃]에는 식민지 시절, 온갖 어려움과 악조건을 극복해내고 마침내 다부진 정착의
삶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우리 겨레의 고단하지만 낙천적인 생존의 과정이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중천에 높이 떠서 슬피 우는 새를 꾀꼬리라 했는데, 이 대목은 아무래도 종달새(노고지리)가 맞을
듯합니다. 종달새도 요즘은 예전처럼 보기 흔한 새가 아니지요.
독자 여러분께서는 오늘 이 [찔레꽃]을 3절까지 일부러 소리 내어 한번 불러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른 뒤 가슴 속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찬찬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눈 쌓인 금강산을 유람하던 어느 해 겨울, 만물상 가는 길목의 금강산 호텔 2층,손님도 없는 식당에서
혼자 마이크를 잡고 부르던 북한 처녀의 [찔레꽃]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북한 처녀가 1절을 부르고 제가 선뜻 자청해서 2절을 불렀으니 뜻밖의 남북 합작이 되었지요.
눈을 감으면 낭랑하고 아리따운 목소리로 엮어가던 북녀(北女)의 노래가 귀에 쟁쟁 들리는 듯합니다.
이 노래는 북에서도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처녀는 전해주었습니다.
[찔레꽃]의 원곡을 부른 가수 백난아는 1923년 제주도 한림읍 명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방어를 낚는 어부였다고 합니다. 본명은 오금숙이지만, 가수 데뷔 이후 태평레코드사의
선배가수 백년설이 자신의 예명에서 성을 따 백난아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예명에도 이처럼 성씨가 적용되는가 봅니다.
백난아가 가수로 데뷔한 해는 1940년, 그러니까 17세 때의 일입니다.
일제말 함경도 회령에서 열렸던 태평레코드사 주최 전국가요콩쿠르에 출전하여 2위로 뽑혔지요.
당시 심사를 맡은 사람들은 작사가 박영호, 천아토, 작곡가 김교성,이재호,가수 백년설 등이었습니다.
백난아의 첫 데뷔곡은 [오동동 극단]과 [갈매기 쌍쌍]입니다. 같은 음반에 실린 이 두 작품은 처녀림
작사, 무적인 작곡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아리랑 랑랑]도 비슷한 시기의 작품입니다.
원래 태평레코드사는 오케(OKHE)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지만 백년설, 백난아,
진방남,박단마 등이 전속가수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의인기를 집중시켰습니다.
식민지 시절에 발표했던 백난아의 대표곡들은 [황하다방][망향초 사랑] [무명초 항구]
[북청 물장수] [간도선] [직녀성]등입니다. 이 가운데 1941년 발표한 [망향초 사랑(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의 창법은 장세정의 히트곡 [연락선은 떠난다]에 비견될 정도로 백난아 특유의
애수와 하소연이 느껴집니다.
8·15 광복 후 백난아는 서울, 부산 등지의 방송국 전속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후배가수 이미자는
그녀의 나이 10세였던 부산 피란 시절, 동아극장에서 백난아의 공연을 보고 가수의 꿈을 품었다는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백난아는 1960년대까지 수많은 악극단 공연에 참가했고, [내 고향 해남도] [님 무덤 앞에]
[금박댕기] [호숫가의 엘레지] [봄바람 낭낭] [낭랑 18세]등의 대표곡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분단 이후 백난아의 노래는 킹스타레코드와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주로 취입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어머니의 품속처럼 푸근하고 자애로움이 느껴지는 모성적 감각의 창법. 바로
이것이 백난아 노래의 빛깔이라 할수 있지요.
식민지 후반기에 데뷔하여 199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가수 백난아는 많은 활동을
펼쳤습니다. 2007년 제주 한림읍 명월리에는 백난아 노래를 사랑하는 고향 사람들에 의해
[찔레꽃 노래비 공원]이 세워졌습니다. [글쓴이 / 이동순(시인·영남대 국문과 교수)]
▲ 찔레꽃 / 소리사랑
▒▒▒ 찔레꽃 / 장사익 ▒▒▒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세워 울었지
아~! 노래하며 울었지
아~! 춤추며 울었지
아~! 당신은 찔레꽃
▲ 찔레꽃 하모니카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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