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제15대 미천왕(美川王)이 왕이 되기 전 머슴살이를 한 적이 있다. 본명이 을불인 미천왕은 봉상왕의 동생인 돌고의 아들이다. 돌고가 동생 봉상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후 을불은 목숨 부지를 위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는 압록강 상류 수실촌의 음모라는 사람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왕족이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낮에는 산에서 땔감을 해오고 밤이면 개구리소리에 잠을 못 자는 주인을 위해 밤새 못에 돌을 던지는 일도 했다.
어느날 을불은 머슴살이를 청산하고 음모의 집을 나와 소금장수를 시작했다. 그 무렵 고구려조정에서는 폭군 봉상왕을 폐위시키고 왕손인 을불을 옹립하기 위해 그를 찾고 있었다. 고구려의 신하들은 압록강에서 소금을 싣고 가던 을불을 찾아내 왕위에 오르게했으니, 그가 미천왕이다.
머슴은 농가에 고용돼 농사일과 가사노동을 맡았던 농업노동자다. 주인집에서 같이 살면서 의식주를 제공받고 품삯은 연말에 새경이라 하여 연봉을 받았다. 노동력에 따라 상머슴, 중머슴, 꼼담살이(소년머슴)로 분류, 상머슴에겐 일년에 벼 5~7석이 지급됐다. 1960대 이후 농촌근대화와 이농현상으로 머슴은 거의 사라졌다.
고려시대엔 '용작(傭作)', 조선시대엔 '고공(雇工)'이라 불렸던 머슴은 정작 농촌에서는 사라졌지만 정치권에서는 지금도 자주 애용된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지난 대선때 "머슴을 뽑아 새롭게 나라를 세우게해달라"고 호소하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대선은 나라의 상머슴을 뽑는 선거"라며 이명박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대선에 승리, 상머슴자리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각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직자는 쉽게 말해 머슴"이라며 '머슴론'을 피력해 이대통령의 공직관을 확인시켰다.
또 "1조원이 들어갈 사업에 2조원, 3조원이 들어가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며 공무원의 무사안일도 질책한 바 있다.
봉사형 공직자상을 강조하는 이대통령의 '대통령 머슴론'은 이명박정부의 확고부동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머슴을 잘 부려먹으려면 주인인 국민이 너무 닥달만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상머슴의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난국을 헤쳐나가리라 믿고 격려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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